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왕좌의 게임이 정복하지 못 한 영지, 게임
2020.07.10 17:02게임메카 이새벽
2011년부터 방영해 2018년 완결된 HBO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이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수많은 시상식을 싹쓸이한 데 이어, 그 인기를 반영하듯 수많은 파생상품도 발매됐다. 게임업계에도 왕좌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혹은 비슷한 소재와 분위기를 가진 다양한 게임이 나왔다.
그러나, 드라마 붐이 다소 꺼진 현시점에 돌아보면 왕좌의 게임 기반 게임 다수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 아마 팬들도 왕좌의 게임이 게임으로도 제작된다는 기사는 계속 접했지만, 그 게임이 성공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드물 것이다. 시장에 출시된 여러 게임 중 평단과 시장을 만족시킨 작품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왕좌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역대 게임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왕좌의 게임 전,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파생 게임이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아는 내용이지만,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원작 소설이 있다. 바로 소설가이자 스크린라이터로 잔뼈가 굵은 조지 R. R. 마틴이 쓴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다. 얼음과 불의 노래는 가상의 대륙에서 벌어지는 귀족 가문들의 전쟁 속에서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러 인물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린 일종의 대하소설이다. 1996년 처음 출간된 이 소설은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부터 꽤 규모 있는 팬 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2011년 왕좌의 게임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이미 몇 번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 시기에는 PC나 콘솔 플랫폼이 아닌 보드게임이 주를 이뤘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는 대형 보드게임 유통업체인 판타지 플라이트게임즈에서 출시한 ‘왕좌의 게임 CCG’였다. 2002년 나온 이 게임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1부인 왕좌의 게임에서 이름을 따 왔으며, 내용도 소설에서 막 촉발되기 시작한 귀족 가문들의 전쟁을 배경으로 삼았다.
왕좌의 게임 CCG는 독특하게도, 무작위로 덱에서 뽑는 패 외에 따로 가지고 있다가 매 라운드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획(Plot)’ 카드를 핵심으로 내세웠다. 언제나 확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마법 카드 뭉치를 따로 갖고 시작하는 셈이다. 덕분에 다른 카드 게임에 비해 보다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했고, 아직까지도 나름 인기를 유지하며 계속 출시되고 있다.
판타지 플라이트는 왕좌의 게임 CCG를 출시한 이듬해인 2003년, 전략 보드게임 ‘왕좌의 게임’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여러 영지로 나뉜 웨스테로스 대륙을 통일하기 위한 전쟁을 배경으로 삼았다. 플레이어는 각 가문의 대표자가 되어 가신들과 군대를 움직이고 상대 플레이어들의 영지를 빼앗아야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얼음과 불의 노래 캐릭터들로 진행하는 일종의 땅따먹기 게임인 셈이다.
‘왕좌의 게임’ 보드게임은 배우기 쉬우면서도 전략적 선택 요소와 플레이어 심리전 요소가 풍부한 점, 그리고 원작 지역과 캐릭터를 전쟁이라는 내러티브 속에서 잘 살린 점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이 게임은 2011년 2판을 출시한 데 더해, 2018년까지 도합 다섯 개의 확장판을 내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판타지 플라이트의 얼음과 불의 노래 게임화 성공은 후발주자들에게 나름 큰 인상을 남겼다.
이후로 ‘얼음과 불의 노래’는 두 번이나 TRPG로 제작되기도 했다. 가디언즈 오브 오더라는 캐나다 개발업체에서 출간한 2005년작 왕좌의 게임 RPG와, 과거 ‘워해머 판타지 RPG2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그린 로닌의 2009년작 얼음과 불의 노래 RPG가 그것이다. 두 게임은 흥행 면에선 그리 성공했다고 하기 힘들었지만, 얼음과 불의 노래 RPG는 가장 규모 있는 테이블탑 게임 행사 젠콘에서 시상하는 에니상에서 ‘최고의 시스템’ 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듯 얼음과 불의 노래는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에도 이미 나름대로 보드게임과 TRPG로 제작되고 있었으며,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 같은 메이저 보드게임 기업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아직 디지털 게임으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얼음과 불의 노래 인기는 판타지 소설 팬 층에 국한되어 있었기에, 이 IP를 어떻게 게임에 응용할지에 대한 판단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당시 진행된 얼음과 불의 노래 게임화는 후대 왕좌의 게임 기반 게임들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왜냐하면 이후 출시된 초창기 디지털 게임들이 대체로 보드게임 왕좌의 게임처럼 가신들을 수집하고 영지를 정복하는 땅따먹기 방식을 취했으니 말이다.
