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내려 앉은 도시: 1장 사달메리크의 사도(1화)
2004.02.27 17:31우부카타 토우
레론 엘라이 16세
달빛 속에서 어두운 산길을 마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밤길을 알아볼 수 없는 말을 이런 속도로 달리게 하다니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젠장, 젠장. 우리 성이 그렇게 간단하게 함락되다니"
좌석에 앉아있던 기사가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목소리가 사라졌다. 도로위에 뭔가 빛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기사가 검에 손을 대었지만 본래부터 검으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서 빛이 올라오더니 투명한 수많은 손으로 변해 그것들이 질주하는 마차의 이곳저곳을 붙잡자 갑자기 마차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슬로우>! 스펠 컬드인가…! 젠장 셉터가 이런 곳까지…"
당황하면서 빛의 손을 검으로 잘라냈지만 손들이 땅에서 계속 쏟아 나오더니 결국엔 말의 발을 붙잡고 마차를 완전히 정지 시켜버리고 말았다.
말이 공포에 질려 날뛰는 것을 기사가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을때.
"얌전히 짐을 내놓고 가라.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검은 법의를 머리에서부터 걸치고 있는 노인이 한명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검은셉터> 인가…!"
기사가 검을 손에 들고 좌석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노인이 후드안에서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상대가 셉터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려고 하는거냐. 기사라는건 참 상대하기 힘든 족속들이란 말야"
"닥쳐라. 위대한 석판의 힘을 악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도들아. 무슨 원한이 있어서 우리 공국을 침범하는거냐"
"원한 따위는 없어…그저 마나를 모으기 위해서 그대들의 땅과 그리고 생명이 필요한 것 뿐이지"
기사가 그말에 온몸을 떨었다.
"네이놈!"
기사가 검을 휘두르자 노인은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가거라 "머포크" 들아!"
그러자 노인의 손에 들려있던 석판이 열리며 빛과 함께 온몸이 비늘로 덮혀있는 두발달린 괴물들이 나타났다. 그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이 단숨에 기사의 검을 되받아 쳤다. 그리고 기사의 갑옷을 종이조각처럼 찢어버리자 기사는 상처입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마차쪽으로 물러섰다.
"이럴수가…이럴수가…"
기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머포크> 는 셉터가 사용할 수 있는 힘중에서는 꽤 레벨이 낮은 녀석들이지. 이것 조차 너희들 기사들은 손도 못대지 않은가…이것참 재밌군. 이 재미를 맛보는 것 만으로도 너희들 나라 따위 한두개 멸망시킬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노인이 나지막하게 웃었다. 어두우면서도 음침한 웃음소리였다.
기사가 이를 갈면서
"결국 이걸로 끝인가…"
"그래 놀랐느냐?"
"내 힘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구나…미안하지만 그쪽에 맏길수 밖에 없겠네""그래…너 따위가 내힘에 상대라도 할 수 있겠냐"
"전쟁터에서 죽어간 우리 주군을 대신해서 자네에게 부탁하겠네. 제발 우리들의 보물을 지켜주게나"
"…?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냐 기사라는 녀석들은 정말 귀찮은 족속들 이라니까…"
"그래 그래"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라면서 노인이 얼굴을 들었다.
"그런말은 나라가 망하기 전에 했어야지…"
목소리는 마차의 짐칸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노인이 눈을 크게뜨며.
"<머포크>들아 짐칸을 노려라!"
그 노인의 목소리를 가로막듯이 높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불태워 버려라 <드래곤플라이>!"
순간 강렬한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짐칸의 문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갑자기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불기둥 속에서 인간의 팔뚝만한 거대한 잠자리처럼 생긴 크리쳐가 3마리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마치 탄환처럼 불꽃의 곤충들이 일제히 불꽃을 내뿜었다.
그러자<머포크>들이 불꽃에 휩싸여 온몸에 구멍이 나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공국의 셉터가 아직 남아 있었던가? 전부 다 죽인줄 알았것만"
당황하면서 노인이 새로운 컬드를 손에 들었다. 하지만 불꽃의 곤충들은 노인의 동작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뛰어 들더니 노인의 팔과 어깨, 가슴을 향해 불꽃의 탄환을 i다.
