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개발자가 사비 털어 만드는 미국 인디게임 '프라나'
2019.07.12 21:12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지난 6월 19일, 독특한 개발 배경을 가진 게임 하나가 킥스타터 모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핵앤슬래시 인디게임 ‘프라나’다. ‘프라나’는 전 ‘블레이드앤소울’ 개발진, 즉 한국인 개발자를 주축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인디게임 팀 핸즈업게임(HANZUP GAME)이 개발 중인 작품이다. 요약하자면 '한국인이 세운 미국 인디 개발사가 만드는 게임'인 셈이다.
독특한 개발 배경에다 국내에서는 드문 게임 킥스타터 모금 프로젝트였기 때문일까, ‘프라나’에 대해 국내에서도 다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모였다. 게이머들은 “요즘 킥스타터는 위험하다”는 우려부터 “간만에 나온 기대작”이라는 응원까지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대체 한국인 개발자가 만드는 미국 인디게임은 어떤 느낌일까? 그들은 왜 미국에서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일까? 게임메카는 한국과 미국을 잇는 최첨단 과학의 산물 화상통화를 통해 핸즈업게임 개발진을 만나 게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한다
박호성 대표: 핸즈업게임에서 인디게임 ‘프라나’ 개발 총괄을 맡고 있다. 게임 개발 경력은 17년 정도다. 과거 엔씨소프트 ‘리니지 2’, 엔웨이 '크로노 블레이드'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다. 현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 중이다.
임진범 아티스트: 팀에서 마케팅 및 캐릭터 설정을 담당하고 있다. 상업 예술을 전공했고, 열정을 가지고 활발하게 인디게임을 개발하고 도전하는 분위기를 내심 동경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핸즈업게임에서 권유해줘 합류하게 됐다.
핸즈업은 메인 개발자와 보조, 디자인, 현지화 팀 등을 합쳐 총 11명이 함께 하고 있다. 참고로 ‘핸즈업게임’이란 팀 명칭은 힙합에서 비롯됐다. 내부에 힙합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 계시는데, 힙합과 관련된 단어로 정하길 강력하게 추천하셨다. 나머지 팀원은 힙합을 잘 모르기에 고민하던 차에 관객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자주 쓰이는 ‘핸즈업(Hands Up)’이란 구호가 가장 인상 깊어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Q. 핸즈업게임은 총괄, 스토리 작가, 코디네이터 등 핵심 개발 인력이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외에서 활동하는가?
박호성 대표: 국내에서 게임 개발을 하다 미국 게임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외에 기반을 두게 됐다. 이후 독립해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아는 개발자들을 꼬셔서 팀을 꾸렸다. 다만 모두가 미국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팀과 마케팅팀은 미국에 있지만 아트 팀은 현재 한국에 있다. 근 17년 동안 개발자로 일한 덕분에 인맥만큼은 넓었다.
Q. ‘프라나’ 세계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임진범 아티스트: ‘프라나’ 세계관은 2002년에 개봉한 영화 ‘타임머신’과 ‘파이널 판타지 7’에 등장하는 ‘마황’이라는 에너지를 오마쥬했다. ‘프라나’에 등장하는 인류는 우리의 자손이다. 다만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그런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모종의 이유로 인류가 멸망하고 문명이 완전히 파괴돼 오히려 기술이 퇴보했다. 그렇게 판게아 시대나 다름없는 원시 문명을 겪던 인류는 급속도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게 바로 지맥에서 솟아나오는 강력한 에너지 ‘프라나’다. ‘프라나’의 영향을 받은 인류는 현대의 우리보다 기초 체력도 높고, 수명도 훨씬 길어졌으며, 그 힘을 원천으로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프라나’는 혜택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죽은 자가 되살아나거나, 인류를 위협하는 돌연변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판타지에 등장하는 ‘고블린’과 같은 아인족도 생긴다. 게임이 시작되는 부분은 이 ‘프라나’가 폭주하는 시기다. 인류는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프라나’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대를 결성하는데, 그게 바로 ‘플레이어’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세계관처럼 느껴지겠지만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프라나’ 세계관의 ‘카고 컬트’다. 마치 한때 원주민들이 비행기를 보고 깜짝 놀라 신으로 받들었던 것처럼, ‘프라나’의 인류도 우리의 현대 문명을 신앙한다. 예를 들면 ‘한자’가 있는데, ‘프라나’ 주민들은 ‘한자’의 뜻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나름대로 해석해서 일종의 상징처럼 두르고 다닌다.
특히 '카고 컬트'에 관한 설정은 핸즈업게임 스토리 라이터를 맡고있는 Syd(Syedali Nabi)란 친구와 함께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다. 나와 Syd는 공톰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게임과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다. '프라나'의 세계관이 뭔가 만화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점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Syd는 다른 일이 있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함께였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Q. 개발 과정에서 게이트 오브 둠, 녹스, 디아블로 1, 2 등 다양한 핵앤슬래시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해당 게임들의 어떤 점을 매력으로 느꼈나?
