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만 일삼는 용사 따위 처단해주마! 용사주제에 건방지다 or2 리뷰
2009.02.05 18:55게임메카 정상현 기자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라는 옛 말이 있다. 같은 물건이지만 환경 등에 의해 그 결과물이 다르게 나온다는 뜻이다. D&D류의 RPG게임이 일본식으로 해석되어, 이른바 일본식 RPG의 틀을 만들었던 ‘드래곤퀘스트’ 시리즈가 이에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용사주제에 건방지다 ‘or2’’(이하 ‘or2’)도 이처럼 ‘어떤 게임’의 내음이 짙게 느껴지는 그런 게임이다.
‘그림 리퍼’와는 다른 ‘파괴신’의 이야기
Or2는 마왕이 소환한 파괴신이 되어 던전을 침입하는 용사들의 손아귀로부터 마왕을 보호하고 그들을 처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게임에서 악의 축으로 취급되는 쪽의 역할을 맡게 되는 점이 특징인 게임이다.
▲사악한 용사를 물리치자! |
사실 ‘악의 우두머리’가 되어 정의의 용사를 격파한다는 이색적인 소재는 ‘or2’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과거 불프로그에서 제작된 시뮬레이션 게임인 ‘던전키퍼’ 시리즈의 스토리가 악마 ‘그림 리퍼’가 되어 정의의 용사를 처단하는 내용이었고, 지하에 굴을 파서 던전을 만들어 몬스터들을 육성해 던전의 영원한 불청객인 용사를 격퇴하는 방식의 게임 골격도 ‘던전키퍼’와 유사하다. 이렇게 말로만 들었을 때는 두 게임이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지지만, 게임의 플레이 성향은 상당히 다르다.
▲투기장에서 즐거운 한 때를 즐기고 있는 몬스터들 |
▲패건들지마!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던전으로 초대합니다!
던전 키퍼의 플레이 방식은 고용된 몬스터의 의식주 환경제공부터 시작해서 카지노와 훈련장 같은 각종 부대시설은 물론이고, 다달이 월급도 챙겨주고 불만사항을 수시로 접수 받고 개선해줘야 하는, 기업을 경영, 관리하는 느낌의 시뮬레이션 성격이 강하다.
이에 비해 ‘or2’의 플레이는 던전키퍼에 비해 야성(!)적인 요소들이 짙게 배어있다. ‘or2’의 세계는 몬스터들의 상, 하위 구조가 천적과 포식관계로 구성된 먹이사슬을 기반으로 한다. 살기 위해 잡아먹는 ‘or2’의 몬스터 관계는, 삼시세끼 닭으로 채운 배를 쓰다듬으며 매번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던전키퍼 세계의 몬스터들에 비해 그 삶이 치열하다.
‘or2’의 플레이 방식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먹이사슬 구조를 활용한 던전의 생태계 환경 조성이다. 플레이어는 파괴신이 되어 땅을 파서 던전을 만들고, 양분이나 마분이 함유된 땅을 파내어 몬스터를 생성한다. 양분과 마분은 꿈틀이끼류와 엘리먼트류의 활동에 의해 땅에 축적되며, 그 함유량에 따라 땅의 레벨이 상승한다. 그리고 땅의 레벨에 따라 굴착 시 출현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달라진다. 또한 특정한 구조로 땅을 파게 되면 마법진이 생성되며, 마법진을 곡괭이로 두들길 경우, 그 존재만으로도 몬스터들을 강화해주거나 용사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진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다.
이러한 몬스터 육성의 목적은 던전을 침입하는 용사들을 격퇴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강한 몬스터가 번식할 수 있도록 부대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또한 이들의 먹이가 되는 몬스터들, 먹이가 되는 몬스터들의 먹이가 되는 몬스터들(?)도 그 씨가 마르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해주어야 한다. 먹이사슬의 최하위종인 꿈틀이끼류와 엘리먼트류는 양분이나 마분을 함유한 땅을 파면 자동적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생산에 있어서 큰 애로사항을 겪는 편은 아니지만 상위 단계에 있는 몬스터들은 이들처럼 바로바로 생성해주는게 힘들기 때문에, 먹이가 되는 하위종 몬스터들이 전멸하지 않도록 신경써서 관리해야 한다.
