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15, 나라가 망했는데 놀러 간 왕자를 찾습니다
2016.12.07 18:43게임메카 김헌상 기자
▲ '파이널 판타지 15'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최근 위기론이 제기되어 왔다. 2009년 발매된 ‘파이널 판타지 13’이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라이트닝 리턴즈 파이널 판타지 13’은 그래픽 저하,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제한 시간 내에 진행해야 하는 구성 등으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 뒤에 나온 온라인게임 ‘파이널 판타지 14’도 초기에는 완성도 논란에 시달렸다. 이에 많은 이들이 ‘파이널 판타지 15’가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정상 궤도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막중한 사명을 띄고 있었던 만큼, 스퀘어에닉스는 ‘파이널 판타지 15’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개부터 출시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들어갔다. 그런 만큼 게임 자체에서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요소들을 대거 투입했다. 시리즈 첫 오픈월드인 데다 턴제가 아닌 실시간 액션을 도입했다. 지금까지 대작 오픈월드 RPG가 주로 서양에서 나왔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과연 ‘파이널 판타지 15’는 이러한 도전을 통해 시리즈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 10년을 기다렸던 '파이널 판타지 15'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해외 여행 안 부러운 수려한 오픈월드
‘파이널 판타지 15’는 유구한 전통을 지닌 시리즈 중에서 처음으로 오픈월드를 채택해 화제가 되었다. 과학 문명과 판타지가 조화를 이루는 ‘파이널 판타지’ 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하고, 이 곳을 자유롭게 모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물은 상당히 보기 좋다. ‘파이널 판타지 15’는 세심하게 만들어진 오픈월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자연환경은 PS4의 성능을 전부 끌어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마주치는 세계는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탄성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 바위 등 수많은 자연물이 질감까지 생생히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 사실적인 그래픽이 눈을 사로잡는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특히 그래픽은 세심한 부분까지도 훌륭하게 구현됐다. 밤낮의 변화는 물론,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등 날씨의 변화까지 만나볼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이 한층 더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출시 이전에는 체험판에 비해 그래픽이 다운그레이드 됐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실제 게임에선 훨씬 더 우월한 그래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른 이동’이 가능한 지역도 차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갈 정도로, ‘파이널 판타지 15’의 세계는 매혹적이다.
▲ 밤이 되면 정말 어둡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탁 트인 바닷가를 보는 것도 좋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사실적인 여행도 강조했다. 그 일환이 바로 남성으로만 구성된 주인공 파티다. 지금까지 ‘파이널 판타지’는 티파 록하트나 라이트닝 등 여성 캐릭터가 파티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작품의 인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에 비하면 ‘파이널 판타지 15’는 팬들에게 ‘남탕’이라는 볼멘소리를 들을 정도로 초강수를 뒀다. 그 이유에 대해 제작진은 “오랜 기간 함께 숙식을 해결하는 여행에서 혼성파티는 부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사실적인 여행을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달콤한 캠핑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여행에서 기대할 법한 다양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즐기도록 설계된 점도 힘을 싣는다. 먼저 밤이 되면 평범한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시해’가 출몰한다. 따라서 호텔이나 캠핑장을 찾아 숙박을 하는 편이 안전하다. 밤에는 자유행동이 어렵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숙박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재미 요소들이 이를 상쇄한다. 동료인 프롬프토는 게임 도중에 마주하는 사건들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이그니스는 모은 식재료로 훌륭한 요리를 선보인다. 이외에도 동료들끼리 카드게임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 등, 정말로 친구들과 여행하는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 명승지에서 기념촬영은 필수지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호텔에선 카드게임도 즐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박력 넘치는 연출이 액션 재미를 더한다
‘파이널 판타지 15’의 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이벤트는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RPG답게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전투다. 메인 퀘스트나 서브 퀘스트 등 다양한 임무를 통해 몬스터와 싸우게 된다. 또한 제국군과 전쟁 중이라는 설정에 어울리게 필드 곳곳에서 제국 병사들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전투는 기존 ‘파이널 판타지’에서 익숙한 턴제가 아닌 실시간 액션으로 진행된다. 필드에 위치하는 몬스터와 마주치면 전투가 시작되고, 플레이어는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 적을 공격하고 회피하는 등 액션을 즐기게 된다.
▲ 길 가다가 덮치는 제국군 전함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호쾌한 액션으로 물리치자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액션성이 높아진 만큼 조작하는 재미도 늘었다. 특히 각 액션마다 화려한 연출이 더해지며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적의 뒤로 파고들어 공격하면, 주위에 있는 동료 캐릭터와 협공을 펼치는 ‘백 어택 링크’가 발생한다. 또, 적의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가드하는데 성공하면, 짤막한 순간 동안 시간이 느려지며,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흘려 보내는 녹티스를 볼 수 있다. 무기를 던져 순간이동하는 ‘시프트 브레이크’ 역시, 대상과의 거리가 멀수록 강력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러한 특별한 연출이 ‘해냈다’는 성취감을 주는 장치가 된다.
