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란투리스모 4 프롤로그 발매가 갖는 의미
2004.01.19 13:20게임메카 송찬용
지난 15일, ‘그란투리스모 4 프롤로그’가 한글화를 거쳐 국내에 발매되었다.
당초 발표보다 엄청나게 볼륨이 커져버려 발매가 늦어진 그란투리스모 4(이하 GT4). 계속되는 발매연기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주고 있는 팬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프롤로그판이 먼저 나온다는 컨셉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제작을 위해서는 본편의 제작과 별개의 작업이 필요해진다. 즉, 본편의 발매일이 프롤로그판의 개발 때문에 더욱 뒤로 연기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크리에이터이자 GT4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야마우치 카즈노리 씨에게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2003 도쿄게임쇼에서 야마우치 씨를 만나 어떤 이유로 GT4 프롤로그를 만들게 되었는지 물어보았을 때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곤도라를 놓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그란투리스모도 벌써 네 번째를 맞고 있습니다. 유저들의 기대와 기술도 높아졌죠. 그들의 실력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번 ‘GT4’는 크게 진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만 200만명 이상의 팬을 지닌 그란투리스모. 준 레이서급의 숙련된 팬 200만명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내용면에서도 구극에 가까운 진화가 요구된다. 이를 추구한 결과 수록되는 차종 데이터가 500종 이상, 코스도 50개를 넘는 엄청난 볼륨이 되었다. 이것들 모두가 시리즈 최고의 그래픽에 의해 현실에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니…. 마치 자동차 관련 역사 박물관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이대로 진화를 계속하면 한 번 뒤쳐져버린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숙련자만을 위한 작품이 되어버립니다”. 아! 그제서야 곤도라 운운한 얘기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롤플레잉 게임을 첫 작품부터 빠짐없이 즐겨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중간에 몇 작품 놓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는 시리즈 중간부터 시작해 진화된 시스템에 익숙해지기까지 고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야마우치 씨는 그런 사람들을 “곤도라에 늦게 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게임의 진화는 아주 빠르다. 작품에 공감하고 재밌게 즐긴 팬을 만족시키기 위해 크리에이터는 속편을 내놓는다. 이건 팬에게 있어 기쁜일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게임의 복잡화를 유발하고 시리즈 또는 그 장르 자체의 쇠퇴를 초래한다. 이런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란투리스모도 그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게임을 고도로 진화시킬 자신이 있기 때문에 야마우치 씨는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팬을 위해 곤도라를 갈아탈 역을 만들자”.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그란투리스모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크리에이터로서 정말 멋진 결단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일본 게임업계에서는 ‘소재고갈’이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새로운 기획이 나오지 않게 때문에 밀리언셀러가 줄어드는 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야마우치 씨는 그런 불안을 일소에 부친다.
“게임의 소재고갈,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술의 진화에는 참 무서운 점이 있죠. 가상세계가 가진 잠재력은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야마우치 씨는 이렇게 단언했다. 그 예로 든 것이 GT4의 샘플을 실제 레이서에게 플레이시켰을 때의 얘기였다.
처음에는 곤혹스러워하며 좌충우돌했던 레이서. 하지만 점점 주행에 익숙해지면서 코스 선택부터 브레이킹 타이밍까지 실제 주행과 완전히 똑같이 게임 플레이를 했다는 얘기였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리얼리티. 당연하겠지만 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에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까지 만드느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마우치 씨는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가 가진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자체가 즐겁지 않습니까? 굳이 표현하지만 그란투리스모는 댄스와 같죠. 자동차를 조작한다. 상황에 따라 반응한다. 그 동작 자체가 즐겁다. 댄스는 음악에 반응해서 몸을 움직입니다. 그것 자체가 쾌감이죠. 즐거움의 본질은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란투리스모는 툴로서의 자리를 만드는 걸 하나의 컨셉으로 삼아왔다. 리얼한 자리를 만드는 것. 플레이어가 그 세계에 있는 것 자체를 즐겁다고 느낄 수만 있는 테마라면 그 소재는 굳이 자동차가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예를 들어 배, 비행기 아니 굳이 운전할 필요가 없어도 좋다. 댄스, 스포츠, 더 나아가 사람의 움직임과 관련된 모슨 것. 이것들 모두가 최신 기술에 의해 모니터 상에 표현됨으로써 새로운 게임의 모티브가 된다. 그렇다. 현실 세계에는 즐거운 소재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다시 말해 게임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가능성 역시 무한하죠. 그래서 저는 게임의 미래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웃는 야마우치 씨를 보고 절로 숙연해짐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 특별히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티브가 있냐는 필자의 질문에 “지금은 아직 자동차의 재미를 극한까지 추구할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그란투리스모를 계속해서 만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RPG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야마우치 씨는 대답했다. 그란투리스모 4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선보일지 기대된다.
▲ 그란투리스모 시리즈의 이미지 컬러인 흰색. 프롤로그의 발매와 함께 세라믹 화이트 사양의 PS2도 출시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발매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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