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설화 바탕 사망여각, '퓨전 바리공주'로 스팀 공략한다
2020.07.30 14:13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바리공주는 한국 전통 설화 중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부터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에도 이를 모티브로 한 '바리'가 등장한다. 그렇기에 한국 게이머라면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주인공 바리공주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루트리스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메트로배니아 2D 액션게임 ‘사망여각’도 ‘바리공주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게임은 2021년 상반기 스팀을 통해 출시 예정으로, 국내에서 주로 활동했던 바리공주의 글로벌 진출이기도 하다. 이에 제작진은 한국 설화나 동양적 사후세계가 낯선 서양 게이머도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낯익은 현대적 요소와의 퓨전을 가미했다. 게임메카는 루트리스 스튜디오 박현재 대표와 김태령 프로그래머를 만나 사망여각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리공주 이야기, 게임과 찰떡궁합이다
루트리스 스튜디오가 사망여각 개발을 시작하면서 그린 밑그림은 ‘동양적 사후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었다. 김 프로그래머는 서양 고전 중 하나인 단테의 ‘신곡’을 언급하며 “동서양을 떠나 사후세계는 매력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동양적 사후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가 희귀한 것이 아쉬웠다”고 부연했다.
루트리스 스튜디오는 이 같은 밑그림을 그린 다음, 각종 웹사이트와 서적, 논문 등을 검색해 사후세계를 다룬 한국 전통 설화를 찾았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끈 작품이 바리공주 이야기였다. 바리공주 이야기는 평범한 인간이 저승 곳곳을 탐험하며,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신적 존재가 된다는 영웅적 서사를 갖추고 있다. 이야기가 단편적이거나 특정 지역에 한정된 다른 한국 전통 설화에 비해 보편성을 띄어 게임 줄거리로 풀어내기 알맞았다. 또한 맵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숨겨진 장소를 찾고, 새로운 능력을 얻어 강해진다는 메트로배니아 장르 특성과도 궁합이 맞는다.
박 대표는 “바리공주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전통 설화를 게임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화 모음집’ 같은 형태를 구상한 것인데, 높은 완결성을 갖춘 바리공주 이야기에 다른 설화들을 이어 붙이려다 보니 이야기가 산만해져 무산됐다. 대신 이 같은 구상은 아기장수 우투리, 금도끼 은도끼, 우렁각시 등 설화 인물을 NPC나 적으로 등장시킨다거나,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주인공 아름이 바다 속에 뛰어드는 장면 등으로 작게나마 게임에 반영됐다.
전통 설화 배경에 드론이 있는 이유
바리공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만큼 사망여각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동양적이고 고풍스럽다. 한복을 입은 주인공과 갓을 쓴 두꺼비, 그리고 흰색, 붉은색, 검은색 3가지 색상으로만 이뤄진 아트만 봐도 그러하다.
그런데 사망여각은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으로 출시된다. 한국어와 중국어 간체, 그리고 영어까지 지원한다. 따라서 해외 유저들의 호응도 중요한데, 루트리스 스튜디오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내세운 것은 ‘퓨전’이다.
먼저 서양 신화와의 ‘퓨전’을 들 수 있다. 주인공 아름이 바다에 빠져 저승으로 향할 때, ‘카론’이란 인물이 나래이션을 한다. 카론은 그리스-로마 신화 등장인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스틱스 강의 뱃사공이다. 박 대표는 “해당 장면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과정임을 해외 유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무턱대고 스틱스 강의 뱃사공 이름을 차용한 것은 아니다. 동양에도 스틱스 강과 유사한 삼도천이란 것이 있고, 사자를 실어 나르는 뱃사공도 존재한다. 다만, 삼도천 뱃사공의 이름은 알 수 없는데, 임의로 짓는 것보다는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카론’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다음은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소품이다. 기와집이 늘어선 배경이나 주인공의 복장, 세이브포인트 역할을 하는 묘비 등 전반적으로 한국적(또는 동양적) 색채가 강하지만, 정수기, TV 수신기 등 동서양 구분 없이 현대인에게 익숙한 소품도 존재한다. 아울러 일부 몬스터가 들고 있는 무기 또는 소품에서도 현대적 요소들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최첨단은 ‘드론’을 조종하는 적이다. 김 프로그래머는 웃으며 “원래는 조금 더 미래적인 요소를 넣으려고도 생각했지만 자제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은 번역이다. 우선 영문명이 초기엔 애프터 데스(After Death)였으나, 에잇 도어스(8Doors)로 교체됐다. 해외에서는 ‘데스’라는 단어가 다소 무거운 주제의 호러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사망여각의 주제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8개 문을 통해 저승을 탐험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제목을 변경했다.
아울러 등장인물 이름은 최대한 한국어 발음과 의미가 유사한 영어 단어를 찾아 번역했다. 대표 사례로 주인공의 조력자인 ‘두꺽이’는 ‘두크록(Ducroak)’이라 번역했다. 이는 영어 문화권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단어 크록(Croak)에서 착안한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번역에 대해 묻자 김 프로그래머는 ‘고관대면’이라는 요괴를 꼽았다. 고관대면은 높은 관모를 쓰고 항상 나무에 기대어 있는 요괴다. 높은 관모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왕관을 의미하는 다이어뎀(diadem)에 ‘대면’과 비슷한 발음인 이름 ‘데미안(Demian)’을 합성해 ‘다이어데미안’이라 번역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박 대표와 김 프로그래머에게 사망여각 이후에도 한국 전통 설화를 소재로 한 게임을 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사망여각을 시작으로 한국적 소재를 활용한 게임을 꾸준히 글로벌에 출시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며, “시작이 중요한 만큼, 사망여각에 모든 힘을 쏟고 있으며, 2021년 상반기에 완성된 게임을 선보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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