전략 장르 추구한 왕좌의 게임, 결과는 모바일 SNG
왕좌의 게임 IP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얼음과 불의 노래가 이미 몇 번이나 보드게임으로 만들어진 후인 2011년이다. 미국 프리미엄 케이블 방송국 HBO에서 얼음과 불의 노래를 영상화한 드라마 왕좌의 게임 방영을 시작한 직후다. 이 드라마는 원작 특유의 선정성과 잔혹성을 여과없이 묘사한 자극적인 군상극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여러 논란 속에서 왕좌의 게임은 일약 인기 드라마로 떠올랐고, 곧이어 다양한 미디어믹스가 시도됐다.
본격적인 왕좌의 게임 디지털 게임 제작이 시도된 것도 이 즈음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콜 오브 크툴루’ 등을 제작한 프랑스 게임 개발업체 사이어나이드가 만든 왕좌의 게임: 제네시스였다. 이 게임은 드라마 방영에 시기를 맞춰 출시되긴 했지만, 사실 드라마보다는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드라마로부터 1,000년 전 웨스테로스 대륙을 무대로 한 문명 방식 전략 게임으로, 팬들의 큰 관심 속에 2011년 출시됐다.
그러나 이 게임은 출시 직후 평단과 시장 양쪽에서 극도의 비판을 받았다. 출시 전에만 해도 전략과 내정과 음모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식으로 소개해 한껏 기대를 고조시켜 놓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러한 요소가 게임에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요소들은 비유기적으로 얽혀 있었고, 결국 해야 할 건 많은데 지루하고 성취감 없는 게임이라는 악평을 받았다.
예를 들어 적 가문들은 물리적으로 전멸시킬 수 없고 여러 수단을 동원해 명망(Prestige) 점수를 깎아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 도시 공직자를 매수하고, 간첩을 풀고, 숨겨둔 서자를 찾고, 암살자를 보내는 등 여러 행동을 해야 한다. 얼핏 사실적이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이를 실시간 게임에서 하나씩 조작하는 것은 생각 이상의 피로를 유발했다. 여기에 열악한 그래픽과 인터페이스는 플레이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메타크리틱 평점 53점과 스팀 ‘대체로 부정적’ 평가는 이를 반영한다.
혹평에도 불구하고, 사이어나이드는 한 번 더 왕좌의 게임 게임화에 도전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12년 나온 것이 ‘ARPG 왕좌의 게임’이다. 이 역시 드라마를 의식하고 시기를 맞춰 제작되긴 했으나, 실제로는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은 자체 내용을 다뤘다. 플레이어는 과거에 라니스터 가문을 섬긴 적이 있는 기사와 야경대원을 번갈아 플레이하며, 특별한 혈통을 타고난 아기를 둘러싼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ARPG 왕좌의 게임은 독특한 스토리텔링에 강점이 있는 사이어나이드답게, 플롯에서는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 열악한 그래픽과 사운드, 연출, 그리고 다소 반복적인 패턴의 지루한 전투가 단점으로 지적됐다. 그나마 전작보다는 조금 나아서 2020년 7월 기준 메타크리틱 기준 58점, 스팀 평점 ‘대체로 긍정적’을 유지하고 있다.
ARPG 왕좌의 게임 이후 사이어나이드는 더 이상 왕좌의 게임 IP를 활용한 게임을 제작하지 않았다. 이후 왕좌의 게임은 차츰 모바일 전략 장르로 옮겨 가기 시작한다. 시작은 2013년 출시된 디스럽터 빔의 ‘왕좌의 게임: 어센트’였다. 페이스북과 해외 포탈 사이트 등에서도 플레이 가능한 SNG로, 자신만의 영주를 만들고, 영지를 관리하고, 가신들을 고용하며 차츰 세를 불리는 것을 주요 콘텐츠로 삼았다. 이 게임은 6년 간 서비스 된 후 2019년 초 서비스를 종료했다.
워너브라더스 게임즈에서 출시한 ‘왕좌의 게임: 컨퀘스트’ 역시 비슷한 게임이다. 건물을 업그레이드해서 자원을 모으고, 군대를 양성하고, 다른 플레이어를 약탈해 세를 불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략 SNG로, 평범한 게임성에 드라마의 인기를 빌려왔다는 느낌이다.
이렇듯, 왕좌의 게임: 제네시스 이래 다수의 작품은 전략에 집중했다. 물론 초기에는 정치와 공작 등 다양한 책략을 게임에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전략 게임에서 전투와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 탓에 곧 기피되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다른 플레이어와의 연대와 경쟁이라는 요소를 내세운 SNG 장르다.
