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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전문 출판사 팝픽 논란, 도대체 무슨 일이…
50만 원 받고 일하는 건 괜찮았어요.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업무에 지장이 될 정도라니 참았어요. 50만 원도 밤샘근무도 참을 수 있었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다른 직원에게 “너보다 잘 그리는 A도 50만 원 받고 저렇게 야근하고 밤샘하고 한다”라고 말하는 거였어요. 아, 내가 이 월급을 받아가면서 일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월급도 계속 깎이는구나.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2012년 8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서 아카데미에 들어간 학생은 교육을 받은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학원 대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실력이 뛰어나니 학원과 같은 계열의 스튜디오에서 작가로 일하면서 돈도 벌고 강의를 들으라는 제의였다. 애초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업을 하고 싶어서 학원에 다닌 학생에게는 황금보다 값진 소리였다. 그렇게 계약서를 쓴 금액은 100만 원. 하지만 이는 한 달이 지나자 능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절반이 깎이게 된다. 월급을 반으로 감봉하는, 이른바 ‘반페이’라는 규정이다.
국내 유일무이한 일러스트·그래픽 디자인 전문 출판사이자 일러스트 전문 외주제작사인 팝픽 사건으로 인터넷이 시끄럽다. 일의 시작은 몇 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들이 팝픽 측으로부터 협박성 메시지를 받았다는 글을 알리면서부터다.
작가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팝픽의 출간물에 얽힌 고료 문제, 두 번째는 팝픽에서 운영하는 외주제작사인 팝픽스튜디오 내 일어난 소속 작가들의 노동력 착취 문제다.
팝픽 문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일러스트레이터 커뮤니티인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이하 방사)을 시작으로 조금씩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팝픽과의 고용 계약 상황, 임금지급 문제, 비이상적인 도제 시스템과 작품 도용 등이 나열되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좋은 취지에서 기획된 책, 그렇다면 작가도 손해를 감수해야
▲ 팝픽의 테마북 '앨리스 인 원더랜드' 편
먼저 출간물에 대한 팝픽의 입장은 이러하다.
- 작가에게 무료로 작품을 제공받는 책은 ‘테마북’뿐이며, 한정된 시장 특성상 테마북 출시는 적자를 감수하고 출간하는 작업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취지 자체가 이름없는 작가들 등 음지에 있는 많은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홍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측도 적자를 감수하는 만큼 무료 고료에 납득한 작가들만 참여를 권장한다고. 물론, 개런티가 지불되지 않는다는 점을 작가들에게 충분히 알린다.
물론 기획 의도 자체에 불만을 품는 작가는 거의 없다. 팝픽 측도 개런티를 받지 않는 것에 동의하는 작가만이 테마북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수의 작가들이 불만을 감추지 않는 부분은 노 개런티가 아니다. 제아무리 좋은 취지로 사용한다고 한들 무료 기고로 만들어진 책을 유료로 판매한다는 점, 또는 작가의 작품을 책 광고에 무단으로 게재하거나, 작가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팝픽의 유료 출간물인 팝픽 본지로도 이어진다. 본지에 작품을 실은 작가들은 작품비를 받는다. 한 작가가 완성하는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일러스트 4장, 일러스트 완성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튜토리얼 원고 10장, 여기에 옵션으로 작가의 인터뷰가 삽입되는 경우다.
이 세트를 완성한 작가에게 지급되는 고료는 총 80만 원. 일러스트 페이지가 장당 10만 원, 튜토리얼 원고가 30만 원이다.
하지만 현재 속속들이 공개되고 있는 작가들의 다양한 계약 조건이 그안에 존재했다. ‘밀리언아서’의 어우동 일러스트로도 유명한 흑요석 작가가 ‘방사’에 게재한 글에 따르면 흑요석 작가도 2010년 발행된 팝픽 본지 ‘서커스’에 참여했고, 당시 팝픽 측으로부터 “2차, 3차로 추가 인쇄하게 되고,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 그때마다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하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흑요석 작가는 이후 인쇄 부수, 판매 부수, 추가 인센티브나 기타 해외 판권에 대한 여부를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 흑요석 작가가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에 게재한 글
게다가 고료 지급은 후불제를 원칙이며, 정지된 프로젝트나 미완성일 경우에는 고료를 받을 수 없다. 팝픽북스에 여러 번 참여했다는 한 작가는 “책이 출판돼야 고료를 받을 수 있는데, 사이 기간이 너무 길고, 출판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도 고료를 받지 못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팝픽 프로젝트에 참가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저작권이나 고료 문제가 충분히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임에도, 단지 팝픽북스가 ‘좋은 취지에서 기획된 책’이기에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
논문 대필도 아니고 작품 도용은 무슨 말?
