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16, 이름에 걸맞는 마지막 환상을 그리다
2023.06.21 23:0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요시다 나오키 PD의 말대로 파이널 판타지 16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상승과 강하를 반복했다. 이야기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필드 탐색 및 거점 관리와 스릴을 선사하는 강하단계인 전투가 번갈아 이어져 쉽사리 게임을 놓지 못했다. ‘DLC 등으로 다음 이야기가 추가될 예정이다’ 따위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는 깔끔한 엔딩을 보고 나서야 게임패드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실제 롤러코스터 트랙과 같이 시작과 끝이 명확하면서도,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탑승해 동일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구조가 인상 깊었다.
스토리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과감하게 생략하기로 한다. 신화와 철학을 기반에 둔 여러 코멘트와 은유가 매력적이라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기자가 직접 겪은 스토리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즐겨주기를 바라며, 이번 리뷰에서는 준비된 콘텐츠와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중점적으로 다뤄본다.
크리스털의 가호를 끊어내는 이야기
파이널 판타지 16은 주인공 클라이브 로즈필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거대한 변화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여러 인물의 군상극을 선사한다. 특히 스토리의 주도권을 쥔 인물은 게임에 큰 변화를 제공하는 도미넌트들로, 국가의 이권을 위해 소모되거나 자신의 이권을 위해 힘을 적극 활용하는 등 각각의 특징이 살아있다.
배경이 되는 대륙 발리스제아는 마더 크리스털의 가호 아래 크리스털과 에텔을 적극 활용하는 세상이다. 마더 크리스털은 각 국가마다 존재하는 거대한 크리스털 덩어리로, 모든 국가는 이 크리스털의 가호 아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마법을 영위하게 만드는 도구는 크리스털과 베어러로 분류된다. 크리스털은 에텔을 담고 있어 평범한 사람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돕는 매개다.
다른 도구인 베어러는 크리스털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칭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도구라고 칭하는 이유는, 발리스제아에서 베어러는 주인 없이는 평범한 사람들과 말도 섞지 못하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굴에 문신이 새겨진 채 온몸이 석화가 될 때까지 마법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주인공 클라이브 로즈필드의 이야기도 이 베어러로서의 삶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중세 판타지로의 회귀와 다크 판타지라는 제작진의 목적은 게임 내에서 뚜렷하게 등장한다. 게임의 시작부터 서로를 베고 가르는 전쟁의 참상을 적극 묘사하며, 중세 서양 판타지의 도식에 부합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다. 플레이 구간과 컷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맥락과 몰입을 끊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컷신에서는 특히 영상매체에서 쓰이는 구도들을 풍부하게 활용해 게임 패드를 놓고 스토리를 보는 동안에도 큰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점이나 필드 곳곳의 마을에서 다양한 군상과 세계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게 배치한 NPC들도 몰입감을 살린다. 주요 인물이 아닌 마을이나 거점에 배치된 평범한 NPC에게까지도 더빙이 있어, 대화를 걸지 않고 필드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필드의 분위기나 사태의 여파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끔 했다.
스토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해가 안 된다면 PS5 패드의 중앙 부분을 눌러보자. 액티브 타임 로어(ATL)를 펼치면 언제든 해당 스토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현재까지 벌어진 사건, 해당 장소에서 과거에 벌어진 사건 등을 복기할 수 있다. ATL에 기록된 정보는 모두 거점에 있는 이야기꾼 하포크라테스의 비망록에 모여 게임에 등장한 주요 사건 및 인물을 한데 열람할 수 있다.
또, 스토리상 다른 국가를 방문하게 될 때는 국가 방문 전 거점에 있는 인물 비비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이해도를 높힌다. 비비안은 해당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배경, 역사와 현재의 전황을 설명해줘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에서 무엇이 목적이며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대략적인 맥락을 전달하는 화자로서 활약한다.
