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zip] 아이온2 아이돌 성착취물, 엔씨는 책임 없을까?
2025.12.15 14:17 게임메카 강정목 변호사
최근 '아이온2'에서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이용해 유명 여성 아이돌(미성년자 포함)과 똑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혀 스크린샷을 공유하는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돈 내고 게임 즐기는 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과 "디지털 성범죄다"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데요.
이번 판례.zip에서는 이 사태를 ① 형사적인 관점에서 제작자인 유저의 문제점 ② 민사적인 관점에서 초상권 침해 문제 ③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회사의 책임까지 세 가지 관점에서, 실제 법원 판례와 법 조문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게임 캐릭터인데 성범죄 처벌이라뇨?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법조항은 흔히 '딥페이크 처벌법'이라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입니다.
이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영상물 또는 음성물을 영상물 등의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경우 해당 범죄가 성립합니다.
유저들은 "이건 사진을 합성한 게 아니라, 3D 그래픽으로 비슷하게 만든 것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이 이러한 딥페이크 범죄와 관련해 판례를 통해 설립한 기준은 '기술 방식'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아동·청소년 음란물 관련 사건에서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보아 명백하게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을 의미하고, 표현물이 나타내고 있는 인물의 외모와 신체발육에 대한 묘사, 음성 또는 말투, 복장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실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이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기준을 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아이온2의 그래픽이 실사와 흡사하여 '누가 봐도 아이돌 A양'이라고 인식될 수준이고, 여기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의상을 입혀 유포했다면 딥페이크 영상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대상이 미성년자일 경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죠.
앞서 살펴보았듯, 법원은 '실제 사람이냐, 아니냐'보다 '어떻게 인식되느냐'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민사소송과 직접 연결된 '초상권 침해'
형사처벌과 별개로 민사 소송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초상권' 침해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초상권이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근거한 권리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데요, 우리 법원은 이를 근거로 초상권을 아주 강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유저가 아이돌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게임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소스(프리셋)를 공유하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 조회수를 높이거나, 게임 내에서 주목을 받는 등 이익을 얻는 행위는 타인의 얼굴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근래 선고된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나42997 판결에서도 성인용 게임 캐릭터가 특정 모델을 닮게 제작된 사건에서 법원은 이를 명백한 초상권 침해로 인정했습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법원은 '선정성' 또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재판부는 "캐릭터가 성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므로 초상권자가 성적 수치심 내지 불쾌감을 느낄 개연성이 높아 초상권의 침해의 정도가 심각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는데요.
따라서, 게임 캐릭터를 유명인처럼 꾸며 선정적인 의상을 입히는 등의 행위는 형사적으로 범죄에 이르지 않더라도, 민사적으로 초상권 침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엔씨소프트도 법적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번 논란에서 엔씨소프트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는 "우리는 커스타마이징 도구(툴)와 의상을 팔았을 뿐, 그걸 어떻게 조합할지는 유저의 자유'라면서 항변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법무팀을 통해 게임메카에 "(아이온2는) 청소년은 이용할 수 없는 성인 대상 게임으로 심의 등급과 규정을 준수하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의 판결들을 보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이 이러한 변명으로 숨을 곳은 없어 보입니다.
먼저,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픈마켓 플랫폼이 개별 판매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예외적으로 "관리나 통제가 가능하면서 방치하면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책임을 부담하게 될 여지가 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또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게임을 직접 만들지 않고 유통만 한 배급사에게도 "게임 산업에서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다"며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보면 아이온2를 비롯하여 매우 사실적인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가진 게임을 제작하여 공급하는 게임사가 법적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도 작지 않습니다.
특정 아이돌을 묘사한 캐릭터가 범람하고, 여기에 성인용 게임에 허용되는 선정적 의상을 입히는 행위가 성폭력처벌법이나 초상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엔씨소프트 역시 기사를 통해 입장을 낸 만큼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오픈마켓과 달리 게임사는 게임 내 데이터를 100% 통제할 수 있습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문제가 된 커스터마이징 프리셋을 삭제하거나 제재할 기술적 권한까지 지녔죠.
무엇보다도, 엔씨소프트는 유저 간 커스터마이징 거래에 대해 수수료를 받을 뿐 아니라, 문제가 되는 '노출 의상'을 직접 제작하여 유료로 판매하고 있는데요. 유저들이 아이돌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커스터마이징을 위해 이 의상들을 구매한다면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는 불법 행위의 결과로 수익을 얻는 구조가 됩니다.
만약 엔씨소프트가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해당 커스터마이징 문제를 방치하고 유료 의상 판매를 지속한다면, 이는 단순한 방관을 넘어 위에서 판례에서 살펴본 법리에 따라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을 질 우려도 있습니다.
게임은 가상이지만, 처벌은 현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판례들이 게임업계와 게이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기술이 발전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수록, 그에 따르는 법적 책임은 현실과 똑같이 혹은 더 무겁게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게임 내 자유도는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이를 방관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까지 '자유'의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는 없을 것인데요. 기술 발전만큼이나 이를 다루는 유저와 게임사의 법적·윤리적 책임감도 한층 무거워져야 할 시점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