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MMORPG의 정확한 위치를 보여주는 SP1(SP1)
2008.04.03 18:47게임메카 김시소 기자
포스트 한국형 MMORPG를 꿈꾸는 ‘SP1’의 오픈베타서비스가 시작되었다. 공개 당시부터 기존 온라인게임에 대한 ‘차별’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SP1’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한국형 MMORPG가 고질적으로 보여줬던 ‘닥치고 사냥, 무조건 레벨업’이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느냐?란 물음은 재작년 대형 국산 MMORPG의 실패 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이겠지만,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 지속적인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는 MMORPG의 출시는 유저에게나 개발사에게나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SP1’은 과연 한국 게임업계에 쌓인 피로를 날려 버릴만한 게임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SP1은…” 이라고 쓰려했으나, 이렇게 단정적으로 ‘SP1’을 설명할 순 없을 것 같다. 오픈 이후 뜯어본 ‘SP1’은 그만큼 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자.
잘 꾸며진 퀘스트 시스템은 양날의 검 - 조로(早老)증에 걸린 퀘스트
‘SP1’은 게임에 갓 발을 들여놓은 유저들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SP1’의 이러한 몰입도는 강력한 퀘스트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 있기 때문이다. ‘SP1’는 확실히 게임 초반 유저들을 몰입 시킬 수 있는 퀘스트들이 잘 짜여져 있다. 구스펠트를 중심으로 적재적소에 위치한 퀘스트들은 ‘SP1’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또 마련된 퀘스트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히 무엇을 찾아오고, 몹을 몇 마리 해치우고 하는 식의 퀘스트에서 벗어나 타임어택이나 상황 퀘스트(NPC를 향해 공격해 오는 몹을 처리하기 등)를 부여해 퀘스트 자체에 재미를 주려는 개발진의 노력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퀘스트 진행에서의 자잘한 버그나 싱크가 안 맞는 이벤트 씬과 성우의 음성 등 덜 다듬어진 면은 거슬린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적어도 퀘스트 시스템을 가진 한국 MMORPG가 그동안 드물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SP1’에게 대승적인 차원에서 박수를 쳐 줄만 하다. 하지만 퀘스트 시스템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부여는 딱 여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 퀘스트 시스템은 좋아! 그런데...
게임을 진행 할수록 ‘SP1’ 퀘스트 시스템이 가진 힘은 점점 달린다. 일단 20Lv이 지나면 퀘스트로만 레벨업을 하는 것이 힘들다. (이것은 퀘스트의 절대적인 양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퀘스트가 주는 재미로만 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0Lv 중반부터 솔로 플레이로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가 불가능하다. 파티 플레이로 퀘스트 클리어를 유도하는 것은, 확실히 솔로잉 위주의 유저에게는 몰입도를 해친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SP1’은 20Lv까지 거의 전적으로 퀘스트에 의존해 캐릭터를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에,(퀘스트로 키우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다.)파티 플레이에 대한 부담이 너무 일찍 주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군다나 아이템 강화나 스킬 성장의 경우는 다른 MMORPG에 비해 특출 난 것이 없기 때문에 너무 빨리 끝나버리는 퀘스트 시스템의 위력은 더욱 아쉽다. ‘헬게이트: 런던’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이 같은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헬게이트: 런던’이 퀘스트 시스템에서 줄 수 있는 스토리적인 재미가 약한 대신 아이템 시스템, 스킬 트리를 통해 수집과 업그레이드, 성장의 즐거움을 줬다면, ‘SP1’은 퀘스트 시스템으로만 재미를 주기에는 그 양이 빈약하고, 아이템/스킬 시스템은 퀘스트 시스템을 뒷받침해 주질 못한다.
처음부터 이런 기대를 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서울서 부산에 가려고 KTX를 탔는데 신나게 달리다 천안에서 멈춘 기분이다. 초반의 강한 기대감과 몰입감은 뒤로 갈수록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긍정적인 신호들-개발진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천안에서 멈추기는 했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일단 부산까지 갈 철로를 계속 깔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SP1’에서는 길드 전용 콘텐츠인 스크램블과 클래스 전직 등의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다. 1차 전직은 15Lv에서 2차 전직은 30Lv에서 가능한데 블래이더의 경우 가더-제너럴/ 슬레쉬마스터-스트라이커로, 히트맨은 어쎄신-킬러/레피드핸드-디텍터로, 블래스터는 임팩터-도미네이터/ 퀘이커-익스플로션으로, 프리스트는 리커버리-오라클/몽크-텔레포터로 전직이 가능하다. 아직 게임초반이라 이러한 전직 및 각 클래스의 밸런스가 검증이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마련되어 있는 콘텐츠라는 측면에서는 기대할만하다. 밀린 업데이트에 쩔쩔매고 있는 게임도 많다.
