게임업계도 참여, 콘텐츠 성평등센터 '보라' 문 열었다
2018.03.29 17:32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콘텐츠성평등센터 '보라' 개소식 현장 (사진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는 공기와 같다. 게임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만화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문화를 배워간다. 어릴 때부터 어떤 문화를 보고 즐겼는가가 어떠한 성인으로 성장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사람과 문화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최근에 문화계에 큰 충격이 있었다. 이윤택 연출가, 고은 시인 등 본인의 분야에서 거장으로 평가 받던 예술가들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업계 전체가 들썩였다.
그 중에는 문화 및 콘텐츠업계가 스스로 ‘성폭력’을 뿌리 뽑을 때가 왔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 동안 묻어두기만 했던 ‘성폭력’ 문제를 업계 스스로가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콘텐츠 협단체 16곳이 ‘성폭력 뿌리 뽑기’에 뜻을 합친 것이다. 국내 게임 대표 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국모바일게임협회도 이에 동참했다.
그 시작은 3월 29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삼분원 지하 1층에 문을 연 콘텐츠성평등센터 ‘보라’다. 센터 이름에 대해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영준 원장은 “보라색은 위험을 해소하고, 불안함을 정화시키는 색이다. 또한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페미니즘 운동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라며 “여기에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성폭력과 성차별에 시달리는 내 이웃의 사람을 보라는 의미를 담았다”라고 말했다. 이 날 김영준 원장은 보라색 넥타이를 메고 왔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영준 원장 (사진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신고부터 법률지원까지, 성폭력 피해자 위한 통합지원 제공
‘보라’의 첫 임무는 콘텐츠업계에서 성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승준 단장은 “우선 피해사실에 대한 접수를 받는다. 접수는 온라인, 전화, 방문으로 가능하다. 전화번호는 1670-5678인데, 이 번호는 우리 센터만이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인복지재단이 함께 쓰는 통합 신고번호다”라고 말했다.
피해사실을 신고하면 전문상담원이 이를 확인하고,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하고, 보호할지를 1차적으로 결정한다. 1차 결정이 나오면 자문위원회가 피해사실을 다시 검토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향을 확정한다. 박승준 단장은 “자문위원회는 총 8명이며, 성평등 전문가 외에도 정신과 전문의, 심리 상담가, 변호사가 포함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피해자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심리상담,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을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법률상담도 제공한다.
▲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한 번에 제공한다는 것이 '보라'의 핵심 (자료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 피해 접수가 들어오면 이런 식으로 일이 처리된다 (자료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른 기관과 힘을 합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본래 콘텐츠산업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라 사건을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 이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성폭력 피해자 상담과 지원을 전문적으로 하는 ‘해바라기 센터’와 손을 잡았다. 앞으로 두 센터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수사지원, 법률자문상담, 재판지원에 협력한다. 특히 ‘해바라기 센터’에는 24시간 내내 경찰관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다.
가해자를 정부 보조금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보류시키는 것도 고려 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함께,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지원사업에서 배제할 것을 결의했다. 가해자가 정부 사업에 발을 못 들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콘텐츠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업계도 힘을 실어준다.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국모바일게임협회를 비롯한 국내 콘텐츠 협단체 16곳은 ‘성평등 실쳔을 위한 공동 선언식’을 가졌다. 성폭력을 근절하고, 성평등 문화 확산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박승준 단장은 “센터를 준비하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콘텐츠성평등센터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격려도 많았지만 한쪽에서는 우려도 있었다. 시류에 편승한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성폭력’ 이슈를 다룰 전문성이 있느냐 등이다”라며 “전문성을 따지면 경험치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성평등 문화 확산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진정성은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비전은 ‘성차별’ 없는 콘텐츠 만들기
이번에 문을 연 콘텐츠성평등센터 ‘보라’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라’에도 꿈이 있다. 성폭력과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 콘텐츠업계에는 캠페인과 교육이 주를 이룬다. 성폭력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 및 성평등 교육을 지원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에도 성차별적인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분을 조금씩 개선하고, 성평등 문화를 사회 속에 퍼트리기 위해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가를 연구한다.
▲ '보라'의 앞으로의 목표 (자료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