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 꺾고 롤드컵 우승한 DRX, 소년만화 끝은 해피엔딩
2022.11.06 16:07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치열하고 완벽한 경기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소년만화의 마지막 페이지가, DRX의 동화가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꺾이지 않는 마음(Unbreakable)’이란 키워드를 내세운 DRX가 결국 불사대마왕 T1을 꺾고 2022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6일,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2022 롤드컵 결승전이 개최됐다. 굉장히 오랜만에 미국에서 개최된 대회인 만큼 오프닝 세리머니부터 남다른 완성도와 스케일을 자랑했다. 공연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주제곡인 ‘서머너즈 콜’에 안무가들이 춤을 추고 그 안에서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스크린에선 장로 드래곤이 계속해서 춤을 췄으며, 이후 카이사와 함께 가수 에다 헤이즈가 등장해 흥을 돋궜다.
이후 국내 보이그룹 갓세븐 출신 가수 잭슨 왕이 창공 테마 스킨 주제가 ‘Fire to the Fuse(파이어 투 더 퓨즈)’에 맞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창공 테마 스킨 챔피언들의 안무가 곁들여져 멋진 무대를 완성했다. 다음으론 세계적인 팝스타 릴나스엑스가 나와 이번 롤드컵 주제곡 ‘STAR WALKIN’을 선보였다. 공연에는 이번 대회에서 LCK를 대표하는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를 대표하는 챔피언 아지르가 함께 등장해 그와 공연을 펼쳤다. 정교한 3D 맵핑 스크린 연출과 공연자들의 열정적인 무대로 현장감과 재미를 모두 사로잡았다.
1세트는 T1의 체급과 이를 통한 운영이 빛을 발했다. 초반의 정글 싸움에서 손해를 본 T1이 바텀 라인전에서 이를 만회한 다음 지속적으로 슈퍼 플레이로 상대방의 이득을 막았다. 그러던 중 세 번째 용 한타에서 T1이 용을 먹는 것과 동시에 한타까지 승리해 게임의 기점을 잡았고, 이후 글로벌 골드의 우위를 앞세워 확실한 운영을 펼쳤다.
2세트에선 DRX가 시그니처 픽이라 할 수 있는 하이머딩거 서포터를 골랐고, 이를 활용한 지역 장악력으로 승리를 기록했다. ‘베릴’ 조건희는 초반부터 열심히 로밍을 다니며 게임을 이리저리 뒤흔들었다. T1은 ‘페이커’ 이상혁의 빅토르를 앞세워 결정적인 순간마다 방어에 성공하며 게임을 후반부까지 끌고 갔지만, 영혼용을 앞둔 한타에서 승리를 거둔 뒤 안일하게 바론을 치다가 역으로 잡혀버렸다. 그렇게 2세트는 약간 허무하게 DRX의 승리로 끝났다.
1 대 1 상황에서 시작된 3세트는 그야말로 슈퍼플레이의 향연이었다. 게임을 이겨나가던 DRX가 중요한 오브젝트를 칠 때마다 T1의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오브젝트를 스틸하는 풍경이 이어지며 후반까지 진행됐다. 팽팽하던 경기는 DRX가 T1이 치던 용을 스틸하고 그 이점을 살려 바론을 쳤지만, 이를 T1이 재차 훔쳐가며 결국 T1이 경기를 가져갔다. 이 경기가 끝난 직후 T1의 팀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4세트에선 다시 DRX가 승리를 기록했다. 결승에서 처음으로 일방적인 흐름이 계속됐던 경기였다. DRX는 시작부터 이번 대회의 핵심 픽이라 할 수 있는 바루스와 아트록스를 가져갔고, 여기에 ‘킹겐’ 황성훈이 이전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폼으로 상대 탑을 찍어 누르면서 게임이 빠르게 굴러갔다. 결과적으로 20분대에 게임이 끝나며 스코어 2 대 2인 채 경기는 마지막 세트로 흘러갔다.
우승컵이 걸린 마지막 세트에선 양 팀의 조커픽이 충돌했다. T1은 아트록스의 상대로 탑 그웬을 들었고, DRX는 케이틀린을 보좌할 파트너로 바드와 정글 헤카림을 들었다. T1은 마지막까지 체급을 위시한 라인전에 좀 더 강수를 뒀고, DRX는 팀 합을 중시한 한타 위주 조합을 완성했다.
