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메인퀘스트, 여운보다 갈증남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
2018.05.21 17:24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 대표 이미지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관련기사]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발더스 게이트'를 빼다 박은 게임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판타지 기반 깊이 있는 스토리는 물론,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높은 자유도, 게임 중 일시 정지를 시켜놓고 전술을 점검할 수 있는 독특한 전투 시스템 등. 가히 현대적 RPG 표준인 '발더스 게이트'의 정신적 후계자라 할 만한 게임이었다.
후속작인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도 마찬가지다. 얽히고 설킨 세계관과 NPC와 다채로운 상호작용 및 스토리 선택지 등, 복잡한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특히, 신규 유저도 게임 전반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주요 단어를 주석으로 설명해 준다거나, 스토리 텔링에 적합한 대사 배분 등에선 플레이어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 게임은 모든 유저를 사로잡을 만큼 치밀하지 못했다. 새롭게 추가된 해상전은 게임 전반적인 진행과 상관없이 따로 노는 것만 같았고, 메인 퀘스트는 너무 짧아 여운보다는 갈증을 남겼다.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와 구성을 지녔지만, 그 구성이 세밀하게 얽히지 못해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는 특유의 매력적인 스토리를 세밀하게 전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방대한 스케일과 끊임없는 탐험
게임은 전작의 결말과 이어서 시작한다. 전편 오드누아의 무한성에서 본 적 있던 거대 영혼석 조각상에 빛과 구원의 신 '에오타스'가 깃든다. '에오타스'는 전작에서 불의 여신 '마그란'의 사제들에 의해 죽었다고 나왔으나, 이번 작품에선 그 뜻을 직접 행하기 위해 거대 조각상 '에이드라'를 매개로 부활하게 된다.
▲ 커도 지나치게 큰 석상에 빙의한 '에오타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에오타스'에 의해 도시는 파괴되고 사람들의 영혼도 길을 잃는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에오타스' 부활 덕분에 많은 사람이 죽고, 영혼을 직접 인도할 수 있는 '주시자'였던 주인공 또한 영혼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전작에서 주시자의 능력을 버리고 자유의 몸이 된 주인공은 죽음의 신 '베라스'의 회유와 자신의 의지로 다시 한번 주시자가 된다. 유저는 주인공이 돼 '에오타스'의 진의를 확인하고 그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료를 모아 '데드파이어 군도'를 돌아다녀야 한다.
▲ 죽음의 여신 '베라스'의 꼬임(?!)에 넘어가 다시 살아나는 주인공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종족부터 성격, 직업 등 설정해야할 것이 많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스케일 면에선 전작을 압도한다. 한 개 대륙 곳곳을 탐험해야 했던 1편과 달리 데드파이어 군도를 항해하며 크고 작은 섬을 탐험하게 된다. 사원 하나만 덜렁 놓여있는 섬도 있는 반면, 초반엔 무슨 수를 써도 처치할 수 없는 거대 보스가 지키는 섬도 있다. 항해 중간중간 여러 섬을 들러 탐험하는 것만으로 몇 시간은 족히 즐길 수 있을 만큼 맵이 방대하다.
지역별 식생 표현도 자연스러운 편이다. 군락이 있는 큰 섬 어딘가에는 반드시 약탈자가 있으며, 섬 깊은 곳에 위치한 숲에는 반인 반수가 보물을 지키고 있다. 유저는 자신의 능력치에 맞는 선택지에 따라 전투 없이 아이템만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큰 대미지를 입은 상태에서 강한 괴물들과 맞서야 할 수도 있다.
▲ '데드파이어 군도' 맵 전경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 해변에선 산호를 구하고 동굴에선 박쥐가 나오는 등 식생이 잘 구현돼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버려진 폐허'나 '옛 격전지'는 맵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끝을 알 수 없는 퀘스트, 다채로운 해결 방법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는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큰 스토리 기둥이 있으며, 그 기둥을 지탱해주는 부가 스토리가 존재한다. 작게는 동료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크게는 '에오타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가 게임 속 서브퀘스트로 존재한다. 그 밖에도 한 지역 폭군을 암살한다던가, 과부 부탁을 들어주는 등 서브퀘스트 분량이 굉장히 많다.
