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야알못' 못지않은 '겜알못' 의원들의 국감
2018.10.19 16:15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지난 10일, 문체부 국감에서 선동열 감독에게 질의 중인 손혜원 의원 (사진출처: 영상회의록 갈무리)
올해 국정감사에는 의외의 복병이 속속 튀어나왔다. 느닷없이 웬 고양이가 나오는가 하면 선동열, 백종원 등 주목도 높은 인물이 증인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슈 몰이에는 성공했으나 여론은 싸늘하다. 동물 학대를 지적하기 위해 고양이를 데려왔다지만 낯선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고양이를 국정감사 한가운데 데려다 놓는 것 역시 학대라는 지적이 잇달았다.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을 지적하기 위해 선동열 감독을 증인으로 신청한 두 의원 역시 야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듯한 질문을 이어가며 언론 및 야구팬으로부터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자)’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선동열 감독을 상대로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다면 질문을 하는 의원 역시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지난 18일에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향한 지적과 질문이 쇄도했다. 문제는 앞서 소개한 야구와 마찬가지로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자)’ 의원에 대해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현역 게이머 수준의 이해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게임 자체에 대한 내용을 차치하고 ‘게임 정책’만 따로 빼서 보더라도 그렇다.
가장 눈길을 끈 내용은 ‘리니지’가 월 결제 한도를 우회하고 있다고 지적한 염동열 의원이다. 국내 온라인게임에는 한 달에 50만 원이라는 제한이 걸려 있다. 그런데 PC방에서 파는 카드나 피규어에 게임머니를 충전할 수 있는 쿠폰을 끼워주는 방식으로 ‘50만 원’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만든다는 것이 염 의원의 지적이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하며 염동열 의원이 제시한 보도 영상에서 게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썼다고 말하는 사람은 ‘리니지’가 아니라 모바일게임 ‘리니지M’ 유저다.
▲ 염동열 의원이 제시한 영상에 나온 사람은 '리니지M' 유저다 (사진출처: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생중계 갈무리)
‘한 달에 50만 원’이라는 결제 한도는 사실상 국내 온라인게임에만 걸려 있다.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와 같은 모바일 오픈마켓은 결제 한도가 없다. 모바일만 없다기보다는 해외 플랫폼이라 국내법이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구조다. 결제 한도를 피하는 꼼수를 지적하는 질문은 타당했으나 예시로 제시한 것이 결제 한도가 없는 모바일게임이다. ‘모바일게임에는 결제 한도가 없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1세대 MMORPG로 알려진 ‘리니지’를 ‘전략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한 것은 덤이다.
아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의원들의 전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하고,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이지만 정교함에서 구멍이 숭숭 났다. 예를 들어 국정감사 현장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지나치게 낮은 확률을 지적하는 조경태 의원의 주장은 게이머들의 공감을 충분히 살만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조경태 의원은 게임위에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관리감독이 허술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게임위에는 ‘확률형 아이템’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 권한을 보장해줄 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위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거나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게임위 역시 정부 기관이기 때문에 법이 마련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법도 없는데 먼저 움직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월권행위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확률형 아이템’을 정부에서 관리하고 싶다면 국회에서 먼저 법을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발의된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안 3종은 아직도 상임위에 잠들어 있다.
스팀과 같은 해외 플랫폼에서 출시된 VR 게임이 심의도 받지 않고 국내 VR방을 통해 서비스 중이라는 점을 지적한 조훈현 의원의 질의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국산 게임만 심의를 받는 ‘역차별’ 이슈를 꺼낸 것은 좋지만 이미 한국에는 작년에 스팀, 페이스북 등 해외 업체에도 게임을 심의할 권한을 줄 수 있는 ‘자율심의’가 시작됐다.
게임위 이재홍 위원장 역시 조훈현 의원의 지적에 “스팀과 같은 국외 게임에서 유통되는 게임이 적절한 등급을 받고 제공될 수 있도록 자체등급분류제도(자율심의)에 포섭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답변했다. 여기서 지적할만한 부분은 작년에 시행된 ‘자율심의’가 뿌리를 내리는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작년에 자율심의에 대한 법이 마련되었는데 정착하는 속도가 왜 이렇게 느린지, 속도를 높일 방안은 없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알맹이 있는 답변을 끌어내기에 더 적절하다.
게임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청신호다. 여기에 의원들의 주장 자체는 타당하다. 하지만 오타가 많은 글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허술해 보이는 것처럼, 주장이 아무리 좋아도 근거에 구멍이 나면 전체가 어그러진다.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결정된다’는 말처럼 국정감사 현장에서 나오는 질의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돈되어 있어야 메시지도 분명하게 전달된다.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과 함께 공개하며 ‘국감 스타’로 떠오른 박용진 의원이 대표 사례다.
오는 29일에는 게임 쪽에서도 주목도 높은 증인이 등장한다. 29일에 열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다. 엔씨소프트를 창업해 20년 넘게 회사를 이끄는 김 대표를 상대로 어떠한 질문이 나오느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이번에야말로 김택진 대표의 의중을 날카롭게 찌르는 질문으로 ‘겜알못’이 아닌 ‘겜잘알(게임을 잘 아는 자)’로 거듭나는 의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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