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널, 화나서 껐는데 자다가 생각나는 게임
2021.04.29 21:01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PS5는 출시 이후 신작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대다수 게이머들은 ‘일단 사놓고 보자’하는 생각으로 기기 예약구매에 열을 올렸지만, 막상 마련하고 나면 PS5에서 즐길 수 있는 대작 타이틀이 딱히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데몬즈 소울 정도를 즐기고 나면 자연스레 이전 세대에 나왔던 게임들을 즐기는 데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S5 유저들은 신작 ‘리터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괴생명체가 출몰하는 정체불명의 행성 아트로포스를 무대로 한 주인공 셀린의 여정을 그린 리터널은 오는 30일 정식 발매된다. 죽으면 빈털터리가 되어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로그라이크, 포화가 눈앞을 가리는 탄막, 그리고 국내 게이머에게 다소 껄끄러운 게임패드 기반 슈팅 등 호불호 요소를 덕지덕지 바르고 있지만, PS5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앞서 언급한 호불호 요소 때문에 누구에게나 추천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S5 유저의 신작 갈증을 해소시켜 줄만한 높은 완성도를 갖춘 게임이다.
※ 본 리뷰는 게임 스토리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짜릿한 손맛, 짙은 여운을 남기는 햅틱 피드백
리터널은 주인공 셀린의 우주선 ‘헬리오스’에 고장이 발생하면서 시작한다. 우주선의 고도가 빠른 속도로 낮아지다가 지상으로 처박히는 장면이 시각은 물론 촉각으로도 전달된다. 이는 바로 PS5 컨트롤러 듀얼센스의 햅틱 피드백 기능 덕분이다. 플레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와 감도의 진동을 제공하는 본 기능 덕분에 주인공 셀린이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공포가 플레이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실제로 리터널은 햅틱 피드백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 게임이다. 오프닝 이후 본격적인 게임 플레이 내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게임을 끈 뒤로도 손바닥 구석구석 깊은 여운이 남는다. 햅틱 피드백 자체가 걷기, 달리기, 사격, 피격 등 온갖 상황마다 다른 진동을 제공하는 기능이지만, 리터널의 기괴하고도 스산한 분위기가 더해져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주인공 셀린의 우주복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을 표현한 진동이 손으로 전해질 때, 플레이어의 어깨에 소름이 '쫙' 끼친다.
게임 자체가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다가 자극도 빈번하게 가해지다 보니 금세 피로해진다는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햅틱 피드백이 없는 리터널은 ‘팥 없는 찐빵’이라 할 수 있다. 소니 퍼스트파티 독점게임도 하나 둘씩 다른 플랫폼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리터널도 언젠가 PC 또는 Xbox로 나올 수 있겠지만, PS5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까지 고스란히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을 고려했을 때 리터널은 PS5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독점작이라 할 수 있다.
화나서 게임 껐는데, 침대에 누우니 생각난다
셀린이 불시착하게 된 행성 아트로포스는 수수께끼투성이다. 한때 찬란함을 뽐냈을 것 같은 외계 문명의 잔재, 크툴루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적대적 괴생명체 등은 괴이하지만 그나마 익숙한 요소. 셀린 본인의 시체가 녹음 파일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다가, 지구에 있어야 할 집까지 우뚝 솟아 있는 상황은 도통 혼란스럽기만 하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으스스한데다 가끔 이상한 소리도 들리다 보니 플레이어는 수시로 깜짝깜짝 놀란다. 공포심이 내면을 지배하는 격이랄까? 하지만 자주 죽음을 맞이하다 보면 이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는 ‘앞선 회차에서 죽은 셀린의 주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적대적 생명체를 맞닥뜨렸을 때는 두려움보다 증오스러움에 이를 갈게 된다.
리터널은 로그라이크와 탄막이 어우러진 슈팅게임이다. 이 두 가지가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요소는 아니다 보니 리터널은 다른 AAA급 타이틀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성은 부족하다 할 수 있다. 탄막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는 처음 조우하게 되는 적대적 개체도 대처하기 쉽지 않다. 적들의 패턴은 단계적으로 악랄해지는데, 서로 다른 공격 스타일을 지닌 적들이 함께 출몰한다거나, 근접 공격으로만 파훼할 수 있는 쉴드를 지닌 적, 맵 한가운데 위치한 타워를 통해 체력 회복을 하는 적 등이 나와 플레이어를 괴롭힌다. 보스는 하나의 개체만 나오니까 좀 만만해 보일 수도 있는데,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의 탄막을 형성해 플레이어를 괴롭힌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다 보면 ‘이걸 어떻게 깨’라는 생각보다는 ‘조금만 더 하면 깰 수 있을 듯 한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탐색 중 발견한 아이템 수집에 신중을 기하게 되는데, 특히 캐릭터에게 무작위 디버프를 한시적으로 부여하는 ‘악성’에 오염된 상자나 자원을 채취할 경우나 버프와 디버프를 동시에 제공하는 패러사이트를 습득할 때는 한마디로 ‘두뇌 풀가동’ 상태가 된다. 잘못된 선택 한 번이 해당 회차 전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는 방어력 15% 버프에 홀려 ‘아이템 습득 시마다 대미지’라는 디버프를 간과했는데, 하필이면 그 회차에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아이템들이 많이 나와 수시로 대미지를 입었다.
개별 전투에서는 회피와 근접공격의 쿨타임, 사격무기마다 다른 장탄수, 특성, 장전 속도 등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도 이러한 점들이 짜릿함과 머리 쓰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돌파 시 쾌감을 배가한다.
물론, 보스전 클리어를 목표로 부활 아이템을 수집하고, 귀중한 자원인 에테르까지 활용해 중간 저장 오브젝트까지 활성화하는 등 차곡차곡 빌드업한 캐릭터가 악운을 거듭해 평범한 적에게 쓰러졌을 때의 분노는 이루 형용할 수 없다.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의 듀얼센스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분노와 허탈함에 게임을 끄고 침대에 누운 순간, 지금 다시 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시 게임기를 켜게끔 만드는 마력이 리터널에는 숨어 있다.
모두에게 추천하기는 망설여지지만 완성도는 일품
멸망해버린 외계 문명이 남긴 암호, 금석문, 홀로그램 영상을 찾아서 읽고, 전생(?)의 셀린이 남긴 녹음 파일을 주워 듣는 등 리터널의 스토리 전개 방식도 만족스럽다. 플레이어가 직접 셀린이 되어 행성 아트로포스의 비밀을 파헤치는 모험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로그라이크에 탄막, 게다가 국내 게이머 한정으로 까다롭게 느껴지는 게임패드 조작 슈팅게임이라는 점에서 ‘꼭 해봐야 할 게임’이라 말하며 추천하긴 망설여진다. 여기에 오류로 인해 각종 오브젝트가 비활성화되어 꼼짝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끔이긴 하지만 이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출시 첫날 DAY 1 패치가 이루어질 예정인데, 이 부분은 필히 수정됐으면 한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점은 PS5라는 플랫폼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완성도 높은 게임이라는 것이다. 리터널을 플레이하며 개발사 하우스마퀴의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리소군, 에일리어네이션, 매터폴 등 20년 넘게 아케이드 슈팅게임을 만들었던 하우스마퀴가 지금껏 쌓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새로운 분야로의 첫 도전에서 이토록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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