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나 기생충에서 느낀 불쾌함이 '라오어 2'에도 있다
2020.06.12 16:01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이 기사에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담겨있지 않습니다
매일 걷던 퇴근길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집에 혼자 있는데 텅 빈 거실이 으스스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낯익은 상황이나 환경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 불쾌하고 불편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두고 ‘언캐니’라 칭했다.
다소 생경한 단어 같지만, 언캐니는 많은 콘텐츠에서 볼 수 있다. 가령,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조커’에서 상황에 맞지 않게 등장하는 주인공의 기괴한 웃음 소리나 춤사위, 영화 '기생충'에서 평화로운 집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지하 벙커 등이 모두 언캐니에 속한다.
엔딩까지 달려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대한 감상을 요약하자면, 언캐니로 점철된 작품이었다. 그것도 마냥 불쾌하거나 불편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거장인 알프레도 히치콕이 떠오를 만큼 능숙한 방식으로 주제 의식과 세계관을 표현했다. 감히 이야기하건대,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이런 불쾌함을 통해 현세대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얼핏 보기엔 살만해 보이는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전작에서 5년이 흐른 뒤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간이 꽤 흐른 만큼 생존자들은 감염자로 뒤덮이고 공권력이 사라진 끔찍한 세계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완벽하게 습득해 다들 어딘가에 정착한 상태다. 엘리 또한 '잭슨'이란 도시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으며, 게임의 주무대인 시애틀에도 역시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저기에 삶의 터전이 생겨나 있는 만큼 엘리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으며, 조엘 외 많은 사람들과 교류한다. 트레일러에 등장했던 디나 같은 애인도 생겼다. 엘리의 욕은 여전히 찰지지만, 이전보다 훨씬 누그러지고 어른스러워졌다. 조엘 역시 근심 가득한 표정과는 별개로 얼굴이나 행동에서 여유와 온화함이 느껴진다. 그 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게임 내내 나름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거나 자연 풍광, 과거의 유산 등을 보며 감상에 젖는 등 이전보다 평화로운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만큼 도시나 자연환경 등도 예전보다 많이 변해 있다. 대도시였던 시애틀은 마천루를 제외한 도심지가 강과 밀림으로 변했고, 바다의 수심도 전반적으로 상승해 있다. 주요 이동 수단으로는 차보다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이며, 모든 사람이 거주지 내에서 농사를 짓거나 양이나 소 등 가축을 키운다. 1편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의해 무너진 모습에만 집중했다면, 2편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완벽히 적응한 인간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주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하지만 게임을 어느정도 이상 진행하게되면 이런 평화로운 모습에서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세계는 언제 누가 무슨 일을 당해 갑작스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슬아슬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뜬금없는 죽음이나 전투, 습격 등이 자주 일어난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있던 적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좀비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며, 엘리 역시 감염자를 주로 상대했던 전작과 달리 여러 적대 인간 세력을 상대해 그들과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배경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주기 위한 언캐니다. 게임 속 인류는 함께 생존을 도모하기보다는 각자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고 약탈과 습격을 반복한다. 절대로 자원이 부족하거나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결국 대규모 감염사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터전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간 반목은 해결되지 않은 셈이다.
평화로운 듯 묘사되는 세계관과 인물의 변화는 줄거리와도 상충하며 또 다른 불편함을 자아낸다. 이미 알려져 있듯 2편의 줄거리는 철저하게 복수극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나름의 상실을 지니고 있으며 복수를 위해 여정을 떠난다. 여기서 복수란 라스트 오브 어스 답게 증오의 대상을 확실하게 척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다가 정말 많은 사람을 필연적으로 죽이게 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총으로 적을 쏘거나 칼로 찌르는 행위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는 복수를 위해 계속 사람을 죽여야 한다. 이 불편함은 증오의 연쇄라는 주제 의식과 연계된다. 많은 매체에서 다뤄지다시피 복수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복수를 낳으며,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선 결국 한 명이 복수를 포기하고 대상을 용서해야만 한다. 어떻게 보면 이 복수극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정답을 이런 방식으로 계속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게임의 모든 부분들이 매우 치밀하게 구성됐음을 알 수 있다.
게임 플레이에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불편함
불편함을 자아내는 요소는 게임 플레이에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앞서 체험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게임은 사람을 죽일 때의 감각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한다. 칼이 살을 파고들고 뼈를 긁는 느낌을 소리와 진동 등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한다.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불편함을 플레이 형식과 감각을 통해 배가한 셈이다. 물론 잠입을 활용한다면 최대한 살인을 피할 수 있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게임의 다양한 연출과 부가 요소도 '언캐니'와 연관이 있다. 가령, 이번 작품에선 성적 묘사가 꽤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정확한 맥락이나 분위기 없이 등장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재밌게도 항상 해당 묘사 전후로는 이와 엇갈리는 심각한 장면이 덧붙는다. 이 역시도 끔찍한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묘사를 더해주는 불쾌감이다.
상황과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기타가 자주 등장하는 것 또한 재밌는 부분이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감염자들은 모두 소리에 민감하다. 전장에 가까운 환경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실상 자살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는 뜬금없는 순간에 등장한다. 이런 낯섦 또한 조엘과 엘리의 교감을 상징하는 요소로, 엘리가 복수를 다짐하는 이유를 상기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게임은 결점이란 걸 딱히 뽑아낼 만한 부분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구성돼 있다. 게임 플레이와 관련된 모든 요소와 등장인물의 행동과 사연 주제의식을 언캐니라는 개념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작은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구조와 엘리와 조엘의 교감에 집중하느라 서브플롯을 소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시종일관 충격적인 전개와 불쾌한 묘사로 하여금 주제 의식을 잃지 않고 올곧게 앞으로 나아간다. 굉장히 영리한 작품이다.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들은 단 한 장면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화면에 잡히는 모든 장면과 소품, 연출에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고심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 2 역시 모든 컷신과 연출, 게임 플레이에 의미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출시 전에 있었던 각종 유출사태와 논란으로 인해 생겼던 일말의 불안감은 기우에 불과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재밌었고 엔딩 이후의 울림은 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