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크라이 6, 장점은 유비소프트 단점도 유비소프트
2021.10.13 18:34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유비소프트 게임은 장단이 명확하다. 뛰어난 그래픽과 영상미, 정확한 고증에 바탕을 둔 세계관 묘사와 인상적인 인물 및 악당들은 유비소프트 게임의 고유한 장점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을 잃는 용두사미식 스토리나, 넓기만 하고 밀도 없이 수집 요소만 즐비한 오픈월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유비소프트의 단점이다.
파 크라이 6에도 이 장단점은 그대로 구현돼 있다. 시리즈의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 흔히 보았던 유비식 오픈월드가 접목되다 보니 장점도 단점도 유비소프트의 전통을 그대로 가져왔다. 기본적으로 파 크라이 특유의 매력은 잘 녹아들어 있어 시리즈에 애착이 있는 팬이라면 재밌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파 크라이 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없고 최근 계속된 유비식 오픈월드에 질린 유저라면 이 게임은 절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만나야 했던 게릴라와 파 크라이
위에서 말했듯 파 크라이 6는 시리즈가 자랑하는 특징들이 게임에 아주 잘 스며들어 있다. 본작의 주인공 '다니 로하스'는 자유를 찾아 독재국가인 야라를 떠나려 했으나, 조연들의 희생을 통해 난데없이 게릴라 반군인 리베르타드에 흘러 들어가게 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야라 정권 타도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외딴 오지에 떨어진 주인공이 제목대로 외부와 단절된 상황속에서 생존하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는 셈이다.
매력적인 악당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의 빌런인 '안톤 카스티요'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무척이나 현실적이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의 풍모를 보여준다. 이제 막 청소년기를 맞이한 아들의 권력 승계와 교육을 위해 눈앞에서 혁명군을 비롯 평범한 시민들을 총과 칼로 죽이는데, 이는 곧 공포와 억압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관과도 연결된다. 특히 지병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설정 덕분인지, 타인을 비롯해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냉정하고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며 플레이어 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약물이라는 요소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세계관에 녹아 있다. 게임 속 가상의 국가인 야라의 주 수입원은 암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알려진 '비비로'라는 식물이다. 이 식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독가스를 살포해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됐는데, 이로 인해 반군이 결성됐고, 주인공 또한 이 인력 차출을 피해 도망치던 중에 반군에 가담하게 된다. 주인공에게 비비로 주요 차출 대상인 고아라는 설정을 적용해 반군 합류에 당위성을 부여한 점이 특히 인상 깊다.
게릴라라는 테마에 맞게 이번 작품은 중남미, 그중에서도 쿠바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티가 난다. 빨강과 파랑 위주로 구성된 마을과 차량 색깔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틴음악, 주민들의 생활상과 동식물의 식생까지 모두 중남미의 그것과 닮았다. 다만, 재밌는 부분은 공산주의를 옹호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의지도 곳곳에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독재자 안톤 카스티요는 어디까지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인물이며, 혁명군 리더인 클라라 또한 혁명 이후의 민주 정부를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중 등장하는 게릴라군을 상징하는 색깔은 쿠바 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색이 아니라 푸른색이며, 반대로 정부군이 붉은색을 하고 있다.
