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계엄령 선포의 끝은 처참하다 TOP 5
2024.12.05 10:26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3일 밤. 대통령 한 명의 잘못된 판단이 사회를 무너뜨릴 뻔 했다. 제대로 된 명분도 없이 45년 만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빠르게 종식됐다. 그야말로 천만다행이다. 만약 의도대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비상계엄을 유지했다면 이런 글도 못 쓸 뻔 했다. 게이머들도 국가적 위기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상황이 종료되자 '대통령 업적작 하는 듯', '살다보니 계엄을 다 겪어보네' 같은 반응을 보이며 한숨 돌리고 있는 중이다.
이 난리를 불러온 당사자에게, 계엄 실패를 축하하며 앞으로 다가올 후폭풍을 겸허히 맞이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아마도 곧 남는 게 시간이 될 테니, 게임에서라도 계엄령 맘껏 내려보라고 게임을 몇 개 추천해 드린다. 부디 TOP 5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즐겨 보시길.
TOP 5. 어쌔신 크리드
미국 독립전쟁 시절을 배경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3에는 사우스 보스턴에서의 징집 장면이 담겨 있다. 주인공 코너는 사우스 보스턴에서 클리퍼 윌킨슨을 만나는데, 마침 그 마을에서는 영국군의 성당 기사단원이 젊은이들을 모아 징집 연설을 하고 있었다. 징집을 거부하면 처형당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말이 연설이지 사실상 강제 징집에 가까웠다. 영국군이 마을에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생업에 종사하던 젊은이들을 끌고 가는 장면에서, 해당 미션 이름이 '계엄령'이라는 점이 피부에 와닿는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 계엄령은 실패로 끝난다. 당장 위에서 청년들을 모으던 징집관은 클리퍼 윌킨슨의 저격에 암살당하고, 독립전쟁에서는 미국이 승리한다. 저 계엄령의 주체가 영국이라면, 사실상 실패한 계엄이라고 봐도 되겠다. 이미 현실에서도 계엄에 실패하신 분에게 또 다시 실패를 안겨드리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빼긴 좀 애매하니 5위에 놓아 드리자.
TOP 4. 배틀필드
배틀필드 4에서도 계엄령이 발동된다. 중화사상의 맹목적 추종자이자 전쟁광인 창 제독이 벌인 일인데, 그는 러시아의 비밀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 정부에 대한 쿠테타를 벌이려 한다. 그는 자신에게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진보 진영 정치인인 진졔를 암살하고, 이를 미국의 소행이라며 덮어씌운다. 이윽고 미국의 음모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빌미삼아 군부를 장악한 후 상하이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령 자체는 나름 성공적으로 선포됐지만, 상하이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창 제독은 이를 군대를 동원해 찍어누르고 있다. 상하이 캠페인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의 상하이 시내가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 와중에 선량한 시민들을 억압하고 잡아 가두려 하는 점이 백미. 이처럼 나름 열심히 준비한 계엄령을 펼쳤음에도, 정사 엔딩에 따르면 창 제독은 한나의 희생으로 배가 격침당해 죽고 3차 세계대전은 불발된다. 동병상련의 정이라도 느끼라고 가져와 봤다.
TOP 3. 매직: 더 개더링
테이블 게임 매직: 더 개더링에도 계엄령이 등장한다. 카드 이름부터 '계엄령(Martial Law)'으로, 2012년 확장판 '라브니카로의 귀환'에서 등장했다. 일러스트를 보면 항의하는 시민들을 중무장한 기사단이 제압하고 있는데, 시민 중 하나가 기사단의 망치를 붙들고 있다. 마치 이번 비상계엄 사태 때 국회의사당 풍경을 보는 듯해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계엄령 카드를 사용하면, 유지단(Upkeep Step) 시작에, 상대가 조종하는 생물 한 개를 목표로 정한 후 그 생물을 억류할 수 있다. 억류된 생물은 내 다음 턴까지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고, 활성화능력도 사용할 수 없다. 마치 국회나 야당 주요 인사를 강제 억류해 계엄령 해제를 막으려던 움직임과도 비슷하다. 게임 내 인물의 대사 인용구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불편은 감수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이 자체도 찬반의 여지가 있건만 사회 전체의 이익조차 아니라면 더욱 마땅할 리가 없다.
TOP 2.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중 하나인 암베사는 독특하게도 계엄령을 전면에 내세운 인물이다. 녹서스의 장군이자 메다르다 가문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무자비한 인물이다. 그 중 하나가 계엄령 선포다. 리그 오브 레전드 인물 배경에서는 케이틀린의 복수심을 이용해 계엄군 사령관을 맡기고, 전략적 팀 전투에서는 계엄령 특성을 통해 암베사가 스킬을 사용하면 케이틀린의 강화 공격이 뒤따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계엄령 관련 일화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케인 시즌 2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녹서스의 일원으로서 필트오버에 개입하고, 자신이 살해한 아마라의 죽음이 자운의 소행이라 주장하며 필트오버 시민들을 선동하고, 케이틀린을 사령관으로 내세워 필트오버에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종용한다. 결국엔 녹서스 군대가 필트오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야 만다. 물론 말년은 썩 좋지 않아 멜과 케이틀린, 르블랑 등의 공격에 사망하고야 말았지만, 인상적인 계엄령 결과 때문인지 리그 오브 레전드에도 역수출되며 영원한 삶을 손에 넣었다.
TOP 1. 트로피코
독재자 시뮬레이터라 불리는 트로피코 시리즈에도 당연하겠지만 계엄령 선포가 존재한다. 야간 통금을 실시하고, 재미삼아 군인들을 거리 행진 시키고, 예정된 선거를 취소해 국민과 정치 라이벌들을 억누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재의 하이라이트 아니겠는가! 이에 많은 이들이 계엄령 선포를 로망 삼아 시도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일단 유권자의 감정과 해외 관광객 평가, 다른 세력의 우호도가 대폭 감소한다. 대외적 민심을 모두 잃는 것이다. 여기에 시민들이 반란군으로 변할 확률도 올라, 계엄에 성공하더라도 자리 유지가 위태로워진다.
그렇기에, 트로피코에서 계엄령은 사실상 누르면 안 되는 버튼 취급을 당한다. 계엄령 없이 공명정대하게 나라를 이끄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독재 없이 국력을 키운 뒤 챙기는 1~2% 사적 이익이, 독재로 키워낸 국가에서 50% 이상 가져가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꿀잼 하드코어 플레이를 추구하는 고수가 아니라면 계엄령은 선포하면 안 된다. 현실 속 그 양반에게 반드시 추천해 주고 싶은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