단숨에 직격을 받은 노인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쓰러진 노인의 몸에서 기분나쁜 소리를 내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 끔찍한 모습에 기사는 할말을 잊었다.
"할아버지. 아직 연기력이 모자란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마차의 짐칸에서 내려온 것은 한명의 소년이었다.
은백색에 가까운 백금처럼 빛나는 머리가 턱주변까지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약간 감긴듯한 눈은 달빛에 비쳐 각도에 따라서는 왠지 모르게 붉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옅은 붉은색의 법의를 입고 어깨에 걸친 망토 밑에서 소년은 양손을 법의의 가슴언저리에 있는 주머니에 대고 있었다.
소년이 슬쩍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자.
불꽃의 곤충들이 본래 컬드로 돌아가더니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손으로 들어왔다.
"어짜피 금방 일어설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리?"
야옹, 하고 대답한 것은 소년의 어깨에 앉아있던 작은 검은 고양이 였다.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면서 기다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시험삼아서 한발 더 쏴볼까. 그리?"
검은 고양이는 목에서 아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야옹 하고 대답했다.
기사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고양이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공국에 이 소년이 나타났을때 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던 것이다. 야옹이라던가 니야옹 이라고 밖에 대답하지 않는 고양이에게 가만히 말을 거는 소년을 기사와 동료들은 처음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년이 가만히 왼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왼손에는 한 장의 석판이 들려있었고 그것이 푸른 달빛을 가만히 반사시키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이 마치 내팽개치듯 석판을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폭발적인 마나가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무서운 속도로 던져진 석판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석판이 소년의 마력에 의해서 작렬하는 불꽃의 색깔을 띄기 시작했다.
소년의 은발머리도 커다란 눈동자도 불꽃처럼 새빨게 지더니 마치 맹렬하게 타오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이 눈을 부릅뜨자 소년이 내는것이라고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목소리가 입에서 쏟아졌다.
"레론 엘라이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먹어 치워버려라 <헬하운드>!"
주문과 동시에 소년의 손이 내려가 쓰러진 노인을 향해서 맹렬한 기세로 석판을 내던졌다.
작렬하는 석판이 공중에서 빛에 휩싸이더니 그곳에 숨겨져 있던 크리쳐가 나타났다.
거기에서 뛰쳐나온 것은 시커먼 커다란 개였다. 무서운 포효를 짖으면서 공중을 뛰더니 새빨간 입을 벌쩍 열고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놀랍게도 그 입안은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차 있었다.
헬하운드가 무섭게 짖으면서 쓰러진 노인에게 달려든 순간.
"<타워 실드>!"
노인이 소리치더니 무섭게 빠른속도로 일어서서 뒤로 물러섯다.
그러자 노인과 헬하운드 사이에 커다란 철판으로된 방패가 나타나고 굉장한 소리가 나더니 헬하운드가 공중에 나타난 방패를 물어 뜯는 것이 아닌가. 입에서는 시뻘건 용암이 침처럼 떨어지고 그것이 물어뜯겨진 방패와 지면에 떨어져 타올랐다. 다시보니 그 이빨도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기사가 숨을 죽이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쓰러져있는 상대에게 그리 간단하게도 저런 크리쳐를 내보내다니, 적 셉터에게 절대 지지않을 정도의 비정함 이었다.
일어선 노인이 낮은 소리로 으르렁 거리고 있는 헬하운드에게
"이런 <드래곤 플라이>를 다시한번 부르는가 했더니…이런 괴물을 부를 줄이야"
질렸다는 듯이 흘깃 소년을 바라보았다.소년은 비아냥 거리듯이 노인을 바라보며.
"역시 엉터리 연기지. 그리?"
야옹 하면서 고양이가 울었다. 노인은 후드 속에서 미간을 찡그리며.
"애야…넌 대체 뭐하는 녀석이냐"
소년 레론은 아무런 표정도 짖지 않은 무덤덤한 얼굴로
"<사달메리크>의 사도"
가만히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이 입술을 찡그리더니
"호오…"
"알고있구나"
"저기에서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보다는 잘알고 있지. 아무래도 우리들을 방해하고 다니는 셉터 집단에서 온 것 같구나"
"본래 목적은 좀더 복잡한거지만 말야"
레론이 휙하고 손을 흔들자 그손에 컬드 한 장이 들려져 있었다.
