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워페어 2 2022, 국제정세 눈치보다 밋밋해진 스토리
2022.10.26 18:31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2001년, 아프간 전쟁 전후로 전쟁의 엔터테인먼트 화는 가속됐다. 특수부대 출신 인원들이 매체에 나와 자신들의 일화를 풀어냈으며, 전쟁의 현장을 언제나 유튜브나 TV를 통해 방영됐다. 메탈 기어 솔리드 4의 오프닝 장면에 나오는 내러티브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경제의 온상이자 즐길거리가 됐다. 그 최전선에 있던 게임은 항상 더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세밀하게 전쟁과 전장을 묘사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시대가 달라졌다. 테러리스트라는 공공의 적이 있던 예전과 달리, 신냉전에 접어들면서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워지고 서로 느끼는 적의 대상이 달라졌다. 이러한 신냉전은 전쟁을 코 앞까지 가져와 피부로 느끼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매일 SNS나 유튜브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반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무리 게임이라도 함부로 전쟁을 엔터테인먼트로 삼을 수 없게 됐다.
그 중에서도 시리즈가 깊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특히나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신작.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2022(이하 모던 워페어 2 2022)의 캠페인 모드는 원작만큼 자극적이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분명 그래픽이나 전투 경험 및 연출에 있어선 발전했지만, 스토리 측면에선 전작보다 발전은커녕 기존 모던 워페어 2보다도 퇴보한 느낌을 줬다. 정확히는 단순히 퇴보했다기보다는 현재 국제 사회에 얽혀있는 여러 문제를 회피기 위해 작가가 몸을 사렸다는 것이 느껴졌달까?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아이콘이 총집합
모던 워페어 2 2022의 캠페인 모드는 전작으로부터 완벽히 이어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전작은 콜 오브 듀티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존 프라이스 대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선 그가 결성한 팀인 태스크포스 141이 주연으로 활약한다. 1편에 등장했던 카일 '가즈' 게릭과 이번 작품부터 합류한 존 '소프' 맥태비시, 사이먼 '고스트' 라일리,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인 멕시코 특수부대 로스 바케로스의 팀장 알레한드로 바르가스 대령 등이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진행된다.
게임 내 주요 적성 세력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우선 워존에서 베르단스크를 침공했던 테러 세력 알 카탈라와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이란 혁명수비대, 그리고 러시아군이다. 사실 게임 내에서 주로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은 이란 혁명수비대이지만, 플레이어가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건 멕시코 카르텔과 그와 결탁한 멕시코 육군이다. 더불어 워존 1편에 등장했던 그림자 중대도 이 게임에 등장해 플레이어를 돕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래픽과 연출, 디테일은 굉장하다
기본적으로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래픽이다. 첫 시작 장면부터 실사인지 인게임 장면인지 헷갈릴 정도이며,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웬만한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그래픽이 뛰어나다. 이와 더불어 총기 묘사나 사운드, 맵 디자인 등도 굉장한 편인데, 시체에서도 적의 무전이 들리는 것은 기본이며, 테러단체의 발전된 장비나 움직임 등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나 근접 제압 연출이 매우 다채로워져서 전반적으로 잠입 미션이 늘어난 지루함을 없애준다.
디테일뿐만 아니라 미션의 종류도 상당히 많아졌다. 잠입 미션은 잊을만하면 등장하며, 수중 액션은 물론 정확한 대화 선택지를 입력해야만 하는 미션, 차 지붕을 뛰어다니거나 배 위에서 움직이는 화물을 피해 다니는 등 황당할 정도로 다양한 미션이 준비돼 있다. 총질에 총질을 거듭하던 이전 시리즈들의 캠페인을 생각하면 큰 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이번 작품은 각 미션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유는 장갑병이 굉장히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유닛은 전작인 콜드워보다 훨씬 자주 등장하는데, 이게 그냥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규군이라면 거의 무조건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며, 비정규군중에도 심심찮게 장갑병이 등장한다. 다행히도 콜드 워 시절처럼 헤드샷을 강제했다면 마냥 불합리하게 다가왔겠지만, 총알을 계속 쏟아붓다 보면 장갑판이나 방탄모가 깨지는 연출이 나온다. 좁은 곳에서 갑작스레 마주했다면 화력으로 밀어붙여도 되는 정도다.
