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 천외마경의 시작을 알린다.(오리엔탈 블루-푸른 천외)
2003.11.10 16:43게임메카 박진호
‘오리엔탈 블루 푸른 천외(이하 천외)’는 최근 ‘2’편인 ‘MANJIMARU’가 PS2용 타이틀로 리메이크 되어 발매되었고 최신작인 ‘NAMIDA’가 제작 중인 히로이 오지 씨의 작품이자 허드슨의 간판 RPG 시리즈인 ‘천외마경’의 외전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현재의 천외마경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천외마경 시리즈 중 가장 최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천외’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으로 단순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던 기존 작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다.
▲상하이에
일본식 가옥이 있다는 것이 조금 |
▲천외의
세계가 가진 특징이 바로 이런 언밸런스한 |
최근 일본에서 전국시대의 음양사를 소재로 한 영화인 ‘음양사’의 최신작인 ‘2’편이 개봉되면서 이와 관련된 것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게임에서 찾아봐도 PS2용 온라인 게임인 ‘노부나가의 야망 온라인’에서는 음양사 캐릭터가 많이 늘어났으며, 프롬소프트웨어의 Xbox용 타이틀인 오토기의 최신작에서는 주인공의 직업 중 음양사가 등장한다.
이렇듯이 일본 고전에 대한 고증과 재해석이 문화에 반영되면서 게임 또한 이런 주류문화에 포커스가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천외’는 이런 주류문화에 영향을 받아 태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발매되는 게임들이 대부분 고대 일본의 문화를 반영시킨 것들이 많다 |
기존의 천외마경 시리즈가 고대 일본(지팡이라고 불리던 대지)을 모토로 당시의 문화를 재해석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하면 ‘천외’는 지금까지의 시리즈와는 달리 전혀 다른 각도에서 천외마경을 재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천외’는 한없이 펼쳐진 푸른대지라고 불리는 대륙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곳은 천제(天帝)와 그 아래 인간, 토루크 인, 귀족 등 다양한 종족이 뒤엉켜 살고 있는 행복의 대지.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지만 어떠한 문제없이 평화로움만이 넘쳐흐르던 이 푸른대지에 괴이한 마계의 일족이 나타나면서 푸른대지는 마계에 잠식당하게 되고 주인공은 이런 혼란 속에 의문의 고문서를 천제에게 받게 되면서 마계에 잠식당한 푸른대지를 구해내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는 아주 교과서적인 RPG 구성을 가지고 있는 천외.
▲가공된
세계인 푸른대지는 천외마경 시리즈의 주 무대인 지팡과는 상관이 없다.
|
이런 구성이 기존의 시리즈와의 개연성을 찾기 위함이라면 이런 구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천외마경’의 시발점을 알리기 위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팡이 아닌 가공의 세계인 푸른대지. 푸른대지는 마치 중국을 표현한 듯한 마을 분위기와 일본색이 짙은 가옥, 몽골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초원과 태국을 상징하는 밀림과 황금, 아틸란티스를 연상시키는 초미래문명이 공존하는 세계다.
게다가 이런 대지 위에는 다양한 외모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다. 이렇게 기존 시리즈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구성하면서 천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은 ‘천외마경’이라는 이야기의 원점을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야기
초반에 부활하게 되는 푸른 성! |
▲로켓
모양의 등대. 이것은 코난에서 많이 본 것 |
▲이런
특징을 나타내는 건물이 등장하는데는 |
▲지형의
형태와 건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연관 |
천외마경 시리즈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시작이 없는 모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끝도 없을 수 있다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천외마경 시리즈인 것이다. 허드슨이 이 게임을 제작하면서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필자는 ‘이런 색다른 세계관을 구축함으로 해서 기존 천외마경 시리즈의 세계관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그 가운데서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고 싶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자유도를 중시하는 서양 RPG와는 달리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RPG는 자유도라는 측면보다는 외적인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측면을 중시해서 개발되어 왔다.
다시 말해 RPG라는 장르에 있어 정해진 이야기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RPG의 속성은 가지고 있되 실제 자유롭게 모험을 즐기는 것이 아닌 정해 놓은 길을 따라 제작자가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경험해볼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유저가 이런 RPG를 플레이하면서 즐길 수 있는 측면은 연출된 장면과 음악에 감탄하고 감동하면서 좀 더 입체감 있게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 뿐. 이 이상도 이하도 없다.
하지만 ‘천외’는 다르다. 천외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지는 프리 시나리오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과거 이런 자유도를 중시한 프리 시나리오를 채택한 비디오 게임이라고는 아트딩크가 PS용으로 몇 차례 발매한 바 있는 ‘루나틱 돈’이라는 게임 뿐. 유사한 게임이 등장한 바는 있지만 완벽한 자유도를 구현해내지는 못했다.
‘천외’는 비디오 게임 RPG가 해결해내지 못한 자유도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RPG와 달리 유저를 위해 제작자가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는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몇 가지의 모티브가 되는 액션과 세계뿐이다.
천외는 플레이하는 사람에 따라 스토리가 모두 다르게 진행된다. 플레이어가 어떤 목적을 위해 퀘스트를 해결하는 동안에 푸른대지의 어딘가에 있는 마을은 적의 습격을 받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으며, 플레이어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오프닝
시나리오는 '1000의 기원' 이벤트 외에 |
▲초반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런 |
▲'야마토의 카라샤' 편 |
▲'천제의 고문서' 편 등을 즐길 수 있게 된다 |
그리고 적은 꼭 주인공을 목표로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다른 RPG와 같이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플레이어는 그런 세계에 어떤 특징 있는 캐릭터의 생활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보스 전에서 플레이어가 지더라고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무조건 주인공 캐릭터가 보스를 물리쳐야만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렸다. 천외에서 플레이어는 다른 RPG에서 소위 말하는 ‘영웅’이 아닌 것이다. 이겼다면 이긴 스토리로 졌다면 진 스토리로 저마다 다른 스토리를 끊임없이 연출하는 것이 바로 천외의 게임 구성방식이다.