출간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제는 팝픽에서 보유한 외주제작사 팝픽 스튜디오에서 발생한다. 팝픽 스튜디오는 일러스트 외주를 전문으로 받아 소속 작가들이나 직원들에게 분배하는 곳으로, 쉽게 말하면 ‘중개인’과 같은 역할이다. 팝픽 스튜디오는 업체에서 원할 경우 작가와 업체를 직접 연결해주기도 하고, 회사에 의뢰가 들어온 업무를 직원들에게 배분하여 작품을 만들고 그에 맞는 이익을 배분한다.
스튜디오는 약 4개 정도의 팀으로 나뉘어서 운영되며, 각 팀에는 리드 작가가 팀원을 이끌고 외주 업무를 완성해 나간다. 외주 업무는 최근에 유행 중인 모바일게임 TCG 일러스트 작업이 많다. 팝픽에서 한 작업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국내-외 기업도 많이 있었다.
문제를 제기한 작가들은 자신이 팝픽 스튜디오에서 일할 당시 그린 일러스트가 살짝 리터치가 된 상태에서 송현정 대표(필명: 가야나나)의 싸인을 얹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송현정 대표가 일러스트를 직접 그릴 경우에도 스튜디오에 근무하는 막내 작가들이 기존에 그려 놓은 프롭이나 오브젝트(예를 들어 액세서리 이미지, 동물과 같이 주요 캐릭터가 아닌 일러스트에 들어가는 자잘한 패턴 등)를 얹어 사용했다는 것.
도용 문제가 언급되자 송현정 대표는 “회사 운영과 작업을 모두 하다 보니 너무나 시간이 부족해 작업을 보조해 줄 어시스턴트를 두고 있으며, 실제로 저 외에도 회사 내 많은 양의 일을 진행하시는 리드 작업자들은 어시스턴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베이스나 초기 구현 작업을 위주로 어시스턴트 받는 것이고 그런 그림의 일부가 도용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글위치: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 http://cafe.naver.com/bscomic/374951)
하지만 피해 작가들의 주장은 달랐다. 자신은 어시스턴트가 아니라 엄연한 작가로 취업을 했으며, 따라서 자신이 그린 그림에는 자신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 작업에 리드 작가의 이름만 게재된 채 참여한 다른 작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일러스트를 완성해도 이후 송 대표나 리드 작가가 리터치를 한 후, 자신의 이름을 얹어 판매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규모로 참여했는지 명시가 되지 않은 상태이며, 팝픽 내에서 창작한 소유물은 모두 팝픽의 소유물로 가기 때문에 해당 작업에 대해 작가는 저작권이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외주 업체와의 계약 조건은 언제나 미공개, 알 수 없었다
팝픽은 의뢰 업체와 외주 계약을 맺고, 해당 사항을 일체 작가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경력 5년의 한 작가는 “팝픽은 수익 배분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피드백 번역비, 중계비 등등을 제외하고도 업계에서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는 언급만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처우가 좋지도 않다는 것.
이 작가의 경우 월급 200만 원을 받기로 계약을 하고 입사하니 한달 기본 할당량이 있었다. 최소할당량은 한 달에 기본 9장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 한 장에 대한 기준은 A4사이즈에 올컬러, 배경과 캐릭터가 포함, 300dpi를 만족할 것.
그는 “한 달에 절대 그려낼 수 없는 양이 주어진다, 이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밤샘 작업을 하고 회사에서 자거나 아래층에 있는 찜질방에서 자고 아침에 출근을 한다”며, “자신의 경우 집안 환경 때문에 퇴근 시간 엄수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업무량을 맞추기 위해서 집에서 밤늦게까지 잔업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작업을 완료할 경우 1장 당 25만 원을 받을 수 있다.
팝픽 측은 “현재 5:5 배분을 운영 원칙으로 하고 있고, 보험비나 기타 세금을 제외하고 나면 60:40 정도로 볼 수 있다”며, “직원이나 소속 작가에게 모두 업계에서 대우하는 등급 이상의 조건을 제시했고, 특히 실무 교육생들에게는 팀의 리드 작가나 대표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월급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가 참여한 작업은 일본계 굴지의 회사가 외주를 의뢰한 TCG, 게임메카가 해당 회사에 문의해본 결과 카드 일러스트 외주 단가는 최소 100만 원~ 200만 원 선에 계약을 맺는다고 말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감봉
가장 심각한 논란은 팝픽 스튜디오에 소속돼서 일하는 직원의 고용 계약이다.
