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이 두렵지 않느냐(절체절명도시)
2002.11.23 10:52이혁준
황당무개한 일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X를 보면 땅의 용(지구를 파괴시키기 위해 나타난 용)의 공격으로 단 몇초만에 거대빌딩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뒤틀린 지층사이로 흘러들어 모든것을 삼켜버리고 만다. 조금전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하늘과 도시는 어둠과 고독으로 가득차가고 태양은 이미 그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물론 X는 어디까지나 허구에 바탕을 둔 픽션이다. 그러나 굳이 땅의 용이 아니더라도 그에 필적할만한 힘을 가진 `자연`이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 그것은 대체로 인간에게 유익하나 유해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힘이 존재하는데 바로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욕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늘 우리안에 머물면서 자연의 바람과 태양과도 같은 무한한 에너지로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마음에 지배된 자는 이성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 잘못은 작게는 개인의 파멸로부터 시작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를 정도로 크고 광범위하다. 절체절명도시는 그러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자연의 재해를 그렸다.
참신한 소재로 재미를 추구
재해는 인간의 영역밖에서 벌어지는 사고를 나타내며 흔히 자연재해를 나타낸다. 자연재해에는 태풍을 비롯하여 지진, 해일과 같은 것이 있는데 절체절명도시는 그 중 지진을 소재로 삼았다.
게이머는 플레이 내내 도망다녀야만 한다. 지반이 흔들리는 것은 기본이고 거대 빌딩이 엿가락 휘듯이 여기저기서 떨어져 내린다. 비단 빌딩 뿐만이 아니다. 육교, 가옥, 도로, 자동차 등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부서진 채 마치 블럭 `레고`와 같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그야말로 초토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는 바이오 하자드에 등장하는 좀비의 추격이 아닌 바로 이런 인공 건조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끝없이 뛰고 또 뛰어야만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극히 단순하고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숨겨진 재미가 있다. 그건 바로 게이머가 게임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이다. 파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주인공은 등에 가방하나 달랑 매고 혼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수십번 넘나들게 된다.
게이머의 판단력과 조작능력에 따라 그는 한 번도 죽지않고 섬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계속 게임오버를 반복할 수도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가 하면 칠흙같은 어둠속 빌딩에 갇히기도 한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자신의 발자국 소리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까운 그래픽 그리고 아쉬운 점
절체절명도시의 그래픽은 대체적으로 어둡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파란 하늘과 붉은 태양이 있었음에 분명하나 사고 후 도시는 무너진 빌딩사이에 가려 그나마 희망이라 여기며 바라보고 있던 태양도 볼 수 없다. 도로는 물론 빌딩, 집안, 차량 대부분의 무대가 어두운 톤으로 그려져 특정한 곳에서는 불빛없이는 한 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밝고 쾌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 시종일관 대부분의 무대가 어둡다는 것은 밤을 잊은 게이머들에게 있어서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겠지만 잠이 많은 게이머라면 TV화면을 켜는 순간 졸릴지도 모른다.
조작 또한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첫번째로 갇힌 빌딩안에서 지진이 발생할 때 침대나 책상밑에 숨으면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나 카메라 앵글이 부자연스러워 시야가 제한된다. 시야가 제한되면 진행방향이 모호해져 빨리 탈출할 수 없게된다. 또한 정작 1인칭 시점이 필요한 곳에서 3인칭 시점으로 고정돼 높낮이와 각도를 고려하지 않은 점프를 할 수 밖에 없을 때는 정말 주인공의 운명을 게이머의 조작 능력이 아닌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 뭐 컨티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만약 세이브를 하지 않은 채 사망했다면 왠만한 인내력의 게이머가 아니고서야 패드를 집어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옥의 티중의 하나가 바로 한글화다. 건그레이브, 결전 2와 같이 국내 정식 발매의 첫 테이프를 끊은 절제절명도시의 한글화는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외국어를 우리나라 정서에 완벽하게 맞추기란 어려웠는지 플레이 중간중간마다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예를들면 지진이 발생해 천장에서 깨진 유리가 떨어지고 가로등이 무너지고 있는데 태연한 듯이 ‘빨리와’라는 표현은 어쩐지 어색하다. 좀더 상기된 목소리여야 당연한 부분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런 장면은 곳곳에 존재한다. 이런 부분만 수정되었다면 보다 자연스런 게이머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의 드라마
절체절명 도시에서 게임의 무대는 인간의 욕심이 부른 인위적인 자연의 재해가 원인이다. 게이머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다니면서 여러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지진으로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아다니는 여고생을 비롯, 고립된 버스안에 남겨진 대학생, 붕괴된 빌딩안에 남겨진 노인부부 등 많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붕괴되어 가는 도시에 남아있다. 게이머는 그들과 대화하고 협동하여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삭막한 현대 도시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재난을 통해 서로간의 정을 확인하고 서로 도와 결국은 무사히 탈출한다는 설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그러나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법 한 사람의 목숨은 여러사람의 희생이 따를 때만이 가능하다. 등장인물들은 말 한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동료를 위해 희생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게임에서 느끼는 현실감에는 한계가 있다. 지진을 현실이라 인정하기엔 너무나 나약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자연의 형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If(만약)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 우리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될지 모른다. 지금 땅밑에서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혹시 길을 걸어가다 지하로부터 약간의 미동이라도 느낀다면 길을 멈추고 땅을 파보자. 그곳에 주인공이 쓰다 버린 가방이 있을지도 누가 아는가?
