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게임 주요뉴스 ④ 독점 잃은 콘솔 시장
2019.12.26 17:45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2019년, 한국 게임업계는 분명 양적으로 성장했다. 아직 집계가 되진 않았지만 올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14조 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무작정 체중 불리기에만 집중해서일까, 내부적으로는 곳곳의 혈관이 막혀가는 성인병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게임메카는 연말을 맞아 올 한 해 게임업계 주요 이슈들을 분야별로 정리해 보는 특집코너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PS4, Xbox One, 닌텐도 스위치 등으로 대변되는 ‘콘솔’은 오로지 ‘게임을 위한 기기’라는 게이머 감성을 자극하고 내로라하는 독점 게임 타이틀을 보유해 게임업계에서 입지를 단단히 해왔다. 매년 대작 독점 게임 하나가 출시될 때마다 게임매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고, 그 게임 하나를 위해 없던 콘솔 구매를 결정하는 게이머가 있을 정도로 큰 매력을 가졌다.
그런데 올해 콘솔의 굳건했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콘솔 독점으로 출시되는 줄만 알았던 AAA급 게임 타이틀이 PC로도 출시되고, 패키지보단 디지털 구매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콘솔 가진 매력과 강점이 영향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던 콘솔이 어째서 영향력을 잃고 있는지, 2019년 한 해 소식을 돌아보며 자세히 살펴보자.
콘솔이 영향력을 잃고있다
게이머가 콘솔을 선택하는 이유를 하나 꼽자면 바로 ‘독점 콘텐츠’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PC를 가지고 있어도 콘솔로만 출시된 게임이 있다면 아예 즐길 수 없거나 PC로 이식되길 기다려야 한다.
올해도 콘솔에는 게이머를 만족시킬만한 대작 독점 게임이 많았다. 몬스터 헌터 월드: 아이스본, 데스 스트랜딩, ‘슈퍼 마리오 메이커 2,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 요시 크래프트 월드, 루이지 멘션 3,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 링 피트 어드벤처, 그리고 포켓몬스터 소드/실드까지, 콘솔이 없으면 아예 즐길 수 없거나 뒤늦은 출시를 기다려야 하는 게임들이다.
게임뿐만이 아니다. 각 콘솔은 중력센서, 터치패드, 진동기능 등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한 컨트롤러를 통해 PC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독점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히 닌텐도가 보여준 탈착, 다중 연결이 가능한 조이콘과 링 피트 어드벤처로 피트니스 게임을 즐길 때 유용한 링콘은 감탄할 만하다.
그런데 그 독점 문화가 하반기에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난 9월 닌텐도 간판 독점 게임 타이틀인 ‘마리오 카트’가 모바일로 이식됐다. 지난 11월 8일 출시된 데스 스트랜딩은 PS4 독점이었으나, 출시를 앞두고 개발사가 직접 PC로도 출시된다고 전한 바 있다. 지난 12월 12일, PS4 독점이었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출시됐다.
자연스럽게 컨트롤러 또한 타 플랫폼과 호환되기 시작했다. 게임에 따라 일부 기능 제한이 있지만 터치패드와 중력센서, 진동까지 활용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안드로이드는 물론 iOS까지, 모바일 기기에도 공식 호환된다.
이처럼 콘솔 최대 강점이자 매력인 ‘독점 콘텐츠’가 가지는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콘솔 시장 축소로 이어진다. PS5와 Xbox 스칼렛 등 콘솔 세대교체가 예고된 시점, 콘솔이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게임, 시스템, 컨트롤러 등 뭐가 됐든 얼마나 새로운 콘텐츠를 ‘독점’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디지털 다운로드 우선, 패키지 시장 ‘흔들’
콘솔 게임을 주로 즐기는 게이머의 집에는 책장 한 켠에 게임 패키지가 꽉 들어차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젠 특정 저장 매체에 게임을 담아 판매하는 형태를 보기 힘든 PC 플랫폼과 달리 콘솔은 여전히 많은 게임이 CD나 팩에 담겨 판매된다.
