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게임 리소스 재활용 사업, 운영에 문제 없을까?
2020.12.15 17:51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지난 8월, 문체부와 한콘진 그리고 한국게임개발자협회가 게임 리소스를 구매해 중소 개발사에 무상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게임개발 리소스 라이브러리 사업으로 소개된 이 사업은 현재 ‘게임자료 공유마당 구축 및 운영사업’으로 불리고 있다.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출시에 도달하지 못 해 방치되거나 버려진 게임 리소스를 정부가 매입하고, 이를 중소 게임사나 인디게임 개발자, 게임 전공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흡사 ‘게임 리소스 재활용센터’를 떠오르게 하는 사업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환영했으나, 일각에서는 걱정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리소스 매입 비용이 현실성이 있겠느냐는 지적부터, 서비스 종료된 게임 리소스가 활용 가능한 수준일 것인지, 저작권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외부 유출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등 다양한 우려사항이 제기됐다. 이런 의문과 지적들이 실제 문제가 되지 않을지, 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한국게임개발자협회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 들어 보았다.
종료된 게임 리소스, 과연 사용 가능한 수준인가?
가장 먼저, 정부 예산으로 구매한 게임 리소스가 사용 가능한 수준인지에 대해 물었다. 일반적으로 게임 엔진 에셋스토어 등에 올라오는 공유용 리소스는 판매 목적으로 제작하기에, 정리가 깔끔하고 2차 가공이 쉽도록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반면 게임자료 공유마당에서 매입하는 리소스는 1차적으로 각 게임사들이 스스로 사용하려고 만들었기에, 가공이나 재사용이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단, 사업에 앞서 협회는 전현직 인디게임 개발자 및 중소, 영세게임사 대표들을 상대로 설문조사 및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발사 니즈 및 보유 리소스 현황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200여 건의 설문과 50여 건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결론은, 많은 이들이 3D가 아닌 2D 게임을 만들고 있으며 제작 기간은 평균 3달~4달 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3D 게임을 6달 이상 개발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투자 대비 회수 비용을 생각하면 2D 게임을 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전석환 실장은 “영세 사업자나 인디게임 개발자일수록 그래픽 디자이너를 따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파트타임이나 외주 형식으로 일을 맡긴다. 대형 외주사에 맡기기엔 여러 모로 문제가 있어 아는 사람이나 지인을 통해 200~1,000만 원 정도 프로젝트로 주로 진행한다는 사실도 들었다”라며 “결론적으로 국내 영세/중소 개발자들이 가장 원하는 부분은 2D 리소스로 판단되기에, 사업 첫 해에는 2D 리소스 위주로 매입/배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2D 리소스라고 해도 종류가 많다. 흔히 2D 게임 리소스라고 하면 원화나 일러스트, 캐릭터 등 굵직한 아트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러한 자료들은 게임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재활용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정식으로 리소스를 양도받거나 구매하더라도 표절 게임으로 낙인찍히거나 마켓에서 내려갈 수 있기에, 대다수 개발자들은 이런 핵심 리소스는 자체 제작이나 외주를 통해 별도로 마련한다.
김영희 AD는 2D 리소스 중 니즈가 높았던 분야는 유저 인터페이스(UI), 이펙트, 오브젝트, 사운드 등 부가적 소스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매입하고 제공할 것인지는 심층 인터뷰에서 해답을 찾았다. 2D 게임은 작품에 따라 각 분야 리소스의 작풍을 통일해야 하는데, 특정 캐릭터와 배경을 만들었더라도 그에 맞는 UI나 이펙트, 사운드가 없으면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조잡한 게임이 나오기 십상이다.
김 AD는 “실제로 아티스트가 없는 개발자의 경우 역기획을 많이 한다. 일단 사용할 수 있는 리소스를 추린 후, 그에 맞춰 기획을 하는 식이다. 우리의 경우 당초엔 리소스 카테고리 별로 리소스를 구분해서 매입/배포하려 했는데, 이러한 의견을 듣고 카테고리보다는 장르별로 취합해서 통째로 구매해 제공하는 것이 개발자 입장에서 사용하기 유용할 것으로 보여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지난 10월 27일부터 시작된 1차 상시접수에서는 꽤 많은 업체들이 리소스를 판매하고자 지원했다. 콘텐츠 평가는 두 차례로 나눠서 진행됐다. 활용 가능한 리소스 영역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량적 평가, 해당 리소스 품질에 대한 정성적 평가다. 평가위원은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한국인디게임협회,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그래픽, 사운드 등 각 분야 전문 평가위원 4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이해 당사자들은 제외했다. 1차 평가에서는 40여 명의 위원 중 블라인드 픽으로 7명을 선정해 심사했으며, 해당 위원들은 2차 평가에 선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했다.
정성적 평가는 콘셉트가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잘 그렸나 등이 아닌, 해당 리소스를 실제 게임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쓸 수 있게 정리되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의 경우 게임 엔진에서 구동이 제대로 될 수 있게 파일을 다 제공하는지, 일반 2D 이미지의 경우 PSD나 벡터 이미지를 얼마나 상세하게 보유하고 있는지 등이 배점에 영향을 준다. 이를 통해 300점 만점에 100점 이상을 받은 것 위주로 매입 제안을 보냈고, 총 21개 업체가 이를 수락해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의 리소스 비용을 받았다.
