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 가뿐한 글로벌 게임사들의 신사업, NFC 피규어
2015.04.14 20:34 게임메카 허새롬 기자
디즈니와 닌텐도, 레고, 액티비전, 그리고 레벨5. 다섯 회사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게임사업을 한다는 것 외에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업체들은, 게임 속 주인공을 현실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많은 이들의 소망을 이뤄준 곳입니다. ‘가상현실게임 개발이라도 했나’ 하시겠지만, 포인트가 조금 다릅니다. 가상현실은 만질 수 없잖아요, 흑흑.
이 회사들이 집중하는 건 ‘NFC 피규어’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증강현실에 가깝죠. 이 NFC 피규어란, 일반적인 캐릭터 피규어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게임 타이틀의 역할을 하는 신통방통한 녀석들을 일컫습니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집에 있는 미소녀 피규어를 집어들어 특정 기기 위에 올리면, 그 소녀가 등장하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 미소녀는 아니고 마리오지만, 이렇게 살짝 올려주세요 (사진출처: 닌텐도 아미보 공식 홈페이지)
언뜻 들었을 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별도로 구매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보일지 모르지만, NFC 피규어가 가진 힘은 ‘동심을 자극한다’는 겁니다. ‘동심’이라는 키워드는 부모님과 동시에 키덜트족의 지갑을 위협하는 단어죠. 3D 프린터로도 쭉쭉 뽑아낼 수 있는 PVC 재질 피규어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 키덜트(Kidult):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로봇과 인형 등 아이들의 장난감을 수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소켓을 없앤 마법, NFC 피규어
NFC 피규어의 원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NFC 기술입니다. NFC는 근거리 통신을 이르는 말인데요, 이 주파수를 인식하는 기능을 지닌 입력장치라면 굳이 저장장치를 접촉시키지 않아도 데이터를 인식하는 게 가능합니다.
USB를 비교 상대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USB는 가장 널리 쓰이는 저장장치 중 하나인데요, 컴퓨터 소켓에 이를 꽂으면 그 안에 든 자료들을 컴퓨터로 읽어들일 수 있죠. 그에 반해 NFC 피규어는 전용 인식 기기에 피규어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게임 실행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 2013년에 공개된 '디즈니 인피니티' 론칭 트레일러
사용 방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상출처: 디즈니 인터랙티브 공식 유튜브 채널)
굉장히 기술적인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부분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게임 CD를 조심스레 집어넣거나, 특정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게임을 불러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캐릭터의 피규어를 갖다 대면 화면에 그들이 ‘뿅’하고 나타나죠. 전통적인 게임 실행 과정을 없애버리면서, 내가 직접 캐릭터를 소환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주인공으로 멋진 활약까지 보여주니 더할 나위 없죠.
가능성을 증명한 액티비전 ‘스카이랜더스’
NFC 피규어의 대표 주자는 액티비전의 ‘스카이랜더스(Skylanders)’입니다. 지난 2011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스카이랜더스’는 기존 액티비전의 IP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축됐습니다.
‘스카이랜더스’가 처음 출시될 당시, 주변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피규어와 게임을 접목한 신선한 시도이긴 했지만, 완전히 새롭게 론칭되는 IP다 보니 ‘이게 과연 될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거죠. 그 우려가 무색할 만큼 ‘스카이랜더스’는 성공했습니다. 3년 동안 1억 7천만 개에 달하는 피규어가 판매됐고, 2조 2천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거죠.
▲ 아이들이 좋아하게 생긴 괴물들, '스카이랜더스' (사진출처: '스카이랜더스' 공식 홈페이지)
이를 기점으로 ‘스카이랜더스’는 NFC 피규어계의 조상(?) 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만큼 타이틀도 다양하죠. 스타트를 끊은 ‘스파이로의 모험(Spyro’s Adventure)’와 ‘자이언트’, ‘스왑 포스’, ‘트랩 팀’까지 총 네 가지 타이틀이 있습니다. 내용은 전형적인 권선징악 스토리이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개성이 있는데다 색깔도 알록달록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합니다. 그리고 PS4와 Xbox One, 3DS, Wii U, 심지어 태블릿 PC까지 적용 플랫폼도 다양해서 부모님들의 지갑이 살아남기 힘들겠네요.
▲ '스카이랜더스: 트랩 팁' 태블릿 플레이 트레일러
디즈니 IP의 힘, ‘디즈니 인피니티’
후발 주자인 ‘디즈니 인피니티’는 디즈니에서 출시한 NFC 피규어 기반 프랜차이즈입니다. 방식 자체는 ‘스카이랜더스’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디즈니의 무서운 점은 그거죠.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IP를 지녔다는 것.
