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씨프트 오토 3(일본판)(그랜드 씨프트 오토 3(일본판))
2003.12.16 12:43게임메카 송찬용
미국 게임? 버터 냄새 풀풀 풍기잖아. 캐릭터들의
모습이 영 꽝이야.
화면에 가득한 알파벳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려….
고백한다. 앞의 글들은 내가 미국판 비디오 게임들에 대해 갖던 선입견들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선입견은 아직도 갖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버터 냄새 풀풀 풍기고 캐릭터들의 모습이 영 꽝이어도, 영어로 나불거리는 캐릭터들의 대사가 아무리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작품성이 높은 게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예가 「Grand Sheft Auto Ⅲ(이하 GTA Ⅲ)」라는 걸 말이다.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은연 중에 무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전세계에 걸쳐 800만개가 넘게 팔렸다는데 정말 재미있을까?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그리고 양 게임(속칭)이라 무시해버렸던 미국 게임들. 아무리 외국에서 평판이 좋게 나와도 필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일본식 게임으로 처음 비디오 게임을 접한 후 그동안 일본식 게임에 너무 익숙해져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들은 GTA Ⅲ를 플레이하고 딱 5분만에 산산조각나버렸다. 뭐라고 할까? 돈많고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몸매 좋고 젊은 여자가 내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정말이다.
불과 5분 플레이한 것으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아주 간단하다. 캐릭터를 조작하면서 전혀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스틱을 기울이면 캐릭터가 뛰기 시작하는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이런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쾌적했기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별 것도 아니구만”하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요소는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게이머로서 나의 지론 중의 하나가 ‘조작이 불편한 게임 중에 명작은 없다’기 때문이다.
플레이하면서 이런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게임속 무대, 단조롭지 않은 많은 미션, 종류에 따라 특징이 다른 자동차, 전술성을 높이는 다채로운 무기, 각각 스토리를 갖고 있는 통행인, 다양하고 퀄리티 높은 서브 미션, 유머가 담긴 입간판…. 게임 속 무대인 리버티 시티는 감탄이 터져나올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게임은 충분히 재밌다.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요소는 아주 대단한 의미를 품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GTA Ⅲ를 플레이하지 않으면 게이머로서 실격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게 아마 이때쯤부터였을 것이다.
자유의 거리, 리버티 시티. GTA Ⅲ의 가장 큰 특징은 이 단어가 나타내는 것처럼 뭐든지 할 수 있는 높은 자유도에 있다. 반대차선을 역주행하거나 통행인에게 괜히 시비를 걸어 싸울 수도 있고, 국가권력을 엿먹이는 행위도 할 수 있다. 물론 미션에도 자유라는 이름의 엑기스가 잔뜩 녹아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부숴라’라는 미션의 경우 수류탄이나 화염병을 사용해 폭파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바다로 떨어뜨려 파괴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빌딩에 꼴아박아 터뜨리는 사람도 있고 폐차장에서 고철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같은 미션이라도 플레이어 수만큼 다양한 클리어 방법이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머리 속 생각을 그대로 게임 상에서 실현시키는 놀라운 심오함. 이것이 바로 GTA Ⅲ의 진짜 매력이다.
게임을 철저히 파고드는 사람들 중에는 조건이나 제약을 정해놓고 자신만의 오리지널 미션을 만들어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다. 수퍼로봇대전을 노개조, 강화파츠 미장착 상태로 클리어하거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서 모든 아이템을 99개 모은 상태로 클리어하는 방식이 오리지널 미션 플레이의 대표적인 예다. 제작자가 설정해둔 기존의 미션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창조력을 통해 게임의 재미를 무한히 늘려가는 것. 플레이어의 모든 기대에 응답해줄 수 있는 게임. 이런 게임이 또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자유도를 이상한 각도에서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무 죄없는 통행인을 죽이는 폭력적인 게임이다”면서 말이다. 하긴 통행인을 죽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높은 자유도 속에 있는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 죽일 수 있도록 만든 것뿐이지 꼭 죽이라고 만든 건 아니란 말이다.
미션 중에는 살인을 의뢰받는 경우가 있고, 이를 완수하지 않으면 최종적인 클리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법규를 어기고 통행인을 학살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총을 난사하는 것도, 자동차로 사람들을 치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모두 플레이어의 판단에 의해 생기는 결과일 뿐이다. 교통법규를 지키며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플레이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실제로 미션 이외에는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클리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처럼 GTA Ⅲ가 가진 자유도 속에는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도 플레이할 수 있는 요소가 담겨있다. 이 게임이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자유를 자유로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결코 폭력을 강요하고 있는 게임이 아니다. 폭력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건 게임을 조작하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죽일 필요가 없는 캐릭터를 죽이는 것도 바로 당신이다. 단지 당신은 높은 자유도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GTA 3의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그냥 즐기면 되지 않는가? 플레이해보면 틀림없기 깨닫게 될 것이다. 오직 자유가 있는 게임일뿐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