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시뮬레이터 흠심 메트로는 '철덕'이 만들었다
2021.07.13 10:03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염소 이래로 시뮬레이터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대다수는 엽기코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현실 그대로를 게임에 구현한 ‘근본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도 만만치 않다. 쏟아져 나오는 엽기 시뮬레이터와 차별화하기 위해서일까? 다루는 소재에 대한 고증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작년 8월에 나온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전/현직 항공기 파일럿들도 감탄사를 내뱉는 수준이다.
국내 인디게임 개발사 제미니 인터랙티브가 만든 서울 지하철 1호선 시뮬레이션 게임 ‘흠심 메트로’도 빼어난 현실 고증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작품이다. 스팀 유저 평가를 보면 현직 기관사들이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간만에 면허 딸 때 생각난다”라는 후기를 남기며 엄지를 척 세워 추천할 정도다. 이러한 놀라운 현실 고증의 배경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개발자의 철도 사랑이 있었다.
철도 사랑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게임메카는 흠심 메트로 기획 및 개발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제미니 인터랙티브 황제민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게임 개발자로서의 커리어 전부를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 제작에 쏟을 정도의 애정을 가진 철도 동호인이다. 황 대표가 철도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초등학생 때 우연히 접한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 BVE 트레인심 덕분인데, “학창시절을 책임진 게임이다”고 표현할 정도다.
황 대표는 BVE 트레인심을 하면서도 플레이보다는 애드온 제작에 더 열심이었다고 한다. “항상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컸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황 대표의 게임 취향에 잘 드러난다. 학생시절 철도 시뮬레이션, 심시티, 타이쿤 등 게임을 좋아했고, 마인크래프트 역시 즐겨 했다. 다만, 최근에는 이러한 게임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면서 즐겨 하는 게임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꼽았다.
그렇다면 황 대표가 추천하는 철도 관련 게임은 무엇일까? 황 대표는 ‘전차로 고!’를 추천했는데, 그 이유는 BVE 트레인심에 비해 진압장벽이 낮아서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사람도 좋아할 만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덕업일치’가 만들어낸 흠심 시리즈
황 대표에게 있어 게임 개발은 철도 동호인 활동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황 대표는 “집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철도 동호인 활동의 일환으로) 여행, 모임 같은 것을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철도 답사를 여러 번 다녔지만, 이 역시 흠심 시리즈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황 대표 이력을 보면 약 10년간 흠심 알파부터 흠심, 흠심 2, 흠심 메트로에 이르기까지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 한 우물만 팠다. 장인 정신이 느껴질 정도인데,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사실 철도 이외에 다른 아이디어가 전혀 없었다. 철도 시뮬레이션을 좋아하기도 하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했다”며, “최근 들어 여러 게임을 접해보고 아이디어를 찾으려 하고 있지만, 여전히 철도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에 뛰어들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등학생 시절에 접한 BVE 트레인심 애드온을 제작하다가 독자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위해 고등학생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흠심 메트로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흠심 알파’였다. 황 대표는 “흠심 알파는 혼자서 감당하기에 버거운 프로젝트다 보니 프로토타입에 머무른 상태에서 개발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한층 더 단순한 형태의 철도 게임을 먼저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모바일게임 흠심이었는데, 상당한 인기를 끌어 후속작까지 출시됐고 흠심 메트로 제작의 발판이 됐다.
그런데 황 대표가 만든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하나같이 ‘흠심’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 있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묻자 황 대표는 “사실 정말 황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철도 동호인 카페에서 ‘관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흠심 알파를 개발하던 당시 ‘흠…’이라는 말을 많이 써서 지인들이 ‘흠교’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후 흠심 알파를 처음 공개할 때 게임 이름을 고민하다 장난스레 ‘흠교시뮬(흠교가 만든 시뮬)’이라는 의미로 ‘흠심’이라 정했는데, 이 이름을 지금까지 쓰게 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흠심 메트로 개발에는 3인의 철도 마니아가 참여했다
이번에 화제가 된 흠심 메트로는 앞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개발을 중단했던 흠심 알파와 달리 정지완, 신동윤 2명의 개발자와 함께 만들었다. 전원 철도 동호인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철덕’으로, 정지완 개발자는 황 대표와 마찬가지로 BVE 트레인심 애드온을 제작했고, 신동윤 개발자는 유니티 엔진으로 철도 게임 개발을 시도한 바 있다. 즉, 철도 게임 개발에 진심을 다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결과물이 흠심 메트로인 것이다.
황 대표는 흠심 메트로에 쏟아지는 많은 관심에 대해 “꿈만 같은 일이다”라고 표현했다. 서울을 3D로 구현한 게임이 많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 관심을 모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애초에 철도 애호가를 주 타겟층으로 했기에 유명 개인방송 진행자들도 플레이할 만큼 이슈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주목을 받게 되면서 철도 마니아가 아닌 게이머들도 흠심 메트로를 접하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진입장벽이 높다는 평이 하나, 둘씩 이어졌다. 난이도도 높지만 게임 시스템을 배우는 튜토리얼도 다소 빈약하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튜토리얼 개선 패치가 이뤄지긴 했지만, 황 대표 스스로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튜토리얼도 지속적으로 보강해야겠지만, 캐주얼 모드 같은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모드를 더하는 것도 생각 중이다”라고 전했다.
고증에 진심 담은 흠심 메트로
흠심 메트로가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시뮬레이션 게임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현실 고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직 기관사들의 눈에는 아쉬운 부분이 다수 존재하는 듯 하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현직 기관사분들이)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주셔서 게임이 한층 더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증 오류에 대한 피드백은 열차 운전에 대한 지적이 많았고, 최대한 빠르게 수정할 것이라 덧붙였다.
흠심 메트로와 실제 지하철 1호선 사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열차에 그려진 로고다. 게임 출시 전 코레일에 라이선스 관련 문의를 넣었으나, 회사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거절당했고, 이에 ‘흠레일’이라는 가상의 로고를 넣을 수 밖에 없었다. 황 대표는 “게임 특성상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가능하다 보니, 현재는 구현되어 있지 않은 열차 탈선, 추돌 같은 것이 추가될 가능성, 게임 기획이 처음과 다르게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흠레일’이라는 로고에 대해 유저들이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거부감 없이 즐기고 있기에, 코레일과의 라이선스 논의를 재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서울 메트로 차량은 향후 개발에 착수한다면 라이선스 관련 문의를 넣어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현재 앞서 해보기 중인 흠심 메트로는 정식 버전 출시까지 1호선 광운대역부터 구로역까지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서울의 모든 지하철 노선을 개발하는 것은 현재 개발 인원으로는 무리가 있다”며, “서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1호선의 주요 구간을 우선 개발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황 대표에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황 대표는 “앞서 해보기 버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최대한 빠르게 반영해 정식 출시까지 업데이트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