T1은 작정한 듯 초반부터 빠르게 게임을 굴려 나갔다. 헤카림의 첫 정글을 괴롭히고, 미드에서 아지르까지 갱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킹겐’ 황성훈의 아트록스가 적 그웬을 홀로 잡아낸 후 전령 싸움에서도 활약하며 T1의 스노우볼링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자칫 T1이 게임을 일방적으로 굴려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DRX의 이러한 반격 때문에 전체적인 추세는 팽팽하게 유지되었고, 게임 시작 15분이 지나도록 누가 이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첫 균열은 ‘구마유시’ 이민형의 손에서 발생했다. 미드 1차 타워를 밀던 T1을 DRX가 진영을 짜고 덮치면서 4명을 잡아내 한타에서 대승을 거뒀다. 이를 이용해 DRX는 곧바로 바론을 공략했는데, 그 순간 부활해서 순간이동을 타고 돌아온 T1의 바루스가 꿰뚫는 화살로 바론을 스틸해 냈다. T1은 이를 이용해 공성을 펼치며 게임을 굴려 글로벌 골드를 2,000 차이까지 벌려냈다. 하지만, DRX도 잘 큰 아트록스를 바탕으로 더 큰 차이를 벌리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렇게 게임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어갔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으로 팽팽한 균형이 이어진 가운데, 마지막 장로용 앞에서 벌어진 한타에서 DRX가 승리하며 그대로 게임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롤드컵 2022는 DRX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전반적으로 이번 결승전을 평가하자면, T1의 체급과 DRX의 합이 빛났다. 한 끗 차이라는 말조차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근소한 차이가 승리의 향방을 갈랐다. T1은 시종일관 슈퍼 플레이를 펼쳤고, DRX는 순간의 찬스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기사회생을 반복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T1의 경기력은 완벽에 가까웠다. ‘오너’ 문우현은 유례없을 정도로 멋진 활약을 했으며, ‘구마유시’ 이민형은 더 없을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라인전, 한타, 오브젝트 스틸 등 언제나 슈퍼 플레이로 기대에 화답했다. 굳이 패인을 짚자면 완벽에 가까웠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DRX는 중요한 순간에 보인 T1의 약간의 집중력 저하를 집요하게 놓치지 않았고, 결국 양 팀의 전력이 정면 충돌한 5세트 마지막 순간에 T1을 넘어뜨렸다.
DRX는 이현우 해설의 표현처럼 가장 리그 오브 레전드다운 팀 게임을 펼쳤다. 체급과 라인전에서 밀렸고 슈퍼 플레이도 많지 않았지만, 끈끈한 팀합을 바탕으로 한타에서 지속적으로 승리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 4강까지만 해도 팀의 약점으로 지목됐던 ‘킹겐’ 황성훈이 아트록스를 잡고 각성하면서, 그야말로 이번 경기의 영웅이 되었다. 실제로 ‘킹겐’ 황성훈은 결승전 MVP를 받기도 했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제가 받을 줄 알았다”며 “야수의 심장으로 절대 지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게임에 임했더니 잠재력이 폭발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로써 DRX는 역대 롤드컵 사상 가장 감동적이고 극적인 우승을 달성했다. 이번 토너먼트에서 DRX가 만난 상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역대 롤드컵 우승팀이었다. 대회가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DRX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메이저 지역 최약체였다.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최하위 팀에게 진 팀이 선발전을 넘어, 플레이-인, 그룹 스테이지, 토너먼트를 뚫고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롤드컵 최고령 우승팀인데다가, LCK의 네 번째 롤드컵 우승팀이다.
개개인이 달성한 기록도 눈부시다. ‘베릴’ 조건희는 2020년 담원 게이밍에서 우승한 이후 다른 팀에서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최고령 우승 서포터 기록도 갈아치웠다. ‘제카’ 김건우와 ‘주한’ 이주한은 로열로드를 달성했다. ‘데프트’ 김혁규는 역대 우승팀 바텀 라이너의 나이가 21세 이하라는 징크스를 깨고 역대 최고령 롤드컵 우승자가 됐으며, 데뷔 이후 3,505일 만에 첫 롤드컵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