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뚜렷한 장수게임, 데카론 16년의 역사
2021.12.15 18:17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10년 넘게 서비스를 이어가는 장수게임이 되기는 쉽지 않다. 게임 자체를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유저 풀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즐기는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게 해야 하며, 끊임없는 업데이트와 소통, 마케팅까지. 이러한 조건이 퍼즐 맞추듯 맞춰져야 비로소 '장수게임'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16년을 꼬박 살아남아 17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MMORPG가 있다. 바로 데카론이다. 비록 한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꾸준히 자신의 매력을 밀어붙여 장수게임으로서의 입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과연 데카론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데카론의 오픈부터 현재까지의 17년 역사를 조심스럽게 되짚어보자.
“콘솔게임을 능가하는 액션”
데카론은 2000년대 중반, 3D MMORPG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넥슨지티 홈페이지에도 대표작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정확히 2005년 5월 4일 오후 2시에 공개테스트를 시작했으며, 정식서비스는 그 해 12월부터 시작했다. 오픈 당시에 스타크래프트나 거상처럼 청소년 사이에서 꼭 해봐야 하는 게임에 들진 못했지만, PC방이나 학교에 가면 4, 5명 이상은 꼭 즐기는 사람이 있었을 만큼 나름 인지도가 있는 작품이었다.
당시 데카론이 내걸었던 슬로건은 ‘익스트림 액션 온라인게임’이다. 말 그대로 액션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뜻인데, 실제로도 이 게임은 콤보와 연타, 절삭 효과 등을 도입해 당시 서비스되던 다른 MMORPG에 비해서 훨씬 화려한 액션을 자랑했다. 더불어 원거리 딜러, 힐러, 탱커 할 것 없이 출시 당시 존재했던 6개 직업들이 핵앤슬래시를 방불케 하는 광역기와 한 방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콘솔게임을 능가하는 액션'이라는 내용의 리뷰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액션 외 가장 큰 특징은 자유로운 PK다. 안전지역이나 인스턴스 던전만 아니라면 상호 동의하에 마음껏 PvP가 가능했다. 출시 초기엔 특정 지역에 가면 동의 없이도 PK가 가능했으며, 마을이나 성에선 공식적으로 토너먼트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후 진행된 밸런스 패치와 업데이트도 대부분 PK 지역을 넓히거나, 더 재밌는 PvP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향이었다. 이 덕분에 데카론은 ‘하드코어 MMORPG’ 이미지를 정립했고, 덕분에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한 유저는 데카론 접속 이유를 'PK'로 콕 집어서 이야기했을 정도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까지 진출
데카론은 꽤나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 정확히는 공개테스트가 시작되기 약 2주 정도 전에 중국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고, 국내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그 해 12월부터 중국 서비스가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막 떠오르기 시작하던 중국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국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게임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었다. 이 당시 중국 퍼블리셔 측 마케팅이 상당히 공격적이었는데, ‘중국의 김태희’라고 불리던 황성의가 데카론의 주제곡을 불렀으며, 작곡 또한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 음악상 수상자가 만들었다. 심지어 중국 론칭 행사에는 '소림축구', '쿵푸허슬' 등으로 유명한 주성치가 홍보대사로서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과 대만 시장에도 진출한 데카론은 정식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북미 공략을 시작했다. 현지화 작업과 함께 한층 수위를 높여서 M등급(19세 이상 이용가)을 받아냈으며, 2MOON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 7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그 해 8월에는 유럽 시장에도 진출하며 글로벌 게임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데카론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기준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적극적인 업데이트와 입소문, 마케팅 등이 합쳐진 성과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캐릭터와 맵을 출시했으며, 경험치 2배 제공 이벤트도 꽤 자주 열었다. 특히 2008년에 진행된 대규모 업데이트에선 동시접속자가 큰 폭으로 증가해 서버가 마비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PK 통합 챔피언 결정전, 최강 길드 대항전도 수차례 열렸다. 홍보 모델로 당시 가장 인기있던 레이싱 모델 김시향을 섭외한 건 덤이다.
부진 속에서도 눈에 띄었던 홍보 모델들
하지만 데카론도 세월의 힘을 이기진 못했다. 2010년대 초반 MMORPG 장르가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데카론도 부진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간담회나 패치 속도, 업데이트 등도 다소 힘이 빠졌다.
그런 와중에도 데카론이 주목받았던 부분이 있다면, ‘변태’, ‘진상’ 등의 기묘한 이름의 업데이트와 꾸준히 유명한 홍보모델을 기용했다는 점이다. 서든어택처럼 딱히 연예인이 직접 등장할 구석이 없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서예지가 2014년에 홍보 모델로 뽑혔으며, 개그우먼 김지민 등이 업데이트 홍보 영상에 출연하는 등 출시 10년이 될 때까지도 마케팅에 적잖이 공을 들였다.
장수를 넘어 영원한 게임으로 남기를
이후 2016년에 데카론 서비스 주체는 유비펀으로 넘어갔다. 유비펀은 굉장히 힘든 시기에 게임을 넘겨받았음에도 게임 개발에 최선을 다했다. 무려 6년 만에 신규 직업인 ‘세지타 슈터’를 출시하기도 하고, 신규 유저 유치를 위한 점핑 캐릭터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이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게임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난 4월에는 서비스 16주년을 맞아 4회에 걸쳐 온/오프라인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을 정도다.
데카론이 지금까지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고유의 매력과 함께 게임에 애정을 가진 코어 유저들이 다수 버티고 있기 대문일 것이다. 데카론이 지금처럼 계속 서비스를 이어가서 20주년, 25주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