"뭐 그런건 됐고 <드래곤 플라이>"
그 손에 작렬하는 불꽃이 나타나자 소년은 그것을 노인을 향해서 던졌다.
기사도 노인도 놀란나머지 소년이 무었을 했는지 알수 없었다. 그만큼 무작정 하는 듯한 공격이었다. 그러자 불꽃의 곤충 한 마리가 공중에 나타나더니 노인에게 불꽃의 탄환을 쐈다.
노인이 당황해서 몸을 돌려 옆으로 뛰어 도망쳤다. 그러자 조금전까지 노인이 있던 곳에 불꽃의 탄환이 날아들어 나무들을 꽤뚫었다.
"이이이이런, 이놈 <킹 토터스여> 내놈을 지키거라"
노인이 손에서 새로운 석판을 꺼내 거대한 바위같은 등딱지를 가진 거북이가 나타나자
"지원 하거라 <배틀액스> !"
거의 동시에 레론도 또 소리쳤다.
왼손의 석판이 열리더니 빛이되어 불꽃의 곤충에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불꽃의 곤충이 쏘는 불꽃이 갑자기 커지더니 거대한 도끼처럼 변해 거북이의 등딱지를 단숨에 부숴버렸다.
거북이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쓰러지자 그 커다랗던 등딱지가 불꽃에 타올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리고 바로 형태를 잃어버리 더니 석판 모양으로 돌아왔다. 노인이 다시 새로운 석판을 들더니
"꼬마야 너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공격하는 것 아니냐. 네 마나가 고갈되는게 무섭지도 않느냐"
"별로. <필라 프레임>"
동시에 새로운 컬드가 열리더니 마차를 휩싸듯이 강렬한 불기둥이 타올라 주변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적은 불태우지만 같은편은 불태우지 않는 마나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불꽃이었다.
기사와 말이 비명을 질럿지만 불꽃의 벽이 마차를 보호했다.
"이쪽에는 이제 들어오지 않는편이 좋을걸"
소년이 말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에 반사되어 불어 재끼는 열풍속에서 옷을 고쳐입으면서 소년은 차가운 표정인체로 서 있었다.
"으윽…꼬마 주제에"
노인이 이를 갈며 소년을 노려보더니 손에 석판을 들었다.
"나오거라 <자이언트 아메바>!"
그러자 물컹거리는 녹색으로 빛나는 점액상태의 물체가 노인의 발밑에 나타나더니
"어떠냐 이 크리쳐에게 불은 안통하지!"
노인이 웃으려는 찰나
"<매직볼트>"
곧바로 레론의 손에서 빛의 화살이 들려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노인의 행동을 처음부터 읽고 있었다는 듯한 선제공격이었다. 녹색의 점액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노인의 발밑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검은 개가 새빨갛게 타오르는 입을 열고 노인에게 달려 들려고 했다.
"계속 할래?"
레론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선 상태로 몇 번이고 공격을 해댔지만 숨소리 하나 거칠어 지질 않았다. 검은개를 녹색의 점액으로 견제하면서 노인이 신음소리를 냈다.
"네이놈 거의 불속성 침략계의 힘만 가지고 있잖아. 폭탄같은 꼬마로구먼"
"그래 <러스트>"
레론의 손바닥이 반짝 빛났다. 그러더니 노란 공기가 퍼지더니 녹색의 점액 반대편에서 숨어있던 노인이 비명을 질럿다. 그 손에 들고 있던 석판들중 몇장에 갑자기 녹이스는 것이 아닌가. 몇일간은 석판을 사용할수 없도록 하는 스펠 이었다.
"무, 무슨짓을 하는거냐"
"당하기전에 하는거야. 그렇게 안하면 당하니까. 그렇지 그리?"
진지한 눈으로 어깨에 있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자 야옹하며 고양이가 울었다.
노인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며 분노에 떨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는 것이 아닌가.
"굉장한 꼬마구나! 어떠냐 우리 밑에 들어오지 않으련. 너정도의 실력이라면 어떤 지위도 마음껏 고를수 있을거야 자 어띠니?"
"시끄러. 아무것도 안하면 이쪽부터 간다 <필라 프레임>!"
