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내려 앉은 도시: 2장 별이 내리는 도시(1화)
2004.03.29 09:41우부카타 토우
회색빛 세계로 내려온 것
“하하하! 고양이 신도라고. 이거 정말 잘 어울리는 걸. 고양이 신도라고 하하하하~”
제퓨로스가 몸이 벽에 부딪힐 정도로 크게 웃었다. 레론은 빵을 먹으면서.
“그렇게 재미있냐”
조금 삐졌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 신도라니, 고양이 신도라고, 정말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 않니? 그리”
빵을 조금 뜯어서 어깨에 앉아있는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는 그저 빵을 먹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 건 말 건 상관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네가 웃긴 걸”
“흐응”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레론이 대답했다.
“뭐……하지만, 발테스 신을 믿고 있다는 것은 평화로운 시민에게 확실히 조금 자극이 강할지도 모르겠는 걸”
겨우 웃음을 그친 제퓨로스는 날개처럼 생긴 왼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악마 같은 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고신대계를 배우면 본래는 제대로 된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야…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울까. 파괴와 창조. 멸망과 생산의 흐름을 정하는 신… 파괴에도 창조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존재인데…”
제퓨로스는 갑자기 심각해지더니.
“이것 참, 너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깊구나!”
“흐응”
“흐응 이라니 너가 말을 꺼냈잖아. 셉터가 짊어지는 파괴와 창조, 양쪽의 복잡한 숙명에 대하여 천천히 고심해서 대화로 설명해야 될 것 같은 문제인데 이건”
“그런 건 컬드를 써서 싸울 때마다 느낄 수 있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레론에게 제퓨로스도 어깨를 움찔 해보였다.
“뭐, 그것도 그렇지”
“그것보다 용케도 학당에 들어갔구나”
레론이 말했다. 지금 학당은 쉬는 시간 - 점심시간 이었다. 지금 둘이 있는 곳은 학당 옆에 서있는 종탑으로. 학생으로 인정받은 첫날 오전 수업을 바로 끝난 점심시간이었다.
수업자체는 별다른 것 없이 전에 레론이 성에서 배운 것과 똑같았었다.
신학, 역사, 듣고 쓰기, 컬드에 대한 지식 등 이었다.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가정교사들과의 일대일 강의가 아닌 여러 명의 학생들과 함께 배운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같은 나이의 소년소녀들과 함께 있어본 적은 없었던 레론은 익숙지 않은 학당의 풍경에 충격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자 아무런 경계심 없이 자연스레 말을 걸어오는 학생들에게는 그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레론은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듯이 교실에서 뛰쳐나왔다. 주위의 토지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기운을 조사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학당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갑자기 머리 위에서 제퓨로스가 말을 걸어왔던 것이었다.
레론은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제퓨로스가 학당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당황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제퓨로스는 어느 샌가 학당에 있는 종을 울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달메리크>에서 가짜 임명장이 내려와서 말야 그걸 가지고 시청에 가서 이 일을 아무문제 없이 맡게 된 것이지”
그런 이유에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 제퓨로스가 잠시 빙긋 웃더니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 그 애하고 사이 좋아 보이던데”
“그런가? 좀 상대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리”
아티가 화냈을 때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레론이 중얼거렸다. 아티는 아무래도 레론의 일 거수 일 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수업 중에도 잠깐 눈이 마주치면 쏘아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멍하게 있지 말고 선생님 말에 집중해야지”
“전학 첫날부터 기합이 빠진 거 아냐”
등 수업 사이사이에 심하게 꾸짖는 것이었다. 레론은 왠지 상대가 그렇게 까지 자신의 행동에 주의를 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게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가 또 아티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화를 부르는 것이었다.
“어째서 화를 내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곤란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는 레론에게 제퓨로스가 웃어대며
“인간치고는 귀여운 편에 속하는 애 아냐.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해라”
“귀여운지 어쩐지 잘 모르겠는 걸”
“흠 고양이나 컬드에서 나오는 크리처 같은 것만 상대하고 있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제퓨로스 정도뿐이니까 말이야”
“바보. 내 여성 취향은 특별하다고. 뭐…그것보다 그 애에게서 힘을 느낄 수는 있었니?”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는 제퓨로스에게 레론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혹시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발휘시키질 못하고 있어. 그 학당에 있는 애들 모두 그렇지 않아?”
