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현실성과 스피디한 액션으로 살려낸 2차 세계대전(데이 오브 디피트)
2003.07.09 17:22윤주홍
모드 성공시대의 또 다른 주인공
스티븐
스필버그는 ‘흥행의 귀재’라는 명함말고도 영화를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참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외계인을 소재로 한 ET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X-파일을
열어주었고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통해서 동물원 환경 조성을 위한 답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서 컬러필름을 쓰지 않고도 짭짤한 영화를 만드는 노하우마저
보여줬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8년 이래 최고의 흥행작이라고 불리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작한 것만큼 게임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품이 있을까? 영화가 개봉된 이후 이 바닥에선 제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1인칭 액션게임과 MOD게임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1월 22일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최대 수혜작이라고 불리우는 ‘메달 오브 아너’가 등장하고 큰 성공을 거두며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을 비롯(물론 이 작품은 메달 오브 아너보다 먼저 등장했지만) 배틀필드 1942 등 관련시리즈의 대박 돌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 전장의 느낌을 리얼하게 그려내는데 주력했다 |
하지만 이 작품들이 2차 세계 대전을 사랑하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주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 않았나 싶다. 이유야 어찌됐건 2000년을 전후한 시즌은 1인칭 액션게임의 붐이 최대로 일어난 시기였고 그 중 출시된 지 5년이 넘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어오고 있었던 하프라이프가 이러한 1인칭 액션게임의 주역을 담당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이 시대 최고의 모드 중의 하나로 꼽히는 데이 오브 디피트(이하 DoD)가 목마른 밀리터리 1인칭 액션 매니아들의 단비가 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작 초기부터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입맛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며 제작되어온 DoD. 제작의도야 어떻든 간에 2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무료공개버전으로 테스트가 진행돼 오고 있었던 DoD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 때문인지 결국 액티비전의 선택에 의해 상용판으로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리뷰의 조건이라는건 1.0으로 제작된 상용판 작품이 아니던가~
사실성과 게임성. 그 위태로운 줄타기
아래에서…
사실성과 게임성이라는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부분은 게임제작자를
언제나 진퇴양난에 빠뜨리는 고민거리다. 극단적으로 오퍼레이션 플래쉬포인트와
배틀필드 1942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이 둘은 물론 각자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성과 재미라는 경계선 사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데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보병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로 불리울 정도의 높은 사실성 때문에, 후자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 지나가는
비행기 날개 위로 착륙할 수 있을만큼의 허무맹랑한 액션 탓에 초보자와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외면 아닌 외면을 받아온게 사실이다.
▶ 초보자에게 이건 너무 어려웠고... |
▶ 매니아에게 이건 너무 심플했다지 |
‘공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라는 점이 한 몫 거둔 탓도 있겠지만 데이 오브 디피트는 앞서 말한 사실성과 게임성이라는 오묘한 경계선을 제대로 조율했다는 점에서 밀리터리 액션 매니아들의 교범으로까지 불려온 작품이다.
DoD가 많은 팬을 양산하고 상용판으로까지 출시된 가장 큰 이유는 실제 전장을 방불케 하는 현장감이 주효했다. 물론 97년에 제작된 하프라이프 엔진의 한계를 고려해야할 부분이지만 그래픽은 기존에 출시된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액션게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흥행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부분은 게임성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소임이 분명하며 다른 각도에서 풀어보자면 낮은 사양에서 부담없이 32인 멀티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다는 강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 맵을 장악하려는 욕구와 |
▶ 방어하려는 욕구를 적절히 풀어냈다 |
물론 이 정도의 특징으로 DoD가 액션 게이머에게 환영받는 작품이 됐을 리가 없다. 이 게임은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맵, 그리고 게이머로 하여금 맵을 장악하려는 욕구를 제대로 살려냈다는 것이 가장 큰 인기요인으로 작용했다. 아발란치, 캐이언, 앤지오 등 실제 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전장을 살려낸 15개의 맵은 어느 진영에게도 유리하지 않은, 그리고 큰 흥미를 유발하는 스타일을 선보여주고 있다.
DoD의 게임방식은 맵 내에 존재하는 거점(깃발이 꽂힌 지역)을 확보해야하는 고지점령(Territorial Control)과 목표물 획득/파괴까지 두 종류로 나뉘어지는데 어찌보면 단순한 게임방식이라 할 수 있지만 대단한 팀워크와 순발력, 전략을 필요로 한다.
