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예쁜 다크 소울 '튜닉'
2022.03.24 18:08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지난 2월 말부터 주목도 높은 게임 다수가 출시되어 신작 가뭄을 해소해주고 있다. 이 중에는 예상치 못한 한 방도 있다. 지난 17일에 PC와 Xbox One, Xbox 시리즈 X/S로 출시된 인디게임 신작 ‘튜닉’이다. 캐나다 인디게임 개발자 앤드류 숄디스(Andrew Shouldice)가 이끄는 5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 개발했고, 공개 당시 젤다의 전설을 연상시키는 그래픽으로 눈길을 끈 바 있다. 발매 직후에는 엘든 링 등 대작 틈바구니에서도 스팀 판매량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메타크리틱 전문가 평점 85점을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면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면모를 강조한 그래픽에 먼저 눈이 간다. 주인공인 꼬마 여우는 물론 적들도 외모가 앙증맞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큰 난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플레이를 이어가면 동화풍 그래픽은 속임수였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보스전은 다크 소울을 생각나게 하며, 구불구불 이어진 복잡한 길은 메트로배니아에 버금간다. 귀여운 비주얼에 예상치 못한 매운 플레이가 숨어있는 튜닉을 플레이했다.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이 절로 생각나네
먼저 살펴볼 부분은 게이머들을 낚는(?) 그래픽이다. 처음 방문하면 동글동글하게 각이 잡힌 나무부터 살짝 뾰족한 풀,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귀여우면서도 단순하게 표현된 건물까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면모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게임으로 예로 들면 2019년에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된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 리메이크와 비슷하며, 제작진 역시 고전 젤다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귀여우면서도 뭔가 비밀이 감춰진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는 게임 내 여러 지역에서 절로 느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색 문으로 봉인된 신전부터 등불이 없으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어둠의 무덤,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고원, 버려진 사원처럼 고요하고 황망한 요새까지 각기 다른 환경을 지닌 여러 지역이 공존한다. 통일된 그래픽에서 다양한 환경을 표현하고 있기에 새로운 곳을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그래픽 외에도 젤다의 전설이 연상되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젤다의 전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검과 방패로 무장했으며 잠긴 문을 열거나 올라간 다리를 내려서 봉인된 장소를 열어가는 퍼즐 요소, 플레이 중 입수한 도구로 동선을 확장해나가는 부분 등이 비슷하다. 중반 정도 진행하면 멀리 있는 적을 끌어오거나 먼 곳에 있는 갈고리에 걸어서 넘어갈 수 있는 ‘채찍’이 나오는데, 이 채찍으로 이전에는 가지 못했던 장소에 방문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90년대에 출시된 액션 어드벤처 느낌이 강한데, 플레이 중 모을 수 있는 ‘설명서’에도 이러한 부분이 담겨 있다. 인터넷 보급률이 낮았던 시절에는 게임사들이 패키지에 종종 가이드북이나 공략집을 끼워줬다. 정보나 공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라 플레이 중 막히면 책을 보며 파훼법을 찾아가곤 했다. 튜닉의 설명서는 예전에 공략집을 보며 게임하는 느낌을 준다.
사실 현재 기준으로 튜닉은 불친절한 게임이다. 영문도 모른 채 섬에서 깨어난 꼬마 여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을 좆아 미지의 지역을 탐험한다. 그 과정에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탐험 중 입수한 아이템은 어디에 쓰는 것인지, 주인공은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 섬 곳곳에 있는 여우 동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정보가 플레이 중 입수하는 ‘설명서’에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게임 조작법부터 아이템 종류와 용도, 주요 경로를 살펴볼 수 있는 각 지역 지도, 적들의 특징 등이 담겼다. 여기에 ‘스테미너가 바닥나면 더 큰 대미지를 입는다’거나 ‘버튼을 길게 누르면 더 멀리 굴러갈 수 있다’와 같은 팁도 깨알같이 있다. 내용 중 상당량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상의 문자로 적혀 있지만, 필요한 정보는 한국어로 확인할 수 있고 이해를 돕는 그림도 많아서 플레이에는 큰 문제가 없다.