“뭐 신전의 수행을 끝냈다고 하더라도 거의 셉터가 되지 못한 채로 시청의 중역이 된다든가 이런저런 좋은 직장에 취직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더니 제퓨로스는 가로 누워 창 밖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셉터의 수행도 출세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건가. 평화로운 세상이구만…”
“<검은 셉터>는 벌써 들어왔겠지…”
“마을 주변을 좀 살펴보고 왔는데…몇 곳은 이상하게 토지의 속성이 흔들리고 있었어. 셉터의 짓이라면…이제 막 지배 단계에 들어온 것이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통행료>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통행료라는 것은 셉터 사이의 은어였다. 토지를 자신의 마나로 지배하는 것으로 그 공간에 있는 인간이나 동물로부터 마력을 조금씩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공간을 지배해서 만물로부터 마력을 빼앗아 자신의 마력을 늘려 단숨에 공격 하는 것이 셉터의 기본전술 이었다.
“정신 차렸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힘은 상대의 것이 되어있겠지…. 그러고 보니 이 학당에 있는 애들이 더 무서운 걸 셉터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높은 마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잖아 혹시 학생들의 마력이 전부 빼앗겨 적의 것이 된다면 확실히 큰일인데다가 무엇보다 적 셉터가 <통행료>를 받기 시작한다 하더라도…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고 말이야”
이것이 바로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곧바로 처리해버리고 싶어도 아무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레론 일행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적으로 오인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사달메리크>의 사도는 그렇게 몇 번이고 지키려고 하는 자들로부터 반대로 위험분자로 오인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검은 셉터>의 침략을 받은 적도 많았었다.
갑자기 제퓨로스가 누운 채로 툭하고 레론의 등을 때렸다.
“너는 그 애를 지키는 것만 생각하면 되. 잘 해보라고”
“하지만…밤에는 어쩌지. 내가 잠을 안 잘 수도 없고 말이야?”
그 때였다. 제퓨로스가 반짝 하고 눈을 빛내더니 묘하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떠올렸다.
“뭐 <사달메리크> 에서도 이번만은 여러 가지로 도와준다고 하니까 말이야. 지금까지는 정공법만으로 해서 먼저 당하기만 했었지만, 이제부터는 음모와 정보장악이 이기는 시대라고”
“…정보장악?”
“이런…슬슬 종을 울려야 될 시간이군. 자 학생은 빨리 학교로 돌아가야지”
제퓨로스가 일어서서 종탑으로 올라갔다. 레론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탑을 내려갔다.
저녁종이 울리고 슬슬 학동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곳이 신학을 가르치는 강당. 그리고 저기가 역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는 강당이야 알았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다가는 곧바로 지휘봉을 휘두르며 올 것 같은 딱딱한 말투로 말하는 아티에게 레론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고양이가 냐옹하고 잠이 온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고양이 신도다!”
“이런 고양이 신도하고 철의 여인이 같이 있잖아”
걸어가고 있던 학생들이 웃는 것을 아티가 지휘봉을 휘두르며 위협했다.
“시끄러워. 어서 돌아가서 예습이라도 해. 아 정말 너 때문이라니까”
“…뭐가?”
“사람을 부끄럽게 해놓고 뭐가 라니? 자신이 뭘 했는지 알아?”
뭐가 어쨌다는 거야…라고 되물으려고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아티는 화를 내고 있는 상태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고 사명을 수행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어쨌든 사과할게”
“…어쨌든 이라고?”
“응…미안. 그냥 사과할게. 그렇지 그리”
“나한테 사과하든가 고양이한테 이야기 하던가 확실히 해”
하지만 그저 멍하게 목을 끄덕이는 레론에게 아티는 어깨까 쳐질 뿐이었다.이런 레론에게만 화를 내면 낼수록 자신이 바보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아티도 그 이상 레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닫고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 학당을 안내하면서 돌기 시작했다.
“슬슬 <별>의 주기도 가까워지는데…어째서 내가 성악대의 연습도 빼먹고 이런 녀석을 안내하고 있는 걸까…”
“신전장님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아. 수고가 많아!”