이번에는 노인의 등쪽에서 불기둥이 솟아 올랐다. 앞뒤를 불에 휩싸인체 오른쪽에는 검은 개가 달려드는게 아닌가.
"전혀 말이 안통하는 꼬마로군"
노인이 점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론은 그 노인의 왼쪽으로 돌아서서.
"얌전하게 붙잡혀주면 감사하겠는걸 <바인드>!"
손에서 빛의 오라가 뛰쳐나와 노인을 휘감는 것처럼 보인순간
"<사달메리크>의 레론…이름은 기억해두마 <블랙 아웃>!"
노인이 날렵히 컬드를 내던지자 순식간에 어둠이 퍼지더니 불꽃에서 나오는 빛과 달빛을 삼켰다.
"아…"
하고 레론이 말하는 순간 노인의 모습이 어둠속에 사라져버렸다.
"놓쳐 버린건가…. 다들 돌아와"
레론이 주머니에서 양손을 꺼내 머리위로 올렸다. 그러지 불기둥도 불꽃의 곤충도 검은개도 모두 본래 석판의 모습으로 돌아가 레론의 손안으로 돌아왔다.
팟 하고 석판을 모두 집어 또 양손을 법의 주머니속으로 집어 넣었다.
냉철한 소년의 얼굴에는 그 손이 다시 밖으로 나올 때는 석판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무언으로 말하는 것 같은 묘한 박력이 있었다.
"더, 덕분에 살았구나. 고…고맙네"
기사가 아직도 놀라면서 레론에게 말을 걸었다.
레론은 어깨를 움찔하더니 좌석에 앉아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땀이 나더니 무릅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힘을 마구써서 완전히 피로가 몰려온 것이었다.
적과 만났을 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상한것도 아니었다 그저 약한 모습을 보이질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적이 나타난다면 피로한 모습은 보여주지도 않고 다시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감정이 어딘가 사라져 버린듯한 그 모습에.
"왠만한 기사를 능가하는 훌륭한 전투였네…"
기사가 감동받았다는 듯이 말했다. 레론의 볼을 검은 고양이가 낼름하고 핥았다. 레론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적은 물리치신건가요…"
가냘픈 목소리가 짐칸 안쪽에서 들려왔다. 레론과 기사가 돌아보자 짐칸에서 공포에 질린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소녀야말로 기사가 말하는 공국의 『보물』인 것이었다.
"예. 이 셉터가 <검은셉터>를 훌륭하게 퇴치해 주셨습니다"
기사가 예의바르게 대답하자 소녀는 가만히 끄덕였다.
"아바마마는 어디에 계신가요. 그리고 성사람들은…"
"그, 그게…"
"죽었어"
가만히 레론이 달을 바라본채로 대답했다.
기사가 깜짝 놀라고 소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 졌다. 하지만 레론은 어느쪽에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소녀를 바라보더니.
"성에 있던 왕족은 모두 죽었어. 살아남은건 너 혼자야"
아주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이봐. 공주님에게 무슨소릴"
"숨켜봤자 어떻게 되는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부들부들 떠는 소녀에게 레론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예…예"
소녀가 끄덕였다, 레론이 기사를 바라보며 그것봐라는 듯이 턱을 끄덕였다. 거기에,
"안 울어?"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소녀가 깜짝 놀랐다. 기사가 아연실색했다. 이런 무례하고 예의없는 짓은 들어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그마한 비명을 닮은 오열이 올라왔다. 어쩔줄을 몰라하는 기사에게 레론은 심각하게.
"많이 울면 그만큼 빨리 나을수 있을거야"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그리?"
소년의 어깨에서 야옹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잠온다는 듯한 목소리 였다
이 소년은 역시 어딘가 머리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 기사도 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달빛 속에서 소녀의 울음소리는 길게 울려퍼졌다.
하늘높이 솟아오른 산들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궁전
그 한쪽의 거대한 공간에 레론은 검은 고양이를 어깨에 얻은채로 들어왔다.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조차 왠만해서는 오질않는 깍아지른 듯한 바위에 둘러쌓인 궁전이지만 <플라이> 컬드를 사용하면 밑에서부터 단숨에 날아올수 있기 때문에 의외로 간단하게 올수 있는 것이다. 단 컨디션이 나쁠때에는 바위 한가운데에 착지해서 꽤 고생해서 올라오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성이 있었다.