서브퀘스트를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독재자 한 명을 처리하는데 있어 지역 주민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해적들을 동료로 만들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악기에 폭탄을 설치에 술에 취한 적이 연주하게 만들어 암살하는 것도 가능하며, 모든 적을 학살하거나 평범하게 잠입해서 암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 폭군을 척살하기 위해 암습을 노릴 수도 있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정면에서 적들을 물리칠 수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대놓고 습격하면 마을사람 전원과 전투를 치러야 하기도 (사진: 게임메카 촬영)
퀘스트 만큼 콘텐츠도 다양하다. 특히 '항해'나 '명성'과 같은 시스템은 유저로 하여금 게임 중간중간에 파고들 부분을 제공해준다. 고용한 선원 중 부상당한 인원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해상전 승리를 통해 사기를 높여야 한다. 사기나 먹을 것이 떨어지면 반란이 일어난다. 또한 마을 사람들 부탁을 잘 듣고 적을 회유해 '명성'을 쌓아야 동료들과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 명성은 추후 엔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넋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정밀하게 구성된 전투 시스템도 인상 깊다. 파티원 HP 관리와 마법을 위해서 각각의 캐릭터를 세심하게 조작하다 보면 굉장한 수준의 판단력과 컨트롤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스템 자체가 복잡해 마구잡이 싸움은 무조건 피해야 하며, 아군 포지셔닝이 승패를 가를 정도로 컨트롤에 신경써야 한다. 특히,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아 길목이나 문턱을 활용한 효율적인 전술을 지속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 안전한 항해를 위해선 선원을 고용하고 물자를 넉넉히 공급해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명성은 게임 진행에도 영향을 주는 요소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길목과 문턱을 활용해 효율적인 전술을 구상해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깊이는 잃고 의문점은 남아버린 스토리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시리즈 장점은 방대하면서도 깊이 있는 스토리에 있다. 그러나 본작에서 온전히 스토리를 즐기기 위해선 수많은 서브퀘스트를 통해 흩어져 있는 이야기 조각을 짜 맞춰야 한다. 이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위해선 전체 줄거리가 별도 배경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만큼 탄탄하거나 다수의 서브 퀘스트가 메인 퀘스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는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 스토리 텔링에 심혈을 기울인 게임이지만 그 스토리를 즐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우선 메인퀘스트 분량이 지나치게 작다. 실제로 전체 군도를 탐험할 필요 없이 세 개 주요 지역만 꼼꼼히 탐사하면 제대로 된 엔딩을 감상할 수 있다. 게임에 능통한 유저가 작정하고 메인퀘스트만 클리어하면 전체 플레이 타임이 분 단위로 감소할 정도다. 반대로 서브퀘스트 분량은 지나치게 많아 메인퀘스트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일 지경이다.
메인퀘스트와 서브퀘스트 간 유기성도 떨어진다. 서브퀘스트를 해결한다고 해서 메인퀘스트를 클리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퀘스트는 더러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배경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직접 배경을 이해하는 것에 지친 플레이어는 각종 의문점을 가진 채 결말을 접하게 되고 게임의 강점인 깊이 있는 스토리를 체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메인퀘스트 분량이 적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서브퀘스트를 해결한다고 메인퀘스트 클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결국 유저는 큰 의문을 가진 채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 밖에도 허술하게 구성된 몇몇 시스템이 아쉬움을 더한다. '항해'를 필두로 한 콘텐츠가 그 예인데, 해당 게임은 '군도'라는 배경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만큼 선상 생활이 메인이다. 그러나 정해진 선원을 모두 구하지 않아도 출항이 가능한 데다가 초반에 얻는 아이템 선에서 적당히 물자만 채워 넣으면 항해에 문제 될 거리는 전혀 없다. 당연히 선상 반란도 일어날 일이 없으며, 어느순간 부터 항해는 관심 밖이 되기 일쑤다.
해상전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전진하거나 정지, 좌현으로 회전, 포탄 발사 등 간단한 명령으로 이뤄지는 해상전은 포탄 물량으로 적선을 찍어누르거나 백병전으로 적을 척살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소모하는 시간과 물자에 비해 보상도 굉장히 적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적선을 피해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상전도 피하게 된다.
▲ 뻔한 명령을 내려가며 포탄으로 적선을 침몰시키거나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백병전을 걸면 해상전은 백전 백승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조금만 더 치밀하게 구성했다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는 분명한 색깔과 개성을 지닌 게임이다. 한 권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동시에 나만의 판타지를 써 내려 간다는 느낌을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 속 중요한 장면은 오래된 그림책을 보는 듯이 생생하게 펼쳐지며,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선택은 모험 일지에 낱낱이 기록된다. 게임의 모든 시스템을 철저히 즐기거나 '발더스 게이트' 느낌의 RPG에 익숙한 마니아라면 본작은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모든 게이머를 만족시키긴 힘들 것 같다. 전체 줄거리가 부실한 데다 그 줄거리를 보충해줄 다른 주변 이야기 마저 약해 서양식 RPG에 익숙지 않은 유저를 끌어들일 매력이 전무하다. 스토리나 시스템 등을 약간만 더 치밀하게 구성했다면 판타지에 관심이 없거나 RPG를 좋아하지 않는 유저도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 여운보다는 갈증이 남는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