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클럽에 어서 오세요, 이직 면접의 공포를 느끼세요
2024.01.10 18:32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자신이 하고 싶었던, 혹은 최선을 다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는 순간만큼 허탈한 것이 없다. 특히 그 이유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외부적 요인으로 아무렇지 않은 게 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음과 현실은 항상 달라서, 많은 이들이 무기력함을 추스르고 먹고 살기 위한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직 게임 개발자였지만 실직자가 된 이후 면접장을 전전하던 하이시마 켄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공원에서 들려온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 때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영업직 면접장으로 떠나게 된 켄지는 어떤 일을 겪게 될까? 현실적이라 오히려 기괴한 켄지의 면접 이야기,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을 함께 살펴보자.
면접 보시려구요?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
우선,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게임과 관련된 주요 단어가 되어줄 개발사명과 게임 제목 속 단어의 뜻을 알고 갈 필요가 있다. 개발사 이름이기도 한 카미시바이는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본의 전통 연극이며, 제목에 등장하는 카로시는 과로사를 뜻하는 일본어다. 그러니까 게임 제목을 적당히 번역하자면 ‘과로사 클럽에 어서 오세요’, 이들이 보여주는 게임은 그림을 넘겨가며 들려주는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겠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먼저 등장하는 것은 현재 게임 업계에 대한 안내문구다. 개발진은 전원 게임업계 정리해고에 영향을 받아 실직한 사람들로, 카미시바이는 “우리 게임은 이들 개인에 대한 헌사”임을 명백히 하며 시작한다. 게임 내에서도 이를 조망하는 장치들이 있다. 게임 내 배경은 90년대 일본으로, 개발진은 당시 일본의 분위기가 현대 게임업계와도 관련이 있다 설명했다. 당시 일본은 버블이 끝난 직후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한 상황으로 많은 이들이 암울함에 빠진 시점이었다. 이토 준지 풍의 흑백 편차가 뚜렷한 그림체 또한 이를 강조하는 요소로 활용됐다.
‘과로사 클럽에 어서 오세요’라는 타이틀은 직장인에게 있어 다소 끔찍하게 다가오는 풍자적 제목이다. 하지만 이는 주인공인 켄지에게는 반갑기만 하다. 게임을 시작하면 무작위로 날짜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네 자릿수가 등장해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일을 찾아 헤맸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임은 아무도 없는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켄지는 끊임없이 진실과 거짓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비주얼은 일견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곳곳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뜬금없는 문양이나 기괴한 그림을 더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장치로 쓰인다. 그 중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켄지의 손등에 그려진 눈 모양이다. 이를 시작으로 게임 내에서는 유독 눈을 크게 부각시키는 연출이 많은데, 면접관의 이름인 ‘히토미’ 또한 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매우 의미심장하다. 마치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압박감과 불안함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기시감, 면접장에서의 압박과 공포
면접에 대한 압박감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인지,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은 세이브 기능이 없다.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키는 면접에서 탈출하는 Esc키, 설정을 조절할 수 있는 S키, 대화를 넘길 때 사용하는 스페이스바가 고작이다. 이는 면접이 가진 현실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이자 켄지를 조작하는 플레이어를 직접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로 쓰인다.
여기에 진실과 거짓,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부담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예시로, 게임 개발만 해왔던 켄지는 면접관 ‘히토미 타케미츠’에게 영업 경험을 들려달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때 히토미의 양 옆으로 진실과 거짓 둘 중 하나를 말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오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켄지는 히토미를 만족시키기 힘든 답이 나오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거짓말을 선택했을 때 묘사되는 켄지의 더 큰 불안과 내적 갈등은 보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만든다.
게임은 영문으로만 제공되지만, 텍스트는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다. 한 문장, 혹은 짧은 두 문장 수준에서 끝난다. 아울러 게임 내에서 별도의 제한시간이 없어 독해가 힘들어도 사전을 함께 두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게임이 강조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건 면접에서 도망치거나, 면접의 결과에 순응하거나. 둘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게임의 텍스트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적인 모습이나 갈등에 휩쓸린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위기감을 가중시킨다. 갑작스러운 해고와 이탈에 대한 불안함, 구직에 실패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켄지의 내면, 이를 신경 쓰지 않고 기계적으로 자신의 업무만 바라보는 듯한 히토미의 모습은 더욱 미래를 두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엔딩 뒤에 등장하는 짧은 장면 중 한 컷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괴물이 된 켄지 뒤로 무수히 적혀 있는 “해고당한다”는 텍스트는 그의 강박감을 충분히 전하는 장치가 된다.
공포를 위해? 불편함을 위해? 알 수 없지만 이마저 흥미롭다
다만 웰컴 두 더 카로시 클럽의 본질이 게임인 만큼, 기본적인 시스템이 조금 더 보강되었으면 하는 상황도 있었다. 특히나 한 차례 면접을 보고난 뒤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만나게 되는 일반적인 대화 정도에는 자동진행 기능을 추가해주는 것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시간제한 등으로 시스템의 촉박함을 부각시키는 시도가 있었다면 좋을 듯했다. 면접에서 강요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빠르고 재치 있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하지 못할 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가 궁금해 10분 내외를 정답을 미루고 있었지만, 게임 내에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위해 시간 제한을 두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요소들은 납득 가능한 여지가 있다. 이번 게임은 ‘카로시 클럽 유니버스’의 단초이자 쇼케이스용 게임이기 때문이다. 개발사는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을 통해 개발 방향성을 확립하고 게임의 장단점을 파악해 유저 피드백을 얻어 세계관을 확장하고 신작을 내어놓을 전망이다. 일종의 마케팅 제품인 셈이다. 여기에 세계관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사운드 트랙과 만화를 무료로 제공하기 까지 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뒀다는 점은 칭찬할만 하다.
여기에 흑백의 세상과 단순한 UI, 반복되는 모션으로 여러 연출장치를 설치했다는 점, 선택의 방향에 따라 괴물이 되는 사람이 달라지는 연출 등은 충분한 임팩트를 남겼다. 한 판을 플레이할 때마다 평균 20~30분 내외면 충분할 정도로 내용은 짧으면서도,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을 독특하게 증폭시켜 공감을 끌어내는 것 또한 흥미롭다.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면접관이 원하는 거짓말을 할 것인가, 나를 제대로 봐주기를 바라며 진실을 말할 것인가. 이것은 구직자들의 불가피한 딜레마다.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극단적으로 환경이 변한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감을 익숙한 화풍과 독특한 연출로 그려냈다. 켄지가 다시 ‘과로사 클럽’으로 돌아가려면 진실과 거짓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 그리고 그 선택으로 면접의 당락이 전해진 켄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자신들의 경험을 재치 있는 공포로 풀어낸 카미시바이 인터랙티브와 게임 웰컴 투 더 카로시 클럽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