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생성 넘어 게임 개발 전방위로 퍼지는 AI
2023.06.16 18:00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AI 기술과 게임 개발은 초기부터 함께 한 동반자에 가깝다. 개발자가 설정해둔 규칙을 토대로 움직이는 NPC는 물론, 사람이 만든 에셋이나 알고리즘을 조합해 자동으로 게임 속 세계를 생성하는 ‘절차적 생성’은 노 맨즈 스카이 등 여러 게임에 활용되며 이미 널리 알려졌다. 최근 AI와 게임의 만남은 기술발전에 맞춰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러스트는 물론 캐릭터 움직임, 음성, 대사, 심지어 QA까지 게임 개발 과정 전반에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게임 일러스트 생성
가장 보편적인 부분은 게임 원화와 같은 일러스트 작업에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게임 개발에서 일러스트 부분에 두각을 드러낸 이미지 생성 툴은 스테이블 AI 가 작년 8월에 출시한 스테이블 디퓨전이다. 크래프톤 손윤선 버추얼 프렌드팀 팀장은 5월에 열린 2023 콘텐츠산업포럼을 통해 사내에서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해 원화가가 만든 작업물에 채색을 입히는 등, 캐릭터 원화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활용 범위는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전 폴아웃 느낌이 나는 RPG 신작 테일즈 오브 씬(Tales of Syn)을 개발 중인 영국 게임 아티스트인 핵맨(Hackmans)은 스테이블 디퓨전을 이용해 도시 경관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했다. 먼저 구글 어스에서 확보한 아시아 도시 전경으로 이미지 자료 세트 8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자료를 인공지능 이미지 학습 AI 툴인 드림부스(Dreambooth)를 이용해 훈련시키고, 이를 스테이블 디퓨전에 적용해 1차적인 전경을 뽑아냈다. 이 단계에서도 기본적인 콘셉트는 잡을 수 있었지만, 여기에 회화적인 느낌을 더하기 위해 스테이블 디퓨전 관련 오픈소스 UI인 오토매틱 1111과 프롬포트 에디팅을 사용했다.
앞서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픈소스로 공개된 이미지 생성 툴은 많지만 이를 활용해 원하는 스타일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툴을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최근에는 AI로 게임 원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내 벤처기업인 NPX 테라아크가 올해 1월에 베타 서비스로 선보인 버프 AI는 스테이블 디퓨전을 기반으로, 5장 정도의 샘플 이미지만으로도 무기, 방어구, 포션, 배경, 캐릭터, 아이콘 등 게임 개발에 활용되는 이미지나 일러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서비스다.
이미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어도비 역시 지난 3월에 개최한 연례 컨퍼런스를 통해 이미지 생성 툴인 ‘파이어플라이’를 공개했다. 사람이 입력한 텍스트를 그림으로 바꿔주는 서비스이기에 기반 이미지가 없어도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울러 어도비 스톡이나 라이선스가 개방된 콘텐츠, 저작권이 만료된 콘텐츠 등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만들기에 저작권 침해 우려를 줄였다는 것이 어도비 측의 설명이다.
영상만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애니메이션 생성
AI 활용은 캐릭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에도 침투하고 있다. 올해 3월에 열린 GDC 2023에서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 디지털 휴먼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중 눈길을 끈 부분은 보이스 투 페이스인데, 대사나 목소리를 입력하면 상황에 맞는 얼굴 표정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이 외에도 사람 특유의 말투와 음색까지 자동으로 구현하는 TTS(Text-to-Speech) 등을 도입했다. 엔씨는 자사 AI 기술력을 토대로 콘솔 어드벤처 신작 프로젝트M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유저와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휴먼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비소프트 역시 지난 3월에 산하 연구실을 통해 개발한 동물 애니메이션 생성 AI인 주 빌더를 공개한 바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영상을 통해 동물 움직임을 분석하고, 움직임을 토대로 관절을 인식한 뒤에 이를 3D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영상만으로 기본적인 골격과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적은 인력으로 단시간에 여러 동물 캐릭터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으로 손꼽힌다.