DOD 1.0(상용판)은 미군과 독일에 각각 7가지의 무기를, 영국군에 4가지 무기를 지원하는데 이 무기들이 얼마나 실제와 근접하는가라는 점을 떠나 앞서 말한 전술의 다양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군이 도입하고 있는 분대 전투 교범에서 소총 보병분대는 분대장, 부분대장을 포함해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장성(?)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여기서 분대장 조, 부분대장조의 경우 소총수와 저격수, 분대지원화기병인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로 구성되는데 이 게임은 이러한 분대전투교범을 자연스럽게 게이머에게 인식시켜 준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즉 팀원 간 전술을 구사해 협동성있는 멀티플레이를 실현시켜준다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현장감’이 자연스럽게 살아난다는 것이다.
▶ 주요 거점을 사수하는 플레이어의 외로운 투쟁 |
물론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기타 액션 게임에서 건너온 이들이 무조건적인 돌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적당한 위치에 존재하는 건물과 은폐물이 DoD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로 하여금 자연스레 ‘전술’을 사용케 한다. 때문에 DoD는 짱 박혀서 스나이핑만 해대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게이머에게 부여하기가 꽤 애매하다. 거점을 확보하거나 게이머들이 이동할만한 활로를 확보해주기 위한 스나이퍼나 머신건 사수들의 캠프 장소는 게임을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라이플이나 서브머신건을 지닌 게이머가 조심스레 활로를 모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팀플레이는 누가 시키거나 전투교범을 읽어주지 않더라도 게임의 특성상 신기하리만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죄다 MG42를 들고 날뛰거나 스나이핑 라이플을 들고 설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 시계탑 위에서 진지를 사수하던 병사들 |
▶ 결국 바주카포에 의해 건물이 파괴되고 만다 |
또한 DoD에 존재하고 있는 ‘스플린트’ 개념이 다른 액션게임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스플린트는 짧은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돌격하는 시스템을 말하는데 점프를 뛰거나 총을 쏠 경우에도 게이지가 내려가게 된다. 이는 총알이 난무하는 둔턱을 지나 중요한 사격지점을 향해 달리기 위한 키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점프를 하며 총을 쏴대는 비현실적인 플레이를 막는 요소로도 작용한다(과거엔 총이나 수류탄 파편을 맞고 재빨리 지혈을 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게이머가 죽어버리는 개념까지 존재했다).
특히 이 게임을 처음 접한 게이머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할만한 부분이자 전술을 극대화시켜주는 요소는 머신거너다. MG42로 대표되는 머신건을 지닌 게이머는 포복자세로 엎드리거나 참호, 모래주머니, 창문 문지방 등에 거치대를 설치, 총을 고정시킨 후 사격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역할을 맡은 게이머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공격거점 확보나 방어를 위한 연출을 해낼 수 있다(거치대 없이 그냥 쏜다면 게이머 목은 하늘로 치솟게 된다. -_-). STG44나 M1 소총 등 실제와 근접하게 묘사된 화기의 특징들도 주목할만한 부분이지만 DoD의 매력은 실제 전장에 있는듯한 느낌을 제대로 묘사한 ‘머신거너’들로부터 시작된다.
상용판 DoD의 아킬레스건
DoD의
최대 단점을 꼽으라면 간결해진 메뉴 인터페이스와 발전된 텍스처 그래픽을 제외하곤
무료 모드와 패키지게임 간에 내용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에 하프라이프나
상용판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보유하고 있다면 DoD의 무료모드를 다운받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물론 상용판 카운터 스트라이크보다는 인터페이스나 유통사 측의 서버지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은 점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싱글플레이 모드라든가 하다못해
트레이닝 모드라도 삽입해줬다면 구입할만한 가치가 몇 배 이상 상승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부분을 모두 상쇄할 수 있을만큼 돈 값을 하는 타이틀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 차후에도 다양한 맵이 지원될 예정 |
메달 오브 아너는 영화처럼 잘 만들어진 싱글플레이로 게이머를 2차 세계대전 속의 영웅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배틀필드 1942는 우스꽝스럽지만 중독성 있는 대규모 멀티플레이를 선보여준다는 점에서,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은 철저하게 분리된 개념의 직업시스템을 도입함으로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재미를 게이머에게 선사해왔다.
그리고 DoD는 2차 세계대전의 시가전을 최상의 현실성과 스피디한 액션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을만한 완성도 높은 액션게임이다. 대중에게 마치 금단의 영역처럼 여겨져왔던 DoD의 세계가 한층 더 가까워져 온 만큼 1인칭 액션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라면 이 신세계에 한번쯤 발을 담가보는 것도 좋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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