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엔딩, 그 키워드는 `붉은 나비`다(제로~붉은 나비~)
2004.06.26 12:30게임메카 송찬용
본래 카리스마란 초자연적, 초인간적, 초일상적인 자질을 가리키는 말로,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질적인 존재가 그러하듯 압도적인 무형의 위압감을 발산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그것에 빠지게 만든다. 사람이 내뿜는 카리스마와 같은 의미로 영화나 소설, 음악처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에도 카리스마는 분명히 존재한다.
「제로~붉은 나비~(이하 붉은 나비)」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인간의 공포. 극히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이 감정이 요즘 들어 엔터테인먼트의 아주 좋은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게임에서 유사한 작품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붉은 나비」는 찬연히 빛을 뿜어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비일상적이지만 일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영을 소재로 택한 점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붉은 나비」를 이질적인 것으로 만드는 건 그 공포의 대부분을 플레이어의 상상력에 맡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 현실과 비현실 어느 쪽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영(靈)을 소재로 하고 있다 |
예를 들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방법을 통한 공포의 제시는 한 번 사용하면 그 후부터 효과가 떨어진다. 즉, 깜짝 놀래키며 공포를 주는 방법은 반복해서 사용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는 인간의 학습능력과 정신건강을 위한 신체의 항상기능(恒常機能) 때문이다. 하지만 「붉은 나비」는 특정 방법을 통해 공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공포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영의 존재는 단지 게임의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붉은 나비」의 공포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서있을 때, 인간은 생각한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조합해 끝없이 상상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모름지기 인간의 상상력에 기인한 부분이 크다. 이는 영이건 신이건 마찬가지며 종교의 근본 역시 그곳에 있다. 「붉은 나비」의 경우 근본적인 공포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풍부한 상상력은 그대로 끝없는 공포를 낳는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과 무기물이 모두 공포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붉은 나비」가 제시하고 있는 건 명확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플레이어가 자기 멋대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정도는 플레이어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가 비슷한 정도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공포가 달라진다는 점. 이는 작품에 대한 평가로도 그대로 이어져 공포를 얼마나 느꼈는지에 따라 「붉은 나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 유일한 무기는 영혼을 찍는다는 사영기뿐 |
전작과 비교해보면 질식할 것 같은 광기는 조금 약해진 듯 하다. 예를 들어 타이밍에 따라 특수한 촬영법이 가능해졌다거나 특별한 전투방법을 필요로 하는 영이 존재하는 등 게임으로서 즐기는 방향성이 늘어나있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 행동범위가 마을 하나라는 약간 넓어진 지역이라는 점도 그 원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전작처럼 눈앞의 세계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절망감은 확실히 감소했다. 대신 소름을 끼치게 만드는 살기가 존재한다. 온몸을 무겁게 눌러오는 광기가 세련되게 가다듬어져 신경을 예리하게 자극하는 느낌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잊고 있었던(아니, 어쩌면 잊고 싶어했던) 과거의 트라우마(trauma. 정신적인 외상 또는 마음의 상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어 그곳으로 한걸음씩 내딛는 괴로움. 그 트라우마에서 생겨나는 시기심.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주인공의 쌍둥이 언니라는 사실. 심리적, 정신적으로 살을 도려낼 것 같은 아픔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공포는 전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외부 세계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공포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는 전작부터 일관되게 지켜온 「붉은 나비」의 컨셉이기도 하다.
▲ 마을 하나로 무대가 넓어졌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
공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플레이를 하기 위해선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게다가 「붉은 나비」의 경우 제트 코스터처럼 공포를 느끼면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하지만 게임 작품으로서 「붉은 나비」는 의심할 바 없는 최고 수준의 걸작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수준 높은 연출, 절묘한 전개와 게임 밸런스, 컬렉션 요소까지. 그리고 붉은 나비의 정체가 밝혀지는 충격적인 엔딩. 이들 모두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는 모두 플레이어의 무한한 상상력에 달려 있다. 바로 거기에 「붉은 나비」의 진정한 가치가 존재한다.
「붉은 나비」에는 카리스마가 있다. 이것은 필자 개인만의 생각이 아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붉은 나비」는 한번 가까이 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강력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공포를 느끼는데 머무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심리작용까지 일으키는 「붉은 나비」.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도 꼭 한 번 맛보기 바란다. 너무나 잔혹하면서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운 그 존재는 걸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다.
▲ 붉은 나비의 정체는 무엇일까?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직접 플레이한 후 느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