게임용 그래픽카드에서 두각을 드러낸 엔비디아는 최근에는 게임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AI 기술 공개로 더욱 더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난 5월에 열린 컴퓨텍스 2023 키노트를 통해 선보인 AI 서비스인 아바타 클라우드 엔진(Avatar Cloud Engine) 줄여서 ACE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음성이나 영상을 토대로 2D 및 3D 애니메이션을 구축하고, 여기에 자연스러운 음성과 대화를 입혀서 독자적인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캐릭터를 로블록스, 유니티, 언리얼 엔진 등 여러 플랫폼에 내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언리얼 엔진 개발사인 에픽게임즈는 16일, 얼굴 애니메이션을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메타휴먼 애니메이터를 출시했다. 이 기술은 지난 3월에 열린 GDC에서도 공개된 바 있는데,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찍은 간단한 영상으로 단 몇 분 만에 얼굴 움직임을 만들어 이를 캐릭터에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얼굴 애니메이션 데이터에는 타임코드가 있어서 모션 캡처에 연동해 캐릭터 완성도를 높이거나, 오디오 데이터를 토대로 혀 움직임을 더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챗-GPT처럼, 대사 없이 NPC가 유저와 대화한다
대화형 AI가 도입된 게임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넷이즈가 연내 출시를 목표로 판호까지 받아둔 MMORPG 신작 ‘저스티스 온라인 모바일’은 AI 기술을 활용해 플레이어 선택에 맞춰서 NPC 대사가 생성된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NPC에 내장된 AI는 중국 송나라 역사, 시, 노래 무술, 소설 등을 학습했고, 이를 토대로 대사를 만든다. 플레이 중 대화 일부는 NPC 행동과 캐릭터 간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용자 질문에 따라 글 형태로 답변하는 챗-GPT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스탠포드 대학교와 구글 리서치 팀이 챗-GPT를 활용해 사람처럼 행동하는 NPC를 체험해볼 수 있는 데모 버전을 공개한 바 있다. 각 캐릭터 설정, 할 일,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 등을 설정해두면 별도 대본 없이도 NPC가 설정대로 스스로 움직이고, 사람처럼 다른 캐릭터와 대화하며 소통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해외만이 아니다. 넥슨 역시 NPC, 보스, 주요 캐릭터 등에 정해진 대본이 아니라 게임 속 세계관을 토대로 유저와 소통하는 AI를 준비 중이다. 피파 온라인 4를 예로 들면 경기 상황에 맞춰 중계 내용이 달라지거나, 유저 플레이 및 구단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해설 등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어서 크래프톤은 유저와 친구처럼 같이 게임을 즐기며 놀아주는 AI인 ‘버추얼 게임 프렌드’를 개발 중이다. 자연스러운 외모와 게임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사람이 사용하는 자연어로 유저와 소통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멀티플레이 게임을 같이 하며 플레이어 실력 향상이나 지루함 타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배틀그라운드 등 크래프톤 자사 게임에 적용할 계획이며, 나아가서는 게임 외에 일상 문제도 소통할 수 있는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버그를 검수하거나 플레이 난이도 등을 체크하는 QA 영역에도 AI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웹3 게임 개발사인 픽셀플레이 박성필 개발부장은 지난 5월에 진행된 콘텐츠산업포럼 2023에서 테스트 업무에 강화학습을 활용 중이라 밝혔다. AI에게 특정 플레이를 가르친 후 서로 대전을 치르도록 한 후 게임 배속을 20배 높여 퇴근하면 AI가 밤을 새워 테스트하기에 난이도 체크 및 밸런스 조정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구글이 출원한 AI 기반 게임 테스트 기술에 대한 특허 내용이 발표되기도 했다. 구글은 이를 게임 플레이 트레이너 시스템이라 부른다. 게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플레이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을 토대로 특정 캐릭터가 원격에서 이를 테스트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모델을 고치고 캐릭터를 다시 보내는 작업을 통해 정상적인 플레이에서 진행이 막히는 구간 등을 찾아내는 식이다.
생성형 AI 게임 개발은 희망 편일까, 절망 편일까
2023년 6월 기준, 국내외 주요 게임사 다수는 AI 게임 개발을 상용화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울러 게임사 개별은 물론 엔비디아, 어도비, 유니티, 언리얼 엔진 등 주요 플랫폼 업체에서도 게임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여 중소 게임사 역시 관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게임에 특화되지 않았더라도 챗-GPT, 미드저니, 일레븐랩스 AI 등을 활용해 로블록스에 게임을 출시하거나, 유저 게임모드 등을 만드는 것도 그렇게 특이한 사례가 아니게 됐다.
따라서 AI를 게임 개발에 적극 활용하면 게임 개발에 대한 인력, 자본,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소규모 게임사도 기존에 시도하지 못했던 중형급 이상 작품 제작에 도전해볼 기회가 열린다. 지난 5월에 열린 콘텐츠산업포럼에서 그램퍼스 김지인 대표는 “캐주얼게임 개발사는 콘셉트 드로잉이 2~3개월 걸리는데 AI를 이용해 2~3일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AI를 적정하게 활용하면 반복업무는 인공지능에 맡기고, 창의력이 필요하거나 결과물을 검수하는 부분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디테일을 살려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원이라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부정적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부분은 AI가 작품 생산을 위해 학습한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 침해 이슈다. AI가 다량의 자료, 이미지, 영상, 음성 등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원작자 저작권이 침해되거나 적정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AI가 인력을 대체하며 발생할 실업 문제다. 실제로 중국 항저우에서 게임 분야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로에 리(Leo Li)는 지난 1년 간 현지 일러스트레이터 일자리가 약 70% 감소했고, 중국 게임규제 강화와 AI 기술 전환이 주 요인이라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게임에 대한 공통적인 지적 중 하나가 콘텐츠 깊이가 얕고,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이다. 인력이 검수에만 집중할 경우 실무를 하며 경험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며 신입 개발자가 경력을 쌓아 실력을 높이며 베테랑이 되어가는 길이 막히리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과연 어떠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올지 유심히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