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턴제'가 선사하는 현실적 전투, 팬텀 브리게이드
2023.03.09 19:13게임메카 김형종 기자
가끔 턴제 게임을 하다 보면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내가 공격을 하면 적은 정정당당하게 맞아주고, 또 나는 적의 공격을 정정당당하게 맞아주는 그런 기사도 정신. 게임은 재미있지만 그럼에도 약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멈춰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게임이 약간 경직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기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면, 게임 팬텀 브리게이드(Phantom Brigade)를 추천하고 싶다. 팬텀 브리게이드는 개발사 브레이스 유어셀프 게임(Brace Yourself Games)이 만든 전략 메카 게임으로 2월 28일 PC(스팀)로 출시됐으며, 실시간 턴제 전투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들고 나온 게임이다. 턴제 게임을 좋아하지만 약간은 질려버린 사람, 메카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실시간 턴제 전투 라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시간 턴제 전투이다. 실시간과 턴제라는 모순을 양립하기 위해 이 게임은 '5초'를 1턴으로 삼아 정지된 시간 동안 5초 간의 실시간 전투를 설계하는 것으로 양쪽 모두를 살렸다. 이런 전투 방식은 실시간 전투가 가진 현실적인 장점과 적의 공격을 대처하고 내 공격을 계획할 수 있는 턴제의 장점만을 떼온 방법이다.
한 턴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한 턴에 어떤 ‘작업’을 할지 ‘계획’하게 된다. 계획 시간은 무제한이며, 그 동안 이동, 공격, 보조장비 사용 등의 작업을 배치할 수 있다. 또한 계획 시간 동안에는 적군의 계획을 미리 확인할 수도 있다. 적의 작업을 보고 공격 타이밍에 맞춰 엄폐물로 이동을 지시하거나, 좌우 이동을 반복해 최대한 공격을 회피하도록 계획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모든 작업 계획을 마친 뒤 실행 버튼을 누르면 플레이어와 적군의 5초간의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고, 5초의 전투가 끝나고 나면 다시 계획을 짜는 시간이 돌아온다.
이런 실시간 턴제 전투의 장점은 턴제와 다르게 진행이 빠르고 플레이어가 매 순간 참여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는 것에 있다. 턴제의 경우 공격을 지정하고 나면 캐릭터와 적의 애니메이션이 번갈아 나와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반면 실시간 턴제의 경우 적과 플레이어의 공격이 동시에 일어나며 그 시간이 5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전투를 보게 된다. 또한 적의 공격에 대응하고 동시에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에 작업을 빽빽하게 채워야 하기 때문에, 전장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듯한 감각을 전해준다.
적의 계획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이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게임은 여러 가지 특색 있는 요소들로 플레이어의 난이도를 증가시킨다. 우선, 적과 플레이어가 지정한 행동은 모두 계획이며, 항상 그러하듯 계획은 원하는 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적의 도착 예정 위치에 공격을 가해도 가끔 적이 나무나 건물에 부딪히는 등 계획에 없는 사태로 공격을 회피하거나, 플레이어의 근접 공격이 예측과는 다르게 허공을 가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실제 전투와 같은 현실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비슷한 류의 턴제 전략게임이 그러하듯이 아군 오인 사격이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약점과 충돌 시스템까지 있다. 아군 오인 사격은 아군이 실수로 나를 쏠 수 있는 시스템이며, 약점은 뒤에서 공격할 시 추가 대미지가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충돌은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두기 이상의 메카가 이동 경로에 겹치면 충돌하고 몇 초간 넘어져 행동 불능 상태가 된다. 중요한 점은, 아군끼리 경로가 겹쳐도 충돌한다. 다른 턴제 게임에서 아군과 적군의 총구 방향만 조심하면 됐다면, 이 게임은 이동 경로까지 신경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적과 플레이어의 메카 숫자는 때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플레이어는 최대 4기의 메카를 배치할 수 있지만, 적군의 경우는 난이도에 따라 3기부터 7기까지 메카와 탱크를 배치하며, 미션 도중 증원 이벤트가 일어나 메카가 더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요소들이 적의 작업을 미리 알고 대응하는 플레이어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계획을 꼬이게 만든다.
복잡하지만 전략이 중요한 전투 시스템
이제 전투 시스템의 큰 틀에서 벗어나 조금 세부적인 시스템을 살펴보자. 게임엔 여러 종류의 무기가 존재하는데, 무기마다 대미지를 주는 방식과 대미지 타입이 다르다. 그래서 자신 뿐만 아니라 적의 무기와 대미지를 모두 고려해 전투를 설계해야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기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무기군마다 공격하는 시간, 유효 사거리, 적중까지 걸리는 시간, 각종 대미지 수치 등등이 모두 다르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이 사거리다. 근거리에서 효과가 있는 근거리 무기와 근거리 총기, 중거리에서 효과가 좋은 사수 소총과 돌격소총, 원거리에서 효과가 있는 미사일과 저격총 등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아군 뿐만 아니라 적군이 들고 있는 무기를 잘 파악하고 효과적인 거리 재기를 이용해 전투에 임해야 한다.
또한 무기는 잦은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열관리'라는 현실적인 쿨타임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전투에서 모든 무기는 연속 사용이 가능하지만, 과열되면 기체에 손상을 준다. 이렇게 과열로 무기 재사용 시간을 갖게끔 하는 것이 열관리 시스템으로, 플레이어는 과열 피해를 입더라도 공격을 할지, 공격을 쉴지를 선택할 수 있다.