레론은 의외로 쉽게 올라왔지만 뒤에 따라온 사람은 꽤 고생한 것 같아 보였다.
"이거참 고생했네. 남쪽절벽까지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렸잖아. 정말 오기 힘든 곳이라니까"
"예전에는 동쪽 강에 떨어졌었지. 제퓨로스는 운도 없구나"
무덤덤하게 말하는 레론에게 이 사람은 비아냥거리듯이 부리같은 입을 찡그렸다.
"쳇, 너가 처음에 이곳을 겨우겨우 올라왔을때는 곧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힘들어 했으면서 정말 참 잘도 컷구나. 스승님한테 감사해야지. 레론아"
"스승님? 누가?"
"누구긴 누구야 이 외팔의 귀공자 제퓨로스님이시지. <플라이>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준게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은혜를 잊어버리다니 이런 발칙한 제자가 다있나"
인물 이라고는 하지만 제퓨로스는 등에 놀랍게도 한쌍의 날개가 돋아 있었다. 얼굴도 매처럼 생긴 유익인종(有翼人種) 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른쪽 팔이 없었다. 어떤 셉터와의 싸움에서 오른팔을 잃어버렸는지 레론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른다.
"제자가 된 기억은 안나는데 그렇지 그리?"
야옹 하고 고양이가 하품으로 대답했다.
"너 말야. 하나하나 고양이를 통하지 않으면 대화도 못하는거냐. 4년전에는 컬드를 사용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 면서 엥엥 울던 꼬마가 누군데?"
제퓨로스의 왼손이 레론의 머리칼을 휘저었다. 말도 하는 행동도 난폭했지만 묘하게 애정이 담겨있는 목소리와 눈빛을 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제퓨로스를 봤을대는 무슨 크리처인줄 알았어"
"바보, 내가 보기에는 너쪽이 훨씬 석판에서 튀어나온 녀석처럼 보인다니까"
"예를 들면 어떤것?"
"그렇지…털이 없는 <예티> 랄까. 음 내가 생각해도 적절한 예로군"
"흐응"
"난 어떠냐. 어떤 크리쳐하고 닯았냐? 역시 <와이번> 같은거야?"
"음…<코카트리스>"
"코카…라면, 닭아냐. 내 이 잘생긴 얼굴을 좀더 잘 봐보라고"
"잘생겼다고 해도…새잖아"
"새가 아냐. 긍지높은 바람의 민족. 파드라니까"
그때 후훗 하며 웃는 소리가 공간에 퍼졌다.
갑자기 창에서 비춰지던 달빛이 사라지고 주변이 깊은 어둠이 둘러싸였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이 아니었다. 투명하게 무수한 별이 펼쳐진 어둠이었다. 사방이 갑자기 밤하늘로 변했지만 레론과 제퓨로스는 전혀 놀라질 않았다.
물론 레론이 처음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에는 상당히 놀랐었지만
"두사람 모두 상당히 사이가 좋으신 것 같군요. 보기좋습니다"
어둠속에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에선가 온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없던 공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갑자기 레론과 제퓨로스가 몸을 가다듬었다.
"사명을 수행하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말한사람은 허공에 앉아있는 한명의 소녀였다.
아니. 레론하고 비교하자면 어린애일지도 모른다. 새하얀 얼굴에 하얀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그 머리칼 처럼 하얀 법의의 무릅에 얻혀진 가느다란 양손이 또 새하얗고 보드라워 보였다. 입술만이 가만히 붉은 빛을 띄고 옅은 호박색을 한 눈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예. 아즈마님이 명하신대로 그 공국에 지원하러 갔습니다만 시기가 늦어 <검은셉터>의 침략을 받아 공국은 벌써 괴멸된 상태였습니다"
깍듯이 제퓨로스가 대답했다. 상세한 내용은 레론도 모르지만 제퓨로스는 본래는 군인이었던 모양으로 그래서인지 보고하는 말투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옆에서 레론은 재미없다는 듯이 발을 놀리자,
"레론"
소녀가 불렀다. 레론은 당황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공국의 공주님이 당신이 구해주신것에 대해 감사해 하더군요"
레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마차에 실려있던 공국의 "보물" 인 공주님에게 뭔가 잘해준 기억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계속 울던 그 애는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자,
"그분도 셉터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그분의 희망에 따라서는 <사달메리크>의 일원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거 큰일이군요"
가만히 레론은 그렇게 대답했다. 레론 자신도 나라가 망해 이곳에 왔을때부터 피가나도록 노력해서 <사달메리크>의 일원이 된것이었다.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그리"
"그렇지 그리, 라니 이 바보가"
제퓨로스가 레론의 머리를 쳤다.