먼저 이들은 교육생으로 스튜디오에 취업한 점이 아니며, 상호 고용 계약에 합의하고 직원으로 일하게 된 작가다. 처음 계약직의 형태로 팝픽과 계약을 맺은 작가는 기본 월급 100만 원으로 입사를 한다. 하지만 곧 그의 월급은 1/2로 깎이게 된다. 마치 시스템처럼 다수의 작가들이 반페이를 받게 된다.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 속도가 느려서다.
처음 반페이를 받게 됐다는 작가는 “학원생으로 들어가 1달을 교육받은 후에 실무일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처음 한 일은 당시 씨드나인게임즈가 개발하던 ‘마계촌 온라인’ 어시스턴트였다. 6개월 가까이 보조를 하면서는 페이를 받지 못했다. 교육적 목적을 가진 실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육적인 목적만 가졌을 뿐, 내가 그린 것이 상용화됐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계약 1달 후, 팝픽 측으로부터 감봉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팝픽은 작가에게 다시 교육받는다는 생각으로 무료로 일을 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이를 거절하자, 팝픽 측은 다시 50만 원을 줄 테니 일을 하라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이 작가는 “급료가 터무니없이 싸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갓 일러스트 경력을 쌓기 시작한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생활은 매일 아침 9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작업과 밤샘 노동이었다. 이 작가는 “적은 급료나 밤샘근무는 참을 수 있었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다른 직원에게 너보다 잘 그리는 A(해당 작가)도 50만 원 받고 저렇게 야근하고 밤샘하고 한다”며 그들의 월급도 반페이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 팝픽 전 직원이 공개한 월급 지급 내역
인터넷상에 문제를 제기한 작가들은 모두 2012년에 일했으며, 모두 팝픽을 나와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입을 모아 팝픽을 나오고 나니 이제야 일러스트레이터 계약 기준 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동종 업계의 다른 외주제작 업체로부터 의뢰를 받고 있는 다른 작가는 “팝픽에서는 반페이를 받았는데, 지금은 5배 정도의 수입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송현정 대표와 팝픽의 사업총괄팀장의 설명은 “급여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인사청문회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만 설명했다는 점은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지만, 계약 조건에서 부당하게 노동력을 취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 근로자가 팝픽에 들어갈 때 작성하게 되는 사내규정 동의서
또, “몇몇 직원 중 팀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업무 진행이 더디거나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 혹은 근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감봉을 하기도 했다”며, “한달에 1장을 겨우 그려내고, 1장을 그리더라도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리드 작가가 모조리 고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직원에게 본 월급을 모두 줄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뜻을 밝혔다.
현재 팝픽 측이 공개한 자료에는 이들에게 지급한 임금 내역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영원한 ‘갑-을’ 관계는 없다
방사 카페에서 트위터까지 약 사흘 간 소셜 네트워크를 지배한 ‘팝픽 사건’은 팝픽을 힘든 상황에 빠트렸다. 이 사건에 발생한 후, 송현정 대표는 그간 자신의 미숙했던 경영 방식을 인정하고, 순간의 실수로 3년 넘게 이끌어 온 사업체가 송두리채 날아가게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일러스트 잡지 팝픽북스는 살리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팝픽 관계자들은 오늘(10일) "쏟아지는 비판,항의,비난들 속에 어떠한글을 올려도 제대로 보아주는 이가 없어 저를 포함한 팝픽의 직원들은 절망하고 있다. 실제로 7페이지 분량의 해명 글을 올렸을 때에 제대로 읽혀 지지도 않고 30초-1분정도의 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33개정도의 비난의 댓글이 달렸다"고 말했다. (글위치: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 http://cafe.naver.com/bscomic/374951)
이에 기자는 8일 팝픽과의 인터뷰에서 불거지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고용 계약서를 공개하라고 권고했고, 그들은 자료를 마련하는 즉시 공개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24시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피해자와 대중이 납득한 만한 자료도, 부당대우를 받은 직원에 대한 사과의 메시지도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다.
실상 피해자들이 처음부터 팝픽에 요구한 것은 어떤 금전적인 보상도, 대책 마련도 아니었다. 부적절한 언행을 한 대표와 관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사과는 미적지근하다. 송 대표가 쓴 길고 긴 입장 표명 글에서도 빨간색 폰트로 변명을 강조하고, 욕설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리드 작가의 욕설 사과 글에는 누리꾼의 댓글 작성이 금지돼 있다.
▲ 팝핍 측에서 공개한 직원 월급 내역서 2013년 4월 분
그러나 피해를 주장하는 작가들은 모두 2012년에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