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 평준화 증명한 LCK, 플레이오프 주인공은 누구?
2021.03.29 17:51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힘든 시기 속에서도 큰 주목을 받으며 개막했던 2021 LCK 스프링 정규 시즌이 지난 28일자로 마무리됐다. 이번 시즌은 '상향 평준화' 한 단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모든 팀들이 5승 이상을 거뒀으며, 하위권 팀들이 모두 한 번 이상의 의미 있는 업셋을 이룩하며 LCK엔 어느 하나 만만한 팀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외에도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 담원 기아의 꾸준한 활약, 플레이오프 규칙 변경에 따른 치열한 2위권 싸움 등 관전 포인트가 참으로 많은 시즌이었다.
정규시즌 종료를 맞아 팀별 성적 결산과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오프 결과를 예측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디펜딩 챔피언의 품격, 1위 담원 기아
롤드컵 우승의 저력과 기량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이번 시즌도 훌륭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두 시즌 연속 16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까지 달성한 것은 덤이다. 시즌 시작 전 유일한 불안 요소로 손꼽히던 '너구리' 장하권의 빈자리도 '칸' 김동하가 완벽하게 대체하면서 약점을 찾기 힘든 팀이 되어버렸다. 물론 2라운드에선 젠지에게 1승을 내주는 일도 있었고 경기력에 기복도 지적됐지만, 유리할 땐 확실하게 이기고 불리할 땐 역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팀임엔 틀림없다.
담원 기아가 정규 시즌 내내 보여준 기량을 생각하면, 스프링 시즌 우승에 제일 가까운 팀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약간의 변수는 있는데, 바로 '쇼메이커' 허수의 부상이다. 진료 결과나 선수 언급에 따르면 게임에 큰 지장이 갈 수준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시점에 발생한 일이라 불안하다. 2라운드에 보여준 선수 개개인의 기복도 결국 여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담원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상태라 상대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들의 강력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모든 팀원이 캐리가 가능하다, 2위 젠지
올해부터는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하는 것이 1위를 차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2위도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직행하기 때문이다. 정규 시즌 1위는 일찌감치 담원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2위 싸움은 평소보다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터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젠지였다. 1라운드까지만 해도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2라운드에선 상위권 팀인 한화, DRX, 심지어는 담원까지 잡아내며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남들보다 먼저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 팀의 강점은 모든 팀원이 고르게 POG(Player Of the Game)를 받을 만큼 팀 밸런스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소속 선수 모두가 경기를 캐리할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이득이다. 다만 팀 색깔을 한타 지향 위주로 바꾸는 과정에서 운영의 단단함이 물러졌다는 점은 이 팀의 몇 안 되는 약점이다. 2라운드에서 T1과 리브 샌드박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유 또한 불리한 경기를 뒤집을 침착한 운영능력의 부재였다. 젠지가 자신들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서 돌아올지 주목해보자.
한화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 3위 한화생명 e스포츠
한화생명 e스포츠의 이번 시즌 분전은 상당히 인상 깊다. 저번 시즌에는 라운드 전패라는 불명예를 기록할 정도로 끝이 없는 부진을 달렸는데, 올해는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만큼 훌륭한 퍼포먼스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스토브리그 최대 매물이었던 '쵸비' 정지훈과 '데프트' 김혁규는 말할 것도 없이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으며, 신인 선수들로 구성된 다른 라인도 코치진의 명확한 판단으로 큰 문제 없이 팀에 잘 녹아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우승을 바라보기에는 아직 불안한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신인으로 구성된 정글과 탑 로스터가 정상급 선수에 속하기엔 모자란 부분이 많다. 정글러의 경우 '아서' 박미르에서 '요한' 김요한으로 로스터가 고정되면서 무난해졌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상위권 팀들 사이에서 무난하다는 것은 좋은 평가라고 볼 수 없다. 탑 라이너들 역시 초반부터 무자비하게 라인전을 펼치는 다른 팀 선수들에 비해 약한 편이다. 여러모로 신인선수들의 각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스트시즌의 다크호스 될 수 있을까? 4위 T1
이번 시즌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팀이다. 양대인 감독과 이재민 코치의 영입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시즌 후반부까지 소위 '돌림판' 운영을 펼치며 의뭉스러운 선수 기용으로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젠지전을 기점으로 로스터가 '칸나' 김창동, '커즈' 문유찬, '페이커' 이상혁, '테디' 박진성, '케리아' 류민석으로 고정되면서 경기력도 수직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T1은 2라운드에서 DRX랑 한화까지 꺾어내면서 4위라는 안정적인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다.
막판 로스터 돌림판 운영이 사라지면서 T1은 이번 포스트시즌 최고의 기대팀으로 떠올랐다. 당장 위의 '칸커페테케' 조합은 케리아만 제외하면 작년 스프링을 말 그대로 씹어 먹은 선수들인 데다가, 백전노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수많은 플레이오프를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담원 기아를 제외하면 T1이 이겨보지 못한 팀이 없다는 것 또한 이번 포스트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과연 T1은 스프링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까?