다양한 장르의 조합으로 결코 밋밋하지 않은 배틀
플레이는 크게 스토리 포커스 모드와 액션 포커스 모드 중 하나를 골라 진행한다. 스토리 포커스 모드는 모든 액션을 간편한 조작만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액션 포커스 모드는 액션 RPG라는 본작의 특징을 적극 보여주는 모드다.
필드를 이동하는 전투와 전투 사이에 간혹 복잡한 길이 등장해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버디 토르갈의 도움을 받아 가야할 곳을 찾을 수 있으며, 제작진도 필드 위 진로 방향에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배치해둬 진행방향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첨언하자면 이런 아이템들은 최대한 주워두는 것이 좋은데, 필드와 전투로 습득하는 아이템만 잘 모으더라도 대장간에서 상위 장비를 제작할 수 있어 스토리 진행에 따라 강해지는 적을 상대하기가 한결 편하다.
플레이어는 클라이브 로즈필드를 조작하며 소환수 액션이 가미된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소환수 액션은 클라이브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소환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적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요소는 크게 회피, 패리, 윌 게이지 깎기 등이 있다.
패리는 적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정확한 타격이 이루어지면 발동되는데, 시간이 느려지는 효과와 함께 공격 타이밍을 내어줘 발동이 오래 걸리는 스킬을 사용하거나 콤보를 넣기가 한층 편해진다. 윌 게이지는 적이 피격될 때마다 줄어드는 요소로, 반을 깎아내면 적의 움직임을 잠시 멈출 수 있고, 전부 깎아내면 적을 테이크다운 시킬 수 있다. 테이크다운 상태의 적은 윌 게이지가 다시 회복될 때까지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기에 최대한 큰 대미지를 입힐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쏟아부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공격은 검을 활용하는 4타의 콤보와 마법을 조합해 이루어지지만, 큰 대미지를 입혀야 하는 구간에서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소환수 스킬과 리미트 브레이크다. 소환수 스킬은 최대 3개 속성의 소환수를 골라 한 속성마다 2개의 스킬을 취사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이에 자신의 전투 스타일에 맞춰 자유로운 조합을 시도할 수 있으며, 소환수의 특성을 살린 상태이상을 활용해 콤보와 섞어 꾸준한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기자는 타이탄의 아이덴티티인 방어와 반격을 가장 많이 활용했는데, 타이탄의 스킬 중 레이징 피스트는 정확한 타이밍에 커맨드를 입력할 경우 패리와 동일한 효과를 내면서도 대미지가 강화돼 난전에서나 큰 공격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우위를 잡을 때 큰 도움을 받았다.
리미트 브레이크는 최대 4칸까지 채울 수 있는 게이지로, 한 칸 이상 게이지가 차있을 때 발동할 경우 콤보 대미지가 강화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게이지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체력이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어떤 대미지를 입더라도 죽지 않기에 변수 창출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요소다. 특히 강화된 적이 특별한 스킬을 사용하거나 빈사상태에서 광역기가 들어올 때 마땅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리미트 브레이크를 발동해 피격된 후 체력을 채우는 선택도 가능하다. 이런 다양한 요소가 준비돼 있어, 전투가 미숙한 유저라면 생존성을 살리는 세팅을 추구할 수 있으며, 전투에 능숙해진 유저는 한층 향상된 배틀 퍼포먼스로 아케이드 모드에서 높은 랭크에 도전할 수 있다.
아케이드 모드는 거점의 아레테 스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콘텐츠다. 아레테 스톤은 트레이닝, 아케이드 모드, 리플레이 모드 등을 지원하는 일종의 유저 편의성 기능이다. 플레이어는 트레이닝을 통해 활용이 미숙한 소환수 스킬을 연습하거나 콤보 넣기, 스킬 조합 등을 시도할 수 있으며, 아케이드 모드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 받을 수 있다. 리플레이 모드에서는 이전에 도전했던 전투 필드를 다시 한 번 도전하거나 얻지 못한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한 탐색이 가능하다.