탱크도 터뜨리는 유도 폭죽 발사기
전투는 전작들의 좋은 점만 골라 잘 조합한 뒤 새로운 시스템 몇 개를 추가해 참신함을 추구했다. 일단 시리즈 내내 등장했던 차량, 공중, 연쇄, 투검 제압이 복귀됐다. 제압 모션도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전작에 비해 훨씬 간결하고 호쾌하게 바뀌어서 말 그대로 플레이의 다양성과 속도감이 모두 크게 상승했다. 무엇보다 5편에선 스킬을 업그레이드해야지만 사용 가능했던 윙슈트나 각종 제압기가 풀림에 따라 3편이나 4편에서 고수들이 사용하던 속도감 넘치는 플레이가 가능해진 점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스킬과 레벨링 시스템이 사라진 대신, 무기 등급 및 업그레이드가 더욱 강화됐다. 전작은 레벨이 낮으면 무슨 수를 써도 적의 보호구를 뚫을 수 없었으나, 레벨이 없어지면서 다소 강한 적이라도 헤드샷이나 연발 공격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무기 등급 및 업그레이드 시스템은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및 발할라와 마찬가지로 어떤 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역을 돌아다니고 퀘스트를 깨며 강한 무기를 얻으면 더 강한 적들이 있는 지역도 점령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자유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레벨 디자인을 영리하게 구사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가장 훌륭한 부분은 사용가능한 무기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총기도 정말 많이 등장하는 와중에 게릴라군 만의 무기 '레솔베르'가 추가되면서 전투의 재미가 한층 배가됐다. 특히 레솔베르 무기의 경우 벽을 관통해서 적을 맞출 수 있는 무기부터, 바이크 엔진을 사용한 개틀링 기관총, 폭죽 다발을 발사하는 폭죽 발사기 등 개성 넘치는 것들이 많다. 심지어 모든 무기들은 소음기 장착이나 폭발 탄약 같은 기본적인 업그레이드 외에도 폭죽 유도기능 추가처럼 극적인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여기에 또 한층 전투의 재미와 능동성을 더해주는 녀석이 추가됐으니, 바로 수프레모 가방이다. 수프레모 가방은 오버워치의 궁극기처럼 활용할 수 있는 무기로, 유도 로켓을 발사하는 가방부터, EMP로 탱크나 보안장치를 박살 낼 수 있는 가방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몇몇 가방은 2단 점프나 벽 투시 등 다양한 보조 기능을 제공해 주기도 하며, 게임 진행 중 실시간으로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저 입맛에 맞는 전투를 펼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밖에도 사라진 동료 시스템을 대신해 전투에 소소하지만 적잖은 도움을 주는 아미고 시스템 또한 전투 자체의 재미를 늘려주는 부분이다.
발목을 잡는 건 뻔한 기시감
파 크라이 6는 분명 전작에 비해서 분명 발전한 게임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결국엔 유비식 오픈월드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다. 파 크라이 시리즈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이번 작품을 냉정하고 강하게 비판한다면,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를 근현대 배경의 FPS로 변환한 수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할 법하다.
하나하나 톺아보자면 탑을 올라가서 맵과 주변을 밝히는 게 없을 뿐, 결국 어떤 거점이나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선 고지대로 올라가 적들을 스캔하고 마킹해야 한다. 더불어 원버튼으로 적을 암살하는 부분과 이 암살을 잘만 활용하면 어지간한 거점은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와 같다. 강한 적과는 박진감 넘치는 일기토를 반드시 치러야 했던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와 비교하면 파 크라이 6의 전투는 오히려 지나치게 간결하고 심심하게 다가온다.
게릴라의 혁명 전술인 ‘포코 이론’을 본떠 만들었다는 게임 내 거점 점령 시스템도 사실상 유비소프트 특유의 하우징을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각 지역의 유지를 도와주고 게릴라로 포섭한 뒤 정부군을 고립시킨다는 게임의 큰 줄기야말로 지역 사회와 유대감을 쌓아서 자연스럽게 게릴라군의 영향력을 넓힌다는 ‘포코 이론’에 더욱 잘 부합한다. 이렇게 게임을 진행하는 족족 기시감이 느껴지고 이 부분이 시종일관 게임의 평가를 깎아 먹는다.
이런 기시감은 분명 좋게 작용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파 크라이 시리즈의 특징들을 잘 변주한 것들도 기시감을 잘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읊었던 다른 유비소프트 오픈 월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성과 요소는 누가 뭐래도 안 좋은 의미의 데자뷔다. 오죽했으면, 미니 게임에 불과한 투계가 이 게임에서 가장 참신한 부분이라는 농담이 통용될 정도다.
더불어 게임의 마감도 고르지 못하다. 우선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버그가 상당히 많다. 제한 시간 내에 NPC를 따라가 특정 구역을 탈출해야 하는데 그 NPC가 우왕좌왕한다던가, 탱크가 투명해져서 보이질 않는 등 치명적인 버그가 산재해있다. 한국어 번역도 엉망이다. 오역도 많으며, 스페인어를 번역하지 않고 음차하는 등 스토리 이해를 방해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이마저도 유비소프트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오류라는 것이 소름 돋을 지경이다.
유적유, 유비소프트의 적은 유비소프트
위에서 말했듯이 파 크라이 6는 시쳇말로 '유비가 유비한 게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선 2시간에 걸친 초반 튜토리얼 구간만 해도 스토리를 제외한 게임의 모든 요소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유비소프트의 작법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적어도 파 크라이 시리즈 특유의 재미는 놓치지 않고 잘 소화했다는 것이며, 전작들에서 비판받은 요소는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더 좋게 발전시킨 부분도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게 이 게임을 필구해야 할 이유가 되기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유비소프트의 적은 유비소프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