또 길드전용 경쟁 콘텐츠인 ‘스크램블’ 역시 아이템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를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만하다. 아이템 시스템에 대한 개발진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부족하다고 평가 할 수밖에 없지만 나아질 여지를 보이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스크램블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자체를 너무 파티 플레이 위주로 유도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솔로잉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잘 꾸며진 퀘스트 시스템을 표방하면서 실제로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파티 플레이를 유도한다면 일부 유저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클 수 밖에 없다. 파티플레이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 더 뒤쪽에 배치해도 좋지 않을까. 현재의 ‘SP1’에는 적어도 파티 플레이와 솔로잉 플레이에 대한 선택권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하기 어려운 콘트롤 - 좁아서 더 문제, 타격감은 괜찮아
‘SP1’에서 외부로 가장 크게 부각되는 문제점은 바로 난해한 콘트롤이다. 콘트롤 문제는 ‘히트맨’ 같은 원거리/ 이동 공격이 가능한 클래스에서 도드라진다. 특히 몹과 엉켰을 때나 좁은 골목에서 플레이를 할 때 콘트롤은 더욱 난해해진다. 마우스로 조종하는 시점과 키보드로 조종하는 캐릭터의 동선이 얽히기 때문인데, 플레이 하는데 상당한 피로감을 주고 있다. 특히 게임의 컨셉 상 복도, 골목 등 좁은 공간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콘트롤 부분은 좀더 정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모션의 어색함 이외에도 키(KEY) 세팅이 전혀 안 된다는 점은 좀 당황스럽다. 콘트롤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이 지적되는 부분이다.
타격감 부분은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특히 원거리 공격형 클래스인 히트맨과 블래스터의 무기는 좋은 타격감을 보여준다. 게임이 판타지가 아닌 실제 있을 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감 있는 무기의 운용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사이의 간극 - 적어도 SP1은 많은 고민이 들어간 게임
솔직히 말하면, 오픈베타테스트 단계에서 이 정도 완성도 보이지 못하는 게임이 태반인 상황에서 ‘SP1’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잘 만든 MMORPG임에는 분명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SP1’은 현재 한국 MMORPG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는 게임이다. 폰부스(의뢰 퀘스트를 받는 시스템)나 오토바이(기름을 넣어야지 간다) 등 아주 새로운 것들은 아니지만, 또 누구나 한번쯤 생각은 해봤겠지만 그 자체를 그럴듯하게 게임에 녹여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에 나오는 게임 중 그 어떤 것에 개발자의 고민 한 방울이 안 들어가 있으랴마는, ‘SP1’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MMORPG란 이런 것 입니다’ 정도는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실버포션이나 넥슨이 내세웠던 ‘차별화’가 이런 노력에 대한 것이었다면, ‘SP1’은 그동안 한국 MMORPG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웰메이드 온라인 게임이 한국 시장에 쏟아지는 상황에서, ‘SP1’이 ‘포스트 한국형 MMORGP’의 대표성을 갖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형 MMORPG의 실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SP1’이 기존의 국산 MMORPG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국산 MMORPG에 한정해서 상대평가를 한다면 ‘수’를 줄만하나, 세계시장에서는 절대평가를 하던 상대평가를 하던 ‘우’를 넘기 힘들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웰메이드를 바랬다면 너무 앞선 기대였을까?
칭찬을 하자니 바깥에 보다 나은 게임들이 존재하고, ‘이게 뭐야!’라고 말하기에는 기존의 한국 게임들보다는 발전된 모습이 있는 샌드위치 게임이 되어버린 것. 북미의 MMORPG를 따라가기에는 벅차고 중국이나 일본의 온라인게임에 치받치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현실을 ‘SP1’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SP1’은 ‘차별화’를 내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로선) 한국 온라인게임의 위치를 가장 잘 대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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