디즈니 하면 떠오르는 IP는 한두 개가 아닙니다. 대표 캐릭터 미키마우스부터 시작해서 아직도 열풍인 겨울왕국, 몬스터 주식회사, 그리고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처럼 지극히 여성스러운 작품도 있죠. 심지어 ‘양덕(서양 문화 오타쿠의 줄임말)’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 ‘마블 히어로즈’와 ‘스타워즈’도 디즈니가 손에 쥔 지 오랩니다. IP는 무한할 정도죠. 그래서 이름도 ‘디즈니 인피니티’로 정했나 봅니다.
▲ '디즈니 인피니티 2.0' 스타터 팩
'토르'와 '아이언맨', '블랙위도우'까지! (사진출처: '디즈니 인피니티' 공식 홈페이지)
‘스카이랜더스’는 10대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상품이었다면, ‘디즈니 인피니티’는 좀 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피규어 퀄리티도 좀 더 ‘수집용’의 느낌이 강하죠. 그 전략이 잘 먹혀들어간 건지, 프랜차이즈 론칭 10개월 만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경제력 있는 키덜트는 무서운 법이죠!
‘디즈니 인피니티’의 기세가 워낙 매섭다 보니, 액티비전에서 공식적으로 견제하는 발언까지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두 회사가 새로운 NFC 피규어를 내놓기에 여념이 없네요.
추억에서 현실이 된 닌텐도 ‘아미보’
사실, 액티비전과 디즈니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시장은 한국에서는 많이 멉니다. 소비 형태나 문화도 확연히 달라서 피부로 잘 와닿지는 않죠. 하지만 일본에서도 NFC 피규어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오고 있다면 어떨까요?
일본에서 NFC 피규어를 본격적으로 내놓은 업체는 다름아닌 닌텐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닌텐도도 NFC 피규어 전체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데요, 접근 방식을 달리 했죠. 기존에 나와 있던 타이틀인 ‘슈퍼 스매쉬 브라더스’에 NFC 피규어를 접목해 내놓은 겁니다.
▲ 다양한 아미보들, 몹시 귀엽습니다 (사진출처: 닌텐도 아미보 공식 홈페이지)
이 피규어들은 ‘대난투 스매쉬 브라더스’ 안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활약합니다. 뉴 3DS에 가져다대면 게임 안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거죠. 게다가 마리오와 요시, 커비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닌텐도 간판 캐릭터는 그냥 피규어로 내놔도 잘 팔리는지라, 기존 팬들 입장에서는 피규어도 수집하고 게임도 플레이하는 일석이조 상품으로 인식됐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미보로만 1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끌어낸 거죠. 닌텐도가 2014년 6월에 아미보를 공식 출시했는데, 성과는 그 해 12월에 발표됐으니 약 6개월 만에 눈여겨볼 만한 결과를 낸 셈입니다. 물론, 매출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나오긴 했지만 새로 나온 ‘털실 요시’ 반응을 봐서는 일본과 한국에서도 솔찬히 성과를 낼 것 같네요.
레고와 레벨5까지, 블루오션 NFC 피규어
NFC 피규어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들의 소식은 꾸준히 들려옵니다. 블록장난감계의 강자 레고가 NFC 피규어 타이틀인 ‘레고 디멘션즈(Lego Dimensions)’를 발표하고 2015년 중 제품을 내놓겠다고 선언했죠. 게다가 기존 프랜차이즈들과 달리 블록을 직접 조립해서 완성품을 만들고, 게임까지 할 수 있다는 차별점을 지녀 더욱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 '레고 디멘션즈' 스타터팩 이미지 (사진출처: '레고 디멘션즈' 공식 홈페이지)
‘레이튼 교수’와 ‘요괴워치’로 잘 알려진 레벨5스튜디오도 신규 IP ‘스낵월드’ 론칭과 함께 NFC 피규어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새로운 업체들이 도전장을 던진 셈인데요, 이 덕분에 NFC 피규어 시장은 더욱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한국과는 먼 이야기 같으시다고요? 5월 1일 신형 3DS 출시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NFC 피규어 타이틀이 본격적으로 풀릴 텐데, 그때쯤 결과가 나올 것 같네요. 예상컨대, 다마고치 열풍처럼 조만간 ‘포켓몬스터’ 아미보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