레론은 심각하게 대답한 셈이었지만 그 말은 아티 기분을 더욱 상하게 했다.
“그런데 <별> 의 주기라니…무슨 소리야?”
레론이 물어보자 아티가 잘 뻗은 눈썹을 곧 세우며
“<별>이 내려오는 거야. 너 그런 것도 모르고 라한의 신전에 온 거야?”
“별이 내려와…?”“너 진짜 여기에 뭐 하러 온 거야?”
강의 중에도 고양이와 함께 천정을 멍하게 바라본 채로 모두들에게 바보취급을 당하고 있는 레론을 비웃으려고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론은 정말로 동요한 듯이.
“진짜…라니. 뭐…수행을 하려고…”
그 수상한 태도에 아티가 멈칫 발을 멈추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너…실은 정말로 발테스 신의 신도로 마을을 노리는 <검은셉터> 인거 아냐?”
휙하고 지휘봉으로 가르키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검은셉터>와 싸우고 있다는 비밀의 셉터 집단인가?”
레론은 아연실색했다.
그렇게 까지 갑자기 정체가 탄로나서 사명 실패의 위험이 다가올 줄이야 상상조차 하질 못했던 것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떻게 넘길까? 뱃속까지 벌벌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러자 아티가 갑자기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 바보 같은 얼굴하지마. 농담이야. 농담. <검은 셉터> 라니 비밀의 셉터 집단 이라니 그냥 소문이야. 이런 평화로운 마을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잖아”
갑자기 무릎 밑에서부터 탈력감이 올라왔다.
도대체. 이 애는 뭘까?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속에서 이 때 처음으로 레론의 속에서 아티에 대한 감정 같은 것이 생겼다.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회색빛 새계에 갑자기 색깔을 가진 것이 뛰어 들어온 듯한 느낌 이었다.
“…별난 녀석이라니까”
눈썹을 찌푸리며 불쑥 중얼 거렸다. 그리고 그리를 보지도 않은 채 곧바로 아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네가 백번은 이상하다!”
정말로 화난 것처럼 대답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아티를 레론이 당황하면서 i아갔다.
“그럼 난 성악대의 연습이 있으니까. 조금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별>의 주기가 이제 곧 시작 돼. 축제에는 우리들이 연주하게 되니까 기대해. 아니면 우리 성악대에 들어올래?”
레론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사명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들어올 거라면 각오 단단히 해. 내 지휘는 꽤 엄하거든”
지휘봉을 휘두르는 아티에게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레론은 악기의 연주 하는 게 아직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볼게 그것보다 <별> 이라니…”
“그것정도 자기가 조사해. 정말 뭘 하려고 여기 온 거니?”
“그렇게 화낼 건 없잖아…”
대충 넘기면서 레론은 강당 쪽으로 사라져 가는 아티를 바라보았다.
주위에 묘한 기운이 돌지 않는지 조사한 다음 어쨌든 자신의 기숙사로 가기로 했다.
이 마을에는 아침에 막 도착했을 뿐으로 아직 마을의 상태도 자기 자신의 생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운을 조사해보자 제퓨로스가 아직 종탑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사명은 제퓨로스에게 맡기고 <사달메리크>에서 온 서류를 길잡이 삼아 레론은 마을로 내려갔다.
“정말 그 녀석 이상하다니까. 고양이하고만 이야기 하고 내 쪽은 한번도 제대로 안 봤다니까. 그 녀석 덕분에 나까지 이상한 눈초리로 보여지고 말이야 정말 최악이야. 최악”
“흐응. 아티가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 대해서 즐겁게 생각하다니 별일이네”
“레미…너 내가 즐겁게 보여?”
“응”
아티가 피곤하다는 듯이 악보에 얼굴을 파묻었다.
레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건반에 손가락을 올렸다. 레미는 훌륭한 솜씨로 연주하면서
“그런 식으로 아티에게 접근할 수 있다니. 레론도 참 재미있다니까!”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아티가 투덜거렸다. 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에 12살 때 시험에서 단 한 명, 12장 째의 컬드를 모두 대답한 천재 아티-영웅의 딸, 예배장, 영광스러운 성악대의 지휘자.
“나나 엔리케도 꽤 무리하고 있는데 말이야…”
레미의 작은 속삭임은 건반을 치는 소리에 파묻혔지만 아티의 귀까지는 닫지 못했다.