"아프잖아"
"너 <사달메리크>의 일원 이잖아. 자신을 부정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별로…무리해서 될 필요는 없잖아. 그렇지?"
"너 아즈마님 앞에서 그런소릴 하기냐?"
"그렇군요. 레론이 말하는대로 입니다"
소녀가 웃었다. 제퓨로스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예를들어 언제나 뒤로 물러서는 것을 강요받는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폭풍』을 피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또 예지가?"
제퓨로스가 심각한 말투로 말하자 소녀가 끄덕였다.
"확실하게 『폭풍』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또 큰 것이 되겠지요…"
"나라가 망할 정도 인가요"
그렇게 물어본 것은 레론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그 손을 밤하늘이 비치는 탁자위에 올렸다.
그러자 밤하늘의 한편에 도시가 보였다. 커다란 신전을 중심으로 세워진 도시같았다. 바람의 여신 테레스를 나타내는 문장이 도시 이곳 저곳에서 보였다.
"바람의 신전 라한"
소녀 아즈마가 말했다.
"이제곧 <검은셉터>가 영지를 지배하러 올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지금까지 없던 강한 전쟁의 『폭풍』이 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이곳도 이대로는 망해버리고 말겠지요."
"라한…확실히 , <왕국> 직속 신전이었지. 이것참 <왕궁> 의 입김이 닿는 곳이라면 신전사람들에게 예지에 대해서 말해도 믿어주질 않겠군요. 그 왕국 때도 결국 망할때가 되어서야 도와줄수 있었으니까요.
제퓨로스의 말에 어즈마가 끄덕였다. 레론도 또 입술을 삐쭉였다.
예지
그것이 아즈마라고 하는 소녀가 가진 힘으로 <사달메리크> 라고 불리는 셉터집단의 행동원리이기도 했다. 소녀가 말하는 예지 그중에서도 소녀가 『폭풍』 이라고 할때 그것은 셉터끼리의 특히 <검은셉터>가 일으키는 나라를 멸망 시킬 정도로 강력한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멸망과 전란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검은셉터>에 대항하는 것이 <사달메리크>의 사명이기도 했다.
그렇다. 레론은 이 산에 있는 궁전에 도착했을때 그렇게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달메리크>를 제대로 받아주는 공국이나 도시는 거의 없었다.
예전에 멸망한 레론 엘라이의 공국도 실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검은셉터>에 대한 예지를 <사달메리크>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엘라이 공국은 <사달메리크>를 신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하다가 망한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아즈마의 예지나 <사달메리크>의 사도인 셉터가 각공국이나 도시에 들어갈수 없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즈마와 <사달메리크>가 어디에서 파생했는가에 관계가 있었다.
“아즈마”는 예지의 힘을 가진 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이라고 레론은 들은적이 있었다. 지금 레론의 눈앞에 있는 소녀도 또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아즈마”로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즈마” 그것은 예전 이 세계를 어둠에 떨어뜨린 <검은셉터>중 한명의 이름인 것이었다.
아주 먼 옜날 세상사람들을 지배하며 질서를 지키는 <왕국>과 <검은셉터> 의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이 싸움 속에서 “아즈마”는 무슨이유 에서인지 <검은셉터> 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왕국>과는 다른 입장에서 세계를 지키기 위해 <사달메리크>를 결성한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부터 200년 전의 이야기 였다.
지금 레론의 눈앞에 있는 소녀 아즈마는 초대 “아즈마” 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8대째 라고한다. 지금의 이 소녀가 “아즈마” 가 되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레론도 제퓨로스도 아무것도 모른다.
