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손 그리고 귀로 즐기는 예술작품 한 편(일렉트로 플랑크톤)
2005.06.27 17:57게임메카 박진호
일본에서는 지난 4월 7일 발매돼 새로운 닌텐도DS의 가능성을 보여준 ‘일렉트로 플랑크톤’.
‘팝픈뮤직’, ‘큰북의 달인’ 등 종전의 엔터테인먼트 지향소프트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일렉트로 플랑크톤, 이 게임은 닌텐도DS란 게임플랫폼을 통해 선보이는 타이틀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아닌 하나의 완벽한 미디어아트로서 접근하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 존 앤더슨 등 각계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아이치현에서 개최되고 있는 엑스포 개회식 영상연출을 담당했던 미디어아티스트 이와이 토시오 씨가 개발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때문에 일렉트로 플랑크톤이 미디어아트로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 필자는 그래도 ‘일렉트로 플랑크톤’은 게임으로 정의내리고 싶다.
▶일렉트로
플랑크톤으로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적인 측면이 강조돼 있다
▲터치하는 엔터테인먼트 게임
‘만져라 와리오’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최근 등장하는 닌텐도DS용 타이틀의 대부분은 내장마이크, 듀얼스크린, 터치스크린 등 닌텐도DS만의 특징을 유저들에게 어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하드웨어 기능을 유저에게 어필함에 있어 닌텐도는 한결같이 재미를 선사해야 하는 게임타이틀의 본연의 목적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아이템을 사용한 새로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으로서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 쉽게 익숙해지는 인터페이스 그리고 재미있는 컨텐츠. 현재까지 발매된 대부분의 닌텐도DS 타이틀이 이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이는 게임과 약간 거리가 멀다고 평가받는 ‘일렉트로 플랑크톤’도 마찬가지다.
우연의 일치일까?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어’, ‘메테오스’, ‘별의 카비’, ‘캐치! 터치! 요시’ 등 터치스크린을 십분 활용해야만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타이틀은 모두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획자보다 게임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의 비중이 더 컸었다. 그리고 게임평가에는 기획자나 개발자의 노력보다 이런 아티스트의 노력이 더 반영된 것이 사실이다.
닌텐도DS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아티스트들의 노력에 대해서 ‘일렉트로 플랑크톤’은 게임에 대한 아티스트의 노력은 하드웨어의 특성이 아닌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임이
발매되기 전까지 이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줄지 아무도 알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반인을 아티스트로? 만족도는 90%
일렉트로 플랑크톤은 닌텐도DS 화면에 나타난 다양한 전자 플랑크톤을 터치스크린, 내장마이크 등 다양한 인터페이스로 플레이어가 임의로 조작해 리얼타임으로 다양한 음악과 영상을 생성해 나가는 게임이다.
하지만 일렉트로 플랑크톤은 게임이전에 현미경, 테이프레코더, 신디사이저, 패밀리컴퓨터를 차례대로 거쳐 온 한 디지털 아티스트의 게임과 일반대중을 이용한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음악을 모티브로 한 10종류의 전자 플랑크톤이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다양한 게임컨텐츠로, 아티스트에게는 일종의 시퀀스적인 요소를 가진 사운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렉트로 플랑크톤을 게임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비트매니아’ 시리즈나 ‘큰북의 달인’ 시리즈와 같이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고 있는 게임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렉트로 플랑크톤의 가장 큰 매력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게임인 만큼 누구나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신디사이저 완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한 조작을 하지 않고도 누구나 쉽게 터치스크린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소리를 내거나 다양한 음악과 영상을 표현할 수 있다.
▶다양한
놀이법 또는 퍼포먼스 동작을 지원한다. 일부 플랑크톤은 시퀀스화 돼 있기 때문에
일정한 규칙대로 제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을 초보자도 직관적으로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그저 일렉트로 플랑크톤은 플레이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운드와 그래픽을 즐기는 게임인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일부 플랑크톤은 시퀀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패턴을 따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아티스트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합주! 밴드 오브 브라더스’처럼 별도의 작곡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일정한 패턴’이라는 것은 즉흥적인 사운드와 그래픽 연출을 반복하면서 게임을 즐긴 플레이어가 습득한 일종의 학습결과이기 때문이다.
닌텐도DS에 전원만 넣으면 누구나 미디어 아티스트로 만들어주는 일렉트로 플랑크톤. 게임플레이에 대한 경력, 실력,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개발자가 마련한 10가지의 플랑크톤을 통해 계획적이든 계획적이지 않든 자신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운드를 선사하는 것이 바로 일렉트로 플랑크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정확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
일렉트로 플랑크톤의 또 다른 매력은 개발자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플랑크톤을 통해 매번 전혀 다른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면의 궤적에 따라 소리를 내는 플랑크톤, 플레이어가 입력한 음성을 왜곡해서 소리를 내는 플랑크톤, 튕겨지는 각도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플랑크톤, 회전속도에 따라 음파를 표현하는 플랑크톤, 이동루트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는 플랑크톤 등 일렉트로 플랑크톤에 등장하는 10종류의 플랑크톤은 모두 아티스트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게임을 접하는 순간 알 수 있게 된다.
단순해보이지만 계산된 그래픽도 상당하다.
마치 작은 플랑크톤을 현미경으로 보는 듯한 컨셉의 듀얼스크린 영상, 폴리곤과 스프라이트뿐만 아니라 곡선과 그라데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평면 오브젝트로 그려진 다양한 플랑크톤과 움직임, 일정한 각도와 속도, 방향 그리고 입력되는 목소리의 톤에 따라서 다양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과장을 조금 보태 경의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 연주하는 퍼포먼스 모드 외에 일렉트로 플랑크톤은 10가지 플랑크톤을 이용한 다양한 퍼포먼스를 예제로 선보여주는 오디언스 모드를 탑재하고 있어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에게는 멀티미디어 매뉴얼을, 사운드나 비주얼을 감상하고자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하나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너무 수동적인 느낌이 강한 모드가 아니겠냐고 반문하는 플레이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게임에 대한 일종의 색다른 체험이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특징보다 필자가 일렉트로 플랑크톤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바로 세이브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자신만의 작품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창작이라는 무한한 고통을 감뇌해야만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이란 측면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조형이든 모든 예술작품은 오랜 기간동안 작품하나만을 위해 작업해온 제작자의 학습능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렉트로 플랑크톤을 미디어아트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담감도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자 예술작품인 일렉트로 플랑크톤.
장마철에 딱히 할 게임이 없다면 스피커에 일렉트로 플랑크톤 카트리지가 삽입된 닌텐도DS를 연결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빠져보자. 그 순간 플레이어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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