“뭐-?”
“아냐. 아티는 말이야 가까워지기 힘든 면이 있어서. 조금정도는 이상하게 보이는 편이 다들 안심할 수 있을 거야”
“…너 언제나 멍하게 있으면서 이상한 곳에서 날카롭게 지적 한다니까”
“에헤헤. 예배장님한테 칭찬 받았네”
“오늘 들은 말 중에서 최고의 칭찬이야. 고마워”
레미가 미소 지었다. 레미는 이 학당에 들어왔을 대부터 아티의 친구였다. 자신이 영웅 다이온의 딸이라는 것을 전혀 말하지 않고 그저 자신과 가까이 지내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자…나도. 힘내볼까”
탁하고 지휘봉으로 악보를 때리면서 아티가 갑자기 일어섰다.
“<별>이 가까워지고 있어. 성가대 바보 녀석들한테 지지 않도록 기합을 넣어야겠어”
이 때 엔리케는 성가대를 대리고 학당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바보처럼 웃고 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아름답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 목소리가 갑자기 줄어들더니.
“뭐 하고 있는 거야 저 녀석? 저기는 백료<白寮>으로 가는 길 아냐”
학교 길을 내려가는 레론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야아, 고양이 신도!”
과연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는 리더인 만큼 굉장히 큰 목소리였다. 밑에 있는 레론이 돌아보자.
“너 그쪽은 <백료> 으로 가는 길이야!”
큰 목소리로 소리치는 엔리케에게 거기까지 목소리로 대답할 자신이 없는 레론이 손을 흔들며 답했다.
“알고 있는 거야 저 녀석. 에이 모르겠다. <백료>는 꽤 무서운 곳인데 말이야”
레론이 가는 것을 엔리케 이외의 다른 성가대 학생들도 어깨를 움츠리며 보았다.
바람의 도시
“흐응…학동들을 위한 숙박시설이구나 그리”
레론이 납득했다는 듯이 백색의 건물을 올려 보았다.
왼쪽 어깨에 고양이를 태우고 오른쪽 어깨에 보따리를 짊어지면서 터벅터벅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자인 노파에게 들어가기 위한 서류를 보여주자.
“음~ 틀림 없구나…제대로 된 서류인데. 흐응. 신전의 인가증까지 가지고 있다니”
노파는 신기하다는 듯이 레론을 훑어보면서 방으로 안내했다.
침대와 책상이 2개씩 놓여져 있었고 하나는 텅 비어있었지만 한쪽은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랑 같이 쓰는 걸까…좀 행동하기 힘들겠는 걸”
같은 방을 쓰는 사람에게 자신이 <사달리크>의 사도인 것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다가 <검은셉터>의 침략으로부터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실전과는 전혀 다른 신경전이 요구된다는 것 정도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고양이를 좋아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그리”
야옹하고 고양이도 동감이라는 듯이 울었다.
레론은 물건을 내려 두더니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책상 위에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책상이 지금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책상인가 생각하고 짚었는데 역시나 틀렸다. 누군가가 쓰고 있는 것 같은 필기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서랍을 닫으려고 했지만 순간 손이 멈췄다.
오래된 종이에 싸여진 것이 레론의 감각에 걸렸던 것이었다.
손이 자연스럽게 그쪽에 있는 책상을 고른 것도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마나다…틀림없어. 셉터가 기록한거야…”
강력한 힘을 가진 셉터가 강한 사념을 넣어 기록한 것은 마력이 남아돌게 마련이었다.
안에서 나타난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그 페이지를 열은 순간 레론은 숨을 들이 쉬었다.
“컬드!”
그것은 컬드의 특징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된 책이었다.
다 읽어보자 아무래도 라한 신전에 전해지고 있는 컬드에 대한 내용 같았다.
게다가 한 장 한 장 마다 <축제에 사용 한다> <시험에 사용 한다> 등 주석이 붙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제 레벨인 사람이 컬드의 관리를 위해서 써놓은 것이 분명하다. 종이의 질을 보아하니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것이 잠시 레론은 뭔가 마음에 걸렸다.
“주기?”
몇 개의 컬드에 연호라든가 월 일 이라든가 “주기” 가 기록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레론은 생각하더니. 결국 책을 닫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았다.