올해 들어 그 패키지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조짐이 보였다. 용산, 국제전자센터 등에 자리하고 있는 국내 게임매장 관계자에게 물었을 때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올해 매출이 작년만 못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어느 때보다 디지털 다운로드 영향력이 큰 해라서”다. 매장들은 “심지어 패키지로는 출시되지 않는 게임도 있고, 만약 출시된다고 해도 PC로 출시되는 멀티 플랫폼 게임은 패키지로 잘 찾지 않는다”라며 침통한 표정이다.
현세대 대다수, 아니 모든 콘솔 게임이 디지털 구매 및 다운로드를 지원함에도 굳이 패키지로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단순히 취급이 편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환경에서도 CD만 삽입하면 바로 게임을 즐길 수 있고, 한정된 콘솔 내부 저장소도 아낄 수 있다. 또 계정에 귀속되는 디지털 다운로드와 달리 중고로 되팔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적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고, 고사양게임이 보급되면서 게이머가 게임을 즐기기 위해 확보해야 할 기기 저장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올해 출시된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약 150GB,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가 약 170GB에 달한다. 5년 전 출시된 ‘GTA 5’가 약 50GB로 콘솔 게임 중 가장 큰 용량을 가졌다고 평가됐을 때보다 무려 3배나 커진 수치다.
당연하지만 그런 고용량 게임을 디스크 한두 장에 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게임을 패키지로 구매한다고 해도 구동을 위해서는 추가 다운로드가 필요하다. 또 콘솔 게임을 즐길 때 게이머 심기를 가장 많이 건드리는 요소, 로딩 속도를 최적화 하려면 게임 디스크 읽기 속도로는 역부족이다. 유통과 관리도 불편하다. 따라서 게이머와 개발사 모두 굳이 여러 가지 고민할 필요 없이 디지털 다운로드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시킨 것은 지난 5월 7일 MS가 출시한 ‘Xbox S 올 디지털 에디션’이다. 해당 기기는 디스크 삽입 기능 없이 오로지 디지털 다운로드로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전용 콘솔이다. 이러한 MS의 행보는 사실상 패키지 시장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관련하여 국내 Xbox 공식 파트너 게임매장 동서게임 관계자는 “패키지는 잘 안 팔리는데, 콘솔과 컨트롤러, 기프트 카드는 팔린다”며 “실제로도 패키지 시장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콘솔 위협하기엔 ‘시기상조’
최근 콘솔 시장을 뜨겁게 달군 화제가 있다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가 빠질 수 없다.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론적으로 PC, 모바일, 콘솔 등 여러 가지 플랫폼을 하나로 통합할 가능성을 지닌 만큼, 본격적으로 상용화가 되는 순간 가장 범용성이 낮은 콘솔은 자연스럽게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지난 11월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수장격인 ‘구글 스태디아’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언제 어디서나 고사양게임을 4K 60FPS 급으로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설명과 달리 낮은 그래픽 성능과 높은 인풋랙으로 원활하게 게임을 즐길 수 없었고, 당장 상용화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의 콘솔 시장 위협에 대한 국내 게임매장 관계자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종합 게임매장 CD마을 관계자는 “게임매장 종사자로서 ‘콘솔 시장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뭐든지 발전과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며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서 지금은 크게 와 닿지 않지만 최소 2년 후에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동서게임은 오히려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봤다. “패키지 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잠깐일 것이며,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관리가 편한 콘솔이 시장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기존 콘솔이 합쳐져 새로운 콘솔 시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다.