▲ 동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특별한 연출이 나오는 '백 어택 링크'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게이지를 모아 사용하게 되는 필살기인 ‘팬텀 소드’와 소환수는 연출의 정점을 찍는다. 먼저 ‘팬텀 소드’는 녹티스가 옛 왕들의 힘이 담긴 무기를 전부 소환해서 휘두르는 기술이다. 버튼 하나만 누르고 있어도, 녹티스가 적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검과 도끼, 창 등 수많은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은 굉장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에 소환수 같은 경우는 한 지역을 초토화하는 강력한 연출을 볼 수 있다. 연출 하나만으로도 싸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 역대 왕의 힘이 담긴 무기 '팬텀소드'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주위를 초토화시키는 강력한 '소환수'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액션을 앞세운 만큼, 턴제 전투를 플레이하던 전작에 비해 어려워질 수 있지만, 이를 보완하는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 게임 중 언제라도 배틀 모드를 ‘웨이트’로 설정할 수 있다. 웨이트로 바꾸면 플레이어가 조작하지 않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추게 된다. 이 때는 전술 화면을 보듯이, 어떤 몬스터가 누구를 공격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이동이나 공격을 시작하면 다시 시간이 흐르게 된다. 이를 통해 손이 느리더라도 전황을 쉽게 파악하고, 필요한 행동을 하면서 한층 쉽게 전투를 펼칠 수 있다.
▲ 액션이 어려우면 웨이트 모드를 적극적으로 쓰자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나라 잃은 왕자의 유쾌한 여행기?
이처럼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파이널 판타지 15’의 세계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다. 지금까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영화를 보는 듯한 거대한 스토리와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파이널 판타지 15’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출시 전부터 CG영화인 ‘킹스글레이브’, 2D 애니메이션 ‘브라더후드’ 등 다양한 미디어믹스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본편에서는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렵다.
▲ 레기스 왕의 이야기는 '킹스글레이브'에서...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파이널 판타지 15’의 메인 스토리는 녹티스 왕자가 왕을 죽이고 왕국을 빼앗은 니플하임 제국과 맞서는 것이다. 녹티스는 루시스 왕국 옛 왕들의 묘소를 찾으며 그들의 힘을 계승하고,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제국의 재상 아딘 이즈레아나 장군 레이브스 녹스 플뢰레 등 숙적과 마주치기도 하고, 신의 부름을 듣는 등 다양한 사건이 이어지게 된다.
▲ 제국군 기지에서 숙적을 만나기도 하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신비한 힘도 손에 넣는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게임 초반부터 아버지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파이널 판타지 15’에서는 친구들과 여행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세밀하게 구현된 오픈월드의 장점을 십분 살린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녹티스는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대어를 낚고, 레스토랑에서는 오락기를 붙잡고 ‘저스티스 몬스터 파이브’를 즐긴다. 여행 중 만나는 명승지에서는 기념사진도 찍는 등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잃은 왕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물론 약간의 일탈 정도는 게임적 허용으로 눈감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몰입감을 해치는 것은 확실하다.
▲ 나라는 망했지만 게임 정돈 할 수 있잖아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서브 퀘스트도 마찬가지다. ‘파이널 판타지 15’에는 수많은 서브 퀘스트가 제공되지만, 왕국과 제국의 전쟁이라는 세계관과 동떨어진 내용이 대부분이다. 녹티스 일행은 자동차를 업그레이드하는 부품을 구하러 다니고, 잡지에 실릴 멋진 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한다. 이 밖에도 생태 조사를 위한 개구리 표본 수집, 농장의 작물 수확, 야생 초코보 찾기 등이 있다. 게임 진행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서브 퀘스트를 하다 보니, 제작진이 오픈월드를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 많은 퀘스트 중에서 인상에 남는 것이 거의 없다. ‘더 위처 3’ 등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던 오픈월드 RPG에 비하면, ‘파이널 판타지 15’의 퀘스트는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 서브 퀘스트가 많기는 한데...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일본산 대작 오픈월드, 가능성은 보였다
‘파이널 판타지 15’는 1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팬들을 기다리게 한 게임이다. 그 시간 동안 만들어낸 결과물은 굉장하긴 하다. 실제 사진을 보는 것처럼 구현된 광대한 세계, 그리고 그 곳에서 즐기는 모험과 여행… 확실히 잘 만들었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퀘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 여기 멋진데’라고 감탄하거나, 한 밤 중에 이그니스의 요리에 괜히 배가 고파질 정도였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 15’는 친구들과의 여행을 즐기는 샌드박스 게임이 아니다. 멋진 자연과 소소한 재미 요소를 배치한 것 만으로는 호평을 받을 수는 없다. 탄탄한 메인 스토리, 그리고 세계관을 더욱 깊이 전달하는 서브 퀘스트 등, 플레이어를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작에는 보이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그 깊이까지 만족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 다음 번엔 완벽한 대작으로 거듭나길...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