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에픽 갈등의 핵심은 수수료 30%가 아니다
2020.08.24 16:40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애플과 에픽게임즈가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표면적으로 떠오른 문제는 구글, 애플이 자사가 운영하는 글로벌 앱 마켓에 입점한 게임에서 발생한 매출 30%를 떼어가는 수수료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구글, 애플이 마켓에서 자사가 제공하는 것 외의 앱 내 결제를 붙일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은 독점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별도 결제 시스템을 붙일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것이며, 구글과 애플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이러한 분쟁은 회사 간 대립을 넘어 법정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련 소송이 진행되는 곳은 미국이며, 두 회사는 모두 미국 회사다. 그런데도 이번 소송 결과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소송 결과가 어느 쪽이 이기든 미국을 넘어 글로벌 게임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애픽게임즈와 애플은 왜 법정에서 싸우는지, 그 결과가 게임업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에픽게임즈는 왜 구글∙애플과 법정에서 싸우게 됐나?
두 업체가 소송까지 간 것은 최근이지만 결제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었던 것은 그 전부터다. 에픽게임즈가 약 2년간 자사 게임 포트나이트 안드로이드 버전을 구글플레이에 입점하지 않고 자체 다운로드로만 서비스한 것 역시 구글과 애플의 앱 마켓 운영 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러던 것이 지난 4월에 구글플레이에 포트나이트가 출시되며 갈등도 잠잠해진 듯했다.
그런데 지난 13일에 에픽게임즈가 포트나이트 모바일 버전에 자체 결제 시스템을 추가하며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에 구글과 애플은 자사가 운영하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를 내렸다. 이유는 자사가 제공하는 것이 아닌 별도 결제 시스템을 붙인 것이 마켓 운영 정책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는 구글플레이 외에도 다른 앱 마켓이 운영 중이다. 따라서 안드로이드의 경우 구글플레이에서 게임이 내려가도, 다른 마켓이나 에픽게임즈 자체 다운로드 등을 통해 포트나이트를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반면 iOS의 경우 애플이 운영하는 애플 앱스토어 외에 다른 사업자가 운영하는 앱 마켓이 없어서, 앱스토어에서 내려가면 게임을 새로 받을 경로가 차단된다.
이후 지난 14일에 에픽게임즈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을 통해 구글과 애플을 고소했다. 두 회사가 미국 연방과 캘리포니아 중 독점 금지법에 위배된다는 것이 에픽게임즈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애플 매킨토시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 영상을 올리며 구글과 애플이 운영하는 모바일 마켓을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통제사회에 비유했다.
에픽게임즈가 애플과의 갈등에 더 힘을 싣는 이유는?
에픽게임즈가 구글과 애플 중 더 힘을 싣는 쪽은 애플이다. 애플의 경우 포트나이트를 넘어서 언리얼 엔진에 대한 문제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에픽게임즈는 오는 28일에 애플이 iOS와 맥 개발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 자사 개발자 계정을 차단할 예정이라 통보했다고 전했다. 에픽게임즈는 법원에 관련 성명을 제출해 애플이 개발자 계정을 차단하면, 언리얼 엔진 관련 접근 권한도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게임을 포함해 애플 앱스토어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앱에 언리얼 엔진 최신 업데이트를 제공할 수 없고, 나아가서는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한 앱을 앱스토어에서 서비스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내용이 실제로 적용될 경우 포트나이트를 넘어서 언리얼 엔진을 사용한 모바일게임 모두가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언리얼 엔진은 유니티와 함께 게임업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상용엔진이고, 리니지2 레볼루션, V4, 리니지2M 등 국내 주요 모바일게임도 언리얼 엔진 4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이에 에픽게임즈는 법원에 애플이 자사에 취한 금지 조치를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보해달라고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애플은 에픽게임즈만 특별 대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7일 애플은 미국 매체 더 버지(The Verge)를 통해 앱스토어는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자 개발자에게 훌륭한 사업 기회를 제공하도록 설계됐고, 에픽게임즈 역시 다른 개발사와 마찬가지로 운영 정책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픽게임즈가 정책을 준수한다면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되며, 기업 이익을 소비자 보호보다 우선하는 것은 옳지 않기에 에픽게임즈에도 예외를 두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어서 21일에는 에픽게임즈가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을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청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포트나이트 앱스토어에서 내려간 상태를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애플은 “에픽게임즈가 애플의 iOS 플랫폼에서 앱을 제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특별 혜택을 줄 것을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애플은 이를 거절했고, 에픽게임즈가 결제 방식을 바꿔서 자사는 게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에픽게임즈에 있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유통 수수료 비율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슈는 독점 여부