종합하자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가 콘솔 시장을 집어 삼키기엔 ‘시기상조’다. 하지만 큰 영향을 미칠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다. 과연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자극 받은 콘솔 시장이 진화를 이룰 지, 장기적으로 사장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개척 영역, 콘솔 시장 뛰어든 국내 게임사들
작년까지만 해도 콘솔 시장에서는 국산 게임을 보기 드물었다. 그런데 올해 국내 게임업계에 재미있는 바람이 불었다. 그토록 콘솔과 연이 없던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콘솔 게임 개발에 눈을 돌린 것이다.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국내 게임사는 중국 판호를 단 한 건도 받지 못했다. 미국, 일본 게임사가 외자판호를 받은 지금도 한국 게임사 판호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게임사가 활로를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린 것이 있으니, 바로 콘솔 시장이다.
펄어비스는 올해 3월부터 MMORPG ‘검은사막’을 Xbox One에도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큰 호응을 얻어 8월부터 PS4 서비스를 시작했다. 넥슨은 지난 3월 액션 RPG ‘클로저스’를 PS4로 출시했으며,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7월 VR 연애 어드벤처 ‘포커스 온 유’를 PS VR로 선보여 화제에 올랐다.
이외에도 네오위즈가 지난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블레스’가 콘솔 버전을 개발 중에 있으며, 11월에 열린 지스타 2019에서는 펄어비스 차기작 ‘플랜 8’가 콘솔로 출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또 넥슨이 개발 중인 ‘카트라이더’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Xbox로 출시된다. 앞으로 잘만하면 콘솔 시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한국 게임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도약 준비 완료한 VR, 내년 기약한다
매년 원년만 찾던 VR은 결국 올해도 원년을 찾지 못했다. 걷는 동작을 인식하는 사이버슈즈, 뇌파를 측정해서 게임에 반영하는 룩시드링크, 완전 독립형 VR HMD 오큘러스 퀘스트, 사용자 시선을 추적하는 바이브 프로 아이, 세세한 손가락 동작도 표현이 가능한 밸브 인덱스 컨트롤러와 오큘러스 핸드트래킹까지 많은 기술 발전을 이뤘지만 가장 중요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VR 기기는 비싸고, 콘텐츠 폭은 좁다.
다만 올해 VR에서는 내년에야 말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원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앞서 지적했던 대중성 확보, 즉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국내외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5G 통신망 상용화로 이론상 언제 어디서나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에 그 이론을 현실로 만들고자 SKT, KT, LG 통신3사를 필두로 다양한 기업에서 VR 기기와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는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19일까지 서울 용산역 3층 대합실에 U+ 5G 팝업 체험관을 구축하고 5G 통신망으로 4K 해상도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VR존을 운영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삼성은 최초 출시 당시 약 80만원 정도던 HMD ‘오디세이 MR’을 약 60만원 대 가격으로 인하해 접근성을 높였다.
콘텐츠 질도 높아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VR 게임은 시뮬레이터 성향을 띤 게임이 대부분이었고, 장르적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 보급화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만인에게 인정받는 대작 VR 게임이 다수 출시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월 10일 출시된 ‘아스가르드 래쓰’와 12월 11일 출시된 ‘본웍스’가 있다.
‘아스가르드 래쓰’는 북유럽 신화 속 고대 스칸디나비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을 그린 VR 액션 RPG다. 적의 공격을 흘려내고 헛점을 유도하는 패링을 구현해 VR 특유의 손맛을 잘 구현했다. ‘본웍스’는 기존 VR과 달리 제한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잡고, 만지고, 부술 수 있다. 게이머가 가상현실에 기대하는 물리엔진, 사격, 전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충실하게 구현했다. 두 게임 모두 VR 게임으로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호응을 얻었다.
종합하자면 매년 영양가 없는 플랫폼으로 무시 받던 VR도 올해를 계기로 드디어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느낌이다. 커뮤니티 평가도 “가격만 좀더 내려가면 좋을 것 같다”, “이정도 게임만 많으면 기꺼이 살 것 같다” 등 긍정적이다. 과연 내년에는 VR의 원년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