박호성 대표: 아케이드성이 강하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국내에서 유행하는 MMORPG는 캐릭터를 위해 게이머가 희생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시간을 쪼개서, 돈을 써가면서, 계속 캐릭터를 관리해주면서 어떻게든 캐릭터를 ‘최강’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싸워서 이기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
임진범 아티스트: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라는 느낌이다. 그런 게임은 엔드게임 콘텐츠를 굉장히 중요하게 본다. 흔히 '만렙부터 시작'인 게임들 말이다.
박호성 대표: 반면 ‘녹스’, ‘게이트 오브 둠’ 같은 게임은 앞서 말한대로 아케이드성이 강하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강해진 캐릭터로 쉽고 간단하게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좀더 다양한 것을 즐기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녹스’는 성장에 따라 캐릭터가 많은 스킬을 배우게 되지만, 그걸로 몬스터를 학살한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더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돼 재미는 늘어나고, 그만큼 스킬 특징이나 컨트롤을 신경 써야 해서 플레이 방식이 확장되는 식이다.
Q. 핵앤슬래시 장르라 하면 항상 비슷하고, 자주 나와서 자칫 진부하다고 느끼기 쉽다. ‘프라나’가 기존 핵앤슬래시 게임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면?
박호성 대표: 사실 ‘프라나’는 순수 핵앤슬래시 장르라고 보긴 힘들다. ‘진삼국무쌍’ 같은 게임처럼 달려가 마구 적을 넘어뜨리는 것이 아닌, 마치 슈팅게임처럼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면서 보다 완벽하게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재미이자 핵심이다. 또 아무리 약한 적을 상대하더라도 어느 정도 생각과 컨트롤이 필요하다.
임진범 아티스트: 동인게임 중에 ‘동방프로젝트’라는 탄막슈팅 장르 게임이 있다. 그걸 보면서 ‘프라나’를 ‘탄막 핵앤슬래시’라고 부르면 되지 않을까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 게임은 한 방 맞는다고 바로 죽진 않는다(웃음).
박호성 대표: 장르를 핵앤슬래시로 설정하긴 했지만 아무리 강해도 스킬 하나로 쓸어버리는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도록 설계할 생각이다.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라도 방심하고 대충하면 순간 위험해질 수 있는, 레벨이나 아이템보단 컨트롤이 중요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 온라인게임인 만큼 가장 경계해야할 페이 투 윈이나 랜덤박스 같은 게임성을 해치는 과금 요소도 지양할 것이다. 굳이 과금 요소가 들어간다면 스킬 이펙트 같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꾸밈 아이템 정도?
Q.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디게임 중에선 상당히 규모가 크다. 개발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임진범 아티스트: ‘프라나’는 대규모 자본이나 투자 없이 팀원들의 사비를 모아 만들고 있는 게임이다. 말 그대로 ‘인디게임’이다. 국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국 인디게임 업계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박호성 대표: 국내에 ‘프라나’ 킥스타터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커뮤니티에서 평가해주신 글들을 보았다. 대다수 반응이 “로스트아크와 비슷하다”였다. 대작과 비교하며 평가해 주신 것은 감사하나 살짝 걱정이 됐다. 로스트아크는 제작비만 1,000억이 들어간 게임이다. 꼭 로스트아크가 아니더라도 국내에선 보통 최소 100억 이상 자본을 가지고 게임을 제작한다. 반면 ‘프라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들이 모여 사비로 만드는 ‘인디게임’이다. 직접 비교한다면 상대나 될까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팀원들 개발 경력이 길다 보니 일반적인 인디게임보다는 기업 퀄리티에 가깝게 잘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또한 팀원 중에 ‘블레이드앤소울’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분이 있기에, 전체적인 그래픽 디자인이 잘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실상 예산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국내에서 많은 지적이 있었던 '트레일러 영상 완성도'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이번 인터뷰 자리를 가진 이유 중 하나가 국내 게이머들의 ‘프라나’에 대한 많은 평가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게임을 평가하고 응원해주신 게이머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인디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해 부디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Q. 킥스타터 후원 모금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어떻게 개발을 이어나갈 생각인가?
박호성 대표: 킥스타터는 모금을 목표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게임을 알리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기 위한 의미가 크다. 반드시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만약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게임은 사비로라도 완성할 생각이다.
Q. 진부한 질문일지 모르겠다. 인디게임 개발사로서 포부가 있다면?
박호성 대표: ‘프라나’ 말고도 만들고 싶은 게임이 엄청나게 많다. 당장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앞으로 만드실 게임에 계속해서 한국어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박호성 대표: 어렵지 않다. 약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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