김영희 AD는 “처음에는 이 정도 리소스가 모일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도트 게임이나 퍼즐 게임처럼 일부 게임만 들어오는 식으로 다양성이 부족할까봐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굉장히 다양한 장르가 모였고, MMO도 2개나 들어왔다. 애니메이션 스파인의 경우 외주 단가가 높아서 스프라이트 위주 애니메이션만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라고 1차 평가 결과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더물어, 매입 비용에 대해서도 대다수 게임사들이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김 AD는 “1차 평가 결과 총 21개 업체 중 10개 업체가 1,000만원 이상을 받았다”라며 “양도단가 결정 후 전화연락을 할 때, 사실 개발비에 비해 굉장히 적은 금액이라 잘 나왔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웠는데, 막상 연락드리니 굉장히 좋은 반응들이 나왔다. 이미 서비스를 끝내고 가치 없어진 리소스인데, 어려운 상황에서 차기작 개발 등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대답이 많았다”고 밝혔다. 전 실장은 “물론 가격이 너무 적다며 안 판다는 분도 한 건 있었다. 그 분의 경우 평가 결과 금액이 좀 적긴 했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매입한 리소스, 저작권 관리는 어떻게?
두 번째로 우려가 제기된 부분은 저작권 관리다. 실제로 협회 내에서도 양도받은 콘텐츠 저작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불법유출이나 용도 외 사용을 막는 방법과 대처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며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한다.
일단 게임자료 공유마당은 국비로 유료 구매한 리소스를 한국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국내 개발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해당 리소스가 해외에서 사용되거나 되팔릴 경우 문제가 된다. 이를 막고 대응하기 위해 협회에서는 기술과 법적 두 가지 방안을 생각했으며, 문체부 및 한콘진과 상의해 이를 담당할 분과위원회를 두 개 구성했다. 기술적 측면을 맡는 플랫폼 분과위원회, 법적 측면을 맡는 저작권 분과위원회다.
플랫폼 분과위원회에서는 1차적으로 외부 유출을 막고, 유출 시 최초 유포자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단위 기술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보안 문제로 자세한 점은 말할 수 없지만, 해당 자료를 누가 언제 다운받았고, 언제 카피했는가에 대해 DRM이나 포렌싱 마크 등 기술적 추적장치를 심는 것 등이다. 이를 통해 유출 시 역추적이 가능하도록 해당 부분을 작업 중이다.
특히 플랫폼 분과위원회에는 유니티와 언리얼 마켓 관계자들도 포함돼 있는데, 협회 측이 구상하고 있는 기술적 조치에 대해 ‘우리도 그 정도까진 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전 실장은 “오픈마켓들은 보안 시스템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물어보니 기본적 방어시스템만 갖추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와 함께 첫 해에는 기본적 장치만 갖추고 진행해 보라는 조언을 받아 살짝 당황했다. 그래서 추적장치 등을 완벽히 갖춰놓고 서비스를 시작하자는 계획을 조금 수정해, 그보다 조금 낮은 단계의 보안과 추적 장치로 시범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작권 분과위원회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유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적 방어/보완장치를 마련했다. 위원회에는 단국대학교 법과대 정해상 교수를 위원장으로 유명 로펌 변호사 등이 포진돼 있으며, 이들과 함께 저작권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법률적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저작권을 나라가 소유하는 공공저작물로 설정할 경우 해외 개발자까지 모두가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저작물로 관리하되 양도 시 법률적 특약을 넣어서 저작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확실히 했다. 특히 국제법과 관련한 부분들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조항을 최대한 세세히 마련하다 보니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는 후문이다.
내년 1월 교육기관 시범서비스, 연내 사업자 대상 오픈
현재 게임자료 공유마당은 1차 상시접수를 통해 21개 패키지 리소스를 확보한 상태다. 내년 1월 30일까지 두 차례의 상시접수를 더 진행해 대략 60개 이상 패키지 리소스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으며, 1월 중순 쯤 시범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시범서비스는 먼저 학생 위주로 진행된다. 이를 위해 협회는 국내 게임관련 대학 학과 40여 개와 특성화고 20여 곳 등 게임 교육기관들과 접촉 중이며, 게임학회와 MOU도 체결했다. 올해 중으로 일반 사업자들에게 서비스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목표치를 묻는 질문에 전 실장은 리소스 수급과 플랫폼 확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2D를 넘어 3D 리소스와 사운드 리소스도 수집하며 올해보다 더 많은 리소스 패키지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규모가 큰 3D 리소스의 경우 현재 매입가 상한인 2,000만 원을 넘는 가격 책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 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게임 중 사장되어 지금 쓰이지 않는 리소스를 지원금 형태로 양도받아 매몰비용을 보전시켜주는 직접적 지원, 그렇게 모인 양질의 데이터를 국내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인디/중소게임 개발사를 위해 제공한다는 목적.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리소스를 모으는 아카이브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라며, “게임자료 공유마당은 호흡이 긴 사업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2년 뒤에는 잘 하고 있다는 얘길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