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영웅 VS 3D 리뷰(반숙영웅 VS 3D)
2004.01.16 14:59게임메카 송찬용
「스퀘어」라는 제작사를 통해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지? 아무래도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대표되는 감동과 화려함일 것입니다. 그럼 「에닉스」라는 제작사의 이미지는? 역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랑과 모험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두 개의 브랜드가 합쳐졌는데 어째서 이런 게임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대체, 그 이유가 뭐냐고요! 이것이 바로 필자의 ‘반숙영웅 VS 3D(이하 반숙)’라는 게임에 대한 인상이었습니다. 참, 이거 흉보는 거 아닙니다. 칭찬의 의미입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이 사건의 책임자는 ‘반숙’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토키다 씨입니다. 이 사람은 과거 수퍼패미컴 시절에 명작 RPG ‘라이브 어 라이브’와 ‘로맨싱 사가’를 만들어낸 분이죠. 그런 사람이 오랫동안 때를 기다리다가! 스퀘어와 에닉스가 총력을 기울일 이 시기에! …이렇게 기대했던 제가 바보였죠. 어, 정말 칭찬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일본 게이머들은 비록 게임성은 형편없지만 왠지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임을 ‘멍청이 게임(バカゲ?)’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애칭이죠. 대부분의 멍청이 게임은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려했지만, 어딘가 핀이 어긋나 뜻하지 않게 이런 칭호가 붙어버린 이른바 실패작일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숙’은 애초부터 이렇게 기획된 의도적인 멍청이 게임입니다. ‘별 쓰잘 데 없는 부분에 전력을 기울여 만들자!’라고 제작자가 공공연하게 말하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요. 필자가 아는 사람에게 들은 얘기인데, 토키다 씨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팔리지 않아도 상관없어!” …참 엄청난 소리죠.
▲ 이 사람이 바로 모든 사건의 원흉(?)인 토키다 프로듀서입니다 |
▲ 스퀘어와 에닉스가 합쳐졌습니다. ‘E’라는 로고가 인상적이죠 |
자, 이제 서론은 그만하고 게임 내용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극히 간단합니다. 과거에 패미컴과 수퍼패미컴에서 활약했던 도트 그래픽, 즉 2D 주인공들이 수수께끼의 소리에 이끌려 3D 기술이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버립니다. 수수께끼 목소리의 임자를 도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주인공 일행은 적들의 성으로 공격해 들어가죠. 낯선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알에서 소환되는, 흉측한 녀석부터 시작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까지 천차만별인 에그 몬스터들뿐. 맵상에 있는 모든 성을 점령하면 보스가 나타나고, 보스를 쓰러뜨리면 하나의 스테이지가 끝납니다. 따다다단딴딴 딴따단(FF 풍의 승리음악). 연극과도 같은 스토리가 펼쳐진 후 다음 회 예고가 흐르죠. 그리고 흘러나오는 멘트. ‘에그 키~~~~~익’
▲ 한 스테이지가 끝나면 이렇게 광고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
▲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달걀에서 부화장면, 병아리, 닭을 거쳐 치킨으로 변하면서 표시됩니다. 번뜩이는 재치도 이 게임의 매력이죠 |
물론 이 게임에도 간단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별난 세계관입니다. FF 시리즈를 비롯해 스퀘어의 다양한 작품들을 패러디해서 게임 곳곳에 집어넣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게임 내에서는 월별 커맨드를 통해 장군을 새롭게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군들의 이름이 ‘클라우드’, ‘리디아’, ‘프리오닐’ 등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이름들입니다. 세피로스라는 이름의 기마장군이 에그 몬스터를 소환하면서 추는 엉덩이 춤은 FF7의 세피로스 이미지를 완벽히 망가뜨립니다. 나의 세피로스님을 돌려줘~. 여성 팬들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참! 엉덩이 춤 등 저급한 개그가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방귀와 똥을 비롯해 에로틱한 소재까지 어린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는 개그가 가득하죠. 예전부터 재미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에는 그런 저급한 소재들이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진정 그 왕도를 걷는 저급 개그들이 압도적인 볼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진~~~짜로 칭찬이라니까요.
▲ 범상치 않은 세계관. 오리 모양의 변기가 성 위에 나타납니다 |
▲ 저급한 소재부터 썰렁한 소재까지 그 다양함은 감탄할 노릇입니다 |
화려한 캐스팅 또한 압권입니다. 일본판에서는 유명 아이돌 코즈에 린이 내레이션을 맡고 본편의 만담을 소메노스케, 소메타로 형제가 맡았습니다(참고로 소메노스케 씨는 이미 고인이죠. 그래서 생전의 라이브 음성을 샘플링해서 게임에 집어넣었다는 후문입니다. 소메타로 씨의 목소리는 새롭게 녹음했고요). 또한 오프닝 애니메이션에 사용되는 노래를 일본 애니메이션 송의 대부라 불리는 사사키 이사오 씨가 맡았는데, 애니메이션 팬들뿐만 아니라 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가수죠. 물론 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습니다. 그리고 작화는 우주전함 야마토와 요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원화를 담당하고 있는 카네다 이코우 씨가 맡았죠. 조금 전문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이 분은 ‘카네다 파스’나 ‘카네다 플래시’라 불리는 독특한 기법을 확립한 인물로 이 영향을 받은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꽤 많습니다. 여기에다 ‘타임보칸’ 시리즈로 유명한, 최근에 창립 40주년을 맞은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습니다. 이 정도 스탭들이라면 소위 오타쿠라 불리는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팬들이라면 기뻐 날뛸만한 라인업이지 않습니까?
정식발매판 반숙영웅의 라인업도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 수 없는 일본 만담가 대신에 개그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양배추와 낙지 콤비가 출현해 재미있는 입담을 과시합니다. 게다가 오프닝 애니메이션 송은 은하철도 999, 메칸더 V 등을 부르신, 국내 애니메이션 송의 살아있는 전설 김국환 선생님께서 부르셔 그 감동은 더욱 절절합니다.
▲ 오프닝 송의 가장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빠직빠직’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
이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 만든 반숙영웅.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를 해본 감상은 “우와~ 썰렁해”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이것 또한 제작자가 노리는 바가 아니었을까요. 게임이란 이래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품성이 훌륭해 눈물을 짜내는 게임도 좋지만, 게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오락’이니까요.
‘반숙영웅’은 정말 “멋지게 썰렁해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 말은 정말 최고 수준의 칭찬입니다. 진짜로요!
▲ 자, 여러분은 이제부터 이 모자라게 생긴 주인공을 조작해 위기에 빠진 알마문 왕국을 구해야합니다. 힘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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