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덕후를 위한 엑스컴으로 스팀에 도전한 '트러블슈터'
2018.03.08 09:44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만화 같은 캐릭터와 끝없는 콘텐츠 연재로 승부하겠다는 '트러블슈터' (사진출처: 스팀)
몇 해 전 국내외로 인디 게임 붐이 일었다. 그러나 이 바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해 차츰 꺼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분량’이었다. 대부분의 인디 게임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분량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몇 시간만 플레이 해도 즐길 거리가 금새 바닥났다. 이에 많은 유저가 차츰 인디 게임 시장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시사하는 점은, 창의성만으로는 훌륭한 게임을 만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순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체험과 재미를 제공하기 힘들다. 어느 정도 분량이 돼야 유저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고, 자신이 게임 구매에 지불한 비용이 합리적으로 쓰였다고 느낀다. 분량은 게임에 대한 만족도를 가늠할 때 확실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오늘 소개하는 댄디라이언은 바로 이러한 ‘분량의 문제’에 집중한 인디 게임 개발업체다. 이들은 인디든 아니든, 시중에 판매되는 게임은 그 값에 상응하는 분량의 재미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댄디라이언 첫 번째 작품 ‘트러블슈터’는 이러한 철학에 따라 다소 특이한 포부를 내세웠다. 바로 유저 요구에 맞춰 끊임 없이 콘텐츠를 확충하는, ‘웹툰 같은 게임’이 되겠다는 것이다.
과연 ‘트러블슈터’가 지향하는 ‘웹툰 같은 게임’은 어떤 뜻일까? 그 의미를 묻기 위해 게임메카는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댄디라이언 사무실에서 김태형 대표를 직접 찾았다.
▲ 인터뷰에 응해준 댄디라이언 김태형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인터뷰에 응해준 댄디라이언 김태형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言: 우선 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김태형: 댄디라이언은 평균 경력 7년차 개발자 여섯 명이 모인 소규모 개발업체다. 우리 모두 2010~2012년 MMORPG ‘그라나도 에스파다’ 라이브 팀으로 만났다. 그런데 라이브 서비스를 오래 하다 보니 자기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강해지더라. 결국 나를 비롯한 두 명이 먼저 나왔고, 한 명씩 더 퇴사해 지금 팀을 이루게 됐다. 첫 작품으로는 스팀 얼리 액세스 중인 '트러블슈터'가 있다.
아, 그리고 사실 댄디라이언이라는 이름에는 별다른 뜻이 없다. 처음 회사를 세울 때 설립자 셋이 모두 동의할 만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 여러 개를 두고 제비를 뽑았는데, 그 중 뽑힌 게 댄디라이언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멋지고 당당한 사자처럼 되자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言: ‘그라나도 에스파다’라면 안정적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장수 게임이다. 굳이 예전 회사를 떠난 이유라도 있는가?
김태형: 대부분의 개발자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지 않나? 그런데 당시 회사가 요구하는 일이 점점 내 꿈과 멀어지고 있었다. 한참 모바일 바람이 불면서 우리도 모바일게임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 됐고, 결국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마침 당시 일하던 동료 중에도 비슷한 뜻을 품은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 명씩 설득해서 팀에 합류시켰다. 가만, 이거 얘기하면 김학규 대표한테 혼날 거 같은데... 여기까지만 이야기 해야겠다.
▲ 가족적인 분위기의 댄디라이언 개발진 (사진: 게임메카 촬영)
言: 흠... 제3자에게 보복 당할 가능성이 있는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제 ‘트러블슈터’를 간단히 설명해달라.
김태형: ‘트러블슈터’는 캐릭터 중심의 군상극(작품 하나에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담기고, 하나하나가 주연, 조연 구분 없이 모두 부각되는 방식) RPG다. 줄거리는 미래 거대도시 ‘발할라’를 중심으로 주인공 ‘알버스’가 범죄조직 소탕 하청을 맡은 기업 ‘트러블슈터’를 운영해가는 이야기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동료를 모으고, 그들의 개인적인 면모와 사연을 알게 되고,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랑 비슷하지 않나 싶다. 유비가 도원결의하고 세를 쌓아가는.
