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개발 빼고 다 하는” 인디 퍼블리셔, 사이코플럭스
2022.08.13 11:00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우연찮게 택한 일탈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기자만 하더라도 게임과는 전혀 관계없는 자연과학 전공에서 학업을 갈고 닦았지만 이렇게 게임기자로 활동 중이고, 유명 개발자 중에서도 전공이나 전직이 게임과 전혀 무관한 이들이 많다.
오늘 소개할 ‘인디게임 전문 퍼블리셔’ 사이코플럭스 엔터테인먼트(이하 사이코플럭스)의 이상훈 대표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탈’을 결심하고 퍼블리싱 업체를 차려 업계에 뛰어들면서도 대입을 함께 택한, 여러 의미로 획기적인 행보를 택했다.
이후 그는 인디게임 퍼블리싱을 위해 맨발로 현장을 뛰며 지식과 인맥을 넓혀나가며 2016년부터 인디게임 외길을 걸었다. 과연 이상훈 대표의 ‘인디를 위한 인디 퍼블리셔’ 사이코플럭스는 어떤 회사이며,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게임메카는 이상훈 대표와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디게임 전문’ 1인 퍼블리싱 사업체, 사이코플럭스
스팀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게임 퍼블리셔’ 사이코플럭스는 앞서 말했던 ‘일탈’에서 시작됐다. 고등학생 시절, 이 대표는 ‘개발자가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일념 아래, 이왕이면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게임 제작 동아리에 들어가며 개발을 시작하려 했는데, 학년장이 됐으니까 ‘내가 장으로서 해야 할 것은 우리 동아리원이 게임을 완성하게 돕는 일이다’라는 조금은 엉뚱한 목표를 가진 것이 퍼블리싱의 시작이었다.
원래 학년장은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기획자나 팀장으로서의 위치였는데, 이 대표는 그 자리의 목적을 잘못 해석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좋은 기획자나 팀장이 되진 못했다고 자평했다. 그런 이상한(?) 목표를 가지고 여러 지식을 쌓아가던 중 ‘퍼블리셔’라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윽고 창업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렇게 이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 자료를 준비해 사업자 등록과 다양한 업무를 몸으로 부딪히며 해결해 나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삽질'이었다.
이 대표가 직접 창업에까지 뛰어들게 된 이유는 2015년 당시 흔히 ‘양산형 모바일게임’으로 돌아가던 국내 게임판에 변화의 바람을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이런 게임에도 각자의 사정이 있고 이를 좋아하는 유저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당시에는 환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고.
그러다 현재는 사라진 ‘스팀 그린라이트’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고, 인디게임에 대해 살피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인디게임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변화는 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사이코플럭스를 출범시켰다. 이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쩌면 고등학생이라서 할 수 있었던 반항심이 아니었을까”라 자평했다.
하나의 게임이 제대로 출시되기까지
사이코플럭스가 담당하는 업무는 플랫폼에 게임을 올릴 때 필요로 하는 가격정책 책정부터, 번역, 테스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지원, 세무 등 사무 및 비즈니스 업무 등이다. 그 외에도 홍보, 번역 업체 연계 지원, 게임 포팅, 커뮤니티 메일 등 고객 응대, 버그 리포트, 디자인 업무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개발자를 돕는다.
여기에 개발자 요청에 따라 iOS 모바일 기기나, Xbox, 닌텐도 스위치 테스트 기기나 개발킷도 지원한다. 이 대표는 퍼블리셔로서 도와주는 업무 영역에 대해 설명하며 “조금 과장해 개발 빼고 다 한다”는 말을 했지만, 전술한 지원 업무들을 보자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스팀 퍼블리싱이 주력인 만큼, 번역 작업 또한 지원한다. 물론 이 대표가 모두 번역을 담당하는 건 아니다. 게임 전문 번역 업체 갤럭틱 엔터테인먼트와 연계해 현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 번역 업체와는 달리 게임 전문 번역 업체는 번역본이 적용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현지화 QA(Localization Quality Assurance, 이하 LQA)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게임의 맥락을 끊는 번역은 몰입도를 해치는 큰 요소인 만큼 “번역 계획이 있다면 해당 번역 업체가 LQA를 진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렇게 다양한 업무를 동시 진행할 수 있었던 데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경험이 큰 도움을 줬다. 지금까지 사이코플럭스가 퍼블리싱한 작품 중 절반 정도는 퍼블리싱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개발자들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많은 일을 벌이면서도, 사이코플럭스가 퍼블리싱한 게임 개발자들의 평을 보면 꽤 좋다. 퍼블리싱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개발자들은 대부분의 업무를 퍼블리셔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고. 실제로 사이코플럭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개발자들의 다양한 추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폭넓은 지식과 발로 뛰어 익힌 과정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퍼블리싱에서 멈추지 않는 인디게임에 대한 애정
현재 이 대표는 ‘1맵 1치킨 알만툴 대회’에도 힘쓰고 있다. 이 대회는 국내 'RPG 메이커' 게임 제작에 신규 유입을 늘려 활력을 불어넣고자 계획된 대회다. 일본의 자작게임 공유 사이트 프리무에서 2015년 개최한 이벤트인 ‘원맵페스’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대회로, 플레임TV,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지원과 텀블벅 후원 등을 통해 상금 및 상품 비용을 충당하며 대회의 질을 높였다.
'인디게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터틀크림 박선용 대표의 '인디게임은 없고 인디 개발자가 있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인디게임이라는 것은 플레이어가 100만 명이 있으면 100만 개의 정의가 있는 것 같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인디게임을 굳이 분류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말도 더했다.
인디게임을 장르로 한정하지 않고, 인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라는 결과물이라는 것에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방식, 다양한 결과물로 출시하는 게임들을 '인디게임'이라는 장르적 범주로 묶는 일은 자칫 개발자들의 목적을 흐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사이코플럭스가 더욱 다양한 '인디 개발자들의 게임'과 개발자들의 다양한 의도를 꾸준히 전달해 주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