▲꿈틀이끼를 먹고사는 잘근잘근벌레 |
또한 천적에게는 마냥 약한 하위종들도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는다. ‘기필코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천적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는데, 꿈틀이끼의 성장종인 꿈틀꽃은 천적인 잘근잘근벌레에게 ‘뭉글뭉글한 것’을 날려 공격, 마비시키며, 잘근잘근벌레는 자신의 천적인 도마뱀남의 알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겉보기에 단순하게 느껴지는 먹이사슬의 구조이지만, 실상은 이렇게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하위종의 견제로 인해 상위종의 몬스터를 잃게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용사가 쳐들어오기 전 마왕의 위치를 정해줄 수 있다. 최대한 숨겨놓자. |
번식은 계획적으로!
그렇다고 해서 마냥 피라미드 먹이사슬 구조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or2’의 세계는 용사 일행들과의 치열한 전투경험의 누적, 혹은 천적들의 수가 너무 과도하거나 포식종의 수가 적거나 하는 등의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면 돌연변이를 통해 이상종이나 거대종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변이에 성공하면 이후 해당 종의 번식은 변이된 개체로 이루어지며,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이전에 비해 높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 마비, 독, 수면 등의 특수한 능력이 추가되기도 한다.
▲처한 환경에 따라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
▲돌연변이 신호가 왔구나~ 왔어~ |
만만한 그래픽! 만만치 않은 난이도!
‘or2’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8비트 게임기가 득세하던 시절에 많이 봤던, 도트 스타일이 강조된 2D그래픽이다. 여기에 전반적으로 코믹한 연출과 구성이 겹쳐져, 얼핏 보기에는 가볍게 한 판 플레이 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로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직접 조작하고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의 진행이 플레이어의 계획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때가 많다.
▲횃불 하나로 던전을 왕창 지져주고 계신다. (※실제 횃불의 효과는 아닙니다.) |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스토리 모드로 돌격하면, 얼마 진행하지 못하고 용사에게 포박되어 질질 끌려나가는 마왕의 모습을 생각보다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난이도에 비해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곡괭이를 이용한 각종 파괴행위(땅, 몬스터, 용사들이 설치한 함정)와 R버튼을 눌러 사용하는 지진 정도로 간단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플레이어가 파괴신으로 불리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난이도가 때문에 게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을 위해 튜토리얼 개념인 트레이닝 모드가 존재한다. 또한 트레이닝 모드 안에는 기본적인 조작법 안내뿐만 아니라 도전과제 형식의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챌린지 모드도 즐길 수 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익혀보자 |
또한 조작법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스토리 모드나 챌린지 모드에서는 생각처럼 전개가 잘 안되어 고민인 플레이어들은 마왕의 방 모드로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다. 땅의 양분과 마분의 양을 결정하고, 몬스터의 종류를 결정해서 던전을 생성, 이런저런 연습으로 던전 구성의 감을 잡거나 몬스터들의 다양한 돌연변이 과정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좋을 대로 구성해서 연습해보자. |
가벼워 보이는 게임 분위기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난이도, 그러면서도 특별히 복잡한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 점이 ‘or2’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패러디로 똘똘 뭉친 센스를 느껴보자.
앞서 말했던 것처럼 ‘or2’는 ‘던전키퍼’에서 나왔던 던전 구성 요소를 재해석했지만, 게임의 전체적인 시나리오는 ‘드래곤퀘스트’를 중심으로 한 각종 게임, 애니메이션들의 패러디와 개그 요소가 집결되어 있다. 한글화도 충실하게 되어있어 그냥 O버튼 연타나 X버튼을 눌러 마왕의 대사를 대충 넘기는 것 보다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or2’의 재미 중 하나다.
또한 게임 도감에 나와있는 각종 마물들의 설정들 또한 이런저런 패러디로 뭉쳐 있다. 이러한 패러디들 중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관한 것들이 많아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재미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
▲얘가 ‘미라…어쩌고’ |
▲얘네들이 ‘리오…어쩌고’라고 불리는 애들. 전부 '몬스터헌터'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용들이다. |
그리고 패러디를 알지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개그 코드가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라이트유저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딱히 끌리는 게임이 없어 출퇴근길에 PSP를 PMP로 사용하고 있는 유저들이라면 이 게임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