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캐릭터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늘고 있다
2020.08.20 18:10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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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에 본지에서 장기간 게임을 이용하지 않은 게이머들의 캐릭터 삭제에 대한 국내 게임사 운영 정책을 살펴봤다. 여기에서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부분은 큰 비용을 들여 키운 게임 캐릭터가 법적으로는 개인정보와 같이 취급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와 캐릭터 정보가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개인정보’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1년 이상 접속하지 않은 캐릭터는 삭제될 우려가 있다.
게이머 입장에서 캐릭터는 단순한 개인정보 이상이다. 특히 MMORPG를 몇 년간 즐긴다면 캐릭터 하나당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비용이 만만치 않게 크다. 여기에 플레이를 통해 얻은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게임머니와 게임 아이템도 캐릭터에 함께 물려 있다. 이러한 캐릭터가 사라진다면 그간 투자한 시간, 비용이 0이 되어버리고, 플레이 성과라 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도 모두 날아가 버린다.
다시 말해 게이머에게 캐릭터는 본인이 플레이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주목해볼 점은 법원에서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된 첫 주요 판례는 2009년에 나왔고, 이후에도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재산으로 인정한 판결이 있었다.
정당하게 획득한 게임 아이템과 게임머니는 법적으로 인정되는 재산
이에 관련된 대표 판례는 2013년에 나왔다. 던전앤파이터 유저가 ‘실수로 캐릭터를 삭제했다’라고 게임사를 속여서, 캐릭터와 아이템을 여러 번 복구 받고, 이렇게 얻은 아이템을 팔아서 5억 7,000만 원을 챙겼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 이용자를 사기죄로 판결했다. 게임 아이템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이며, 게임사 직원을 캐릭터가 삭제된 것처럼 속여서 여러 번 복구를 받고, 이를 통해 챙긴 아이템을 팔아서 돈을 번 것은 사기죄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법원은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비용, 시간, 노력 등을 투자해야 하고 현실에서 현금으로 거래되는 대상이기에 금전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형법으로 보호하는 재산상 이익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두 가지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게임 아이템을 유저가 노력을 통해 얻은 ‘자산’으로 인정한 것, 또 하나는 거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물건으로 판단한 부분이다.
국내 게임사는 약관상 게임 아이템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자산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울러 6개월에 1,200만 원 미만의 개인 간 거래는 불법이 아니다. 게임 아이템 자체가 거래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는 물건이라면 이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 캐릭터 역시 법적으로 재산적인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이템을 얻은 방식이 불법이 아니어야 재산으로 인정된다. 이에 관련한 가장 최근 판결은 올해 3월 31일에 울산지법에서 나왔다. 검사는 리니지 불법 사설서버 운영자가 게임 아이템을 불법적으로 만들어 유저에게 팔아서 얻은 2억 2,648만 원을 추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아이템 판매로 얻은 이득은 사설서버 이용료가 아니라서 검사가 기소한 ‘불법 사설서버 운영으로 얻은 범죄이익’으로는 추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이 사람이 아이템을 파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게임사가 허용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파는 것은 ‘불법 환전’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상적으로 얻은 아이템으로 이익을 내는 것은 합법이지만, 불법으로 얻은 아이템을 파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 판결은 법적으로 자산이라 인정하는 게임 아이템은 정상적인 플레이를 통해 획득한 것만 포함된다는 것에 힘을 실어준다.
게임머니도 법적인 재화로 인정하는 판례가 있다. 2018년 1월 30일에 수원지방법원에서 나온 것이며 핵심은 가상화폐 중 하나인 비트코인을 재산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법원은 비트코인을 재산이라 판단했는데,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게임머니다. 게임머니가 부가가치세법상 재화(재산 가치가 있는 물건 및 권리)이기에, 비슷한 디지털 재화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도 재산적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2009년과 2012년에도 게임머니를 법적인 자산으로 판단하는 판례가 나왔다. 2009년에 서울행정법원은 게임머니도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재화이며, 게임머니를 팔아서 수익을 냈다면 이 수익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징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2년에도 대법원에서 동일한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아이템 중개업체를 통해 판매되는 게임 아이템과 게임머니는 재화라 볼 수 있고, 이를 팔아서 얻은 이익을 기준으로 부가가치세를 추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게임머니 역시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유저가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을 ‘재산상 이익’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 불법 자동 프로그램을 돌려서 얻은 게임머니를 팔아 중개 수수료 253억 원을 챙긴 일당이 검거됐고, 수수료를 전액 환수한 사건이 있었다.
게임 캐릭터 영구보존, 업계에서도 고심해야 할 과제
종합하자면 법원은 유저가 정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 얻은 게임머니와 게임 아이템을 법적인 재산으로 인정하고 있고, 관련 판례는 조금씩 늘고 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는 게임 캐릭터에 저장된 재산이기도 하다.
아울러 모바일게임이 늘어나며 온라인게임이 중심을 이루던 2010년 이전보다 캐릭터 하나에 투자되는 돈은 점점 늘고 있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늘고 있고, 2018년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7.2% 성장한 6조 6,558억 원이다. 국내 매출 최상위권을 차지한 모바일게임은 RPG가 대부분이기에, 게임 캐릭터에 투자하는 돈도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처럼 캐릭터에 들이는 비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게임 캐릭터에 물려 있는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법적인 재산으로 인정하는 판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주요 게임사 중에는 휴면 계정이라도 캐릭터를 삭제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곳이 있다. 게임 캐릭터를 개인정보로 취급해 비교적 쉽게 삭제하는 것이 시대 흐름에 맞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