국내 출시를 앞둔 ‘왕좌의 게임: 윈터이즈커밍’도 이러한 SNG의 연장선상에 있다. 가문의 상속자로 태어난 주인공이 되어, 자원 수집 및 도시 개발을 통해 자신의 힘을 기르고, 철왕좌를 목표로 다른 가문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유주게임즈에 따르면 이 게임은 치밀한 원작 고증과 웅장한 음악 등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존 스노우, 아리아 스타크 등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원작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특징을 내세우고 있는데, 오는 7월 21일 국내 정식 출시 후 그 차별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듯 하다.
텔테일게임즈의 스토리 중심 어드벤처 왕좌의 게임, 그러나 결과는…
물론 모든 왕좌의 게임이 전략 장르로 해석된 것은 아니었다. 사이어나이드가 ARPG를 만들었던 것처럼, 다른 장르도 일부 제작됐다. 그 몇 안 되는 비 전략 장르 왕좌의 게임 중 하나가 바로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던 텔테일게임즈의 ‘왕좌의 게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게임 역시 말로는 좋지 못했다.
2014년 출시된 왕좌의 게임은 텔테일게임즈가 전문으로 삼았던 스토리 감상에 치중한 선택지 고르기 게임이었다. 텔테일게임즈는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워킹 데드와 만화 ‘페이블즈’를 원작으로 삼은 울프 어몽 어스를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해 인기를 얻은 바 있으며, 이후로도 한참 비슷한 종류의 게임을 찍어내던 참이었다. 그 시기 개발된 왕좌의 게임도 앞선 두 게임과 별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제작됐다. 애니메이션으로 스토리를 보여주고, 특정 분기에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텔테일 게임즈 왕좌의 게임은 드라마 3시즌 말부터 5시즌 초 사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체 스토리로 진행된다. 여기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거대 가문들 사이 전쟁이 아닌 ‘포레스터’라는 소가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포레스터 가문은 원작 소설에는 잠시 언급되지만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 작은 가문으로, 게임에서는 스타크 가문을 따라 내전에 뛰어든 후 가문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게임은 당시 텔테임게임즈의 고질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감상하기에 그리 나쁜 퀄리티는 아니지만, 플레이어가 고르는 선택지가 차후 스토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차이만 일시적으로 발생할 뿐, 결국 큰 스토리는 이미 정해진대로만 흘러갔다. 그 탓에 선택지 자체가 유명무실했고, 영상물로 만들 작품을 굳이 어드벤처 게임으로 만들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텔테일게임즈는 왕좌의 게임 후속작을 ‘드라마 종영 후 원작 스토리가 확정되면’ 만들겠다고 뒤로 미뤘지만, 결국 드라마 종영 전인 2018년 텔테일게임즈 폐업으로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추후 다른 회사가 텔테일게임즈 지식재산권 일부를 구매하고 전 직원들을 모아 제작 예정이던 몇몇 게임을 다시 만들기로 했지만, 이 리스트에 왕좌의 게임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텔테일게임즈 왕좌의 게임은 메타크리틱 기준 64점, 스팀 평가 복합적이라는 아쉬운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즉, 전략을 벗어난 왕좌의 게임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소설과 드라마 새로 찍으며 재시동 걸린 왕좌의 게임
이렇듯 기사 게재일 기준, 왕좌의 게임은 디지털 게임업계에서 ‘대작’이라 불릴 만한 게임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가능성은 있다. 우선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이미 시즌 5부터 드라마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원작 집필 속도가 드라마 촬영 속도보다 느린 탓에, 드라마가 시즌 5부터 자체 스토리로 가닥을 잡은 탓이다. 현재는 6부인 ‘겨울의 바람(The Winds of Winter)’이 집필 중이며, 2021년 출간 예정이다. 이후 7부 ‘봄의 꿈(A Dream of Spring)’으로 소설을 완결짓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드라마도 일단은 종영됐지만, 외전 시리즈 제작이 한창 진행 중이다. 본래는 수많은 왕국들이 산재해 있던 수천년 전 고대 웨스테로스 대륙에서 본편 가문 시조들이 ‘백귀(White Walkers)’들과 싸우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블러드문’이 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중도에 취소됐고, 현재는 본편에서는 쇠락한 옛 왕가로 나온 타르가리옌 가문이 강성했던 시절 드래곤들을 타고 벌인 내전을 다룬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제작 중이다.
이렇듯, 한동안 중단된 소설과 드라마가 다시 시동을 걸고 있고, 관련 게임들도 끊이지 않고 나옴에 따라 왕좌의 게임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왕좌의 게임은 드라마와 소설, 보드게임에 이어 디지털 게임에서도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오는 게임들에 기대를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