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게임 말고 다른 걸로 스트레스 풀고 싶어요"
2013.11.29 18:52 게임메카 허새롬 기자
최근 ‘4대중독법’을 둘러싼 찬반 여론이 뜨겁다. 그 중 게임을 4대중독법에 포함시키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 중에는 ‘내 아이가 게임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아이는 사실 똑똑한데, 게임에 빠져서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재기발랄하고 똑똑한 인물들이 많은데다, 소위 ‘명문대’를 다니는 수많은 학생들도 게임을 즐기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이제는 게임은 디지털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들도 존재한다.
게임 매니아임을 자처하는 카이스트 윤덕진 학생과 이화여자대학교 박희재 학생은 최근 대학생 e스포츠 동아리연합회 ‘에카’를 창설하고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알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에 게임메카는 두 사람을 만나 최근 ‘4대중독법’을 둘러싼 의견들에 대해 물어보고, 게임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 카이스트 윤덕진 학생(좌), 이화여자대학교 박희재 학생(우)
만나서 반가워요. 두 분 짤막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윤덕진(이하 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11학번 윤덕진입니다.
박희재(이하 박): 이화여자대학교 자율전공학과 09학번 박희재입니다.
두분 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게임을 즐겨온 걸로 알고 있는데, 게임 경력이 얼마나 되나요?
윤: 도스 시절부터 있었던 ‘레이맨’ 시리즈를 접하고, 7살 때 ‘스타크래프트 1’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어요. 초등학교때는 ‘스타크래프트 1’ 리그 방송을 보면서 분석도 하고, 그렇게 게임과 함께 자라왔죠.
박: 정확한 시기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아버지가 286시절부터 PC를 가지고 있었어요. 굳이 따지자면 한글을 배우면서 게임도 같이 했다고 봐야죠. 당시에는 온라인게임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용산에서 게임 CD를 직접 구입했던 기억도 나요.
굉장히, 그리고 꾸준히 오래 하셨네요. 개중 기억에 남았던 게임이나,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나요?
윤: RTS를 많이 해요. ‘스타크래프트 1’부터 시작해서 ‘레드얼럿 2’, ‘커맨드 앤 컨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워크래프트 3’…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 2’랑 ‘리그 오브 레전드’를 주로 플레이하죠. FPS랑 리듬게임도 좋아해요. 전체적으로 장르 안 가리고 다 하는 편이에요.
박: 전 난시 때문에 FPS는 잘 못하고, 턴제 시뮬레이션이랑 카드게임을 많이 했어요. AOS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 처음 접했고, 리듬게임도 가끔 즐겨요.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하는데 부모님이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는 좀 걱정하셨었죠. 그런데 저는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해결한 케이스에요. 사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취미로 즐길만한 건 게임밖에 없어서 양보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께 ‘나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이것만한 해소 방법이 없다’고 꾸준히 피력했고,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는 플레이해도 좋다는 답변을 얻었어요. 그 이후로는 딱히 크게 간섭하신 적이 없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기숙사 제도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룸메이트랑 같이 TV랑 PS3를 방으로 가져가서 게임을 하다가 걸렸거든요. 그런데 학칙에 TV나 PS3를 반입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없어서, 학생지도 선생님이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괜찮다고 하시면 돌려주겠다고 하셨었어요. 전화를 했더니, 부모님께서 ‘학생이 게임 좀 할수도 있지, 괜찮습니다’라고 하셔서 그대로 돌려받았죠(웃음).
박: 가족들이 다 게임을 좋아해서, 어렸을때부터 ‘게임은 놀이 문화의 하나’라고 배우면서 컸어요. 실제로 명절에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경험치 이벤트를 진행하면 다 같이 모여서 할 정도니까요(웃음).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족들끼리 대화가 많아요. 굳이 게임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동생, 저 모두 책 읽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사실 ‘삼국지 조조전’ 같은 게임을 하다 보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때 플레이한걸 이야기하면서 맹획이 어떤 사람이고, 그때 당시 중국이 어땠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곤 하죠.
▲ 고3 시절을 '스타크래프트 2'와 함께했다는
윤덕진 학생
보통 좋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할거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재밌네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게임을 좋아하나요?
윤: 대부분 좋아해요. 실제로 카이스트는 매년 포항공대랑 학교 대항전을 여는데, 9가지 종목 중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가 있어요. 작년과 올해 모두 그 경기가 가장 호응도 좋고 인기가 많았고요. 다들 ‘놀이 문화’의 하나로 보는거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없진 않은데, 다들 게임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민폐를 줘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령 룸메이트가 게임하면서 보이스톡을 너무 크게 하고, 키보드를 세게 친다거나 해서 그러는거지 게임은 대부분 좋아해요.
박: 우리는 여대라 그런지 게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런데 제가 가장 안타까운게, 게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단정짓는다는 거에요. 지난번 교양 수업에서 팀플 과제를 할 때 게임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해보자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건 당연한거 아니에요?’라는 반응을 보여서 놀랐죠.
윤: 저는 그게 게임에 대한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직접 해보지 않고 게임으로 인해서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던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만 봐와서 그렇게 단정짓는 거죠. 많은 매체들에서도 부정적인 사례만 부각시켜 내보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본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냥 노는 건데 뭐 어떠냐’라는 반응이 많죠.