마지막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분전했다, 5위 DRX
1라운드만 해도 DRX의 활약은 기대 이상으로 눈부셨다. 정글을 제외한 모든 로스터가 바뀌는 최악의 스토브리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팀들에게 밀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라운드로 넘어오면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팀의 에이스인 '표식' 홍창현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선수들도 덩달아 경기력이 추락하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을 앞둔 막바지에 이런 성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이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탑 라이너인 '킹겐' 황성훈을 제외한 다른 라이너들의 체급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에이스이자 정글러인 '표식'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 보기도 전에 상대 라이너에게 밀리는 일을 줄여야 기존 DRX의 장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패치 버전을 기반으로 자신이 잘하는 픽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준비해서 포스트시즌에는 또 다른 반전을 보여주길 바란다.
창단 첫해에 플옵 막차 탑승, 6위 농심 레드포스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자리가 한 자리 늘어나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6위를 누가 차지할지에 대해 많은 이목이 쏠렸다. 결국 뜨거웠던 마지막 티켓은 농심 레드포스의 차지가 됐다. 농심은 상위권 팀들은 잡아내는 업셋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팀들을 상대로 착실하게 승수를 쌓았고 덕분에 창단 첫해, 첫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위에서 말했듯 농심 레드포스는 이번 시즌에 업셋을 달성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덕담' 서대길이라는 걸출한 원딜러와 '피넛' 한왕호라는 베테랑 정글러가 분전하고는 있지만 상위권 팀을 이기기엔 다른 라이너의 기량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플레이오프 첫 상대인 한화생명이 자신들의 약점인 미드 라인에 강점을 두고 있는 팀이라는 점도 악재다. 농심이 지금까지 못했던 업셋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라운드에서 보여준 저력이 아쉽다, 7위 KT 롤스터
1라운드에선 플레이오프 진출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던 KT 롤스터는 2라운드에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좋은 활약을 모여줬던 에이스 '유칼' 손우현을 갑자기 벤치에 앉히고 '도브' 김재연을 주전에 앉힌다든가 1라운드에서 노련미를 보여준 베테랑 '블랭크' 강선구를 2군으로 내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이 오히려 독으로 돌아왔다. 좀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뒀던 강수가 알고 보니 악수였던 셈이다.
물론 프론트에서 팬들에게 사과문을 올릴 만큼 안 좋은 스토브리그를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저력을 보여준 것은 맞다. 1라운드만 보면 현재의 선수진으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위는 결국 시즌 초반 예상과 똑같이 마무리됐다. 어떻게 보면 아프리카 프릭스와 더불어 스토브리그가 시즌 전체를 통틀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갔는지 증명한 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종의 미를 거뒀다, 8위 리브 샌드박스
리드 샌드박스는 2라운드의 핫 이슈,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바로 위에 있는 KT 롤스터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1라운드에는 기대만 못 한 경기력으로 실망을 주었다면, 2라운드에선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활약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대 DRX전에서도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도 했다.
물론 성공적인 2라운드 행보와는 별개로 이번 시즌 내내 리브 샌드박스는 이런저런 문제점이 터져 나왔다. 주장으로써 강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서밋' 박우태의 폼이 저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라이너들도 팀원 중 누군가가 흔들릴 때마다 집중력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 전체의 단합이 좋지 못함을 드러냈다. 더불어 코치진의 밴픽도 다른 팀들에 비해서 영리하지 못했다. 잠재력은 인정하나 이를 다스릴 정신력과 철저한 분석력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다.
예상됐던 참사, 9위 아프리카 프릭스
시즌 초반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가 결국엔 나오고 말았다. 노장들로 이뤄진 라인업과 의견을 통합하지 못하는 코치진과 선수진 등 예견됐던 문제가 그대로 발생하면서 시즌 막판까지 프레딧 브리온과 꼴찌 경쟁을 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초반에는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다가 25분만 지나면 귀신같이 게임이 터져버리는 모습 때문에 '25분의 아프리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금 아프리카 프릭스는 팀원부터 감독과 코치진 모두 새롭게 재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경력이 긴 선수진과 반대로 경험이 적은 감독과 코치진 사이의 소통 문제부터 흔들리는 선수들의 폼 등 모든 것들을 안정화해야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각 선수들의 커리어와 고점은 분명 최상위권이니 이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서머 시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강했던 약팀은 없었다, 10위 프레딧 브리온
강했지만, 약팀이었고, 10위였다. 1라운드에는 담원 기아를 잡아내는 이변, 2라운드에는 T1을 꺾는 업셋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하위권 팀을 상대로 분전했지만, 결과는 모든 전문가의 예상대로 10위에 머물렀다. 베테랑인 '엄티' 엄성현이 자신의 장기인 설계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른 신인 선수들이 의외의 저력을 보여준 것은 맞지만 엄연히 약팀은 약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프레딧 브리온은 강승현 해설위원이 “이상적인 약팀”이라고 평가했을 만큼 LCK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한 꼴찌 팀이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해 의미 있는 승리를 여럿 보여줬다. 덕분이랄까, 팬들로부터 언더독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상위권 팀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일단 신생팀의 1차 과제인 성공적인 LCK 안착은 완수했으니 이제는 더 나은 경기력으로 보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