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전사들의 궤적-(기동전사 건담 전사들의 궤적)
2004.04.10 10:13게임메카 송찬용
그들만의
발전된 세계
그리 길지 않은 게임사 속에서 ‘캐릭터 게임들은
하나 같이 즐기기 힘들다’는 견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문제들은 최근에
와서 비록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무슨무슨 게임을 원작으로 했다’, ‘무슨무슨
캐릭터가 등장한다’와 같은 수식구를 붙인 게임들은 대부분 팬이 아닌 게이머들에게는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픽 같은 특정 요소를 강화시켜 간혹 판매량이 좋았다고
해도 게임의 재미가 부족해 정작 그 게임을 오래 즐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라면 이 원작들은 당연하게도 게임으로의 전개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전개되는 ‘인기’ 애니메이션(혹은 코믹스)들을 보면 드라마 적인 부분을 위해, 또는 엘리베이터 식으로 상대를 물리쳐가는 스토리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억지스럽게 캐릭터와 사건과 설정을 끼워 맞추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들을 마구 뒤섞어 하나의 이차원 평면에 나열해놓고, 서로간의 밸런스를 맞춘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작업이다.
게다가 캐릭터 게임이라는 것은 캐릭터 판권 구입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원작의 인기가 사그라들기 전에 잽싸게 제작되어야 한다는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기획 부분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캐릭터 게임에서는 ‘그 캐릭터를 내 손으로 움직일 수 있다’, ‘원작의 재현 또는 원작에서 바랬던 가상의 경우를 직접 체험한다’ 이상의 즐거움을 찾기 어렵다. 이러니 원작의 팬이 아닌 사람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그간 출시됐던 건담 관련 게임들 역시 이런 부분의 문제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패미컴 시절부터 이어진 건담 게임들의 길고 유구한(?) 역사를 돌아보면, 시뮬레이션 게임 「SD 건담」 시리즈와 같이 간혹 잘 빠진 물건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참아가면서 플레이할만은 하지만 뭔가 모자란 것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이런 경향은 액션 장르에서 더욱 심해 플레이어의 참을성을 담보로 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 개발 기간에 의한 성과일까? PS2로 넘어온 이후 건담 관련 액션 게임들이 요구하는 참을성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동전사 건담 연방 VS 지온」에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를 기록하게 됐고, 마침내 게임큐브로 선 보인 「기동전사 건담 전사들의 궤적」에서는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에서 인정받고 말기에는 아까운 게임이 등장했다.
▲ 건담 관련 괴작중 베스트로 꼽을 만한 물건, 「건담 더 배틀 마스터」. 무려 2탄이시다 |
▲ 연방 VS 지온. 이 게임이 보여준 완성도와 보편성은 건담 계열 게임의 전환점이라 평가받는다 |
지킬건
지킨 게임
전사들의 궤적에는 시각적인 부분, 청각적인 부분
모두 100%는 아니라고 해도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정교한 메카닉의 묘사,
화려하진 않지만 꼼꼼한 광원에 히트 백 연출. 우주에서는 무중력 상태를 느끼게
해주고, 지상에서는 중력에 이끌려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는 원작 상 MS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여기에 적절하게 매칭된 사운드까지.
여기에 프레셔(상대 캐릭터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주는 정신적 압박)에 따른 화면 연출의 변화와 그것을 시스템화시킨 아이디어, 그리고 파일럿 개념에 SD 건담 시리즈나 로봇대전 시리즈에서 익숙한 정신 커맨드의 채용까지…. 이것들만으로는 모자라다고 느꼈는지 50대가 넘는 유닛에다 1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등 볼륨적인 부분까지 게이머들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즉,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하나 따져 보았을 때 전사들의 궤적은 캐릭터 게임에 대해 원작 팬들이 ‘이러이러 했으면’ 하고 갈망하던 부분을 최대한 반영시킨 그런 게임인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앞서 설명했던 부분보다 다른 부분 때문에 이 게임을 더 높이 쳐주고 싶다. 다음 페이지를 보자.