대미지 타입이 각기 다르다는 점은 팬텀 브리게이드의 독특한 특색이다. 총 5가지의 대미지 타입이 존재하는데 각각 열, 키네틱, 뇌진탕, 충격, 경직 대미지이다. 열은 앞서 소개한 과열 대미지, 경직은 스턴 대미지, 충격은 구조물 대미지, 키네틱은 메카의 체력 대미지를, 뇌진탕은 조종사 체력 대미지를 준다. 여기서 전투에 주로 활용되는 대미지는 키네틱과 뇌진탕이다. 키네틱 대미지는 적중한 파츠의 체력을 떨어뜨리는데, 만약 오른팔에 대미지가 쌓인다면 오른팔이 파괴되어 주무기를 쓰지 못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뇌진탕 대미지는 상당히 독특한 대미지 방식이다. 뇌진탕 대미지로 조종사의 체력이 0이 되면 메카 자체의 체력과 무관하게 기체가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리며, 메카 전체의 체력 보다 조종사의 체력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이 뇌진탕 대미지가 전투의 판도를 바꾸는 일도 있다. 뇌진탕 위주의 플레이는 장비 파밍에서 이점이 있지만, 중무장, 방패 등에 대미지 수치가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뇌진탕 대미지를 주는 무기 만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는 없다.
메카와 이동식 기지 시스템
전투 이외 대부분의 시스템은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전투 준비에는 메카 개조가 있다. 전투가 끝나면 플레이어는 적이 가지고 있던 장비를 획득하며, 이렇게 얻은 장비 파츠로 자신의 메카를 개조한다. 메카는 팔, 다리, 몸통, 주무기, 보조무기 파츠를 바꿀 수 있고, 각 파츠에는 방어력이나 공격력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모듈이 달린다. 방어구의 경우 파츠마다 배리어, 무게, 방열, 일체성(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에 따른 최적화도 가능하다.
또한 이런 류의 전략 게임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전술 이동이 이동식 기지로서 구현되어 있다. 엑스컴 같은 다른 게임이 분대를 파견하는 형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면, 본 게임은 기지 자체가 이동한다. 수리나 조종사 양성을 위해서는 재보급 기지로 가야 하며, 장비 제작은 공장에서 해야 한다.
이동식 기지는 게임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기능을 수행한다. 기체의 부품을 교환하거나 조종사의 상태를 살피고 파손된 기체를 수리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동식 기체의 여려 기능을 언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송 가능한 메카를 3개에서 총 8개까지 늘리거나, 배터리를 소모해 빠르게 질주하는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
이 이동식 기지를 타고 다니며 해방되지 않은 지역의 적군을 공격하다 장비가 갖춰졌다면, 원하는 지역에 해방 전쟁을 선포 할 수 있다. 지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의 적군과 주요 기지를 공격해 적 병력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이동식 기지로 적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텍스트와 함께 선택지형 지시문이 등장하기도 해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사소하지만 눈에 띄는 단점
실시간 턴제 전투는 정말 재미있지만 몇 가지 소소한 단점도 가지고 있다. 우선 UI에 개선이 필요하다. 장비 교체 창에 장비 비교 기능이 없다는 점, 장비 제작 창에 정보 대신 아이콘으로 표시돼 무슨 기능인지 알 수 없다는 점 등 소소한 문제가 많다. 이 부분은 계속해서 개선이 되고 있는 부분으로, 사실 발매 당일에는 미사일 도착 시간을 알려주지 않거나, 공격 전에 열관리 수치가 보이지 않는 등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지속적인 패치로 인해 UI 부분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 외 요소가 부실하다는 점 역시 단점이다. 특히 스토리가 사실상 전무한데, 팬텀 브리게이드의 목표가 국토를 수복하려 한다는 설정과 프롤로그의 컷신 이외에 스토리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지 이동 중에 등장하는 짧은 이벤트들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실제로 해당 이벤트의 결과 보상은 조종사 체력 회복과 ‘희망’이라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수치의 증감뿐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 없게 느껴진다. 조종사 역시 게임 진행에서 특별한 상호작용이나 성장 요소가 없다. 조종사를 일종의 소모품처럼 활용하라는 의도겠지만, 결국 이런 경우 조종사는 뇌진탕 대미지 만을 위한 존재라는 비인간적 결과가 도출된다.
전투로 들어가면 다양성이 부족하다. 전투는 분류하면 기지 점령, 적 물자 노획, 일반 전투 세가지로 분류 할 수 있는데 적을 모두 죽이면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전투 내 이벤트의 경우도 증원군의 참전 이외에는 전투의 판도를 크게 바꾸는 이벤트가 없다. 또한 특별 스테이지나 보스전 같은 것도 없다. 네임드에 가까운 ‘VIP’ 적이 기지 점령에 등장하기는 하는데, 해당 적은 고등급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기체와 다른 점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 한 이들이 댓글로 성토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게임에 리플레이 기능이 없다. ‘내가 했던 정말 멋진 플레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기에 신속하게 게임에 추가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팬텀 브리게이드는 분명 아쉬운 점들이 있는 게임이지만, 그만큼 실시간 턴제 전투의 매력이 진한 게임이었다. 개발자도 자신들의 장점이 전투라는 것을 잘 아는지, 게임 내 지역을 30개에 달할 정도로 많이 만들어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전투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수행되는 전투도 좋지만, 계획이 실패해 우당탕탕 벌어지는 전투 또한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로 전투의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다. 게임사가 실시간으로 패치를 하는 모습을 보아 몇몇 미완성 부분에 대한 개선의 의지는 충분해 보이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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