<글 / 이혁준>
애니메이션 X를 보면 땅의 용(지구를 파괴시키기 위해 나타난 용)의 공격으로 단 몇초만에 거대빌딩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뒤틀린 지층사이로 흘러들어 모든것을 삼켜버리고 만다. 조금전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하늘과 도시는 어둠과 고독으로 가득차가고 태양은 이미 그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물론 X는 어디까지나 허구에 바탕을 둔 픽션이다. 그러나 굳이 땅의 용이 아니더라도 그에 필적할만한 힘을 가진 `자연`이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 그것은 대체로 인간에게 유익하나 유해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힘이 존재하는데 바로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욕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늘 우리안에 머물면서 자연의 바람과 태양과도 같은 무한한 에너지로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마음에 지배된 자는 이성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 잘못은 작게는 개인의 파멸로부터 시작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를 정도로 크고 광범위하다. 절체절명도시는 그러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자연의 재해를 그렸다.
참신한 소재로 재미를 추구
재해는 인간의 영역밖에서 벌어지는 사고를 나타내며 흔히 자연재해를 나타낸다. 자연재해에는 태풍을 비롯하여 지진, 해일과 같은 것이 있는데 절체절명도시는 그 중 지진을 소재로 삼았다.
게이머는 플레이 내내 도망다녀야만 한다. 지반이 흔들리는 것은 기본이고 거대 빌딩이 엿가락 휘듯이 여기저기서 떨어져 내린다. 비단 빌딩 뿐만이 아니다. 육교, 가옥, 도로, 자동차 등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부서진 채 마치 블럭 `레고`와 같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그야말로 초토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는 바이오 하자드에 등장하는 좀비의 추격이 아닌 바로 이런 인공 건조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끝없이 뛰고 또 뛰어야만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극히 단순하고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숨겨진 재미가 있다. 그건 바로 게이머가 게임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이다. 파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주인공은 등에 가방하나 달랑 매고 혼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수십번 넘나들게 된다.
게이머의 판단력과 조작능력에 따라 그는 한 번도 죽지않고 섬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계속 게임오버를 반복할 수도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가 하면 칠흙같은 어둠속 빌딩에 갇히기도 한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자신의 발자국 소리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까운 그래픽 그리고 아쉬운 점
절체절명도시의 그래픽은 대체적으로 어둡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파란 하늘과 붉은 태양이 있었음에 분명하나 사고 후 도시는 무너진 빌딩사이에 가려 그나마 희망이라 여기며 바라보고 있던 태양도 볼 수 없다. 도로는 물론 빌딩, 집안, 차량 대부분의 무대가 어두운 톤으로 그려져 특정한 곳에서는 불빛없이는 한 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밝고 쾌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 시종일관 대부분의 무대가 어둡다는 것은 밤을 잊은 게이머들에게 있어서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겠지만 잠이 많은 게이머라면 TV화면을 켜는 순간 졸릴지도 모른다.
조작 또한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첫번째로 갇힌 빌딩안에서 지진이 발생할 때 침대나 책상밑에 숨으면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나 카메라 앵글이 부자연스러워 시야가 제한된다. 시야가 제한되면 진행방향이 모호해져 빨리 탈출할 수 없게된다. 또한 정작 1인칭 시점이 필요한 곳에서 3인칭 시점으로 고정돼 높낮이와 각도를 고려하지 않은 점프를 할 수 밖에 없을 때는 정말 주인공의 운명을 게이머의 조작 능력이 아닌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 뭐 컨티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만약 세이브를 하지 않은 채 사망했다면 왠만한 인내력의 게이머가 아니고서야 패드를 집어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옥의 티중의 하나가 바로 한글화다. 건그레이브, 결전 2와 같이 국내 정식 발매의 첫 테이프를 끊은 절제절명도시의 한글화는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외국어를 우리나라 정서에 완벽하게 맞추기란 어려웠는지 플레이 중간중간마다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예를들면 지진이 발생해 천장에서 깨진 유리가 떨어지고 가로등이 무너지고 있는데 태연한 듯이 ‘빨리와’라는 표현은 어쩐지 어색하다. 좀더 상기된 목소리여야 당연한 부분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런 장면은 곳곳에 존재한다. 이런 부분만 수정되었다면 보다 자연스런 게이머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의 드라마
절체절명 도시에서 게임의 무대는 인간의 욕심이 부른 인위적인 자연의 재해가 원인이다. 게이머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다니면서 여러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지진으로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아다니는 여고생을 비롯, 고립된 버스안에 남겨진 대학생, 붕괴된 빌딩안에 남겨진 노인부부 등 많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붕괴되어 가는 도시에 남아있다. 게이머는 그들과 대화하고 협동하여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삭막한 현대 도시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재난을 통해 서로간의 정을 확인하고 서로 도와 결국은 무사히 탈출한다는 설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그러나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법 한 사람의 목숨은 여러사람의 희생이 따를 때만이 가능하다. 등장인물들은 말 한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동료를 위해 희생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게임에서 느끼는 현실감에는 한계가 있다. 지진을 현실이라 인정하기엔 너무나 나약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자연의 형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If(만약)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 우리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될지 모른다. 지금 땅밑에서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혹시 길을 걸어가다 지하로부터 약간의 미동이라도 느낀다면 길을 멈추고 땅을 파보자. 그곳에 주인공이 쓰다 버린 가방이 있을지도 누가 아는가?
<글 / 이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