여기에 설명서 곳곳에는 추억을 자극하는 낙서가 있다. 중요한 대목에 줄을 그어놓는다거나 동그라미를 쳐두는 식이다. 여기에 중요 수치를 손으로 적어두거나 그림이나 화살표 등을 그려서 게임 속 아이템 효과를 표시해둔 대목도 있다. 게임기 앞에 앉아 옆에 책을 놔두고 막힐 때마다 한 장씩 팔랑팔랑 넘겨가며 공략을 찾아보고, 중요 내용을 확인하면 볼펜으로 대충 메모해뒀다가 나중에도 써먹었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다크 소울 생각날 정도로 맵지만 좌절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아기자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 있다가는 제대로 한 방 맞을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그래픽과 달리 전투가 굉장히 ‘맵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보스전이다. 중요 관문마다 몸집이 작은 여우 용사를 압도할만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대한 보스가 등장하는데 기본적인 체력도 높고, 중반 이후로 갈수록 패턴도 복잡하며, 공격력도 상당히 높다.
봉인된 던전을 개방할 핵심 아이템을 지키고 있는 보스인 ‘사서’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기본적으로 사서는 아주 짧은 순간 외에는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대미지를 입히기 위해서는 채찍으로 지상에 끌고 내려와야 한다. 여기에 끌고 오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분신을 다수 소환해 주인공을 위협하며, 엄청난 대미지에 잘못하면 한 방에 나가떨어질 수 있는 빔을 발사한다. 거대한 검을 사용한 공격도 사거리가 길고, 스테미너가 떨어지면 방패를 쓸 수 없기에 무한정 막는 것이 불안정하다.
여기에 일반 몬스터 역시 중후반으로 갈수록 강해지며 공격 패턴도 다양해진다. 방패로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공격한 직후나 뒤로 굴러가서 빈틈을 노려야 하는 병사부터 한 대 치면 다가와서 자폭해버리는 거대한 문어, 계속 도망 다니면서 폭탄을 뿌리는 골치 아픈 폭탄병, 순간이동에 넓은 장판기를 쓰는 마법사까지. 여우의 앞길을 막는 위협적인 적 다수가 등장한다.
자칫 방심하면 사망을 면치 못하기에 다크 소울처럼 정신 없이 굴러다니며 빈틈을 찾아 정확하게 치고 빠지는 플레이가 요구된다. 여기에 적들 역시 아군이 던진 폭탄이나 화염 마법 등에 대미지를 입기 때문에 자폭병을 유인해서 적 다수를 일망타진할 수 있고, 높은 곳에 있는 저격수를 채찍으로 끌고 와서 먼저 잡는 등의 전술을 펴는 것도 가능하다.
나무 막대기를 넘어 검과 방패를 마련하면 사정은 조금 나아지며, 폭탄을 잘 쓰면 보스전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여기에 다크 소울의 화톳불, 엘든 링의 축복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여우 동상에 공물과 재화를 바치면 공격력, 방어력, 체력 등을 높일 수 있다. 일종의 성장 요소가 있지만 막강해지는 정도는 아니며, 도중에 사망하면 영혼을 회수해야 잃어버린 재화를 되찾을 수 있는 구조라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다.
어려운 부분은 전투만이 아니다. 튜닉은 45도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쿼터뷰 게임임에도 길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가장 큰 부분은 건물이나 절벽 뒤 등 곳곳에 길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숲이나 절벽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며, 눈으로 봤을 때는 길이 없어 보이지만 건물 틈새나 옆으로 돌아가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계단이 나온다. ‘이걸 대체 어떻게 찾아내라는 것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악의(?)가 느껴지는 구간도 일부 있다. 아울러 튜닉에는 던전 다수가 등장하는데, 기본적으로 넓고 내부 경로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첫 플레이에서는 경로를 찾느라 다소 헤매게 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소울라이크 전투에 메트로배니아가 떠오르는 길 찾기가 결합되어 있다. 두 장르 모두 매력적이지만 진입장벽이 높아서 부담스러워하는 게이머도 적지 않다. 다만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튜닉에는 취향과 상황에 맞춰서 즐길 수 있는 난이도 조절이 있다. 적 대미지를 낮춰주는 것부터 스테미너 무한, 아예 대미지를 받지 않는 ‘무적 모드’도 있다. 플레이 중에도 원하는 타이밍에 제한 없이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일반 모드로 진행하다가 까다로운 보스는 난이도를 낮춰서 깨는 것도 가능하다. 난이도 조정은 ‘전투’에 한정되기에 컨트롤 부담을 낮추면서 여러 비밀이 숨겨진 필드를 탐험하는 재미를 느끼기 충분하다.
90년대 감성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면
튜닉을 하며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반가움이다. 투박하고, 다소 불친절하지만 침을 묻혀 공략집을 넘겨가며 조금씩 게임에 대해 알아가며 익숙해지는 감각을 실로 오랜만에 경험해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고전게임을 재미있게 즐겼던 추억이 있는 게이머라면 튜닉을 통해 옛 기억을 되살려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아울러 앞서 밝혔듯이 난이도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하게 어렵다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