“풍 속성 컬드 뿐이군…거의 다 노멀이야“
그렇게 중얼거렸다. 같은 종류의 컬드가 많이 있는 것을 노멀 이라고 부르며 그 수가 적은 것을 스트레인지. 단 한 장밖에 존재가 확인 되지 않은 것을 엑스트라고 한다.
레론이 전에 잃어버린 <글라디에이터>는 세계에서 몇 장 밖에 존재가 확인 되지 않은 스트레인지에 속하는 컬드 중 하나였다.
책에 있는 컬드는 레론도 본적이 있는 노멀 뿐이었다.
그러자 다른 한쪽에 있는 책상으로 다가가 마을의 지도를 펼쳤다.
“어쨌든 이주변의 속성을 파악 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리”
앞으로 굽혀지는 소년의 어깨에서 고양이가 뛰어내렸다.
야옹하고 울더니 고양이가 책상위에서 둥그렇게 몸을 웅크리는 것을 보고 레론은 학당과 여기 까지 걸어오는 것을 생각해 내면서 지도 이곳저곳에 상세하게 공간의 속성을 쓰기 시작했다.
공간의 속성 이라는 것은 셉터에게 있어서 컬드의 사용할 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토지의 특성이었다.
토지의 성질-즉 4대원소의 움직임 이었다.
땅, 물, 불, 바람 4종류의 원리-그것이 4대원소이다.
그 세계의 모든 물체와 공기 빛에 대한 것 까지 모두 눈에는 보이질 않는 4대 원소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 것이 신학의 기초였다.
그리고 그 4대원소중에서 어떤 원소의 움직임이 강한가에 따라 지 속성. 수 속성. 화 속성. 풍 속성 등 4종류의 속성이 생기는 것이었다. 또, 4대원소의 움직임이 결합되어 어느 속성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를 무속성 이라고 부른다.
모두 합쳐서 5가지 공간의 속성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다.
즉, 4대 원소 중에서 어느 원소가 특히 강한 움직임을 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이해하질 못하면 컬드의 힘은 반감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컬드도 또 한 장 한 장 각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속성 컬드의 힘이 정말로 발휘되는 것은 화속성의 토지에 두었을 때였다.
또, 화속성을 가진 컬드의 힘을 수속성의 토지-늪지나 강에서 발휘시키려고 해도 토지와의 연결이 약해서 그만큼 힘은 억제된 상태로 발휘되질 못한다.
그런 것 뿐만 아니라 어느 속성의 토지에서는 여는 것조차 불가능한 컬드도 있었다.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장 한 장의 컬드가 예전에 세계를 창조한 <컬드셉트>의 파편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신학에서의 설명이었다.
창조의 여신 컬드라가 세계창조를 위해서 준비한 <컬드셉트>는 세계를 만든 후에 산산조각이 나서 세계 곳곳에 파편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런 파편이 컬드가 되어 지금도 창조한 이 세계에 반응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와 세계를 만들어낸 컬드가 올바르게 이어졌을 때, 비로소 세계 창조를 할 때 발휘되는 거대한 힘이 다시 재현되는 것이었다. 그 연결이 바로 공간의 속성인 것이었다.
컬드라고 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토지의 속성에 대한 마나나 그것을 구사하는 자의 마력에 좌우되는 것이었다.
“과연 바람의 여신 테레스를 섬기는 곳인 만큼 풍 속성이 많군”
레론이 중얼거리면서 학당 주위의 토지 속성을 쓰는 것을 끝마쳤다.
풍 속성의 토지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무 속성의 토지였다.
화 속성, 수 속성, 지 속성의 토지는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특히 신전, 학당 그리고 지금 있는 기숙사는 완전히 풍 속성의 토지였다.
과연 바람의 신전을 모시고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레론의 특기는 화 속성의 컬드였다. 화속성의 토지가 적으면 그만큼 불리해진다.
하지만 자신의 특기인 속성과 토지의 속성이 맞지 않을 때의 대처법은 몇 가지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대처법을 사용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퓨로스의 특기가 풍 속성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려할 일은 아니었다.
“적은 어디에서 올까…”
한숨을 쉬면서 가만히 지도를 내려보았다.