▲ 단순히 샤아와 아무로만의 일년 전쟁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
▲ 이 계열의 팬이라면 익숙한 정신기들 |
원작의
느낌이 고스란히…
‘캐릭터 게임에서 원작의 느낌은 기본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어떤 어떤 캐릭터가 나오고, 어떤 어떤 이벤트가 재현되고 하는 수준은 사소한 부분까지의
재현도를 따지면 모를까 그 자체만으론 그렇게 칭찬할 만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사들의 궤적에서 보여주는 그 느낌은 이런 부분을 넘어선다. 그 캐릭터를
조작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게임 속 그 상황에서 캐릭터가 실제로 느꼈을 법한 어려움들을
플레이어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소년 파일럿 아무로가 조종하는 건담뿐. 이렇다할 지원도 없이 1년 간 전장을 떠돌아야 했던 화이트베이스의 처절한 투쟁. 반대로 그 건담을 ‘하얀 사신’으로 부르며 두려움에 떨던 지온군의 입장. ‘살아 남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밖에 없었던 08소대의 모습 등 실제로 플레이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느낌이 미션의 클리어 과제에서, 메카닉 간의 밸런스에서, 캐릭터 각각의 능력치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플레이하는 사람에게 더욱 큰 재미를 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물론 원작의 자잘한 이벤트와 캐릭터물 본연의 원작 느낌은 당연히 표현하고 있고.
▲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건담은 거의 학살 수준으로 적들을 베어간다. 물론 그렇게만 해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
▲ 이런 기체로 만나는 건담은 악몽 그 자체. 100도 안넘는 아머로 뭘 하라는 거냐! |
▲ 시로로 플레이 할 경우 대부분의 미션에서 동료의 죽음은 게임 오버로 이어진다 |
▲ 빠질 수 없는 명대사. 자쿠와는 다르다! 자쿠와는! |
게임
자체의 높은 퀄리티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함께
등장하는 CPU의 전투 가담률이 높아져서 상황이 불리할 때 아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 각 유닛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면서 진행할 경우 더욱 쉽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게임 시스템 자체가 혼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어렵게 되어있기
때문에 함께 등장하는 CPU에 대한 의존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임 레벨이 현저하게
높을 경우가 아닌 이상, 혼자서 적 한 가운데 뛰어들 경우와 CPU에게 ‘원호’를
받으면서 들어갈 경우 느껴지는 난이도의 차이는 게이머라면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아군에게는 지켜야 할 지역이나 사물의 호위를 맡기고 플레이어는 다른
지역에서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도 가능하다. 간혹 이런 과정에서 달성해야할
임무를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유닛이 아닌 CPU에 의해 움직이는 유닛이 만족시켜 클리어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아군 CPU들은 단순히 머릿수 맞추기로 등장한다기보다 함께 싸우는
동료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 원호는 게임 내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명령이다 |
전진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무리
아군의 도움이 있고 플레이어가 강하다고 해도 무조건 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때려부수는
것만으로는 게임을 클리어하기 힘들다. 어느 지역을 기점으로 공격하고 함께 이동할
아군의 숫자는 몇 명인가를 고려해야 하는 미션이 있는가 하면, 적을 무시하고 특정
목표물만 파괴하는 요령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물론 실력과 레벨이 된다면 이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는 법. 이런 부분을 앞서 언급한
CPU의 행동등과 연관시키며 진행해야 한다는 점은 액션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작정
때려부수는 컨셉으로 만들어져 단조로움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게임에 차별화를
부여한다. 전략을 기반으로 하는 액션이라는 부분. 이것이야 말로 전사들의 궤적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nd Evolution을
꿈꾸며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록 온 시스템과 시점이
맞물릴 때 오는 조작의 불편함이나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현재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워
전체 맵을 자주 열어야 한다는 템포 상의 불편함, 그리고 액션 게임치고는 패턴이
모자란 액션들과 반복되는 전투 방식은 넘어야 할 숙제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일정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무작정 이끌려가게 되어 뭐가 뭔지 모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캐릭터 게임들이 플레이할 만한 것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게임 틀에 캐릭터만을 뒤집어 씌우는 최근의 행태를 생각할 때, 건담 시리즈가 보이는 행보는 조금이지만 분명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SD 건담 G제너레이션」을 통해서 한 단계 진화한 건담 계열 게임들. 「연방 VS 지온」 다음으로 이어진 「전사들의 궤적」은 그 두 번째 진화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서 가능성이 보이는 새싹에게 가차 없이 매질을 하기는 조금 아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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