파이널 판타지 16에서 시리즈 처음으로 등장한 소환수 대전의 경우 도미넌트의 몸에 강림한 소환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괴수물이나 메카물 등, 흔히 '특촬물'이라 불리는 장르에서 볼법한 기동과 난타전, 이에 따라 타격 시마다 전해지는 듀얼센스의 강렬한 진동, 전투 중 체력에 따라 등장하는 컷신 및 QTE 등은 호흡이 다소 긴 전투의 단점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는다. 소환수 전투의 난이도는 크게 어렵지 않으며, 슈팅게임 요소가 있는 일부 전투에서 적을 타겟팅 해둘 경우 위치 이동이 크지 않을 때는 오토 타겟팅이 적용돼 조작 부담도 줄여뒀다.
스토리 전투 외에도 필드에 위치한 강한 마물 ‘리스키 몹’을 토벌할 수 있는 전투 콘텐츠도 준비돼 있다. 리스키 몹을 토벌해 얻은 재료들로는 대장간에서 좋은 성능을 가진 장비를 만들 수 있어 도전욕구를 자극한다. 리스키 몹은 거점에 있는 모그리 게시판에서 수배서를 확인하면 되며, 수배서에는 출몰 장소와 해당 리스키 몹의 설명이 더해져 있어 수색과 사냥의 재미를 더했다.
파이널 판타지라는 거대한 IP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
모든 스토리를 끝냈어도 할 수 있는 것은 남아 있다. 플레이를 끝낸 유저는 ‘강한 채로 새 게임’에 진입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스토리 포커스와 액션 포커스 모드 외에도 새로운 ‘파이널 판타지 챌린지’에 돌입할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 챌린지에서는 클라이브의 레벨 상한이 100까지 올라가며, 적들이 기존보다 강화된 상태로 등장해 도전욕구를 자극한다. 이에 맞춰 장비와 악세서리를 강화하는 단계도 확장돼, 성장의 재미를 더 느껴볼 수 있다.
제작진이 파이널 판타지 14를 제작하기도 한 만큼, 연출 등에 포함된 14의 셀프 패러디를 만나보는 것도 꽤나 흥미를 끄는 요소다. 또, 세이브창이나 설정에 등장하는 도트 SD, 파이널 판타지 전통의 이름, 키워드, 등장인물들은 본작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임을 더욱 명백히 만든다. 화려한 액션 후 등장하는 라이더 킥 등, 전투 액션에서도 풍부한 오마주가 준비돼 있어 보는 맛이 배가 된다. 그렇다고 해 분위기가 산만하지는 않다. 프렐류드를 시작으로 새롭게 어레인지된 음악들이나,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배경음 및 효과음은 몰입감을 유지하도록 플레이어를 이끈다.
종합하자면, 파이널 판타지 16은 요시다 나오키 PD의 단언대로 “본편만으로 100%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맞다. 미완성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두고 DLC를 기다려달라는 어중간한 작품들에 지친 유저들에게는 환영할만한 작품이다. 또, 한 편의 영화처럼 간결하게 이야기를 마무리를 짓고도 이후로도 게임으로서 즐길 수 있는 요소를 풍부하게 준비해두었다.
다만 일부 서브 퀘스트나 필드 대화 등지의 발화자 이름 표기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거나, 감정이 고조되거나 거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는 욕설 등을 적당히 뭉뚱그려 놓은 번역이 발목을 잡는다. 인물 간 관계를 표현하는 호칭, 멸칭 등도 더빙과 달리 다소 밋밋하게 표현돼 거칠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느낌을 전했다는 점도 아쉽다.
그래도 파이널 판타지 16은 파이널 판타지 팬들에게는 “파이널 판타지라는 IP로 이런 이야기를 보여줄 수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시선을, 전투 디렉터와 트레일러로 관심을 가진 액션 RPG 팬들에게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가 낮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단독작품으로의 재미를 전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크리스털의 가호를 끊어내려는 클라이브와 동료들의 여정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 파이널 판타지 16은 오는 22일 정식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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