▲오보로
시키부는 스토리 극 초반에 주인공 혼자 |
▲'천외'에
등장하는 보스 급 몬스터 스테이터스는 |
이런 게임 구성을 뒷받침 해 주기 위해 천외의 게임 시스템은 다른 RPG게임과는 다르게 짜여있다.
천외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동료가 될 수 있는 캐릭터는 총 11명. 필자는 ‘동료가 될 수 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분명 동료가 될 수 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이야기가 끝날 동안 11명의 캐릭터 중에 만나보지 못하는 캐릭터도 유저의 플레이에 따라서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쥬베와
우콘을 동시에 동료로 맞이 할 수는 없다. 오보로 시키부가 등장하는
낡은 탑에서 어떠한 |
이것은 자유도를 중요시 하는 게임의 완성도를 더해주는 보조 시스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레벨 디자인도 이런 자유도에 맞추어져 있다. 천외는 ‘패러미터 자동 생성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어 현재 플레이어 파티의 스테이터스와 인원수, 그리고 시나리오 진행 상황에 맞게 적의 패러미터를 설정한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도 밸런스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충실하게 프리 시나리오 시스템을 만끽 할 수 있다.
덕분에 적의 레벨이 높아서 라든가 적이 너무 강해서 시나리오를 진행 시킬 수 없는 낭패는 보지 않을 것이다.
또, 프리 시나리오 시스템 특성상 몇 가지 이벤트 및 의뢰를 동시해 진행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기 시스템을 도입해 약간이나마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정리할 수 있게 배려했다.
▲게임을
진행하다 발생한 퀘스트나 여러 가지 이벤트를 정리해 두는 시스템으로
게임을 하기 전에 |
RPG의 본질을 찾기 위해 과감히 기존 RPG의 틀을 깨버린 ‘천외’. RPG의 자유도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과감한 도전을 한 결과가 꽤 만족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너무 자유로운 탓인지 할 것, 챙길 것, 기억할 것 등 게임을 진행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정작 작은 것에 신경을 쓰게 되고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작은 봉투에 큰 물건을 담아내기 위해 주둥이를 너무 크게 벌렸는지 중간에 터지고 아귀가 안 맞는 부분도 눈에 띤다. 자유도가 높은 게임일수록 수많은 리트라이(Retry)를 요구하게 되고 반복되는 플레이를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벌려놓은 일이 많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자신의 플레이를 생각하면 ‘천외’는 쉽게 손을 내밀고 다시 게임기를 붙잡을 수 있는 게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게임 구성 요소가 각각 잘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이런 구성 요소가 유기적으로 잘 짜여있지 않다면 결국 빚 좋은 게살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천외는 이벤트 구성부터 이를 표현하는 그래픽과 음악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잘 포장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천외의 이벤트는 프리 시나리오 시스템을 채택했기 때문에 스토리 진행상 꼭 필요한 이벤트와 일명 서브 이벤트라고 부르는 메인 스토리의 이해를 돕거나 게임 진행상의 양념이 될 수 있는 이벤트로 크게 분류되며, 일반 RPG와는 달리 이 이벤트들의 연결 구조가 플레이 마다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유기적인 구성이 굉장히 어렵다.
▲텐카마루와의
전투는 플레이어의 대사 선택과 행동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단 한번의
선택에 의해서 |
하지만 허드슨은 처음 시작부터 게임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할 수 있는 오프닝부터 분기 시나리오를 도입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의 플레이가 실제 게임진행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유저로 하여금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플레이를 유도해 구성방식에 대한 문제를 극복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RPG는 Role Playing Game의 약자다. 플레이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가공의 이야기를 즐기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발매되는 RPG는 이런 역할극에서 주인공이 해내야 하는 일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지기 보다는 관객이 보고 즐기는 것, 다시 말해 직접 플레이해서 느낄 수 있는 재미보다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영화와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하드웨어가 발전하면서 그에 따른 기술력 발전에 의해 게임의 외관이 변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의 방향성이 엔터테인먼트화 되어가는 것을 필자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스펙터클
함을 표현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기술력이 뒷바침 되어야 한다. 푸른
성의 부활 장면을 |
이런 관점에서 천외를 보면 이 게임은 가장 허드슨스러우면서 최근 몇 년 동안 RPG란 장르가 잊고 있었던, 플레이어가 능동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깨우쳐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같이 화려함만을 강조해 개발되는 게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랫동안 묵었던 낡은 인터페이스와 도트로 이루어진 2D 그래픽 그리고 많은 사고를 요구하는 게임 구성으로 게임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천외’. 이 게임은 분명 요즘 유저들이 가장 싫어하는 요소를 가득 담고 있다.
▲요즘같이
편리한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져 있는 유저에게 이런 구식 인터페이스를
요구하는 것은 굉장히 |
하지만 그 요소들은 분명 단순한 RPG에 길들여진 유저들의 입맛을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천외마경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천외’ 또한 분명히 일본 RPG에 큰 영향을 끼칠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3 HUDSON SOFT / ⓒ2003 RED Licensed to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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