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PD “블루 아카이브는 미소녀 엑스컴에서 출발”
2021.06.09 19:25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본고장인 일본, 신흥강자인 중국에 비해 한국의 미소녀게임은 바다 건너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례가 적다. 출시 직후 일본 애플 앱스토어 매출 9위에 이름을 올린 넷게임즈 신작 ‘블루 아카이브’에 시선이 집중된 이유 역시 국산 미소녀게임 중 일본에서 흥행한 몇 안 되는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국내 서비스 전이라 게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얄려지지 않아 게이머들의 궁금증을 삿다. 이 와중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2021(이하 NDC)에서 블루 아카이브 개발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오타쿠를 잘 아는 오타쿠 개발자’로 알려진 김용하 PD가 ‘게임 PD가 되어 보니’라는 강연에서 블루 아카이브 초기 기획단계에 대해 설명했고, 이어서 김인 AD가 블루 아카이브 아트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미소녀 엑스컴’이다?
강연에서 김용하 PD는 그간 쌓아온 본인의 커리어를 되짚어 본 다음, 현재 맡고 있는 블루 아카이브를 소개했다. 그는 “미소녀 엑스컴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지점에서부터 구체화된 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XX 엑스컴’이라 하면 바닥이 타일로 나뉘어진 맵 위에서 유닛을 조작하는 전투가 떠오르는데, 블루 아카이브 전투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이에 대해 김 PD는 “관념적으로는 엑스컴에서 시작된 게임이었고, 의도대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 PD가 게임 PD 핵심 역량 중 하나인 ‘선택과 집중’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블루 아카이브 초기 구상 단계에서 다수의 등장 캐릭터, 총격전, 직접 조작, 전술 중심 등 게임 기본틀을 이룰 요소를 골라냈다. 이후 앞서 생각한 요소를 생각하며 머리 속에 떠오른 콘셉트가 바로 ‘미소녀 엑스컴’이었다. 김 PD는 “’그럼 미소녀 엑스컴처럼 만들면 되겠네! 모에 엑스컴! 그러니까 우리 스튜디오의 이름은 MX(Moe XCOM)다’라며 어느 날 PD는 (팀원들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유쾌하게 설명했다.
이후 김 PD는 동료들과 기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전체적인 구조를 잡고, 선택과 집중, 그에 따른 포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구도를 완성했다. 파티를 꾸린 SD 캐릭터가 실시간으로 은폐와 엄폐를 활용하며 총격전을 펼친다는 것이다. 김 PD는 여기서 은/엄폐가 블루 아카이브의 엑스컴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블루 아카이브의 아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블루 아카이브는 미소녀게임인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아트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블루 아카이브 개발 프로젝트가 시동을 건 것은 2018년 3월이지만, 아트작업은 이보다 조금 늦은 6월부터 시작했다. 김인 AD는 시작부터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개발팀은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게이머에게 낯설 수 밖에 없는 신규 IP라는 점, 또 하나는 국내가 아닌 일본에 먼저 출시한다는 부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차별화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야 했다. 김인 AD는 “하드보일드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비주얼은 점차 레드오션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며, “이와 대비되면서 시각적, 정서적 피로도도 줄일 수 있는 밝고 캐주얼한 지점에 수요가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구체화된 콘셉트를 바탕으로 그에 맞는 세계관과 키비주얼을 확립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김 AD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키비주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키비주얼은 IP가 지향할 핵심 가치를 응축한 이미지로, 앞으로 개발진에 합류할 동료들이 세계관의 분위기와 비주얼을 이미지 한 장만 봐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후 스토리텔링, 확장성, 깨끗함과 청량함을 추구하며 아트 기조 확립에 들어갔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확장성’이다. 김 AD는 “장르 특성상 리소스 하나하나가 재창작되고 확장에 용이하도록 단순화와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며, “비주얼적으로도 접근하기 쉬운 캐릭터를 추구했으며 더 알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세계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특징적인 상황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야기한 과정을 거쳐 4가지 핵심 키워드가 정립됐다. 미소녀, 밀리터리, 학원, 육성연애이다. 다음 고민은 게임이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요소에 대한 부분이었다. 블루 아카이브 아트팀은 전체적으로 가볍고 담백한 비주얼을 소화하기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기반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캐주얼한 세계관 속에서 캐릭터와 애정관계를 중시하는 유저층을 겨냥한 ‘미연시(미소녀 밀리터리 학원 연애 시뮬레이션)’ 콘셉트로 가져가면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 AD는 상호작용, 그 중에서도 아이컨택과 같은 정적이면서 감성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 아울러 학교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보니 '교복 미소녀'와 '감성 화보'에 집중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로비 화면을 가득 채우는 블루 아카이브의 ‘메모리얼 일러스트’다. 이에 맞춰 SD 캐릭터도 풍부한 감정표현과 상호작용에 적합한 방향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이후에는 아트 조직이 재정비되며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가이드가 정립됐다. 이를 토대로 한 마스코트 캐릭터 ‘아로나’가 태어났다. 튜토리얼, 업무 페이지, 뽑기 등에 등장하는 아로나는 다양한 매력을 갖춘 캐릭터 사이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는다.
개발 막바지에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기존에 확립된 부분을 다듬고, 테스트에서 받은 유저 피드백 반영에 집중했다. 아울러 초기에 확립했던 ‘확장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출시에 이르렀다. 김 AD는 “출시를 했을 때 아키바하라에 걸렸을 때 어색하지 않은 게임이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말하곤 했는데, 실제 그 자리에 광고가 걸리는 소소한 달성이 있었다”며, “오픈을 넘어 지금도 여정 중에 있는데, 아직 미비한 부분도 많지만 함께했던 동료들 덕분에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