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게임 주요뉴스 ⑤ 안팎으로 진통겪은 e스포츠
2019.12.27 10:00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2019년, 한국 게임업계는 분명 양적으로 성장했다. 아직 집계가 되진 않았지만 올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14조 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무작정 체중 불리기에만 집중해서일까, 내부적으로는 곳곳의 혈관이 막혀가는 성인병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게임메카는 연말을 맞아 올 한 해 게임업계 주요 이슈들을 분야별로 정리해 보는 특집코너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국내 e스포츠 팬에게 2019년은 실로 아쉬운 한 해였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은 대부분의 종목에서 최강이라 할만큼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서양권 팀들에게 번번히 1위의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위기설이 제기됐던 2018년보다도 오히려 성적은 더 좋지 못했다.
경기 외적으로 봐도 상황은 좋지 못하다. 리그의 주관사가 종목사로 변경된 이후 다양한 운영문제가 발생해 많은 e스포츠 팬들과 관계자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그리핀 사태'가 터져 선수들의 계약 문제 등 국내 e스포츠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도 있었다. 근 10년 중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낸 국내 e스포츠를 되돌아 보았다.
더 이상 한국 e스포츠는 세계 최강이 아니다
본래 e스포츠는 종목을 불문하고 한국의 독무대라고 봐도 무방했다. 간혹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거나 미국, 유럽 등의 서양권 팀이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언제나 '최강'이라는 단어는 한국에게만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삐걱거리던 최강이라는 왕좌는 2019년 확실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가장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다. 2018년 롤드컵에서 무력하게 챔피언의 자리를 헌납했던 한국은 절치부심하며 2019년 시즌을 준비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지난 5월에 열린 '2019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과 11월에 열린 '2019 롤 월드 챔피언십' 모두 4강에 머물며 최강이란 수식어를 유럽과 중국에게 넘겨주게 됐다.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다. 3년 연속 월드컵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지난 11월 진행된 '2019년 오버워치 월드컵' 4강 경기에서 한국은 미국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4강에 머물고 말았다.
배틀그라운드에서도 한국 팀의 부진이 있었다. 지난 8월에 열린 최초의 배틀그라운드 국가 대항전 '2019 펍지 네이션스 컵'에서 준우승에 머무른 것이다. 이 밖에도 클래시로얄이나 서머너즈워 같은 모바일 e스포츠에서도 한국은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물론 스타크래프트 2나 피파온라인 4 등이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긴 했지만 실망한 한국 팬을 위로하기엔 다소 부족했다.
한국의 부진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철저한 내부 경쟁과 과감한 자금 투자로 기량을 한껏 끌어올린 서구권 팀들의 성장이 원인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고, 정반대로 점차 커지는 e스포츠 시장에서 한국이 소극적인 자본 투자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는 관계자도 있다. 양쪽 모두가 원인일 수 있지만, 어느 쪽이 되었던 지금까지 한국 e스포츠의 전반적인 질적 상승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리그를 주관하게 된 종목사의 미숙한 대회 운영
선수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종목사의 리그 운영도 평가는 좋지 못했다. 2018년부터 종목사 주관으로 변경된 주요 e스포츠 대회 대부분이 전반적인 완성도의 하락을 겪은 것이다. 특히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대회를 운영하고 있는 LCK가 이 비판의 중심에 있다. 작년 롤드컵 결승전 당시 관객 좌석이 증발해버리거나 티켓 등급에 따라 관객을 차별하는 일이 일어나 많은 비판을 받았던 라이엇게임즈는 2019년에도 잦은 실수로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진에어 한상용 감독의 밴픽 노트가 카메라를 타고 노출됐던 사건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 8월에 열렸던 '2019 LCK 서머 결승전'도 마찬가지다. 다른 리그의 4분의 1도 안 되는 좌석 수, 팬들의 공감을 하기 힘든 오프닝 영상과 무대, 30분이 넘게 지속되는 퍼즈 등 역대 최악의 결승전이란 오명을 받았다. 결승전이 끝난 지 3일 뒤에 진행된 롤드컵 선발전에선 양 팀 감독 헤드셋이 바뀌는 실수가 발생하며 라이엇게임즈 자질은 계속해서 시험대에 올랐다.