다음에 각 토지의 속성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그것은 적 셉터가 침입해 왔다는 증거였다. 곧바로 적의 행동에 대처할 수 있도록 레론은 완전히 일대의 공간상태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겨우 작업을 끝마치고 지도를 접어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생각해보니 밖은 석양이 지고 있었고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픈 걸 그리. 여기는 뭔가 먹을 만한 것을 줄까?”
투덜거리면서 얼굴을 올렸을 때 계단아래에서 뭔가 소동이 난 듯한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학동들이 각각 수업을 끝내고 이 기숙사에 돌아온 것 같았다.
드디어 레론이 있는 방 앞 복도에 인기척이 나더니 갑자기 문이 열렸다.
변함없이 멍하게 있는 레론의 앞에 룸메이트인 듯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가만히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굳은 듯이 움직이질 않았다.
룸메이트의 갈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열려 있었다. 레론은 또 멍한 채로 자신의 생각이 멈춰있다는 것을 느꼈다.
웅성웅성 하고 학동들이 몰려드는 중에 그 방만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가만히 레론의 머릿속에 제퓨로스의 말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사달메리크>의 계획. 음모, 정보장악을 위한 추천장….
“…너무 심한거 아냐”
레론이 투덜거렸다. 그 산령궁전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 아즈마도 다른 셉터들도 실은 자기와 정도로 세상일에는 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방에 들어온 소녀를 지배하고 있던 경직의 주박이 풀렸다.
“…뭐야…”
목 안에서 뭔가 커다란 것이 걸려있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무슨 소릴 하고 싶은지…알만 하겠어”
레론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체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결국 아티는 건물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한 엄청난 비명을 질렀다.
지킨다는 것
“농담 하지 마세요!”
아티가 투덜거렸다. “백료”의 관리자인 노파는 팔짱을 끼더니
“뭐 신전에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이제 늦었으니까 내일이 되어서야 알 수 있겠구나”
여유 있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티가 아연실색하며 뒤에 있는 레론을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실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뿐이야 오늘만 여기서 잘 수 있게 해 주겠어!
단 조금이라도 뭔가 이상한 짓을 했다가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여학생들이 “치한격퇴용” 곤봉과 밧줄을 손에 들더니
“그냥 안 둘거야”
아티의 말이 떨어지자 수많은 날카로운 시선이 레론을 쏘아보았다.
“…응 알았어 그렇지 그리”
야옹 하고 고양이가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멍하게만 있는 레론에게 다들 함께 한숨을 쉴 뿐이었다.
“이 기숙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별난 일이라니까. 그것도 게다가 어째서 내 방에…”
“다른 곳에 빈곳이 없어서 말야”
레론이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아티가 쏘아보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백료> 에 빈방은 없었다. 남자학동들이 잠자는 <창료(蒼寮)> 에도 빈곳이 없는 것 같았다. 방은 있지만 왠지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갑자기 곰팡이가 슬어서 아무 곳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린 몰드>인가”
곰팡이를 닮은 컬드 크리처였다. 방어형으로 그대로 두면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 크리처로 틀림없이 제퓨로스가 한 짓 일 것이다. 레론 조차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무리 세상일에 둔한 레론이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세상이라는 것은 확실히 여러 가지 일이 구분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 학동과 사교, 강의 시간과 쉬는 시간처럼 레론도 또 그것에 열심히 맞추고 있는데
“목적을 위해서라면 세상을 무시해도 된다는 건가 <검은셉터>하고 똑같지 않은가”
자신은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이지 어지럽히러 온 것이 아니었다. 지키기 위한 것을 스스로 부숴 버려가지고는 모든 것이 무의미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의 구분을 지키고 있어서는 미래의 <폭풍>을 막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아즈마가 <폭풍>을 예지했는데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시들이 사라진 것도 그 때문 이었다.
미래라는 것은 세계의 구분이라고 하면 ‘알 수 없는 것’ 이며 그것을 현실의 것으로 받아 사명을 수행하려고 하는 <사달메리크> 쪽이 말하자면 이단인 것이다.
누구도 자신들이 멸망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냥 받아들이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이상한 말을 무슨 근거로 말 하는 건가 반발 하는 것이 보통 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아즈마는 이러한 대책을 꾸민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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