단편적인 서사와 동기가 없는 악역들
플레이 측면에선 발전이 있었지만, 스토리에선 발전보다는 퇴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일단 게임 내 반전이 너무 밋밋해서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이며, 등장하는 빌런 모두가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줘 매력이 굉장히 떨어진다. 뭐 언제나 그렇듯 배신하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인물이 배신하는 동기도 불분명하고 작중에 암시되는 것도 없다 보니 충격보다는 의문을 자아낸다. 덕분이랄지 게임을 다 클리어 하고 나서도 주요 인물들과의 전우애보다는 허무함이 남는다.
물론 매력적인 인물들도 있다. 이번 작품에서 '배드 애스'의 전형적인 외모와 행실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알레한드로 바르가스 대령도 그중 한 명이다. 빌런이지만 당당하고 거친 모습을 보여준 발레리아도 나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모두 그 저의가 다소 궁금할 정도로 이해가 잘 안 간다. 특히나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는 핫산과 스포일러 급 인물의 행보는 다시금 하나하나 짚어봐도 행적과 사상에 구멍이 너무나 많다. 아니 정확히는 사상 자체가 아예 드러나지 않아 그 행적과 동기에 지속적으로 의문이 생긴다.
스토리를 큰 틀에서 뜯어봐도 이는 마찬가지다. 전작에선 존 프라이스 대위가 명령과 자신의 판단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대의에 의거해 일을 펼쳤는데, 이번 작품에선 대의 보다는 한 인물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돌아다닌 수준에 불과하다. 핵전쟁을 막고,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지키기 위해 뒤에서 암약했던 TF 141팀이 이번 작품에선 그냥 누군가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정도에 불과해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스토리가 물 흐르듯이 정확한 박자에 맞춰서 흐르기라도 했다면 단순히 아쉬움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중반부 급전개 이후 숨 가쁘게 엔딩으로 달리는 형식이다 보니 이 아쉬움이 허무함으로까지 번진다.
대체 왜 이렇게 밋밋해졌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따지기보다는 스토리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짚어보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사실 중간중간 나오는 여러 복선과 일전에 액티비전에서 공개한 캐릭터 소개 영상이나 인터뷰를 보면, 제작 중간에 큰 규모의 스토리 수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알레한드로의 경우 지금보다도 훨씬 입체적으로 그려질 예정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섀도우 중대와 셰퍼드 장군의 중요한 서사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이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면서 이야기의 개연성에 차질을 빚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수정이 왜 생긴 것인가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데, 이는 모던 워페어 2가 그리고 있는 실정이 신냉전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분명 리부트 이전의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당시의 시대상과 기조를 반영해 군인의 명예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주인공의 목표, 그리고 이념을 우선해 파괴와 살인을 일삼는 테러리스트와의 대립을 그렸다. 이는 지금 봐도 굉장히 타당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리부트에선 다르다. 테러리스트는 등장하지만, 그 목표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으면서 적성국의 이름이 러시아와 이란으로 정확히 지칭된다. 북한이나 중국까지 가지 않았을 뿐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2019년부로 미국과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난 이란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계획하고 있음이 게임 내에서 계속 그려지고 있다. 이는 패권 다툼이 벌어지는 신냉전의 현실과 일치한다. 더 나아가선 트럼프 시절부터 미국이 자아내고 있는 각종 논란의 결과물과도 정확히 합치한다. 이는 최소한의 명분인 ‘전쟁을 막기위한 작은 전쟁’을 쫓아 움직이는 태스크포스 141 대원들의 행적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모던 워페어 리부트가 최근에 나온 탑건: 매버릭처럼 처음부터 적국을 지칭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게임은 두 나라를 너무나 명확하게 지칭한다. 한반도 바로 옆에서 동북아 평화를 목적으로 한미일이 북중러를 견제하는 훈련을 펼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본 시나리오대로 게임을 냈다가는 ‘전쟁을 조장하는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뻔했을 것이다.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는 수밖에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본다 한들, 이번 캠페인 모드의 스토리가 타당하게 수정되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막말로 신냉전의 긴장감으로 인해 이야기를 수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며, 수정된 내용이 어찌 되었건 개연성도 떨어지고 감동이나 울림이 적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엔딩과 쿠키영상을 통해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만큼은 유지했다는 점이다. 모던 워페어를 상징하는 악명높은 키워드가 등장하는 그 장면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다음 작품에선 모던 워페어가 흔들림 없이 제대로 된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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