言: 이야기만 들으면 RPG 같은데 실제 게임 영상은 ‘엑스컴’ 같아 보인다. 스팀 리뷰에도 ‘엑스컴’ 같다는 말이 많던데, 실제로는 어떤가?
김태형: RPG가 맞다. 사실 유저 인터페이스는 ‘엑스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콘텐츠는 ‘엑스컴’보다는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에 가깝다. 고정된 턴 순환이 아닌, 전 턴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계속 순서가 달라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외에도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 전개, 캐릭터 성장 등, 중심 콘텐츠는 대부분 전통적인 RPG 요소들이다.
하지만 인터페이스가 ‘엑스컴’과 너무 비슷해서 그런지 다들 ‘엑스컴’ 짝퉁이라고 하더라. 이 점은 사실 좀 억울하다. 물론 ‘트러블슈터’에서 캐릭터는 매 턴 이동 한 번과 공격 한 번을 할 수 있고,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은폐와 엄폐를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까지 ‘엑스컴’ 짝퉁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조금 서운했다.
▲ 확실히 '엑스컴'을 연상시키는 점이 있는 인터페이스 (사진출처: 스팀)
言: 한 턴에 ‘일반 행동(standard action)’과 ‘이동 행동(move action)’을 한 번씩 하는 것은 고전 TRPG ‘던전 앤 드래곤’부터 전해지는 방식 아닌가? ‘엑스컴’에서 차용했다고 보기는 힘들 듯한데.
김태형: 그렇다. 하지만 ‘엑스컴’ 명성이 워낙 높다 보니 그렇게 비춰지는 것 같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턴 기반 전술 게임 개발자들이 겪는 것 같다. 얼마 전 외신 인터뷰 보니 ‘엑스컴’ 원작자 줄리안 골롭이 만드는 ‘피닉스 포인트’도 짝퉁 소리를 듣더라. 우리에게 ‘엑스컴’은 거의 수문장 같은 게임이다. 어지간히 차별화하지 않으면 짝퉁이 돼 버리니까.
言: 확실히 그럴 법하다. 그렇다면 ‘트러블슈터’는 ‘엑스컴’과 차별화하기 위해 어떤 특징을 내세우고 있나?
김태형: 만화 같은 캐릭터와 스토리다. 해외의 턴 기반 전술 게임들은 대부분 사실적이고 심각한 분위기 아닌가? 하지만 턴 기반 전술 게임으로 만화 같은 콘텐츠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웹툰이나 라이트노벨처럼 기본적으로 가볍되, 적당히 어두운 면도 있는 캐릭터 중심 RPG가 우리 지향점이다. 물론 캐릭터와 스토리도 연재물처럼 계속 추가할 계획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사실적 분위기 게임은 지금도 우리보다 잘 만든 작품이 많다. ‘하드 웨스트’나 ‘섀도우런’ 같은 작품들. 굳이 지금 도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 캐릭터 수집 및 성장 콘텐츠는 RPG에 가깝다고 (사진출처: 댄디라이언 공식 트위터)
言: 대부분의 웹툰이나 라이트노벨은 서사 구조상 끊임 없이 이어지는 연재물이 될 수밖에 없다. 게임에서 연재물처럼 캐릭터와 스토리를 계속 추가하자면 쉽지 않을 텐데?
김태형: 물론이다.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그라나도 에스파다’ 라이브 팀이었으니까. 그리고 매주 꾸준히 공급되는 콘텐츠는 우리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대개의 턴 기반 전술 게임은 패키지고 분량이 한정됐다. 게다가 일부 대작을 제외하면 그 분량이 길지도 않다. 수명을 연장을 위해서는 캐릭터, 스토리, 스테이지를 계속 늘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트러블슈터’의 목표는 가장 많은 스테이지를 지닌 턴 기반 전술 게임이다. 아직은 얼리 액세스 초기라 콘텐츠가 그리 많지 않지만, 매주 업데이트를 통해 분량을 키워갈 생각이다.