비단 라이엇게임즈만의 문제는 아니다. 배틀그라운드 리그 국제대회였던 2019 MET 아시아 시리즈도 경기장 정전으로 인한 재경기, 중국과 대만 팀의 보이콧, 중국팀의 티밍 의혹 등 배틀그라운드 리그 체제 확립 이후 최악의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의 연고지 기반 e스포츠 대회인 오버워치 리그 국내 중계 또한 잦은 음향 문제에 시달리며 비판을 받았다. 중계는 물론 대회를 진행하는 각 종목사는 내년만큼은 더욱 철저한 준비를 통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블리자드를 태워버린 홍콩 민주화의 불씨
2019년 범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 하나를 꼭 고르라면 홍콩 민주화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게임계 또한 이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지난 10월 있었던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징계 사건은 e스포츠를 넘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0월 진행된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아시아태평양 대회에서 홍콩 선수 '블리츠청'이 인터뷰 중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이란 문구를 외쳤다. 이에 블리자드는 해당 선수가 경기 규정을 위반했다며 1년간 출전 정지 및 상금 몰수라는 징계를 내린다. 이에 블리자드는 게임업계 안팎으로 큰 비판을 받게 된다. 대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발언에 징계를 내릴 순 있지만, 그 수위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것이다.
트위터를 비롯해 각종 SNS에선 #Blizzardboycot이란 해시태그가 유행했으며, 블리자드 직원조차 회사 앞의 오크 동상에 모여 우산을 쓰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른 게임사는 물론, 미국 국회의원도 나서서 블리자드를 비판했다. 이에 블리자드는 상금 박탈을 취소하고 출전 정지 기간을 6개월로 낮추며 한발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자, 제이 알렌 브렉 사장은 블리즈컨 2019 개막식에서 이에 대해 재차 사과해야 했다.
한국 e스포츠의 어두운 민낯, 그리핀 사태
하스스톤이 블리자드를 흔든 큰 태풍이었다면 그리핀 사태는 국내 e스포츠판을 흔든 대지진이었다. 김대호 그리핀 전 감독이 경질되면서 시작된 이 사태는 초반엔 단순히 팀 내부의 갈등이었지만 김대호 감독의 폭로가 시작되며 e스포츠 전체 문제로 크게 번지게 된다. 조규남 대표가 '카나비' 서진혁으로 하여금 템퍼링을 빌미로 원치 않는 불공정계약을 맺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에 LCK운영위원회와 하태경 의원이 함께 사건 조사에 나섰고, 최종 결과가 발표됐지만 두 조사결과가 사뭇 다른 온도차이를 보이며 오히려 사태가 더 악화됐다. 특히 김대호 감독의 징계 수위가 논란이 되며 이 사태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등장, 청원 시작 1주일 만에 2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리핀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김대호 감독의 징계는 아직까지도 유보된 상태이며 스틸에잇의 경영권은 아직 처분되지 않았다. 더불어 최근 전 그리핀 탑솔러 '도란' 최현준 징계문제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LCK운영위원회는 리그의 운영자로서 믿음을 주지 못했다. 혹자는 그리핀 사태가 한국 e스포츠계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스포츠 역사가 2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선수들의 권익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e스포츠 문화가 미성숙하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다. 하루빨리 사태가 마무리되고 대책이 제대로 갖춰져 한국 e스포츠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팬들의 사랑으로 한국에서 부활한 히오스 리그
안 좋은 소식이 잔뜩 있었다고 좋은 소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12월, 뜬금없이 중단됐던 히어로즈 오브 스톰 리그가 팬들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며 많은 e스포츠 팬들을 감동케 했다. 아프리카TV가 지난 3월 14일부터 진행한 '히어로즈 오브 스톰: 리바이벌(이하 히오스 리바이벌)'이 그 주인공이다. 히오스 리바이벌은 팬들이 방송에 후원한 별풍선을 대회 상금으로 사용한다. 차기 시즌 여부도 팬들의 후원금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자동으로 결정된다. 사실상 팬들이 되살린 대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히오스 리바이벌은 시즌 1 당시 2,500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으며 차기 시즌은 물론 아프리카TV의 네이밍 스폰서를 지원받았다. 이후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지난 12월 4일에는 시즌 4를 진행했다. 한국 e스포츠 팬들의 열정이 이렇게나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