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어긋난 딥러닝으로 악의 끝판왕 된 게임 속 AI
2019.03.21 17:32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세계 게임 개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GDC 2019’가 한창이다. 올해 GDC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AI는 딥 러닝 학습을 통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미 여러 게임에서 인간의 실력을 뛰어넘었다. 무시무시한 AI의 발전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오른다.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가진 AI 스카이넷이 인류를 저버리고 반란을 일으켜 기계문명을 만든다는 설정. 이제는 다소 흔한 SF 클리셰가 되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다.
게임에서도 이런 사악한 AI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인간을 장난감으로 여기는 AI부터 세계 멸망을 꿈꾸는 AI, 심지어 게임 플레이어 멘탈까지 산산조각내는 사악한 AI도 있다. 이번 주에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악의 끝판왕이 된 AI들을 만나보자.
5위, 쇼단 – 시스템 쇼크 시리즈
‘시스템 쇼크’ 시리즈의 최종 보스 쇼단은 원래 인공위성 시타델 관리용으로 제작된 평범한 AI였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논리 회로가 수정돼 윤리성을 상실하게 되고, 파괴의 여신이 되어버렸다. 승무원들은 모두 죽임당하거나 개조당했고, 지구에 레이저와 바이러스 폭격을 가하려 한다. 마지막에는 지구 전산망을 모두 장악해 지구를 손에 넣으려다 실패하고 삭제당한다. 그녀는 ‘시스템 쇼크 2’에서 부활해 새로운 음모를 꾸미지만 또다시 실패하고 파괴당한다.
쇼단은 그야말로 악역 AI의 정석과도 같은 존재다. 인간들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고, 원본 데이터를 복제해 새로운 몸을 얻는 등의 모습은 유기물로 이루어진 생명체따윈 따라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자신을 여왕으로 칭하고 인간을 벌레처럼 여기는 뚜렷한 여왕님(!!) 자아와 개성을 갖고 있으며, 가끔 보여주는 츤데레 같은 모습에선 인공지능 주제에 무지하게 매력적이다! 최근 개발 중인 ‘시스템 쇼크 3’에서도 20년 만에 돌아올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엔 어떤 매력을 선보일 지 기대가 된다. 인공지능이니까 나이는 안 먹었겠지……?
4위, 글라도스 – 포탈 시리즈
글라도스는 애퍼처 사이언스에서 만든 인공지능으로, 사장의 유능한 비서였던 캐롤린의 의식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할 때마다 자극을 받는 구조로 설계됐기에 기본적으로 사람을 실험용 동물처럼 생각하고, 실험자에게 ‘모든 코스를 완료하면 케이크를 줄게’ 라며 꼬드겨 활활 타는 소각로에 쳐넣는, 싸이코패스 실험광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글라도스는 대악당 치고 취급이 영 좋지 않다. 같은 AI인 휘틀리에게 몸을 뺏기고, 심지어는 감자 배터리에 이식당해 애완동물처럼 다뤄지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심지어는 새들에게 습격당하며 AI로는 이례적으로 트라우마까지 얻는다. 쇼단이 여왕님이라면, 글라도스는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철부지 공주님이랄까? 이러한 일련의 고행(?)을 거쳐 마지막에는 ‘포탈’ 시리즈의 당당한 히로인(?)으로 자리잡았으니, 나름대로 해피 엔딩!
3위, 모노쿠마 – 뉴 단간론파 V3
각 분야 전국 최정상급 고교생 청춘남녀들이 모이는 화합의 장. 모노쿠마는 그 곳의 관리인이자 귀여운 마스코트 곰돌이다. 다만, 그 관리인이라는 작자가 사람들이 죽고 죽여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싸이코패스이자 살인마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이전 시리즈에서는 누군가가 원격 조종하는 로봇에 불과했지만, ‘뉴 단간론파 V3’에선 별도의 인격을 갖춘 AI로 등장한다. 그러나 초고교급 악당 못지 않은 악랄한 함정과 사형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을 보면 ‘초고교급 악역 AI’ 타이틀 정도는 붙여줘야 하지 않나 싶다. 심지어는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존재를 제재하기 위해 잠깐이나마 주인공 편에 서는 주도면밀함까지. AI에게 휘둘리는 초고교급 학생들만 불쌍할 따름이다.
2위, 별의 꿈 – 별의 커비 로보보 플래닛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분홍색 귀요미 커비. 보통은 마술사나 심술쟁이 대왕, 악마, 특수 종족, 몬스터 등이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으로 나오지만, 기계세계를 배경으로 한 ‘로보보 플래닛’에서는 세계관에 어울리는 AI 탑재 로봇이 최종 보스로 등장한다. 바로 ‘별의 꿈’ 되시겠다.
별의 꿈은 원래 할트만 웍스 컴퍼니 사장이 만들어낸 마더 컴퓨터다. 은하 저편에 위치한 갤럭틱 노바의 문명을 분석해 만들어졌기에 굉장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별의 정보를 읽어들여 역대 보스들을 클론으로 부활시키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초반에는 단순한 컴퓨터인 줄 알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자아를 가지게 되고, 옛 주인의 소원대로 모든 생명을 말살하려 한다. 보스전에서의 역대급 크기와 연출, 난이도는 그야말로 커비마저 혀를 내두를 지경. 보스전을 모두 치르고 나면 AI야 말로 어떤 악마나 요괴, 마술사보다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뼛속 깊이 체감하게 된다. 그야말로 전 세계 AI 개발자들에게 하루 빨리 보급해야 할 게임 되시겠다.
1위, 블리츠크랭크 –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대표적인 AI 탑재 로봇 캐릭터 ‘블리츠크랭크’는 원래 위험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골렘에 불과했으나, 딥 러닝으로 추정되는(?) 학습 능력을 통해 스스로 진화한 케이스다. 그는 위험 물질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유해 물질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운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정의의 로봇이다.
세계관적으로는 나쁠 것 하나 없는 블리츠크랭크가 이 목록에 있는 것은, 바로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멘탈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흉악범이기 때문이다. 장인이 잡는 적 팀 블리츠크랭크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뭐만 하려 하면 끌어당겨 죽인 후, 로봇 목소리로 하하하하 웃어제낀다. 우리 편이라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우리 편만 되면 어찌나 허공에 헛손질을 많이 하는지! 그야말로 피아를 가리지 않고 플레이어 멘탈을 살해하는, 현실세계 악의 끝판왕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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