레론이 처음에 이 아즈마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아서 생각해보면 아즈마의 모습은 전혀 변하질 않았다. 아즈마가 된 사람은 성장을 멈추고 나이도 먹지 않지만 대신에 굉장이 빨리 죽는다고 한다. 그렇게 까지 해서 왜 아즈마는 아즈마로서 있으려고 하는걸까. 레론은 이해 할 수 없었다. 또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 산에 있는 궁전에 모이는 자들은 다들 예외없이 뭔가 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었다.
그래서 암연의 룰로서 서로의 사정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무엇도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단 한명 모든 것을 꽤뚫어 볼 수 있는 아즈마를 제외하고는.
<사달메리크>라고 하는 집단이 결성된 이유를 아는것도 아즈마 뿐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즈마가 중심에 있기에 <사달메리크> 에 모이는 셉터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채로 강한 결속과 사명감을 가질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아즈마가 갑자기 탁자에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을 봐주십시오"
그러자 허공의 한편에 빛이 비치더니 그곳에 한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나이는 레론과 같은 정도 일까. 부드럽게 파도를 그리는 듯한 갈색머리를한 소녀였다. 동그랗게 뜬 머리칼과 같은 색의 눈에 시원해 보이는 표정이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셉터 입니까? 이 아가씨가 무슨 일이라도?
제퓨로스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옆에서 레론도 또 다시 눈을 가늘게 떳다.
아즈마가 이렇게 특정한 인물을 보여주는 것은 별로 흔한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주변에 『폭풍』 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인간으로서는 뭐라고 해야할지…귀여운 여자애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겁니까?"
"<검은셉터> 인가?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인가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그녀를 지키는 것이 『폭풍』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 될것입니다"
아즈마와 제퓨로스가 이야기 하는 도중 레론은 약간 멍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적의 모습이 보인다면 모르겠지만 싸울 상대가 확실하지 않는 이상 레론은 언제나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 대신에 자세한 정보를 물어보는 것은 언제나 제퓨로스였다. 아즈마는 자주 제퓨로스와 레론을 같이 편성해서 일을 시켰었다. 그만큼 제퓨로스와 레론의 상성이 좋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즈마밖에 모르는 무언가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레론은 뭔가 확실해지지 않는한은 아무런 반응도 표정도 짓질 않았다.
그저 제퓨로스가 질문하고 아즈마가 대답하는 것을 듣기만 하는 것이었다.
"『폭풍』이 일어나기 까지 남은 기간은?"
"1개월 정도 그사이에 몇가지 "조짐"이 보일 것입니다. 최후의"조짐"이 지나면 『폭풍』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단…""단?"
"그녀야 말로 "길잡이" 가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적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잡이"가…"
깜짝하고 레론이 반응 했다. 멍하게 허공을 떠돌던 시선이 갑자기 집중되더니.
"적인가요?"
불쑥 물었다. 이 목소리가 소년답지 않게 어딘가 쉰듯한 소리가 났다.
아즈마가 조용히 끄덕였이자 소년의 눈 안에 뭔가가 빛났다.
"저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검은셉터> 의 본거지를 그녀가 밝혀줄지도 모릅니다. 그때야 말로 우리들이 싸워야할 진정한 상대가 나타날 것입니다"
"저희 나라를 멸망시킨 녀석…말씀입인가요?"
레론이 가만히 물었다.
레론의 고국은 아직 거대한 빙벽 속에 갇혀있었다. 아직도 한나라의 영토로부터 마나를 빨아들이며 성도 숲도 모두 뒤덮을 만한 정도의 마력을 가진 얼음을 부수기 위해서는 적 셉터를 찾아서 쓰러뜨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레론은 <사달메리크> 의 사도가 된것이었다. 아즈마는 모든 <사달메리크>의 사도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싸움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제퓨로스도 언젠가 아즈마의 예지로 그의 오른팔을 빼앗은 자와 싸우게 될것이라고 예전에 무심코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무슨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아즈마야 말로 모두들의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 였다. 그 아즈마가 이어서 말했다.
"당신들이 각각 『폭풍』을 넘기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이것은 그녀자신 조차도 눈치채지 않게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가 <사달메리크>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조짐』은 크게 흔들리게 될것입니다"
갑자기 제퓨로스가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론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겁니까…그런 신도 하기 힘든 것을 이 꼬마와 저만 으로 해내라고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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