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주만이다!(메달 오브 아너: 퍼시픽 어설트)
2004.01.25 20:49게임메카 윤주홍
▶ 영화 「진주만」 |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군사작전의 전술적 측면에서 2차대전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에 하나로 손꼽힌 사건이다. 오로지 함대로만 결사항전의지를 불사른 일본군의 막무가내식 군사사상과 정비공창, 연료탱크와 같은 후방시설물을 파괴하지 못했다는 전략의 부재로 미국은 곧바로 반격의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지만 만약 앞서 언급한 내용이 제대로 수행됐다면 역사는 상당히 비극적인 스토리로 전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일본은 6개월 만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 더 이상의 점령지 확대를 이루지 못하고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찌됐든 ‘진주만(Pearl Harbor)’이라고 불리었던 미태평양함대 사령부 공격작전은 태평양전쟁으로 발발한 이후 소설이나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산업의 소재로 쓰여 왔고 게임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태평양전쟁의 비극이 게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
90년대 2차대전형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의 표준을 제시한 ‘태평양의 에이스들’을 시초로 쓰여진 게임에서의 진주만은 그 이후 일부 매니아들에게만 환영받아왔던 군사시뮬레이션게임의 단골메뉴로 등장해오다가 배틀필드 1942에 이르러 게이머들에게 상당히 친숙한 소재가 됐다. 비록 엄청난 희생자가 뒤따른 전쟁이지만 비극의 강도가 클수록 엔터테인먼트사업으로서의 성공가능성은 더욱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 밀리터리붐을 일으킨 라이언일병구하기가 그랬고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지금 폭발적인 흥행가두를 달리고 있는 실미도 또한 철저한 상업영화라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어쨌든 스웨덴의 작은 개발사 하나가 만들어낸 배틀필드1942의 성공에 EA가 고무된 것만은 사실이다. 기존의 액션게임에서 찾기 힘들었던 대규모 멀티플레이라는 흥미요소를 극대화시킨 배틀필드1942의 성공은 콧대 높은 EA로 하여금 스웨덴의 디지털일루전과 장기유통계약을 맺는 성과를 이끌어내고 한 몸에 악평을 얼싸안았던 메달 오브 아너: 브레이크쓰루 제작팀이 눈을 뒤집고 신작개발에 열을 올리게 만드는 시너지효과를 창출한 것이다.
메달 오브 아너 2
EA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메달 오브 아너의 신작은 단순히 줄기차게 출시되어 온 확장팩이나
비디오게임용으로 따로 제작된 버전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이번 작품은 엔진을
비롯 게임의 디자인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개발되고 있는 메달 오브 아너의 후속작이
분명하며 희뿌연 날씨와 흙탕물이 넘치는 유럽전선에서 벗어나 태평양의 타남보고
섬을 중심으로 한 적도지방의 뜨거운 열대를 주 무대로 삼고 있다(비디오게임용으로
제작된 라이징 선이 태평양전쟁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버전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 이번 작품은 일본의 진주만 폭격작전 이후의 이야기를 영화와 같은 전개방식으로 일궈내고 있다. 이러한 전개방식은 정교한 스크립트(짜여진 극본처럼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이는 인공지능과 연출방식)로 짜여진 전작의 장점을 계승한 것이긴 하지만 싱글플레이 위주의 플레이방식을 보여줬던 전작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여러 군데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시도의 선두에는 마치 배틀필드 1942를 연상시키는 듯 광대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멀티플레이 중심의 맵디자인 방식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 게이머는 요충지를 확보할 때마다 해당지점에서 스폰 되는 아군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확보된 요충지의 숫자가 많을수록 전투에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배틀필드 1942 스타일의 플레이방식을 선보여줄 예정이다. 장애물처리나 기갑부대의 공격을 위해 투입되는 공병, 박격포 공격을 용이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정찰병, 아군 치료를 위한 위생병 등 분명하게 구분된 직업이 등장한다는 점도 리턴 투 캐슬울펜슈타인이나 배틀필드 1942의 그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정도의 조악한 수준을 보여준 배틀필드 1942의 싱글플레이를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메달 오브 아너의 컨셉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그 중심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합군 중위 ‘마이크 포웰’의 이야기를 다뤘던 얼라이드 어썰트, 101공수여단 소속의 ‘잭 반스’ 병장으로 분했던 스피어헤드, ‘존 베이커’ 중사의 독일군 축출작전을 다룬 브레이크쓰루에 이르기까지 메달 오브 아너의 모든 시리즈는 한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틱한 전개가 핵심으로 작용해왔다.
메달 오브 아너: 퍼시픽어썰트과 이러한 전작들에서 차별성을 띄고 있다는 점은 여러명의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중화기를 담당하는 뉴저지 출신의 프랭키, 위생병 제임스 설리번, 저격수 윌리게인스 등 이들은 모두 훈련소에서부터 게임엔딩에 이르기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로 등장한다. 이들에게 부여되는 인간적인 면은 정형화된 캐릭터를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전작에서 월등히 발전한 모습이다.
이들은 물론 그래픽처리능력의 기술적인 발전에 따라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띄고 있는 모습이다. 공개된 스크린샷에서도 알 수 있듯 빛의 밝기에 따라 동공의 크기까지 변화하는 표현능력에서부터 똑같은 얼굴의 캐릭터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살아숨쉬는 캐릭터’의 창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표정이 살아숨쉬는 캐릭터 역시 변화의 핵심이다 |
게이머의 판단에 따라 진행방식이 여러갈래로 갈릴 수 있다는 점 역시 전작과의 차별성을 더하는 부분이다. 가령 게이머가 이끄는 매복조를 이용해 코앞으로 지나가는 일본군에게 공격을 가할 것인가 아닌가는 순전히 게이머의 판단에 맡겨진 일이다. 이들을 그냥 보낸 후에 비어있는 일본군 기지를 공격할 수도, 아니면 정면대결을 펼치다가 분대원의 희생을 늘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런 변수는 모두 게이머의 냉철한 판단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무엇보다 철저한 스케쥴 관리로 유명한 EA로 하여금 메달 오브 아너: 퍼시픽 어썰트의 출시일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보다 현실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물리역학의 구현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게임플레이 경험담이라든가 영상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품의 물리엔진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퍼시픽 어썰트에서 구현하려는 물리역학은 최근 많은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하프라이프 2’에 못지 않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각의 캐릭터가 갖추고 있는 군장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오프젝트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이러한 현실적인 물리역학의 구현에 한층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이 작품에서 캐릭터가 쓴 헤드셋에서부터 헬멧, 소총, X반도, 야삽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오프젝트는 단순히 텍스처로 표현된 것이 아닌, 살아 숨쉬는 물체로 표현됐다. 캐릭터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터졌을 때 모든 물체가 따로 나가떨어지는 점을 비롯 소총을 버팀목 삼아 일어나는 캐릭터의 동작, 폭격 방향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넘어지는 야자수까지 게임 내의 모든 물체는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다.
어쨌든 메달 오브 아너의 재미와 배틀필드 1942 스타일의 멀티플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기 위해 고분분투 중인 제작진들의 노고는 정작 게임이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진주만, 싱가폴, 과달카날, 이오지마 섬까지 실제 전장의 무대를 직접 답사하고 당시 모든 고증자료를 샅샅이 뒤지는 제작진의 이런 노력은 남중국해를 향해 전진하는 이번 신작의 성공가능성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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