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노조, 13번의 교섭 끝에 '포괄임금제 폐지'에 도달했다
2019.03.07 16:59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작년에 등장한 게임사 노동조합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올해 1월에는 회사와 노조의 합의 하에 네오플이 포괄임금제 폐지를 비롯한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7일에는 넥슨코리아에서도 노조와 회사가 첫 단체협약에 최종 도장을 찍었다. 이전에도 포괄임금제를 없앤 곳은 있었으나 기존과는 결이 다르다. 노동자가 직접 세운 노조와 회사가 진득한 토론을 이어가며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내용을 두고 회사와 노조가 논의하는 과정은 화목한 대화의 장이 아니다. 노조와 회사가 원하는 것이 각각 다르고,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범위도 차이가 난다. 특히 양쪽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합의점을 찾아내야 되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넥슨 노조와 넥슨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첫 결실을 냈다. 첫 단체협약에 대해 서로가 아쉬운 부분이 있겠으나 ‘이렇게 해봅시다’라는 물꼬를 튼 것이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넥슨 노조와 넥슨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5개월 동안 13번을 만났다. 넥슨 노조 ‘스타팅 포인트’ 배수찬 지회장은 “네오플이 5번, 넥슨코리아가 8번이다. 네오플은 거리가 있어서 한 번에 많은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아침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15시간 동안 교섭한 적도 있다”라고 전했다.
순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찾아낸 접점은?
넥슨 역시 언제나 교섭이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다. 배수찬 지회장은 “갈등도 있고,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때도 있다. 회사와 노동자가 양보를 못해서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솔직하지 못해서 다투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풀어나가는 과정도 있었다”라며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남겨두며 접점을 찾아나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회사와 협의하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 배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폐지 시기였다. 노조에서는 최대한 당기고 싶었고, 회사에서는 시스템 준비 등 사전에 준비할 부분이 있어서 늦추고 싶어했다”라며 “네오플 역시 가장 협의가 어려웠던 점이 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양쪽이 합의한 시기는 올해 8월이다.
협의는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그는 “이번에 협의한 내용 중에는 한 해 영업이익 0.5%를 직원에 인센티브로 배분하기로 한 부분이 있다. 사후가 아니라 사전에 이 정도를 인센티브로 주겠다고 정하는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없던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라고 전했다.
쉽지 않은 과정에서도 회사와 노조가 첫 단체협약 체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접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닌가 싶다. 노동자 역시 단순히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을 어필했다. 포괄임금제가 폐지된다면 노조에서도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는데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라고 전했다.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일을 하고, 회사는 노동자가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준다.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전제를 두고, 서로가 포기 하지 않으며 접점을 찾아나간 것이다. 배수찬 지회장은 “단체협약에 대한 교섭은 노조가 시작하고, 회사가 끝낸다. 노조가 하는 일은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전달하는 것이다. 관건은 이것을 회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끝내느냐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넥슨 사측에서도 노력해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합의한 근로시간협의체도 그 일환이다. 배 지회장은 “사내 모든 팀의 평균 노동시간에 대한 자료를 회사가 노동조합에 제공해주는 것이다. 초과근로가 많은 조직이 있다면 노사가 같이 해결점을 찾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번 주에 일한 시간이 52시간에 근접한 직원을 알려주는 ‘위기 리스트’ 같은 것을 만들고, 이 분들을 따로 만나서 해결책을 찾아보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쉽게 합의한 부분도 있을까? 배 지회장은 '난임휴가 확대'를 꼽았다. 그는 “1년에 유급 하루에서 이틀로 늘고, 반차로도 쓸 수 있게 했다. 원한다면 1년에 4번 반차를 낼 수 있다. 회사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인 것 중 하나가 이것이고, 난임시술을 받는 분에게도 필요하다.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한 달에 여러 번 가야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첫 단체협약은 회사와 노동자의 공동 승리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조는 회사와 싸우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수찬 지회장은 넥슨 노조가 생긴 직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회사와 상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넥슨 노조 명함이다. 도트 디자인으로 만든 명함을 두고 배 지회장은 “넥슨은 역시 도트 아닌가”라며 웃었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이를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 하나는 회사와 직원 모두 같다. 배 지회장은 “이번에 협의한 사전 인센티브도 이런 면이 있다. 인센티브는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사전 인센티브가 보장이 된다면 게임이 성공했을 때 직원들도 진심으로 내 일처럼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약은 앞으로 2년 동안 이어진다. 근로기준법이 바뀐 부분을 반영하기 위해 고치는 것 외에는 수정은 거의 없다. 넥슨이 다른 회사에 매각된다고 해도 말이다. 배수찬 지회장은 “최근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넥슨이 매각되면 단체협약은 어떻게 되느냐다. 정답은 매각이 된다고 해도 단체협약은 유지된다. 집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전에 맺었던 전세계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와 비슷하다”라고 밝혔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중요한 시기에 노사가 의미 있는 결실을 냈다고 볼 수 있다. 배수찬 지회장은 “이번 결과물 자체는 노사의 공동 승리라고 생각한다. 회사에도 손해가 아니라 이익으로 다가올 것이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교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오플과 넥슨코리아 외에 다른 계열사와도 교섭을 이어나가야 한다. 현재 넥슨 노조가 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곳은 네오플, 넥슨코리아, 넥슨지티, 넥슨레드, 띵소프트까지 5곳이다. 배 지회장은 “다른 법인 7곳에는 교섭에 대한 공문도 보내지 못했다. 운영진을 조직하지 못한 곳도 있어서 이것부터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올해 넥슨 노조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핵심은 조직화다. 배 지회장은 “일단 대의원을 구성해야 된다. 대의원은 지역구 국회의원 같은 것이다. 조직마다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전해주고, 결론이 난 것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 보통은 4~50명 당 1명 정도이며, 현재 넥슨 노조 인원으로 보면 30명 정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조직별로 대의원 후보를 정하고, 투표를 바탕으로 대의원을 꾸려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끝이 아닌 시작인 셈이다. 하나씩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는 넥슨 노조가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해나갈지 지켜볼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배수찬 지회장은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어필했다. 그는 “노동조합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 되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 자동차를 사면 자동차 보험에 들듯이 회사에 입사하면 노동조합을 찾는 그런 세상이 오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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