에픽게임즈와 애플이 갈등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유통 수수료 30%다. 하지만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수수료 30%는 플랫폼 업체의 통상적인 비율이다. 콘솔 플랫폼 3사 MS, 소니(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는 자사가 운영하는 디지털 마켓 수수료를 30%로(MS는 비게임 15%) 잡고 있고, 스팀은 매출이 1,000만 달러(한화로 119억 원) 미만이면 30%, 1,000만 달러 이상은 금액에 따라 25%, 20% 순으로 낮아진다. 에픽게임즈가 자사 플랫폼 수수료를 12%로 삼은 것이 이슈화된 이유 역시 통상보다 낮아서였다.
다만 애플은 다른 플랫폼 업체와 달리 애플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으면 게임을 제공할 수 없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의 마켓 운영이 타사보다 폐쇄적이고, 이러한 마켓 운영이 소비자와 개발자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 15일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스마트폰 소비자가 앱을 설치할 경로를 선택할 자유와 앱 개발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앱을 제공할 수 있는 자유와 두 주체(개발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자유를 위해 싸운다”라고 말했다.
미국 IT 주요 업체도 에픽게임즈 행보에 동감하고 있다. MS는 애플이 에픽게임즈가 가진 언리얼 엔진 SDK 접근 권한을 유지해달라고 밝혔다. 이를 차단할 경우 언리얼 엔진을 사용한 모든 게임이 영향을 받아 업계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취지다. 페이스북도 에픽게임즈에 지지를 표했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게이밍 앱을 iOS에 출시하며, 게임을 제거하고 서비스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밝힌 이유는 서비스에 포함된 인스턴트 게임이 애플 정책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국가적으로도 애플 독점 행위를 조사 중이다. 우선 미국 하원은 지난 7월 29일 반독점 청문회를 열었고, 애플을 비롯한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최고경영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지난 6월부터 애플 반독점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 미국, 유럽 당국에서 애플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면 이 결정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애플은 아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구글 독점 여부에 대해 조사 중이다.
누가 이기든 글로벌 게임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
애플과 에픽게임즈 간 소송에서 누가 승소할지는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이기든 그 결과가 게임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만약 애플이 이길 경우 현재 구글, 애플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앱 마켓 사업자로서의 위치는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애플에 가장 적극적으로 공세적인 입장을 펼친 에픽게임즈가 패소했으니 다른 업체도 이에 대해 개별적으로 대응할 추진력을 얻기 힘들다. 업체 개별 결제 수단 도입이나 30% 수수료를 낮추는 것도 요원해진다.
반대로 에픽게임즈가 승소할 경우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모바일게임 시장 전체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에픽게임즈가 애플에 승소해 자체 결제를 탑재할 권한을 획득하면, 게임사 다수가 ‘동등한 조건’을 앞세워 자체 결제를 도입해 비용 절감을 노릴 수 있다. 다른 게임사 역시 자체 결제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따라서 애플, 구글은 마켓 수수료에 대해 게임사와 개별로 협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수수료 책정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다. 자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게임사라면 협의를 통해 자체 결제를 게임에 적용해 수수료를 줄일 수 있고, 결제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없다면 기존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다만 수수료 비율이 높다는 지적이 있기에 구글, 애플이 비율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은 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 소송이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이 결과가 국내 게임업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