그래도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대학 입시가 가장 큰 화두잖아요. 입시를 준비할 때도 계속 게임을 했었어요?
박: 이건 좀 웃긴 이야긴데, 제가 고3때 스스로 ‘아, 게임 좀 그만해야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요. 다른것보다 남자애들은 3일 밤 새고도 축구할 만큼 체력이 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서 속상했던 거죠.
그래서 게임 대신 운동을 해보자 하고 배드민턴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배드민턴에 중독되어버린거에요! (웃음) 심할 때는 하루에 물만 먹고 8시간동안 한 적도 있어요. 이게 또 두명이서 세트 더해가며 계속 하니까, 끊임없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에서 온 스트레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또 빠르게 풀 수 있는 방법이 게임이라는 걸 깨닫고 그냥 다시 했어요.
윤: 저도 고3 시절을 ‘스타크래프트 2’와 함께 보냈어요. 근데 오히려 게임을 하면서 긴장을 좀 풀고, 공부를 하니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좋은 게이머의 표본이네요. 그럼 주제를 좀 바꿔볼까요? 최근에 4대중독법이 발의되면서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윤: 항상 게임을 즐겨왔던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서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고 느껴요. K-POP이나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는 문화 콘텐츠죠.
찬성측에서 주장하는 게임 중독의 극단적인 사례는, 게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청소년들이 즐길 문화가 너무 없는 한국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과몰입하면 게임 말고도 영화, 운동 모두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잖아요.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한국 대학생들이 여가 시간에 주로 뭘 하나요?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 가죠. 이런 문화들과 비교했을 때 게임이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나요? 주류 문화도 학부모들은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 박희재 학생은 청소년들이 즐길 만한 문화가 없다고 말했다
박: 게임이 TV나 영화 등 기존 콘텐츠와 가장 다른 점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굉장히 독특하죠. TV프로그램은 바꿀 수 없지만, 게임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바뀌어요. 해외 학계에서도 게임은 현실과 달리 일정한 노력을 하면 반드시 보상을 주기 때문에 그 성취감으로 인해 청소년의 긍정적인 자아정립에 도움을 준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 역시 청소년들이 즐길 만한 문화가 충분하지 않은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공기도 안 좋고 고층 건물이 빼곡이 들어찬 서울 땅에서 청소년들이 뭘 할수 있을까요? 학교 운동장도 좁고, 운동을 할 만한 체육관도 없어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학생들에게는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중독의 모든 원인을 게임으로만 몰아붙이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까지 게임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죠.
윤: 저는 게이머들이 좀 더 밖으로 나왔으면 해요. 다들 방 안에 앉아서 혼자 게임을 하다 보니, 스스로 자신들이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게임을 하는 사람도 말끔하고 멋지며, 자기 생활을 관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면 방에서 나와야죠. 게임은 이제 주류 문화에요.
박: 제가 예를 한번 들어 볼게요. 제가 인터넷으로 체스를 두면 그게 게임인가요? 보통 사람들은 그건 게임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애니팡’도 게임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 걸요. 그런데 그것도 게임이에요. 체스가 역사가 깊든 과거부터 계속 해왔든, 플랫폼이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이지 다른 놀이문화와 다를 바가 없어요. 그래서 유달리 게임에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놀이문화로서 인정하지 않는 건 옳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우려되는 건,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 게임산업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에요. 저는 이 상황을 ‘빨간 깃발 룰’에 비유하고 싶어요. 산업혁명 시대에 ‘빨간 깃발 룰’이라는 게 있었는데, 당시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자동차를 가장 빨리 발달시킨 영국에서 사람들이 너무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고안했던 법이에요. 그 때 영국 사람들은 자동차를 일부러 천천히 달리게 하려고 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지나가곤 했는데요, 그래서 자동차 산업의 발달이 늦었죠. 실제로 지금 자동차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가는 독일이고요. 독일에는 그런 룰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전세계의 흐름이 디지털 산업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이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발의하면 게임업계 자체가 가라앉는다는 거에요. 게다가 지금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는 한국이 선두인데, 4대중독법으로 인해 ‘빨간 깃발 룰’ 같은 상황이 될까봐 걱정돼요.
▲ 손수 '스타크래프트 2'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람머스 모자를 준비해온 두 사람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게임을 건강하게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 다른 취미를 만들어 주면 금방 해결되지 않을까요?
윤: 사실 이건 학부모와 청소년 쌍방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이들은 우리 부모님은 게임을 모를거라 생각하고 시작부터 담을 쌓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지 말고 직접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대화해야 해요. 부모님들도 결국 어렸을 때부터 구슬치기 같은 놀이를 즐기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 당시 존재했던 놀이의 다른 형태가 게임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면, 대부분 귀를 열고 들어주세요.
부모님들은 ‘아이가 게임을 하지 않았을 때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풀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해요. 아까 말했듯이 청소년들은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고, 대학생 사이에서는 주류 문화가 대세잖아요? 그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아이와 어떻게 조율할지 답이 나올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