言: 콘텐츠를 추가할 때 유저 뜻을 많이 피드백 하는 것 같다. 스팀, 페이스북, 트위터, 거의 모든 창구에서 유저 글에 답변을 하던데.
김태형: 그렇다. 우리가 개발에서 가장 만족을 느끼는 부분은 유저 피드백이다. 우리 게임을 즐겨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사실 제일 뿌듯할 때는 비판적이던 유저가 업데이트 이후 만족 유저로 바뀌는 모습을 볼 때다. 원래는 ‘트러블슈터’ 스팀 페이지 ‘부정적’ 댓글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비판을 정독하고 다음 업데이트 때 하나씩 개선하니 비판하시던 많은 분이 ‘긍정적’으로 댓글을 바꿔 주시더라.
그래서 콘텐츠를 추가할 때 유저들 뜻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신규 캐릭터 추가 시 원화 몇 개를 보여드리고, 그 중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원화를 채택하기도 했다. 사실 초기에는 PvP와 협동전 등 반복성 멀티플레이 콘텐츠를 우선 추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캐릭터와 스토리 추가를 원하는 유저가 더 많았기에, 지금은 캐릭터와 스토리 중심으로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 게임 중간에 나오는 만화 같은 컷신을 통해 스토리가 전개된다 (사진출처: 스팀)
言: 캐릭터가 너무 많아지면 각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기 힘들어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웹툰과 라이트노벨에서 한 번 등장한 캐릭터가 다음에 곧바로 ‘공기화’ 되기도 한다.
김태형: 인지하고 있는 문제다. 캐릭터가 쉽게 소비되는 것은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한 캐릭터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고민 중이다. 지금도 스토리 선택지에서 어떤 대사를 고르는지에 따라 각 캐릭터들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 차이가 이후에도 소소하게 반영되고 있다.
신규 캐릭터도 무작정 자주 추가하는 것은 아니다. 유저들의 요구는 수용하되, 게임 스토리 전개 맥락과 정합성은 지킬 생각이다.
言: 스토리는 어떤가? 꾸준히 이어지는 건 좋지만,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리다고 아쉬워하는 유저들이 있다.
김태형: 사실 가장 힘든 부분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초반에 ‘트러블슈터’ 고유의 명확한 분위기와 서사성을 인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지금까지 나온 분량도 방치하지 않고 계속 개선하겠다.
▲ 연재물처럼 이어지는 캐릭터 간 스토리가 주요 콘텐츠라고 (사진출처: 댄디라이온 공식 트위터)
言: 앞으로 ‘트러블슈터’가 나아갈 방향을 짧게 말해준다면?
김태형: ‘엑스컴’과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라는 명작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하나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면 만족한다. 그 외에는 웹툰처럼 계속되는 콘텐츠를 제공해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言: 다소 진부한 질문일지 모르겠다. 인디 게임 개발업체로서의 포부가 있다면 한 마디 해달라.
김태형: 인디 게임 개발에서 ‘독창성’만 중시되는 게 아쉽다. 여러 부담을 짊어지고 회사를 떠나 인디 게임 개발을 하는 이유는, 내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소비자에게 부족한 상품을 팔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우리는 독창성보다도 신뢰성으로 인정 받는 개발업체가 되고 싶다. 그래서 피드백을 중시하는 거고, 매주 콘텐츠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인디니까 응원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나도 댄디라이언을 소개할 때 인디 게임 개발업체가 아닌, 소규모 게임 개발업체라고 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만화 풍 콘텐츠와 턴 기발 전술 장르를 결합한 ‘트러블슈터’가 상업적으로 성과를 거둘 거라는 확신을 갖고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런 만큼 프로 정신을 갖고 계속 콘텐츠를 추가해갈 생각이다. 웹툰 연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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