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90년대 신문사 '편집장'이 되어, 참언론을 만들자
2022.07.16 18:0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지난 5월, 인디크래프트에서 트레일러 만으로 시선을 끈 독특한 게임이 있었다. 실사 사진에 흑백 도트 그래픽으로 시대적 분위기를 더하고, 붉은 색으로 임팩트를 더한 단출한 타이틀이었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신문의 1면에 적힌 자극적인 타이틀과 그 신문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이 흘러나오는 트레일러가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게임에 대해 조사했다.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으나, 심플한 타이틀과 간결한 설명, 그리고 직접 신문의 방향성을 고르는 시스템은 확실히 독특하다 못해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게임에 대해 두루 알아보고 싶었다. 첫 작품 ‘편집장’ 출시를 앞두고 분투중인 1인 인디게임 개발사 데카트리게임즈의 대표 ‘DT’와 함께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플레이어의 방향이 변화를 만드는 텍스트 스릴러
‘편집장’은 플레이어가 1996년 서울에 있는 신문사의 편집장이 되어 자신의 의도에 따라 뉴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기사를 편집하는 방향에 따라 기사는 대중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도, 신문사나 특정 단체, 혹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사를 작성할 수도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향은 모두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렸다. 이렇게 한 차례의 정제를 통해 발행된 기사는 ‘신문사, 관련 인물, 특정 단체, 기업’등 다양한 군상과 사회에 변화를 주면서 분기점을 만들고 다양한 결과를 부른다.
이야기는 어느 의원이 피살을 당한 후, 유력 용의자가 그의 수석 보좌관이라는 의혹 기사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기사를 작성하기 전, 의원 살해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만나며 취재를 진행해 정보를 얻는 한 편, 그 외의 사건도 기사로 다루며 점차 범인을 추적하게 된다.
취재 도중 사건과 관련된 사진을 제공 받을 경우에는 여러 단서를 탐색할 수 있다. 탐색으로 생긴 의문은 사진을 제공한 상대에게 질문을 던져 답을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플레이어의 판단에 맞춰 기사의 방향을 결정하면 된다. 1면에 실릴 사진은 이렇게 결정된 기사의 방향과 의도에 맞게 확대, 축소, 이동 등의 편집을 거쳐 정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이렇게 단서를 찾고 취재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행동을 취할 수 있고, 그 행동은 대화를 하는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다음 대화에 점차 변화를 준다. 기사를 완성한 뒤 발행을 끝마치면 기사는 대중의 평가를 받게 된다. 플레이어는 이 평가를 통해 기사 편집을 제대로 했는지, 또는 기사 방향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대중들의 의견을 확인하며 다음 기사 방향에 영향을 준다.
편집만 엔딩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관계와 정보가 중요한 직업이 ‘언론인’인만큼, 플레이어인 편집장은 등장인물마다 관계 수치를 가지고 있다. 이 수치는 플레이어가 결정한 기사 방향과 주고받은 질답에 따라 변화해, 이어지는 이벤트나 엔딩에 변화를 주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뚜렷한 목적과 목표로 확립된 게임성
게임은 언론사, 국회의원, 사건 등, 주요 키워드만 압축시켜 바라본다면 정치 스릴러 장르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선택한 방향에 따라 정치물 외에도 여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개를 취한다. “(키워드와는 달리) 정치권력 다툼 등의 내용은 크지 않으며, 일반적인 스릴러나 드라마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것이 개발자의 말이다.
개발자는 게임이 구체화되기 전 ‘원본에서 크롭된 이미지에 따라 다양한 의도가 전달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스토리를 고민해보다 생각난 것이 신문사 편집장이었다. 플레이어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이미지가 가지는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로 가장 적절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게임의 주제와 흐름을 정하고 난 뒤에는 아트워크를 정했다. 게임의 시대적 배경인 1996년의 신문 사진과 유사한 흑백 실사 사진에 레트로 게임이 떠오르는 제한된 색 구현 및 도트로 임팩트를 줘,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그래픽이 완성됐다.
가장 많은 고민이 있었던 부분은 ‘스토리 전달’이었다. 게임이 텍스트 위주로 흘러가는 만큼, 글만 읽는 피곤함이나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했다. 개발자가 선택한 방법은 플레이어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해 스토리의 흥미진진함을 유지하게끔 하며, 취재나 조사 등 대화 중 만나는 선택 요소에 많은 공을 들여 끊임없이 개입하고 생각할 수 있게끔 했다.
‘데카트리’만의 독특한 비주얼을 앞으로도 만나볼 수 있기를
개발자 DT가 첫 작품과 함께 인디크래프트에 참여한 이유는 풍부한 지원 프로그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디크래프트 메인 페이지와 가상 부스 등,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대중에게 공개되는 점이 특히 긍정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개발자의 말이다. 다만, 아직은 개발 중인 상황에 그쳐 이번에는 지원 프로그램 참여가 어려웠기에, 추후 기회가 된다면 베타 버전과 함께 지원을 해보겠다고 한다.
편집장 외에도 다음에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개발자는 “편집장 외에도 몇 개의 아이디어 선에 머무른 기획들이 있다. 색다른 시스템을 주축으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붙여서 비주얼적으로 독특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더해, 편집장의 긍정적 성과를 통해 다른 작품도 만들고 싶다고도 전했다.
2022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편집장은 PC와 모바일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울러, 출시이후 성과가 좋으면 닌텐도 스위치 포팅까지도 진행하고 싶다는 포부도 남겼다. 모쪼록 그가 ‘편집장’의 고독한 편집을 끝내고, 하루 빨리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힐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